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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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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우리는 어제의 오늘을 산다

패션으로 바라본 레트로의 세계

by 김홍기 / 2019.07.08


뉴트로New-tro의 시대



 

 

독일의 소설가 괴테는 우리 인간이 “과거를 확장시켜 더 나은 미래를 짓는 존재”라고 말했다. 과거는 현재의 창조에 영향을 미친다. 오래된 생각은 모든 새로운 생각의 어머니이다. 최근 사회 곳곳에서 등장한 뉴트로 경향은 괴테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말이다. 복고(retro)를 새로운 방식으로(new) 즐기는 유행 경향을 뜻한다. 과거에 유행했던 옷의 실루엣과 무늬, 색감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유행한다. 최근 다녀온 도서박람회에는 1970년대를 연상시키는 색감과 폰트로 무장한 책표지들이 도처에 펼쳐졌다. 한때 국적불명의 외국어로 가득했던 카페나 레스토랑의 상호도 집을 뜻하는 한자인 당(堂)과 옥(屋)자를 붙인 상호로 변하고 있다. 


미술, 건축, 인테리어, 영화, 음악, 문학 등과 같은 예술 분야는 오래되거나 때로는 잊혀진 양식을 모방해서 문화적 혁신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피카소는 원시적인 아프리카의 가면에서 영감을 받았고, 너바나Nirvana와 같은 음악 밴드는 1970년대 음악에 귀를 기울여 복고풍 사운드를 창조했다.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는 1940년대 등장한 헐리우드 느와르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다. 현대의 문화는 과거에 발표된 형식을 참조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의 형식들이 저장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잘 보존되며, 그 양이 점점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예술가와 관객은 과거의 예술 형식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연주자나 창작자들이 과거의 작풍, 혹은 작품을 인용하면 관객들은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



패션, 물러서면 보이는 것들



 

▲ 디올의 ‘뉴룩New Look’ ⓒwww.dior.com


패션 디자이너 역시 과거의 옷에서 영감을 얻는다. 1947년 디올의 ‘뉴룩New Look’은 1940년대 전반을 지배했던 남성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여성복의 세계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뉴룩은 당시 유럽과 구미, 오세아니아와 일본까지 수십만 벌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뉴룩은 되돌아보면, 둔부에 패드를 대어 풍성하게 부풀리고, 코르셋을 통해 개미허리를 만들던 19세기 말의 벨 에포크 패션을 부활시킨 것에 불과하다. 디올의 옷이 인기를 끈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전쟁 기간 동안 가난하게 살아내야 했던 삶에 대한 보상이자 디올의 엄마 세대가 살았던 풍요로운 시대에 대한 오마주였다. 


1960년대 청년 세대가 문화적 주류로 떠오르던 시대의 미니스커트 패션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기능성에 기반한 패션을 받아들인 1920년대의 패션을 모방한 것이다. 1970년대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히피문화와 패션은 단순미와 기능미를 자랑하는 모더니즘 패션의 반동으로 시작된 로맨틱한 1930년대의 패션을 차용했다. 최근 몇 년간의 런웨이 무대를 봐도 과거로의 회귀 경향은 아주 자연스럽다. 1950년대 마릴린 몬로가 쓰던 날씬한 켓츠 아이 프레임 선글라스는 알렉산더 왕의 2018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달구었다. 2019년 봄/여름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에선 런웨이의 모델들이 1960년대 청년패션의 대변자였던 트위기의 하얀색 타이즈를 신고 등장했다.



과거, 낯선 매력의 시작



 


디자이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반성과 다가오는 미래의 낯섦이 주는 대한 불안감, 아이디어의 고갈 앞에서 과거를 그리워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따뜻한 감성과 창조성을 발견한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저명한 TV 쇼 호스트였던 아이작 미즈라히는 “과거의 옷을 먹이감으로 삼는 게 패션의 본질이냐?” 라는 한 비평가의 질문에 “제가 닭고기 요리라면 사죽을 못써요. 수 세기에 걸쳐 클래식한 닭고기 조리법은 존재해왔죠. 조리법의 양념 일부를 바꾼다 해도 기본은 여전히 닭고기에 있잖아요. 패션도 다르지 않죠. 클래식의 지위를 얻은 옷은 언제든 새롭게 해석할 가치가 있어요. 현대적인 취향에 맞추기 위해 양념의 일부를 바꾸는 것일 뿐이에요” 라고 답했다.


패션은 단순하게 과거 스타일의 요소를 베끼기보다, 과거의 삶에서 삶의 비전과 정서를 추출해낸다. 이것은 돌아오지 않는 과거에 대한 뿌리 깊은 그리움이 아닐까? 뉴트로가 힘을 얻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변형시켜 현재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소비자들에게 호소력을 발산했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에겐 직접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소환하고, 청년들에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가 주는’ 낯선 매력이 된다.



과거를 부르는 잘못된 방식들



18세기의 철학자 볼테르는 “역사는 변화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를 통해 인간이 얻고자 하는 것들이 바뀔 뿐이다”라고 말했다. 패션을 비롯한 이 땅의 많은 문화예술 양식은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 시대의 요소를 차용해서 새로움을 창조한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이 경향이 매우 강해졌다. 과거의 원본을 살짝 베어 물고 현대적 스타일링과 뒤섞음으로써 제3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요리에선 퓨전으로, 음악에선 샘플링으로, 예술계에선 차용으로 부를 뿐이다. 단 레트로 경향을 이야기하면서 빈티지나 앤틱과 같은 단어와 혼용해 마구 써왔다. 패션이 과거의 그리움을 소환할 때 빈티지(Vintage)를 사용한다. 빈티지는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수확한 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와인의 품질과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다. 또한 빈티지는 1957년형 시보레Chevrolet 차량처럼 특정 연도에 제작되어 많은 컬렉터를 갖고 있는 제품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반드시 특정 시대를 지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옛 시대의 유물을 뜻하는 앤티크와도 구분된다. 


빈티지는 점차 의미가 확장되어 패션에서는 오랜 기간이 지나도 독자적인 멋을 잃지 않는 특정 시대의 옷 스타일을 뜻하게 되었다. 빈티지란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80년대 말이다. 1980년대는 경제 호황이 지속되면서 디자이너 상표가 창궐하고 패션에서 개인의 스타일링이 중요해졌다. 돈과 이미지가 삶의 목표가 된 시대였다. 80년대의 팽배한 물질적 풍요와 달리, 정신적 공허함을 느낀 당시 소비자들은 소외감을 표현하기 위해 오래된 것 같은 형태와 색상의 의류와 오브제를 선호하고, 여기에서 풍겨 나오는 청빈함을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이 빈티지는 오늘날 예술, 패션, 인테리어, 소비 방식 등 생활양식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과거를 부르는 방식



 


빈티지란 용어는 자주 레트로(Retro)나 앤티크(Antique)같은 단어와 종종 혼용된다. 빈티지와 레트로, 앤티크 모두 현재를 사는 인간이, 과거를 소환해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세 단어가 모두 ‘과거Past’라는 시간을 다루기에 의미가 서로 중첩되면서 그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단점이 있다. 패션의 관점에서 볼 때 편의상 빈티지 아이템은 192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 만들어진 의류를 뜻하지만 연한을 가지고 빈티지를 규정하기란 어렵다. 


앤티크(Antique)는 낡음, 태고, 고대를 의미하는 라틴어 안티쿠스(Antiquus)에서 왔다. 옷차림에서 앤티크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빛깔, 무늬 따위를 지칭한다. 앤티크는 여성용 주얼리에서 액세서리, 가구, 도자기와 같은 생활용품, 직물 등에 폭넓게 쓰인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수공예에 대한 동경심을 담아 사용할 때가 많다. 앤티크는 원래 인테리어 분야에서 고급 가구를 포함한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는 경향이 컸다. 원래 영국에서 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5대에 걸쳐 내려온 은제품과 수납가구를 보여주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앤티크는 17세기부터 귀족들에게 수집과 장식의 대상이 되었다. 


패션에서 앤티크란 ‘시대에 뒤떨어진 패션’이라는 뜻이며 통상 19세기 이후의 옷을 지칭한다. 빈티지 패션과 비교할 때 빈티지는 생산 된지 약 30년 이상을, 앤티크 패션은 이보다 오래된 100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혹자는 50년을 앤티크를 산정기준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골동품과 같은 의미로 이해 할 수 있는 앤티크 패션은 패션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빈티지 패션과 다르다.



레트로는 우리의 미래다



패션에서 레트로란 빈티지 의류에서 영감을 받은 룩을 말한다. 회고한다는 뜻의 'Retrospective'에서 왔다. 1970년대 프랑스의 저널리스트들이 이전 시대를 반성하는 의미로 이 단어를 쓰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 레트로는 과거와 현재, 미래는 하나로 이어진 연속의 세계임을 확인시켜준다. 과거의 친숙한 요소들을 선별 및 해체, 확대, 축소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낸다. 이것이 레트로란 어휘에 담긴 인간의 태도다. 


레트로 패션은 과거를 차용하되 최신의 느낌으로 업데이트를 한 것을 말한다. 현대적 소재로 옛 스타일을 재해석한 것이다. 레트로를 가리켜 단순히 ‘과거로 돌아간다’는 뜻의 복고로 불러서는 안 된다. 이러한 설명은 패션을 비롯한 다른 예술 장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최근 캐주얼과 포멀웨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서로 다른 실루엣과 색상, 품목끼리 자유롭게 레이어드 룩을 연출하는 것이 패션 스타일링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빈티지 패션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거나 빈티지 의류의 색감을 조합하는 것은, 시간을 통해 검증된 색과 실루엣을 조합하는 일이다. 


레트로는 우리 앞으로 난 길을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거에서 배운 지혜와 검증된 아름다움’ 임을 말해준다. 인간은 내 앞에 펼쳐졌던, 그러나 지금은 되찾을 수 없는 과거와 화해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레트로Retro는 성찰적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레트로는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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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김홍기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 ‘패션’이라는 렌즈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이슈들을 읽고, 말하고, 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복수전공으로 연극영화를 공부하면서 영화 속 패션에 빠져들었다. 현재는 미술과 인문학, 패션을 결합한 독창적인 저술과 전시 기획, 강의를 왕성하게 이끌고 있다. 딴지라디오 팟캐스트 ‘패션 메시아’를 인기리에 진행했으며, 패션과 관련된 각종 교양 다큐나 방송의 자문을 하며, 신문 및 잡지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옷장 속 인문학』 『댄디, 오늘을 살다』 『하하 미술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패션 디자인 스쿨』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쇼킹 라이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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