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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놀이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꽤나 유명해서 이 말로 칼럼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진부하진 않을지 걱정일 정도다. 그런데 이 단어는 『호모 루덴스』를 쓴 요한 하위징아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만이 놀이를 한다’는 억측을 낳기도 했다.

박재용

2017-09-05

과학은 놀이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꽤나 유명해서 이 말로 칼럼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진부하진 않을지 걱정일 정도다. 그런데 이 단어는 『호모 루덴스』를 쓴 요한 하위징아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만이 놀이를 한다’는 억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놀이는 꽤 많은 동물에게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 놀이는 모두 저마다 이유가 있다.

 

강아지 두세 마리가 놀고 있는 모습

 

진화가 놀이를 만들다

 

강아지 두세 마리가 놀고 있다. 서로 쫓고 쫓기며, 몸을 부딪치고, 이빨을 마주 대며, 목을 무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 발랑 넘어져선 배를 까고 다른 녀석이 그 위에 올라타기도 한다. 이들은 지금 학습 중이다. 먹잇감을 쫓고, 경동맥을 한 번에 물어 숨을 끊는 연습이자, 암컷을 사이에 두고 두 수컷이 어떻게 서로를 겁박하여 물러나게 할 것인지, 자기보다 더 세고 서열이 위인 수컷에게 어떠한 자세를 해야 하는지를 학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습이라고 해서 이런 행동이 그들에게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진화는 놀이를 열심히 하도록 보상으로 즐거움을 얻게끔 이루어진 개체나, 어릴 때 이러한 놀이를 통해 제대로 배운 녀석이 더 많이 살아남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강아지는 성체가 되어 해야 할 일을 놀이를 통해 배우는 동안 행복하고 즐겁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의 각인은 강아지가 성체가 되어서도 즐겁게 놀 수 있게 한다. 잔디밭에서 공을 던지고 반려견이 그걸 물어오도록 하는 놀이는 인간에게도 즐겁지만 개들에게도 즐겁다.

 

놀고 있는 원숭이 모습

 

인간 놀이의 근원도 그러했을 터이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영장류도 끊임없이 논다. 그런데 그들의 놀이 대부분은 혼자가 아니라 바로 옆의 동료들과 함께 하는 놀이다. 서로 나뭇가지를 옮겨 타며 쫓고 쫓기고, 등에 올라타고 뒹굴다가 털을 골라준다. 영장류쯤 되면 이제 생존의 가장 큰 문제는 표범과 같은 천적이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맺는가이다. 재빠르게 위계를 파악해 자신의 위치에 맞게 행동하고, 다른 동료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어릴 때 혼자 놀기보다는 동료와 관계를 이루는 연습을 한 영장류가 더 많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그 후손들은 여전히 놀이의 대부분을 ‘관계 맺기’에 몰두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놀이를 ‘트레이닝’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이 역시 엄연한 놀이다. 진화는 이들에게서도 놀이의 대가로 ‘즐거움’을 제공하는 편이 더 성공적으로 살아남게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놀이는 어린 시절뿐 아니라 성장 후에도 이어진다. 놀이의 보상으로 즐거움이 주어지는 내부 시스템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큐브를 하고 있는 모습

▲ 인간은 관계 맺기 놀이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지적 능력을 이용한 개인 놀이를 즐긴다.

 

인간의 놀이, 지식의 확장

 

인간의 경우도 영장류들처럼 관계 맺기 놀이가 있다. 고무줄놀이, 사방치기, 다방구, 술래잡기, 축구, 농구 등이다. 놀이에서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 동료들과 협동하는 것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노는 과정에서 배운다. 그러나 이외에도 유독 인간에게서 더 자주 발견되는 놀이가 있다. 바로 퍼즐 맞추기나, 레고 블록 놀이, 탐정 놀이 등인데, 이는 동료와의 관계보다는 스스로의 지적 능력과 관련된 놀이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아무래도 주변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과 합리적 문제 해결 능력이 요구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놀이는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이어지고, 역사적으로도 이어졌다. 흔히 말하는 예술이 그러하다. 어려서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화가,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면 그것은 대부분 성공이나 돈보다 스스로의 취미나 즐거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른이 된 후엔 즐거움보다 보상에 더 신경 쓰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인문학이나 과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이나 사회학 혹은 사학이 그렇고 입자물리학이나 유기화학, 고생물학이나 지질학 등도 그렇다. 모두 거기에서 즐거움을 발견한 이들이 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제껏 아무도 모르던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과학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데서,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을 엿보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 이런 놀이-과학의 핵심은 하나다. 바로 ‘모르던 사실을 아는 즐거움’이다. 흔히 법열(法悅)이라고 하는 것, 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또한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새로 안 사실이 인류에 도움이 된다면 그 또한 즐거움의 하나일 것이다.

 

연구실 모습

 

컴퓨터 부품

 

과학은 놀이다

 

과학의 역사는 이렇게 자기가 알고 싶은 분야를 파고들어 새로운 것을 알아낸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발달해왔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래서 ‘과학보국’을 한다는 이들을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스스로 재미도 느끼지 못하면서 국가에 대한 의무감으로 한다는데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연히 관심을 가진 분야가 시대의 흐름과 맞아떨어지는 행운을 지닌 이들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관심은 덜 하더라도 잘나가는 학문 분야에서 연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이니 이해하고 인정할 순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가령, 끈 이론을 연구하고 싶은 물리학자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게 아니라 양자컴퓨터 기술”이라고 강요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기 싫은 듯하다. 뭔가 폼 나고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듯한(이라 쓰고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이라고 읽는다) 부분에 거의 모든 재원과 인력이 집중된다. 기업연구소뿐만 아니라 국책연구소나 대학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 혁명’ 따위의 슬로건 아래 다른 학문 분야에 관한 연구 기회를 뺏고 있다. 말로는 다양성이 세상을 풍요롭게 할 거라고 하면서, 정작 하는 일은 ‘외길에 줄 세우기’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과학도 각자 자기가 행복한 연구를 하는 가운데 발전한다. 나 좋자거나 돈이 되는 걸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놀이를 폄하하거나 방해하고 훼방 놓아선 안 된다. 더군다나 그걸 제도나 정부, 언론이 하면 일종의 폭력이다. 무엇보다도 과학자들에게 자신이 재미있는 놀이를 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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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재용
박재용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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