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바우하우스(Bauhaus) 설립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바우하우스는 디자인 학교지만, 일반인들도 웬만큼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하다. 좀 과장하자면 바우하우스는 현대디자인과 동의어로 생각될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바우하우스의 역사 또한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일정한 역사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불과 백 년밖에 안 되었지만 바우하우스의 역사화 과정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명제처럼 역사의 발생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모던 디자인(Modern Design)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 데사우 바우하우스의 교사, 1925년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세워진 바우하우스는 혁신적인 디자인 학교였다. 바우하우스는 정확히 바이마르 공화국(1919~33년)과 운명을 같이 했다. 바우하우스의 의의를 찾자면, 근대의 조형이 마주친 근본적인 문제, 즉 기술 혁신이 가져온 생산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어떠한 조형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종합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곧 ‘모던 디자인’이다. 물론 모던 디자인을 바우하우스가 홀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모던 디자인은 19세기 이후의 여러 가지 흐름이 20세기의 새로운 조형 운동(추상미술)과 만나면서 형성된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모두 바우하우스라는 저수지로 흘러들어왔고 거기에서 합수(合水)되어 하나의 패러다임을 이루었던 것이다. 바우하우스의 의의는 일단 거기에 있다.
▲ 바우하우스의 교수들. 가운데가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 바우하우스 50주년 기념 전시 포스터, 1968년
모던 디자인의 역사화
역사(history)는 이야기(story)이다. 이야기에서 유래된 역사는 근대에 오면서 과학(?)이 되었고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넓은 의미에서 이야기의 일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주인공과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자인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디자인 역사 또한 주인공과 사건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곧 ‘모던 디자인’이라는 역사였다.
역사라는 말에는 ‘사실로서의 역사(actual history)’와 ‘기록으로서의 역사(written history)’,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서의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이고, 사실로서의 역사를 대상으로 기록하고 연구한 것이 기록으로서의 역사이다. 물론 사실로서의 역사가 없으면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있을 수 없겠지만, 반대로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없다면 사실로서의 역사가 알려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사실로서의 역사는 결국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디자인에서 최초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무엇이며 그 주인공과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통상 최초의 디자인 역사서로 간주되는 것은 독일 출신의 영국 미술사가인 니콜라우스 페브스너(Nikolaus Pevsner)가 쓴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Pioneers of Modern Design)》1이다. 이 책의 부제는 ‘윌리엄 모리스에서 발터 그로피우스까지’인데, 말 그대로 이들을 모던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의 선구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윌리엄 모리스와 발터 그로피우스 등을 주인공으로 삼은 모던 디자인의 영웅 서사이며, 최초로 모던 디자인의 계보를 확립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1《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Pioneers of Modern Design)》, 니콜라우스 페브스너, 권재식 외 옮김,비즈앤비즈, 2013
▲ 번역서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Pioneers of Modern Design)》, 니콜라우스 페브스너, 권재식 외 옮김,비즈앤비즈, 2013
이 책이 나온 것이 1936년이니까, 저자 자신이 20세기 초반의 모던 디자인 역사를 거의 동시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페브스너가 ‘20세기의 양식’이라고 부른 모던 디자인은 적어도 19세기로부터 유래된 3가지의 흐름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 공학적 건축, 아르누보가 그것이다. 이러한 종합의 결과가 바로 모던 디자인이었으며 바우하우스는 그 중심을 차지한다.
물론 바우하우스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데에는 바우하우스가 문을 닫은 이후 주요 인물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그 영향력이 국제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바우하우스는 실제와 달리 과장된 면도 있고 신화화된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바우하우스의 역사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니콜라우스 페브스너가 정초한2역사가 하나의 정전(正典)으로 자리하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2기초, 주춧돌을 정하다. 초석을 다지다.
바우하우스의 역사들
바우하우스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기록과 연구들도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독일의 미술사가인 한스 마리아 빙글러(Hans M. Wingler)가 편집한 《바우하우스》,(1969)3라는 책이다. 바우하우스 연구서라기보다는 자료집에 가깝지만 바우하우스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역사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바우하우스를 회고하는 전시들도 많이 열렸다.
▲ 번역서 《바우하우스》, 한스 마리아 빙글러, 김윤수 옮김, 미진사, 1978.
흥미로운 것은 바우하우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예컨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미술 평론가인 톰 울프(Tom Wolfe)는 《바우하우스로부터 오늘의 건축으로(From Bauhaus to Our House)》(1981)4에서 바우하우스를 비롯한 유럽 근대건축의 압도적 영향 하에 있는 미국 건축의 현실을 ‘식민지 콤플렉스’라고 꼬집으며 비판한다. 일종의 미국판 민중미술의 논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의 실천적인 여성 미술가인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는 《해방의 미학》(1979)5에서 바우하우스를 진보적인 미술 운동으로 소개하면서도, 한편으로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바우하우스의 남성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두 사례는 다른 주체들에 의해서 바우하우스가 전혀 다르게 수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영국의 디자인 역사가인 질리언 네일러(Gillian Naylor)의 《바우하우스》(1961)6를 필두로 하여 몇 종의 번역서가 나왔을 뿐 바우하우스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바우하우스 백주년을 맞아 국내 전문가들에 의한 바우하우스 저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무려 18명의 필자가 참여한 《바우하우스》7가 그것이다. 바우하우스 백 년 만에 나온 최초의 바우하우스 연구서로 최소한의 면피는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6 《바우하우스》, 질리언 네일러, 이용익 옮김, 신도출판사, 1980.
7 《바우하우스》, 김종균 외, 안그라픽스, 2019.
▲ 번역서 《바우하우스》, 질리언 네일러, 이용익 옮김, 신도출판사, 1980, 국내 전문가들의 저서 《바우하우스》, 김종균 외, 안그라픽스, 2019.
올해 바우하우스 백주년을 맞아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전시 등 관련 행사가 풍성하게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바우하우스의 명성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관점에서 바우하우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우리 나름의 바우하우스 관(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서 미국과 일본의 사례가 그런 시사점을 주지 않는가) 지난 백 년간 디자인의 역사를 바꾼 바우하우스, 이제 그 역사는 다시 쓰일 것인가. 바우하우스의 역사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바우하우스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백주년을 맞은 모던 디자인의 중심 바우하우스
최범
2019-04-15
바우하우스의 탄생
올해는 바우하우스(Bauhaus) 설립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바우하우스는 디자인 학교지만, 일반인들도 웬만큼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하다. 좀 과장하자면 바우하우스는 현대디자인과 동의어로 생각될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바우하우스의 역사 또한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일정한 역사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불과 백 년밖에 안 되었지만 바우하우스의 역사화 과정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명제처럼 역사의 발생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모던 디자인(Modern Design)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 데사우 바우하우스의 교사, 1925년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세워진 바우하우스는 혁신적인 디자인 학교였다. 바우하우스는 정확히 바이마르 공화국(1919~33년)과 운명을 같이 했다. 바우하우스의 의의를 찾자면, 근대의 조형이 마주친 근본적인 문제, 즉 기술 혁신이 가져온 생산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어떠한 조형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종합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곧 ‘모던 디자인’이다. 물론 모던 디자인을 바우하우스가 홀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모던 디자인은 19세기 이후의 여러 가지 흐름이 20세기의 새로운 조형 운동(추상미술)과 만나면서 형성된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모두 바우하우스라는 저수지로 흘러들어왔고 거기에서 합수(合水)되어 하나의 패러다임을 이루었던 것이다. 바우하우스의 의의는 일단 거기에 있다.
▲ 바우하우스의 교수들. 가운데가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 바우하우스 50주년 기념 전시 포스터, 1968년
모던 디자인의 역사화
역사(history)는 이야기(story)이다. 이야기에서 유래된 역사는 근대에 오면서 과학(?)이 되었고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넓은 의미에서 이야기의 일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주인공과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자인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디자인 역사 또한 주인공과 사건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곧 ‘모던 디자인’이라는 역사였다.
역사라는 말에는 ‘사실로서의 역사(actual history)’와 ‘기록으로서의 역사(written history)’,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서의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이고, 사실로서의 역사를 대상으로 기록하고 연구한 것이 기록으로서의 역사이다. 물론 사실로서의 역사가 없으면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있을 수 없겠지만, 반대로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없다면 사실로서의 역사가 알려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사실로서의 역사는 결국 기록으로서의 역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디자인에서 최초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무엇이며 그 주인공과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통상 최초의 디자인 역사서로 간주되는 것은 독일 출신의 영국 미술사가인 니콜라우스 페브스너(Nikolaus Pevsner)가 쓴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Pioneers of Modern Design)》1이다. 이 책의 부제는 ‘윌리엄 모리스에서 발터 그로피우스까지’인데, 말 그대로 이들을 모던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의 선구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윌리엄 모리스와 발터 그로피우스 등을 주인공으로 삼은 모던 디자인의 영웅 서사이며, 최초로 모던 디자인의 계보를 확립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1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Pioneers of Modern Design)》, 니콜라우스 페브스너, 권재식 외 옮김,비즈앤비즈, 2013
▲ 번역서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Pioneers of Modern Design)》, 니콜라우스 페브스너, 권재식 외 옮김,비즈앤비즈, 2013
이 책이 나온 것이 1936년이니까, 저자 자신이 20세기 초반의 모던 디자인 역사를 거의 동시대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페브스너가 ‘20세기의 양식’이라고 부른 모던 디자인은 적어도 19세기로부터 유래된 3가지의 흐름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 공학적 건축, 아르누보가 그것이다. 이러한 종합의 결과가 바로 모던 디자인이었으며 바우하우스는 그 중심을 차지한다.
물론 바우하우스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데에는 바우하우스가 문을 닫은 이후 주요 인물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그 영향력이 국제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바우하우스는 실제와 달리 과장된 면도 있고 신화화된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바우하우스의 역사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니콜라우스 페브스너가 정초한2 역사가 하나의 정전(正典)으로 자리하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2 기초, 주춧돌을 정하다. 초석을 다지다.
바우하우스의 역사들
바우하우스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기록과 연구들도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독일의 미술사가인 한스 마리아 빙글러(Hans M. Wingler)가 편집한 《바우하우스》,(1969)3라는 책이다. 바우하우스 연구서라기보다는 자료집에 가깝지만 바우하우스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역사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바우하우스를 회고하는 전시들도 많이 열렸다.
▲ 번역서 《바우하우스》, 한스 마리아 빙글러, 김윤수 옮김, 미진사, 1978.
흥미로운 것은 바우하우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예컨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미술 평론가인 톰 울프(Tom Wolfe)는 《바우하우스로부터 오늘의 건축으로(From Bauhaus to Our House)》(1981)4에서 바우하우스를 비롯한 유럽 근대건축의 압도적 영향 하에 있는 미국 건축의 현실을 ‘식민지 콤플렉스’라고 꼬집으며 비판한다. 일종의 미국판 민중미술의 논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의 실천적인 여성 미술가인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는 《해방의 미학》(1979)5에서 바우하우스를 진보적인 미술 운동으로 소개하면서도, 한편으로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바우하우스의 남성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두 사례는 다른 주체들에 의해서 바우하우스가 전혀 다르게 수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바우하우스》, 한스 마리아 빙글러, 김윤수 옮김, 미진사, 1978.
4 《바우하우스로부터 오늘의 건축으로》, 톰 울프, 이현호 옮김, 태림문화사, 1990.
5 《해방의 미학》, 도미야마 다에코, 이현강 옮김, 한울, 1985.
▲ 번역서 《바우하우스로부터 오늘의 건축으로》, 톰 울프, 이현호 옮김, 태림문화사, 1990, 《해방의 미학》, 도미야마 다에코, 이현강 옮김, 한울, 1985.
그동안 한국에서는, 영국의 디자인 역사가인 질리언 네일러(Gillian Naylor)의 《바우하우스》(1961)6를 필두로 하여 몇 종의 번역서가 나왔을 뿐 바우하우스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바우하우스 백주년을 맞아 국내 전문가들에 의한 바우하우스 저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무려 18명의 필자가 참여한 《바우하우스》7가 그것이다. 바우하우스 백 년 만에 나온 최초의 바우하우스 연구서로 최소한의 면피는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6 《바우하우스》, 질리언 네일러, 이용익 옮김, 신도출판사, 1980.
7 《바우하우스》, 김종균 외, 안그라픽스, 2019.
▲ 번역서 《바우하우스》, 질리언 네일러, 이용익 옮김, 신도출판사, 1980, 국내 전문가들의 저서 《바우하우스》, 김종균 외, 안그라픽스, 2019.
올해 바우하우스 백주년을 맞아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전시 등 관련 행사가 풍성하게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바우하우스의 명성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관점에서 바우하우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우리 나름의 바우하우스 관(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서 미국과 일본의 사례가 그런 시사점을 주지 않는가) 지난 백 년간 디자인의 역사를 바꾼 바우하우스, 이제 그 역사는 다시 쓰일 것인가. 바우하우스의 역사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등 여러 권의 평론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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