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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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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수 없는 여자, 잘 수밖에 없는 여자
문학

잘 수 없는 여자, 잘 수밖에 없는 여자

잠과 밤의 이야기

by 노대원 / 2018.10.11


어둠이자 죽음, 그리고 꿈의 입구


잠은 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우리의 눈꺼풀은 무거워진다. 우리가 잠들면 세상이 ‘죽음처럼’ 정지하고 고요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잠에서 어둠과 동시에 죽음을 떠올려왔다. 잠은 작은 죽음과도 같았다. 그래서일까? 그리스 신화에서 잠의 신 히프노스(Hyponos)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와 형제지간이다. 자는 동안 우리의 의식적 활동은 정지하기 때문에 어떤 철학자들은 잠을 주체 상실의 순간으로 보았다.


존 워터하우스 <잠의 신 히프노스와 그의 쌍둥이 형제인 죽음의 신 타나토스>, 1874.

▲ 존 워터하우스 <잠의 신 히프노스와 그의 쌍둥이 형제인 죽음의 신 타나토스>, 1874.


한편으로 무엇보다 잠은 꿈의 입구이다. 낮의 삶과 다른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꿈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왔다. 우리는 모두 꿈을 꾸면서 대작가가 되어 대하 장편소설을 집필하거나 위대한 감독이 되어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소설의 독자, 그리고 이 영화의 관객은 그것을 만들어낸 바로 그 사람 자신뿐이라는 점.(나 역시 지난 밤 꿈에서 세계문학사에 유례가 없는 대작이 아닌, 괴작(怪作)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에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나 할머니 품에서 들었던 동화(bedtime story)는 우리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주었으니, 잠과 문학은 뗄 수 없는 관계라 하겠다.


침실 역시 일상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삶의 중요한 변화 계기가 주어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가 갑충이 되어 놀랐던 것도 잠에서 깨어난 직후였다. 꼭 이 소설이 아니어도, 잠과 침실은 변신이나 낭만적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문학적 공간으로 기억된다. 침실은 태어나, 사랑을 나누고, 죽음을 맞이하는 삶의 가장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변신」도 잠에서 깨어난 직후의 이야기다

▲ 카프카의 「변신」도 잠에서 깨어난 직후의 이야기다.


잠의 이야기들은 많고 많지만, 특별히 우리가 이야기 나눌 두 소설에서는 대조적으로 불면증과 기면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잠을 잃은 주인공과 원하지 않는 잠을 자야만 하는 주인공. 그들은 온갖 걱정과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혹은 격무로 잠잘 시간마저 빼앗겨버린 현대인들에게 잠에 관한 어떤 생각거리를 던져줄까.



잠을 잃고, 잠에서 깨어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잠」


“잠을 이루지 못한지 열이레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잠」(김난주 역, 『TV 피플』, 북스토리, 2003)은 이렇게 시작한다. 「잠」의 주인공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불면증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그녀는 병원에도 가지 않았으니, 불면증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하지만 잠에 들지 못하는 날들이 오래 지속되고 있고, 그녀는 살이 6㎏이나 빠졌다. 게다가 가족도 친구도 누구 하나 그녀가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말 그대로 자면서 살고 있었다. 내 몸은 익사체처럼 감각을 상실했다. 모든 것이 둔하고, 탁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불확실한 환각처럼 느껴졌다. 세찬 바람이 불면 내 몸은 다른 세계의 끝으로 휘날려 갈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계의 끝에 있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땅으로. 그리하여 내 몸과 의식은 영원히 분리되고 말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무언가에 꼭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매달릴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잠」 중 (155~156쪽)


불면으로 고생해 본 많은 사람들의 체험처럼 그녀 역시 비몽사몽 자는 듯 깬 듯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잠자고 싶어 하는 육체이며, 그와 동시에 각성하려 하는 의식이다.”(154쪽)라는 고백은 주인공의 상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녀의 삶에 어떤 문제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언뜻 보기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의 주인공의 일상은 아주 평범해 보인다. 궁금해할 것 같은 독자들을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세세히 알려준다. 그녀는 이제 자리 잡기 시작한 치과의사의 아내이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이다. 남편의 병원 인근에 자리 잡은 아파트에 살면서, 매번 남편과 아이의 밥을 차려주는 일에 신경 쓰고, 자주 시동이 꺼지는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장을 보고, 몸매가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 열심히 수영을 다닌다. 남편의 병원은 더 많은 환자들로 붐비고, 여전히 그들의 가정은 행복하다. 남편은 흠잡을 데 없는 점이 오히려 묘하게 짜증을 나게 할 만큼 모범적이고, 아이는 사랑스럽다.


「잠」의 주인공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매일 일기를 썼다. 하지만 그 일기는 어느 날이 어느 날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그런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며, 삶의 허망함을 느낀다. 잠을 이루지 못한 이후로 그녀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일기가 그녀의 평범한 일상의 반복을 의미한다면, 일기 쓰기의 중단은 그녀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리라는 예고인 셈이다.


정말로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한 뒤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첫날은 괴상한 꿈을 꾸기도 하고 불면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안나 카레니나』처럼 긴 소설을 반복해서 깊이 읽어내기도 하고, 남편이 싫어하는 초콜릿을 사다 먹기도 하고, 홀로 술을 한 잔 기울이기도 한다. 때로는 그녀의 오래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가기도 한다. 오히려 그녀의 삶은 더욱 생생한 활기를 얻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시간은 지금 나만을 위한 것이 되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어떤 요구도 받지 않고, 그렇다, 그것은 그야말로 확대된 인생이다. 나는 인생의 삼 분의 일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잠」 중 (203쪽)


그녀는 불면을 오히려 또 다른 기회로 여겼다. 실상 그녀의 잠이란, 매일 반복되는 일기처럼 생명력을 잃은 삶의 은유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숀 엘리스(Sean Ellis)의 영화 〈캐쉬백〉(Cashback, 2006)에는 이별의 고통 때문에 생긴 불면으로 고생하다가 그 시간을 오히려 야간 아르바이트로 ‘되돌려 받는’(캐쉬백)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영화처럼, 하루키의 주인공도 불면을 자동화된, 의미 없는 삶의 탈출 기회로 여긴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불면의 시간에 소설을 깊이 탐독할 수 있었고, 죽음에 대해 실존적으로 사유해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잠을 잃었지만, 역설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삶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셈이다. 현대인들은 불면과 수면 부족으로 늘 고민하지만, 정작 삶이 잠에 빠졌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캐쉬백>

▲ 숀 엘리스(Sean Ellis)의 영화 <캐쉬백>(Cashback, 2006)ⓒ스폰지



잠이라는 병, 별이 빛나는 시간

김보영의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SF 작가 김보영의 단편소설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진화신화』, 행복한책읽기, 2010)는 누나가 아우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이야기다. 이 편지에서 누나는 서른 해를 넘기는 동안 어떤 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 병의 이름은 바로 ‘특수기면증’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꾸 의식을 잃고 기절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쉽게 피로를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오래 살지 못한다고도 한다.


이 소설의 서술자이자 편지의 발신자인 누나는 아우에게 자신의 병을 걱정하지 말라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분명 희귀한 질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독자는 점점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지금 어느 섬의 동굴에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곳은 하루의 절반은 빛이 들고 나머지 절반은 어둠에 휩싸인다. 그곳의 동식물들은 신기하게도 주인공처럼 모두 기면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라는 한 문장을 소개한다. 그 문장은 아주 오랜 옛날 2만 8000광년 떨어진 은하의 가장 외곽지점에서 발신된 것이다. 이 문장을 통해 사람들은, 놀랍게도(?) 지구의 하늘은 어둡다고 추론하게 된다. 즉, 주인공이 살고 있는 소설의 세계(story world)는 지구가 아니며, 밤이 없어 언제나 빛나는 하늘을 가진 은하 중심의 또 다른 행성이다. 그곳은 지구와 달리 하늘 전체가 언제나 보석과 황금을 두른 것처럼 밝은 빛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밤도 없고 주인공처럼 주기적으로 ‘기절’(?)하는 사람도 특수기면증 환자로 취급받는다. 기절하는 시간 동안 괴상한 환각(지구인의 표현으로는 ‘꿈’)이 생긴다는 점도 우려할 만하다.


그녀는 아마도 어두운 밤의 시간이 있는 지구에는 모든 사람들이 밤이면 ‘기절’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그녀처럼 몇몇 소수의 환자들만 주기적으로 기절하는 세상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풍경이다! 지구의 사람들은 어둠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에 들어가 의식을 잃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 밤이 찾아오고 하늘에 별이 빛나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잘 기절해’ 하고 인사할 것이다. 아침이 찾아오면 어젯밤은 잘 기절했느냐고 안부를 물을 것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을 하듯 행복하게 잠이 들 것이다. ……잠이라는 말은 내가 쓰는 용어다. 좀 덜 부정적인 표현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만들어 보았다. “

- 김보영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중 (89쪽)


만약 지구 밖의 외계인들이 ‘잠’을 생각한다면 마치 이 소설의 이야기 같을까? 매일 경험하는 쓸모없는 시간으로 부정적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잠. 우리 일상 속의 잠도 이렇게 낯선 시각으로 바라보면 경이로운 시간이 된다. 소설을 읽고 나면 “잘 자.”, “잘 잤니?” 같은 사소한 인사말에 아름다운 별빛이 느껴진다. 밤과 잠이 아름다운 시간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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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한 글과 책

서동욱, 「잠이란 무엇인가?」, 『일상의 모험』, 민음사, 2005.

데이비드 랜들, 이충호 역, 『잠의 사생활』, 해나무, 2014.


불면증 기면증 무라카미하루키 김보영 지구의하늘은별이빛나고있다
필자 노대원
노대원
세상사와 인간사가 궁금해서 책을 들여다봤습니다. 그 중엔 문학책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다 문학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문학을 통해 세상살이와 삶을 말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나 봅니다.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선생님을 꿈꾸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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