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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잠과 백일몽의 예술
예술

'항상 깨어있으라'

잠과 백일몽의 예술

by 이주은 / 2018.10.15

 

바티칸 미술관에 가면 우아한 옷자락이 흘러내리는 자연스러운 포즈와 매끄러운 피부 표현이 뛰어난 대리석상 <잠든 아리아드네>를 볼 수 있다. 그리스 헬레니즘 스타일로 로마 시대 때 제작된 이 대리석상은, 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아내 아리아드네(Ariadne)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디오니소스는 잠든 아리아드네의 매혹적인 모습에 이끌려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청혼한다. 술과 잠의 만남,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 아닌가.



▲ <잠든 아리아드네>, 1-2세기, 대리석, 길이 238cm, 헬레니즘 원작을 로마시대 때 복제, 바티칸 미술관.



인간을 무방비한 상태로 만드는 잠


아리아드네의 아버지는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이다. 그는 거대한 미궁 속에 광폭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두고 딸에게 미궁을 관리하도록 시켰다. 이 미궁은 워낙 설계가 잘 되어 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당시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괴물을 처단하러 왔다가 미궁에 갇혀 오히려 먹이로 바쳐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는 아무도 괴물을 해치울 용기를 내지 못할 때 테세우스라는 청년이 자진해서 나섰다. 그의 용기에 반한 아리아드네는 그의 손에 실타래를 쥐어준다. 덕분에 테세우스는 미궁의 입구에 실을 묶고 실타래를 풀면서 들어가 괴물을 죽인 뒤, 그 실을 따라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여 영웅이 된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아테네로 돌아가는 도중 낙소스 섬에 잠시 머무른다. 아리아드네에게 빚을 지기는 했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이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었던 테세우스는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잠든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자, 기꺼이 물러나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잠든 사이 도망치듯 섬을 떠난다. 조각상에서 보듯 아리아드네는 한쪽 젖가슴을 드러낸 채 정신없이 자고 있는 무방비한 상태로 테세우스에게 버림을 받은 셈이다. 미궁은 혹시 카오스처럼 모든 것이 뒤엉켜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그 세계의 봉인을 푼 아리아드네는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인간은 무방비하다. 그 사이에 온갖 위험과 약탈, 속임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성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겠다는 계몽(Enlightenment)의 시대에, 잠은 각종 무시무시한 상상과 불가해한 힘들이 지배하는 어둠의 영역이었고 통제 불가한 두려움으로 이해되었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유명한 저서 『리바이어던 Leviathan』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근거로 잠자는 인간의 무방비 상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잠이 마냥 평화로우리라는 상상과 달리, 그림 속에서도 잠든 사람은 의외로 불안한 모습으로 제시될 때가 많다.



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예술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한 남자가 책상 위에 잠시 엎어져 눈을 붙인 사이에 등 뒤로 스멀스멀 온갖 괴물의 형상이 깨어나고 있다. 여기서 괴물은 인간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과 통제되지 않은 감정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잠든 동안 이성이 작동하지 못하면, 억압되어 있던 그것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계몽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훈계하곤 했다. “항상 깨어있으라.”



▲ 프란시스코 고야,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 1797, 판화, 21.5 x 15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헨리 푸젤리(Henry Fuseli, 1741-1825)가 그린 <악몽>은 잠든 사이에 꿈에 나타나는 어둠의 존재들을 보여준다. 이런 존재들을 사람들은 몽마(夢魔)라 불렀다. 몽마는 두 종류로 분류되는데, ‘위에 눕는 자’라는 의미의 인쿠부스(incubus)와 ‘밑에 눕는 자’라는 뜻을 지닌 수쿠부스(Succubus)다. 여인의 몸 위에 올라탄 괴물은 아마 인쿠부스인 모양이다.



▲ 헨리 푸젤리, <악몽>, 1781, 캔버스에 유채, 127 x 101.6cm, Detroit Institute of Art.


화면 왼쪽에는 커튼 사이로 말머리가 보이는데, 눈이 허옇게 멀어있다. 눈먼 말은 분별력이 없이 내달리는 욕정을 뜻한다. 침대 위에 활처럼 몸이 휜 채 축 늘어진 여인은 털끝 하나의 반항도 못하고 희생 제물로 완전히 내맡겨진 상태다. 여인의 침실을 덮친 그림 속의 괴물들은 어쩌면 여인의 무의식 속에 돌아다니는 욕망의 그림자인지도 모른다.



잠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초현실주의자들


예술가들이 모두 잠을 경계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는 잠과 무의식 세계와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잠든 아리아드네> 석상이 풍기는 묘한 신비로움에 사로잡혀, 잠든 아리아드네의 모티프를 평생토록 반복해서 그렸다. <예언자의 보상>은 그 중 하나인데, 고요함을 넘어 적막함이 극치를 이룬다. 사람은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신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철도역 같기도 한 건축물의 아치들과 바닥에 드리워진 짙고 뚜렷한 그림자만 부각되는 그림이다. 현실의 시간은 멈추고 대신 꿈속 세계의 시계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광장에는 잠든 아리아드네의 석상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 조르조 데 키리코, <예언자의 보상>, 1913, 캔버스에 유채, 135.6 x 180cm, 필라델피아 미술관.


꿈과 무의식에 관해 해석한 프로이트의 저술과 강연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던 시기여서, 키리코의 작품은 예술인들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특히 무의식의 세계에서 창조력을 끌어낼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던 예술가들이 그룹을 결성했는데, 그들이 바로 1920-30년대의 초현실주의자들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꿈을 현실보다 더 중요시 여겼던 근본 이유는 잠이 본연의 인간다움에 더 가깝다는 것에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이 부정해오던 잠의 영역이 드디어 그 무한한 잠재성을 인정받았다고나 할까.



우리는 계속 잠잘 수 있을까


조너선 크레리의 『24/7 잠의 종말』에는 인간의 비효율적인 잠을 거부하려는 프로젝트에 대해 잠시 소개되어 있다. 미국 국방부에서는 흰 정수리를 가진 북미 멧새를 연구했는데, 그 이유는 이 철새가 이동 중에 무려 7일 동안이나 잠을 자지 않는다는 놀라운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밤낮없이 날면서 쉬지 않고 먹이를 찾을 수 있는 이 철새처럼, 전투대원들도 위급 시에 지속적 불면 상태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색하는 개발 프로젝트였다.


이 연구는 계몽의 시대 슬로건인 ‘항상 깨어있으라’를 실현하려는 시도처럼 들려서 흥미롭다. 그런데 항상 깨어있음을 정말로 성취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였다. 잠들지 않고 도시를 지켜보는 것은 온 거리에 달려 있는 감시카메라들이며, 휴식 없이 하루 24시간 내내 가동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하의 온라인 시장이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 잠은 미노타우로스를 품고 있는 미궁과 연결되어 있고, 어둡고 악마적이고 퇴행적인 양태를 띠기도 한다. 반면 깨어있음의 세계에는 늘 이성에 의해 제어되는 명료하고 도덕적이고 진보적인 것들이 환하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다움이 드러나는 지점은 잠의 영역이다. 미래의 언제쯤엔가는 인간이 잠 없이 더 생산적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씁쓸하게도 그것은 인간이 곧 기계가 된 세상을 암묵적으로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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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조너선 크레리, 김성호 역, 『24/7 잠의 종말』, 문학동네, 2014.

Michael R. Taylor, Giorgio de Chirico and the Myth of Ariadne, London: Merrell Publishers Ltd. in association with Philadelphia Museum of Art, 2002.


필자 이주은
이주은
조선일보에서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를 연재하여 미술을 이야기 식으로 쉽게 설명해주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저서 『그림에, 마음을 놓다』로 십만 독자를 사로잡았으며, 『당신도, 그림처럼』,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미감』 등을 출간하였다.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이미지가 활용되는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 대해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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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하루중 거의 1/3을 잠을자니.... 결국 삶의 1/3이 잠이군요. 예전 야만 상태의 환경에서 인간이 잠을 잔다는 것은 큰 위험을 무릅쓴 행동이었을듯 합니다 요즘은 편히 자지만.... 개도 배를 드러내고 무방비한 자세로 자는 세상이지만....ㅎㅎ

    서준혁 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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