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속의 난쟁이,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
할머니는 끝내 라디오 속의 난쟁이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무선통신의 원리를 알지 못했던 할머니는 필시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그 안에 난쟁이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옛날 라디오는 난쟁이는 몰라도 강아지나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기는 했다.
만일 돌아가신 할머니가 다니엘 웨일의 <가방 라디오>(Bag Radio)를 보셨다면 까무러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난쟁이는커녕 강아지 한 마리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디자이너인 다니엘 웨일은 1983년 비닐백 안에 라디오를 집어넣었다. 그의 라디오에는 난쟁이 대신 전자 부품들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할머니가 찾던 난쟁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난쟁이는 원래부터 없었던 걸까. 아니다. 난쟁이는 있다. 비닐백 속의 전자 부품, 그것이 바로 난쟁이다.
17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고대문학이 우월한가 아니면 근대문학이 우월한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신구논쟁(Querel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이다. 이것은 고대인과 근대인 중 누가 더 훌륭한가 하는, 어찌 보면 유치한 싸움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사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남겼다. 신구논쟁을 통해서 유럽인들은 전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위한 논리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상고주의(尙古主義)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과거를 일방적으로 숭배하고 따르는 것과 존중하면서도 상대화하는 것은 다르다.
신구논쟁의 결론은 유명한 ‘거인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라는 비유로 요약된다. 즉, 고대인은 위대한 거인이고 그에 비교해 근대인은 난쟁이지만, 근대인이라는 난쟁이는 고대인이라는 거인 어깨 위에 앉아있기 때문에 고대인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어 더 위대하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신구논쟁은 모더니즘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이제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변화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가치 있던 시대에서 변하는 것이 가치 있는 시대로의 변화였고, 권위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혁신이 지배하는 시대로의 이행이었다. 이른바 근대(the Modern)가 열린 것이다. 근대는 변화의 시대였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간 난쟁이를 그린 니콜라 푸생의 그림 ‘태양을 찾는 장님 오리온’(1658)
난쟁이를 보이게 만드는 법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할머니가 찾던 난쟁이는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낸 어떤 원동력, 예컨대 테크놀로지가 아니었을까? 근대인은 한편으로는 전통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또 한편으로는 테크놀로지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 자체는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테크놀로지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할머니에게 난쟁이는 라디오라는 물건을 상상하게 해주는 존재였다. 디자인은 라디오를 시각적으로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면 상자가 아니라 난쟁이가 라디오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상자만 보이고 난쟁이는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디자인이지 테크놀로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기표는 디자인이다.
당연히 라디오는 일정한 형태가 없다. 그것은 세모난 것도 아니고 네모난 것도 아니다. 라디오는 전자 부품의 결합물일 뿐이다. 이 전자 부품의 결합물이라는 카오스에 일정한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보통 기술적 구조를 알 수 있는 디자인을 ‘글래스박스 디자인’, 구조를 알 수 없는 디자인을 ‘블랙박스 디자인’이라고 한다. 자전거와 재봉틀이 글래스박스라면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블랙박스이다. 오늘날 디지털 제품은 모두 블랙박스인데,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외양은 기술적인 구조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최초의 블랙박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기의 라디오 디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테크놀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주로 캐비닛 속에 집어넣는 방식을 택했지만 안락의자 팔걸이 안에 수납한 사례도 있었다. 어떤 방식이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테크놀로지를 낯설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의외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변화란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중요한 임무가 된다. 디자인 역사가인 에이드리언 포티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학자가 사물의 형태는 사물의 본질이나 시대로부터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와 같은 주장은 디자인사에서 별 쓸모가 없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산업사회에서 디자인은 끊임없이 사물의 본성을 감추거나 바꾸고, 우리의 시간 감각에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해왔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변장을 벗기고 비교하고 왜 다른 디자인이 아닌 그 디자인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역사가의 일이다. 그 과정을 빼먹어서는 안 된다. 제품의 생김새가 다양한 이유는 생산자의 부도덕성이나 고집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제품의 생산 환경과 소비 환경 때문이다.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산업사회 발달에 필수적이었던 디자인의 가장, 은폐, 변형 능력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중에서
디자인은 대중이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 없이 계속 소비하도록 만듦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지속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테크놀로지가 됐다. 1930년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러한 기법을 체계적으로 도입했는데, 바로 스타일링이다. 구서독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볼프강 하우크는 이러한 디자인을 가리켜 ‘기술 혁신 없는 미적 혁신’이라고 비판했지만, 이것이 오늘날 디자인의 본질임은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디자인은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하는 난쟁이를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래스박스 디자인(자전거)과 블랙박스 디자인(컴퓨터)
변화를 넘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변화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 이제 변화를 이상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탈산업사회에서 변화는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지속가능성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는 만큼 변화에 대한 피로감 역시 커진다. 이제 세계는 변화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 감각을 재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산업사회 이후의 미학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보존적이며, 산업사회 이전의 미학과 친화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탈산업사회의 디자인이 전산업사회의 디자인으로 회귀하거나 반복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탈산업사회를 전산업사회의 단순 반복으로 보는 것은 교체적인 시간관이며 산업사회의 나선형적 발전을 간과하는 것이다. 문제는 탈산업사회의 미학이 어떻게 산업사회의 미학을 넘어서면서도 전산업사회의 미학으로의 단순 회귀나 반복이 아닌 나선형적인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있다. 그것은 일종의 변화와 지속의 변증법적 결합인데, 말하자면 변화 속에서 지속을, 그리고 지속 속에서 변화를 찾아내는 관점이다. 변화와 지속을 이분법적 대립으로 보는 일원적인 태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과거 전산업사회의 미학은 지속을 절대적인 가치로, 산업사회의 미학은 변화를 유일한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이제 이 둘 중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 종합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래 디자인의 과제는 역설적으로 변화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등 여러 권의 평론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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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라디오 속의 난쟁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변화의 테크놀로지로서의 디자인
최범
2018-03-02
라디오 속의 난쟁이,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
할머니는 끝내 라디오 속의 난쟁이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무선통신의 원리를 알지 못했던 할머니는 필시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그 안에 난쟁이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옛날 라디오는 난쟁이는 몰라도 강아지나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기는 했다.
만일 돌아가신 할머니가 다니엘 웨일의 <가방 라디오>(Bag Radio)를 보셨다면 까무러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난쟁이는커녕 강아지 한 마리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디자이너인 다니엘 웨일은 1983년 비닐백 안에 라디오를 집어넣었다. 그의 라디오에는 난쟁이 대신 전자 부품들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할머니가 찾던 난쟁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난쟁이는 원래부터 없었던 걸까. 아니다. 난쟁이는 있다. 비닐백 속의 전자 부품, 그것이 바로 난쟁이다.
17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고대문학이 우월한가 아니면 근대문학이 우월한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신구논쟁(Querel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이다. 이것은 고대인과 근대인 중 누가 더 훌륭한가 하는, 어찌 보면 유치한 싸움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사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남겼다. 신구논쟁을 통해서 유럽인들은 전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위한 논리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상고주의(尙古主義)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과거를 일방적으로 숭배하고 따르는 것과 존중하면서도 상대화하는 것은 다르다.
신구논쟁의 결론은 유명한 ‘거인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라는 비유로 요약된다. 즉, 고대인은 위대한 거인이고 그에 비교해 근대인은 난쟁이지만, 근대인이라는 난쟁이는 고대인이라는 거인 어깨 위에 앉아있기 때문에 고대인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어 더 위대하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신구논쟁은 모더니즘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이제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변화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 가치 있던 시대에서 변하는 것이 가치 있는 시대로의 변화였고, 권위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혁신이 지배하는 시대로의 이행이었다. 이른바 근대(the Modern)가 열린 것이다. 근대는 변화의 시대였다.
난쟁이를 보이게 만드는 법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할머니가 찾던 난쟁이는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낸 어떤 원동력, 예컨대 테크놀로지가 아니었을까? 근대인은 한편으로는 전통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또 한편으로는 테크놀로지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 자체는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테크놀로지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할머니에게 난쟁이는 라디오라는 물건을 상상하게 해주는 존재였다. 디자인은 라디오를 시각적으로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면 상자가 아니라 난쟁이가 라디오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상자만 보이고 난쟁이는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디자인이지 테크놀로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기표는 디자인이다.
당연히 라디오는 일정한 형태가 없다. 그것은 세모난 것도 아니고 네모난 것도 아니다. 라디오는 전자 부품의 결합물일 뿐이다. 이 전자 부품의 결합물이라는 카오스에 일정한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보통 기술적 구조를 알 수 있는 디자인을 ‘글래스박스 디자인’, 구조를 알 수 없는 디자인을 ‘블랙박스 디자인’이라고 한다. 자전거와 재봉틀이 글래스박스라면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블랙박스이다. 오늘날 디지털 제품은 모두 블랙박스인데,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외양은 기술적인 구조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최초의 블랙박스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기의 라디오 디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테크놀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주로 캐비닛 속에 집어넣는 방식을 택했지만 안락의자 팔걸이 안에 수납한 사례도 있었다. 어떤 방식이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테크놀로지를 낯설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의외로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변화란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중요한 임무가 된다. 디자인 역사가인 에이드리언 포티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학자가 사물의 형태는 사물의 본질이나 시대로부터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와 같은 주장은 디자인사에서 별 쓸모가 없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산업사회에서 디자인은 끊임없이 사물의 본성을 감추거나 바꾸고, 우리의 시간 감각에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해왔음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한 변장을 벗기고 비교하고 왜 다른 디자인이 아닌 그 디자인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역사가의 일이다. 그 과정을 빼먹어서는 안 된다. 제품의 생김새가 다양한 이유는 생산자의 부도덕성이나 고집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제품의 생산 환경과 소비 환경 때문이다.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산업사회 발달에 필수적이었던 디자인의 가장, 은폐, 변형 능력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중에서
디자인은 대중이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 없이 계속 소비하도록 만듦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지속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테크놀로지가 됐다. 1930년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러한 기법을 체계적으로 도입했는데, 바로 스타일링이다. 구서독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볼프강 하우크는 이러한 디자인을 가리켜 ‘기술 혁신 없는 미적 혁신’이라고 비판했지만, 이것이 오늘날 디자인의 본질임은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디자인은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하는 난쟁이를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래스박스 디자인(자전거)과 블랙박스 디자인(컴퓨터)
변화를 넘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변화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 이제 변화를 이상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탈산업사회에서 변화는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지속가능성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는 만큼 변화에 대한 피로감 역시 커진다. 이제 세계는 변화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 감각을 재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산업사회 이후의 미학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보존적이며, 산업사회 이전의 미학과 친화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탈산업사회의 디자인이 전산업사회의 디자인으로 회귀하거나 반복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탈산업사회를 전산업사회의 단순 반복으로 보는 것은 교체적인 시간관이며 산업사회의 나선형적 발전을 간과하는 것이다. 문제는 탈산업사회의 미학이 어떻게 산업사회의 미학을 넘어서면서도 전산업사회의 미학으로의 단순 회귀나 반복이 아닌 나선형적인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있다. 그것은 일종의 변화와 지속의 변증법적 결합인데, 말하자면 변화 속에서 지속을, 그리고 지속 속에서 변화를 찾아내는 관점이다. 변화와 지속을 이분법적 대립으로 보는 일원적인 태도를 벗어나는 것이다. 과거 전산업사회의 미학은 지속을 절대적인 가치로, 산업사회의 미학은 변화를 유일한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이제 이 둘 중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 종합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래 디자인의 과제는 역설적으로 변화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등 여러 권의 평론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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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변화]라디오 속의 난쟁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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