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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A.I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
영화

A.I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

순수 이성에게 정서적 교감을 구하다

by 강유정 / 2019.01.24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2016년은 알파고의 해였다. 3월에 있었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알파고의 승리로 끝나면서 알파고의 해는 시작되었다. 설마, 세계적 고수 이세돌이 알파고에 질 줄 몰랐다. 사람들은 알파고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뭔가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의 생각하는 기능이 사람을 앞섰다는 불안감이 덮쳤고, 사람들은 AI 시대의 도래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수십 년 전부터 디스토피아로 그려온 미래처럼, 혹여나 AI가 탑재된 로봇이 인류를 정복해 노예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부터 단순 직무로 이루어지는 대부분 직업군이 사라질 것이라는 꽤 이성적인 두려움까지. 그 두려움의 진폭은 넓었다.


A.I의 도래와 그것에 대한 공포를 그린 최초의 영화 작품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였다. 할(Hal)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외견으로 보자면 대문 앞의 디지털 도어락과 비슷하게 생겼다. 할은 오랜 시간 우주 비행을 관장하며 사람들이 잠들어 있거나 쉴 때에도 우주 선체의 환경과 운항을 책임지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할은 스스로의 생각과 계획을 수정해 인류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기술로 등장한다.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 포스터(50 YEARS AGO ONE MOVIE CHANGED ALL MOVIES FOREVER STANLEY KUBRICK'S 2001:a space odyssey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 ⓒMGM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이미 보여주었듯, A.I는 불의 발견 이후 인류의 과학 기술이 갖게 될 가장 발전된 모델 중 하나이다. 신기하게도 인류의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때, 이야기의 상상력 또한 매우 민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한다. 증기기관이 발명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 최초의 S.F 소설이라고 평가 받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이 발표되었고, 미국의 달 착륙 성공 이후 우주여행 및 외계인에 대한 수많은 S.F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A.I의 부상 때도 비슷했다. A.I와 교감을 그린 영화 <그녀(Her, 2013)>, A.I의 기능과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그려낸 <엑스 마키나(Ex Machina, 2015)>가 공교롭게도 연달아 소개되었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즈음이면 그것의 미래상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이러한 상상력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더 가지고 온다고 볼 수도 있다. 1980년대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 리콜>과 같은 영화에 그려졌던 미래의 모습은 당시만 해도 모두 상상에 불과했지만, 화상 전화나 홀로그램 교습 시스템과 같은 기술은 어느새 이미 과거의 기술이 되어 버렸다. 상상과 과학이 서로를 자극하고 견인하는 것이다.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 삶에 스며드는 A.I


알파고의 승리로 A.I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사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데이터와 결합한 인공지능 기능이 사물 인터넷 환경 속에서 우리 삶의 편의 증진을 위해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기능을 어디까지 환대할 것인가이다.


2018년, 홍콩의 한 로봇업체에서 여성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 소피아를 세상에 첫 선보였다. 소피아는 나름의 농담도 구사했는데, 지구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식의 조금은 어설픈 유머였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그것도 아름다운 여성과 무척 닮은 얼굴이었지만 섬세한 부분에서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표정이나 움직임이 상당한 불편함을 주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1가 발생한 건데, 눈을 깜박이고 입술을 움직여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움직임이 우리가 수십억 년 간 감정을 교류하기 위해 만들어 왔던 신체 사인(sign)과는 교묘히 달랐다. 오히려 인간을 완벽하게 닮을수록 불쾌감이 높아진다는 것도 흥미롭다. 우리는 사람과 너무 닮은 인형을 두려워한다. 그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1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로봇을 보면 생기는 불안감, 혐오감, 및 두려움


인공지능 소피아(Sophia)

▲ 인공지능 소피아(Sophia) ⓒhttps://www.flickr.com/people/itupictures/


지금껏 우리는 A.I가 있는 삶을 미래의 삶이라고만 여겨왔다. 하지만 A.I는 이미 일상으로 들어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인공 지능이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그녀(Her)>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타인의 편지를 대신 써 주는 일을 하는 테오도르는 그 편지로 남에게 감동을 주곤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내와의 이혼 문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 이미 아내의 마음은 떠났지만, 그는 서류에 사인을 해 주지 않는 방식으로 시간을 벌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의미 없는 짓임을 자신도 알고 있다.


그때, 새로운 OS 프로그램을 만난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시리(Siri)야.”라고 부를 때, 아이폰에서 대답하는 그런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테오도르는 그 프로그램에 ‘사만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여성이라는 성별도 부여한다. 그리고 매일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사만다는 세상의 어떤 친구보다 그를 더 잘 안다. 그의 음식 취향, 좋아하는 여성, 즐겨 읽었던 책, 보관해둔 문장들을 안다. 당연하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OS 프로그램이고, 그녀의 하드웨어 기능은 월등해서 보관해둔 메모리를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영화 그녀(Her) 포스터(2014 ACADEMY AWARDS WINNER 2014 GOLDEN GLOBES WINNER her 그녀 서툰 당신을 안아줄 이름)

▲ 영화 <그녀>(Her,2013)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여자의 목소리로 대화를 건네는 사만다는 이름처럼 마치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람들이 먼 과거에 A.I를 기술적 진보로만 여겼다면, 삶의 편리를 가져다 주는 컴퓨터, 로봇 청소기와 같은 기계적 이미지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A.I 기술이 현실화되는 시점에 이르자 사람들은 그 기술에 정서적 면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삶의 편의가 아니라 정서적 고양과 안정과 A.I를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술을 넘어선 기술


실제로, A.I는 환자를 돌보는 도우미 로봇이나 외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주는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활용이 고민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 대해 사람들이 원하는 게 단순히 편리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기능을 꼭 지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저 간단한 놀이나 대화 상대로서 빅스비나 시리를 불러내는 일이 더 많지 않은가?


생각하는 기능은 인류의 고유성이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정언명제 이후 ‘생각하는 인간’은 변함없는 인류의 고유성으로 여겨져 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고유성이긴 하지만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생각’은 이성적 사고 처리 방식이 아니라 사랑, 이해, 교감, 연민과 같은 다양한 정서 반응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감정으로 분류하는 그런 것도 사실 다 인류의 ‘생각’ 중 하나이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생각하는 기능을 가진 기계에 정서적 교감을 원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산술적 개념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정서적 상태와 교감까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A.I.는 아주 먼 과거 우리가 삶의 지배자나 정복자가로 생각한 것과 달리, 다정한 친구이자 새로운 교감자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빅 히어로>의 치유 로봇이나 <그녀>의 사만다처럼. 기술 과잉 시대에 부족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더 세련된 기술이 아니라 정서와 감정의 교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 인공의 지능이 필요할 수도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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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강유정
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2005년 조선, 경향,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생애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우연인 줄 알았던 영화평론가의 길이 필연이 된 삶에 감사하며, 취미가 일이 된 것도 다행스럽게 여긴다. 강남대학교에서 최선의 열정을 학생들과 나누며, 매년 한 권 이상 책을 엮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천생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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