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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세계의 확장은 횡단에서 시작되어 완성된다
역사

횡단의 아주 짧은 세계사

사물(의 경계선)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을 버리려는 용기

by 육영수 / 2020.01.06


이주의 인문학, 접경의 인문학, 모빌리티 인문학, 디아스포라 인문학 ― 최근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인기 연구주제들이다. 정착보다는 움직임, 중앙보다는 주변성, 변치 않는 본질보다는 유동적인 혼방 등을 강조하는 것이 요즘 인문학 교육과 연구의 대세이다. 이런 경향은 전통적인 학문이 서구-민족-남성-인간-이성 중심주의에 포획되어 고정관념의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위에서 열거한 다양한 최신 라벨을 이마에 단 인문학은 안전하고 익숙한 일상생활을 횡단하여 낯선 공간으로 도약하여 당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혁신의 원동력을 탐색하려는 공통적인 지향성을 갖는다. 


신화속 영웅들은 횡단으로 성장한다


고대시대에는 스페인 남쪽 끝에서 아프리카 북쪽 끝 사이 지브롤터 해협에 솟아있는 바위산인 ‘헤라클레스의 기둥’의 경계를 넘는 것이 금기시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그 경계를 침범하려는 인간들을 해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따지자면,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는 먼 외국 땅에서의 전쟁을 치렀던 그리스 영웅들이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이타카)으로 되돌아가는 ‘스위트 홈 드라마(sweet home drama)’ 모험담에 불과했다. 


유럽 중세도 봉건제도가 부여한 사회적 신분과 할당된 주거-작업 공간을 떠날 수 없었던 정체된 특징을 갖는 역사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근대’라는 빛나는 세기의 빗장을 연 주연들은 ‘감히’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넘어 미지의 망망대해를 향해 직진했던 모험가들이었다. 흔히 ‘대항해시대’라고 불리는 17세기 유럽 문명의 팽창과 발전은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선구적으로 선보였던 ‘집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방랑자들의 헤맴과 희생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세계사의 수수께끼 중 하나는 각종 과학기술적 발명은 ‘동양’에서 이루어졌지만 왜 ‘서양’이 세계 문명을 호령하는 주인공이 되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기하학과 아라비아 숫자는 중동 지역 지식인들이 발명했고 화약과 나침판은 중국이 지적 소유권을 갖는다. 그러나 정작 별자리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나침판을 좌표로 삼아 ‘안방’이었던 지중해를 떠나 대서양을 건너고 아프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횡단하여 신세계를 ‘발견’하고 개척한 사람들은 유럽의 모험가 또는(요즘말로 하자면) 벤처 비즈니스맨들이었다. 이들의 무모한 도전 덕분에 18세기말-19세기 초 유럽의 보통 사람들도 카리브 해와 서인도제도 식민지에서 재배한 설탕과 커피를 기호식품으로 즐길 수 있었다. 


횡단으로 세계로 퍼진 커피 문화


가장 먼저 공업화를 이룬 영국이 노동이민을 받아들인 첫 번째 나라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840년에서 1914년 사이에는 대략 1억 명의 유럽인들이 유럽대륙을 횡단하여 미국은 물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세계의 중심지로 자부했던 중화 문명과 외부로 통하는 문을 안쪽에서 꽁꽁 걸어 잠갔던 19세기 동아시아/조선과 비교해보면, 유럽인들의 국제적인 대규모 이주와 정복이 “세계사에서의 동양의 패배와 서구의 승리”를 가르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다른 한편, 횡단이라는 키워드는 단순히 공간적·지리적 범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관과 사고방식이라는 인식론적 범주에도 이 개념을 적용하여 견고했던 생각의 틀을 바꿀 수 있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을 사는 우리는 인간과 기계, 예술과 공학,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을 구별 짓는 장벽을 횡단하여 지식의 지도를 다시 작성하여야 한다. 문학적 상상력과 엔지니어적인 노하우가 융합한 버추얼 리얼리티가 책상 앞(또는 손바닥)의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생물학적인 유전자 정보와 소프트웨어적인 빅-데이터가 결합하여 사이버인간을 진화시킨다. 인식론적인 횡단과 철학적인 교차하기를 통하여 우리는 새롭고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한다. ‘생각하므로 존재했던’ 인간은 과연 로봇의 주인일까? 알파고(또는 한돌이)는 어떻게 그런 묘수(꼼수)를 ‘생각’했을까? 


디지털-5G 횡단의 시대에는 그 속도와 리듬에 맞춤하는 다른 가치관과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베이컨의 말을 빌자면,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횡단이 동반한 이슈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포옹해야할 구체적인 현실의 일부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횡단의 시대


한 때는 ‘단군의 자손이자 백의민족’임을 자부했던 우리는 현재 20명 인구당 1명 비율인 외국 출신자들과 동거하는 ‘다문화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런데 2015년 통계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다문화수용지수〉는 백점 만점에 53.95로 낙제점을 기록했다. ‘집주인’의 선량한 관용만으로는 다른 종교·피부색·세계관을 가진 ‘초대받지 못한 손님’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잘난 내가 어리석은 너를 참아주고 마지못해 용인해준다는 우월감이 깔려있는 관용정신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가 잉태했던 낡은 유물이다. 반면에, 내가 너를 잘 모르지만 너의 슬픈 사연을 듣고 상처를 보듬으려는 ‘공감능력’은 세계화 시대 국제시민이 갖추어야 할 예의이며 미덕이다.


이주(민)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연하고도 급진적인 사유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조건이 되었다. 사물(의 경계선)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을 버리려는 용기야말로 이쪽 사상에서 저쪽 세계관으로 횡단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된다. 다소 어렵게 말하자면, 나와 동물과 기계, 인간과 자연 사이를 분리하고 이간질시켜 상대방을 자신의 욕망충족과 목표달성의 도구로 삼으려는 근대성(모더니티) 그 자체를 의심하고 거부해야 한다. 


나와 고양이, 나와 꽃과 별이 서로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감정적으로 교류가 가능하도록 ‘문화번역’의 감수성을 단련해야 한다. 동물이 전달하는 고통스러운 언어와 자연이 보내는 위급한 눈빛을 번역하여 상호 이해해야만, 횡단의 항해는 존재의 저쪽 기슭에 무사히 도달할 것이다. 2020년 새해 정월에 보내는 희망어린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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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육영수
1996년부터 중앙대학교 역사학과·대학원 협동과정 문화연구학과·독일유럽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시애틀)에서 유럽근현대 지성사 전공(박사학위논문: “생시몽주의 연구”)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지식의 세계사: 베이컨에서 푸코까지』(휴머니스트, 2019),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프랑스혁명의 문화사』(돌베개, 2013), 『책과 독서의 문화사: 활자인간의 탄생과 근대의 재발견』(책세상, 2010) 등을 출간했다. 문화사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서양사학회 제53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미지 제공_ⓒ육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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