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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상상, 과학기술과 만나 현실이 되다

예술 작품 속 신인류

이주은

2019-01-10


사람이 자신을 닮은 유사 인간을 만든 역사는 참으로 길다. 생김만 사람을 닮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말도 한다면 좋겠다고 상상한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겠는가. 간절하게 바라면 꿈이 이루어지는 법이라더니 마침내 상상이 실현된 세상이 도래한 모양이다. 미래의, 아니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유사 인간―인공지능―과 서로 협력하며 공진화(共進化)해간다. 이렇듯 인공지능과 더불어 생활하는 인류를 일컬어 신인류, 혹은 인간 이후의 인간(post-human)이라고 부른다.



외로움이 만든 최초의 유사 인간


최초로 유사 인간을 만든 이는 아주 쓸쓸한 조각가였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동화 『피노키오』에 나오는 제페트 할아버지처럼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오직 나무조각품 피노키오를 진짜 아들처럼 의지하고 사는 사람 말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곁에는 오직 자신이 상아로 만든 조각상밖에 없었다. 그는 조각상에 우윳빛 여자, 갈라테이아(Galatea)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마치 살아 있는 연인을 대하듯 다정하게 말을 걸고 꽃을 달아주기도 했다. 이야기 속에서 피노키오와 갈라테이아 둘 다 주인의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 마침내 인간으로 변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생명 없는 재료가 영혼을 갖게 된 것이다.



인간을 대신하는 기계인형


부동의 조각품 인형은 기계가 발달하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인형으로 진화했다. 기계인형은 사람이 해야 하는 반복적인 허드렛일을 맡아주기도 했는데, 모순되게도 그것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생겨났다. 기계인형 때문에 최초로 직장을 잃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교회의 종지기일 것이다. 사진의 동상에서 볼 수 있듯, 종지기는 하루 세 번 교회의 높은 종탑까지 올라가 마을 사람들에게 기도할 시간을 알리던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괘종시계가 발명된 이후로 종탑이 시계탑으로 바뀌고, 커다란 시계 속의 인형이 종지기 대신 종을 울리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인형들은 예수의 십이사도 혹은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하고 시계 속에 장식품처럼 서 있다가 매시간 혹은 30분마다 종을 치러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이후 시계 기능공들은 시간 알림용 태엽 인형을 괘종시계에서 독립시켜 정교한 자동 기계인형, 오토마톤(automaton)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로봇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종지기 동상

▲ 종지기(Jacquemart) 동상, 생피에르대학, 루뱅(Saint-Pierre de Louvain).


18세기에 시계 만드는 사람은 오늘날로 치면 최첨단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일하는 천재 연구자라 생각하면 된다. 스위스 태생의 시계공이었던 피에르 자케-드로(Pierre Jaquet-Droz, 1721~1790)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조각가가 형상을 깎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계적 원리에서 출발하여 인형을 만들었다. 아들과 함께 1768년에 착수한 〈문필가〉, 〈화가〉, 그리고 〈음악가〉의 세 오토마톤은 완성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 70cm 크기의 기계 어린이들은 현재 스위스 뇌샤텔(Neuchâtel) 박물관에 있는데, 놀랍게도 2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작동된다.


그중 〈문필가〉는 5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로, 실크 소재의 금색 바지와 붉은색 벨벳 코트에 프릴이 많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데, 옷을 열면 600개의 부품과 120개의 캠(CAM)이 돌아간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눈동자를 돌리면서 오른손으로는 종이판을 잡고 왼손으로는 잉크를 찍어가면서 ‘Bonjour(안녕)’ 등과 같은 몇몇 문장을 능숙하게 필기체로 써나간다. 몸통에 내장된 원형 자판은 26개의 소문자와 14개의 대문자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부의 캠들이 움직이면서 40개의 글자를 조합하여 원하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알고리즘이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장난감이나 수공예품 수준의 인형이 아니라 당대 첨단 과학기술의 성과와 인문예술적인 취향이 융합된 기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피에르 자케-드르

▲ 피에르 자케-드로, 〈문필가〉, 1774, 뇌샤텔 박물관, 스위스.


자케-드로가 만든 오토마톤의 연기를 본 당시 사람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는데, 언젠가는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국에서 알파고(AlphaGO)가 완승했던 순간 우리가 가졌던 기분과 비슷했으리라.



기계가 바꾼 인간


오토마톤의 등장 이후 인간이 기계 인간과 구별되어야 할 필요성이 본격화되었다. 기계란 사실 인간을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해주기 위해 발명된 것이었다. 하층민이나 노예가 하던 일들이 기계의 몫이 됨으로써, 곧 하늘 아래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올 거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1881~1955)가 바로 그런 기계적 유토피아를 꿈꾸던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로봇처럼 생긴 인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엄마와 아이〉에서도 두 인물은 금속관 같은 몸통과 팔다리를 가지고 있고, 얼굴 생김도 로봇과 같다. 기계화된 분위기의 배경 속에서 엄마는 책을 읽고, 아이는 꽃송이를 들고 있는데, 이는 기계로 인해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엄마와 아이

▲ 페르낭 레제, 〈엄마와 아이〉, 1922, 캔버스에 유채, 171.2×240.9cm, 바젤 미술관.


그러나 레제가 활동하던 바로 그 시기에, 기계적 원리가 지배하게 된 세상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다다 예술가 라울 하우스만(Raoul Hausmann, 1886~1971)은 나무 얼굴에 레디메이드를 붙여 〈기계적인 머리〉를 만들었다. 다다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퍼져나간 극심한 허무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계로 된 살상 무기가 전쟁을 감행하고 있는 동안 인간은 뭘 하고 있었나 하는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하우스만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둔한 인간의 머리를 ‘기계적인 머리’라고 부르며, ‘우리 시대의 정신’이라는 부제를 덧붙였다. 이마와 귀에는 눈금자가 달려 있고, 다른 쪽 귀에는 알파벳으로 맞추어야 열리는 자물쇠가 붙어 있는가 하면, 모자 대신 계량컵을 엎어 씌운 이 머리는 로봇 같아 보이지만 아니다. 어쩌다 로봇처럼 변해버린 융통성 없는 인간을 재현한 것이다.


기계적인 머리

▲ 라울 하우스만, 〈기계적인 머리〉, 1920, 아상블라주, 높이 32.5cm, 파리 퐁피두 센터.



기술 문화를 즐기는 신인류


백남준

▲ 임영균, 〈백남준〉, 사진.

 

다다의 정신을 계승했지만, 기술 문화가 인간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을 펼친, 영향력 있는 예술가가 있다. 화면이 떨어져나간 고장 난 텔레비전을 손으로 받쳐 들고 뒤에서 장난스럽게 얼굴을 살짝 내밀고 있는 이 사람, 바로 백남준(1932~2006)이다. 젊은 시절 그는 TV와 관련된 전자와 물리 공부에 푹 빠졌고, 갖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서 13대의 TV를 구입했다. 그리고 온종일 틀어박혀 TV를 뜯었다가 붙였다가 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언젠가는 모두가 각자의 TV 채널을 갖게 될 것이다.” 그가 남긴 말이다. 정말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채널을 가지고 사진과 영상, 음악이나 글을 띄워 올리며, 여럿이 함께 구경하고 서로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이렇듯 영상과 기술 문화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지 일찌감치 예견했던 이가 바로 백남준이었다. 새로운 기술에 흥겨워하고, 그것과 더불어 놀기 좋아하며, 손과 머리와 마음을 다해 기술 문화를 즐기는 인간, 그것이 결국 신인류의 진면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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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조수남, 『욕망과 상상의 과학사: 인간, 사회, 과학기술, 우주』, 생각의 힘, 2016.

카를로 M. 치폴라, 최파일 옮김, 『시계와 문명: 1300~1700년, 유럽의 시계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미지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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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주은
이주은

조선일보에서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를 연재하여 미술을 이야기 식으로 쉽게 설명해주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저서 『그림에, 마음을 놓다』로 십만 독자를 사로잡았으며, 『당신도, 그림처럼』,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미감』 등을 출간하였다.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이미지가 활용되는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 대해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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