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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미래의 책은 어떤 형태일까?

내일의 출판

독립적인 소수가 이끄는 경쾌한 변화

by 윤동희 / 2019.08.19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


당연한 얘기겠지만, 시대는 늘 격변한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무수한 사고의 연속이 세상을 구성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시대를 정의하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 『물욕 없는 세상』의 지은이 스가쓰게 마사노부의 생각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지금 우리 시대가 물질 소비에서 가치 소비로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정보의 홍수, 그것을 실시간으로 검색하는 매체 환경, 그 정보들이 집적된 빅데이터…… 스펙터클한 변화 속에서 그가 찾은 해답은 ‘교양(liberal arts)’이다. 고전 속 과거의 교양이 아니라 현실을 통찰하고 미래를 읽는 교양이 우리를 자유롭게(liberal) 하는 지혜와 기술(arts)이라고 말한다. 


책은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가 책을 만들고, 책이 시대를 대변한다. 물론 책을 둘러싼 환경은 바뀌었다. 종이와 디지털의 융합은 대세다. 아니, 과거와 현재, 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무시간성과 무공간성의 시대에 종이와 디지털을 나누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스마트폰, 전자책, 아마존, 넷플릭스…… 책을 둘러싼 매체와 플랫폼의 변화, 책보다 재미있는 콘텐츠의 향연,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제나 독서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세태에서 책과 독서에 관한 인류의 갈망은 종언을 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이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달라진 매체 환경에서 사람들은 어느 시대보다 ‘읽고 쓰고’ 있다. 때론 긴 글로, 때론 짧은 글로, 때론 댓글로, 때론 해시태그로. 출판사를 통하지 않아도 직접 쓰고, 만들고, 유통시키는 독립 출판 신(scene)이 만들어졌다. 기성 작가와 출판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한,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담은 독립 출판물의 유통은 도시 구석구석에 들어선 독립 서점이 도맡는다. 뚜렷한 중심축 없이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몫을 다해왔던 제작자, 독자, 독립 서점의 각개전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에너지로 응집되었다. 다행인 걸까, 불행인 걸까. 시대는 저성장, 장기침체로 접어들었다. 꼰대, 미투, 페미니즘, 젠더, 우울, 퇴사 등 세상을 견디는 힘으로 쓴 독립 출판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에 독자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


기술의 변화는 독서의 형태를 바꿔놓았다


출판사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쏜살문고’, ‘아무튼 시리즈’ 등 독립 서점을 염두에 둔 기획이 속속 나오고 있다. 새책을 펴낸 작가가 독자를 배려하는 공간도 독립 서점으로 바뀌고 있다.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독립 서점 버전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서점이 문을 닫고, 책이 팔리지 않아 출판계가 어렵다는 시대에 독립 서점은 자꾸만 생겨나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책들이 각광받는 역설. 독립 출판과 독립 서점의 짝짓기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다. 교양을 향한 엄숙한 발걸음이 한결 경쾌해졌음을, 사람들이 다시 책을 읽게 되었음을, 아니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음을.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기대, 어쩌면 책을 쓰고자 하고 읽고자 하는 절댓값은 줄어들지 않았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책을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변화 



물론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된 것이 아니라 책을 ‘소비’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람들에게 독립 서점은 맛집, 카페 같은 ‘핫플’일 뿐이고,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책은 음식과 커피 같은 '굿즈'라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이해할 수 없음’이 중요하다.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사토 다쿠는 『삶을 읽는 사고』에서 상품에 흥미를 느끼게 하려면 우선 신경이 쓰이도록 만드는 ‘이해할 수 없는 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화를 이루지 않는 ‘위화감’이 중요한 키워드라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지적 노동이지만, 어떤 이에게 책을 읽는 것은 SNS에 자신을 드러내는 브랜딩일 수 있다. 


책의 형태가 어떻든지, 독서 방식이 어떻든지 사람들 곁에 책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책을 사지 않고 사진만 SNS에 올려도, 몇 줄만 읽고 해시태그를 남겨도, 그 사람 곁에 책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이 삶의 행복이 물질에 종속된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독서법일 수도 있다. 나날이 높아지는 삶의 속도에서 이탈해 상실감만 짙어지는 사람들이 책을 소비하는 행위로 행복할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은가. 책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도, 책을 가볍게 소비하는 사람을 무작정 혐오하는 것도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 세상은 언제나 두 바퀴로 굴러왔다. 자기의 이상형은 다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동일한 것처럼 말이다. 


변화하는 출판 시장


그래서일까. 책을 만들고 알리고 판매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푸른 초원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보랏빛 소’처럼, 그 이해할 수 없는 것 ‘사이’에 들어가 ‘연결’하는 일에서 출판의 미래를 엿본다. 북노마드도 달라지기로 했다. 2015년 12월, 독립 서점 책방지기들과의 대화를 모은 『우리, 독립책방』을 시작으로 『우리, 독립출판』(2016년 10월) 『우리, 독립청춘』(2016년 11월) 『우리, 독립공방』(2017년 12월) 『우리, 독립출판 2』(2019년 4월) 『서점의 일』(2019년 6월)을 출간했다. ‘우리’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인생을 스스로 걸어가는 청춘의 독립과 자율의 지평은 이전보다 넓어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독립과 자율이라는 변화가 결국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리즈를 시작할 무렵, 나는 독립 서점-독립 출판에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독립’이 기성세대에 반하는 ‘대안’이 되리라 믿었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환상은 서점 주인들과 작가들을 만나며 사라졌다. 일단 독립 서점의 경계부터 뚜렷하지 않았다. 언뜻 비슷한 공간을 운영하는 서점 주인들은 저마다 지향점이 달랐다. 작가들이 책을 통해 만들어내고자 하는 가치도 달랐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서점을 열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왜 서점을 하는지, 서점을 운영하며 어려운 일은 없는지, 그들에게 대안이나 자본은 어떤 의미인지, 이 역설의 시간을 통해 결국 어디에 닿고자 하는지. 만약 독립과 자율에 관한 북노마드 책들이 조금이나마 유의미하다면 현실의 유물론 자장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책-작가-독자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야기 



분명한 것은 독립 서점과 독립 출판으로 상징되는 변화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독립 서점이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청년들의 소규모 자영업에 그친다 하더라도 합리성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비합리적인 ‘기호품’을 판매하는 소규모 공간은 늘어날 것이다. 개인이나 그룹이 기획, 원고, 편집, 디자인, 인쇄, 유통 등 전 과정에 참여하는 독립 출판은 메이저와 마이너의 경계를 자유로이 유영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독립출판』(2016)에서 『우리, 독립출판 2』(2019) 사이의 시간 동안 독립 출판은 장르의 다양화, 기존 출판과의 협업, 사회적 반향에 이은 베스트셀러 진입 등 크고 작은 변화가 잇따랐다. 우울증, 정병러(SNS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용어), 자아, 개인, 관계, 불안, 결핍, 도피, 일상, 청춘, 퇴사, 혼자 살아남기, 요가, 명상, 여행, 책, 문구, 빈티지, 페미니즘…… 독립 출판의 스토리텔링에서 사람들은 희망 없는 시대를 ‘견디는’ 구체적인 노하우를 전수받는다. 디자인, 제작 등 꾸며지지 않은 날 것의 ‘방법’은 모든 것이 파편화되고 해체되는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쓰고 그리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생각나는 대로 실천하는 자유로움, 그러면서도 읽고 싶고 갖고 싶게 만드는 세련됨. 지금 독립 출판은 자유파행(自由爬行) 중이다.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획의 출판물들


그래서이다. 나는 출판 불황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출판계 지각 변동의 하부 구조를 조금이라도 살핀다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흥미로운 콘텐츠는 각광 받았고, 시시한 콘텐츠는 읽히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게임에 물들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기성세대의 콘텐츠를 자문해보는 건 어떨까. 개인의 실천이 생활의 여러 층위에서 전개되는 ‘마이크로 팝’ 시대에 여전히 거대한 이야기에서 허우적대는 건 아닌지, ‘출판 불황’만 외치며 기득권을 고수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일’이라는 말을 그리 쓰지 않는다. ‘내일의 출판’, ‘출판의 미래’라는 말이 실제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단어의 결합 같아 꺼림칙하다. 그럼에도 출판의 달라진 지형도를 고민하는 이 글에서 내일을 고민한다는 것은 어제, 오늘과 달라지겠다는 욕망임을 알게 되었다. 욕망은 본능적으로 특정 기간, 특정 영역에 다방향으로 작렬한다. 그 자유로운 욕망을 살피다보면 욕망과 욕망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 차이 중 유난히 ‘반복’되는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시간이 깊어지면 다음에 도래할 또 다른 욕망의 ‘차이와 반복’을 예감할 수 있다. 출판에 적용하자면, 수평적으로 증식하여 뻗어나가는 리좀(rhizome) 같은 독립 출판이 만들어내는 차이와 반복의 ‘리듬’일 것이다. 


소수가 변화를 이끈다


언제나 새로운 문화는 지금,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자들이 준비했다. 낡은 시대의 체제를 활주로 삼아 이륙하는 사람들은 늘 ‘소수’(였)다. 내일의 출판은 작은 욕망을 가진 자들이 작은 변화들을 단계적으로 이끌어내는 ‘베타 버전’일 것이다. 거대한 출판의 무리를 벗어나 독립적인 개인과 개인의 연결이 만들어내는 ‘틈’에서 생성되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내일에도 출판은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며,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교양의 최전선일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삶의 실천뿐. 책-작가-독자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위치’시키는 독립 출판과 독립 서점에 희망을 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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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희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문화연구와 영상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월간미술》 기자, 안그라픽스,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눈(noon)》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서울대 대학원, 이화여대 대학원, 성신여대, 동덕여대, 동국대 대학원 등에서 미술이론과 예술철학을 가르쳤다. 세종대 회화과 겸임교수, 경기대 예술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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