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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의자, 쉬는 의자, 생각하는 의자

“당신이 어떻게 쉬는지 보면 당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있다.”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휴식의 본질을

최범

2017-08-22

일하는 의자, 쉬는 의자, 생각하는 의자

 

“당신이 어떻게 쉬는지 보면 당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있다.”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휴식의 본질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지 않은가. 휴식이 노동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휴식이라는 것이 단지 노동의 반대말이거나 부재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휴식이 노동만큼이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당신이 어떻게 쉬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그러고 보면 이 말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라거나 “당신이 입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격언임을 알 수 있다. “문체는 인격이다(Le style. c'est l'homme.)”라는 프랑스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여성

▲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여성

 

휴식도 마찬가지이다. 쉬는 모습도 일하는 모습만큼이나 그 사람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일에 밀린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지낸다고 한다. 이는 전형적인 노동자들의 휴식 양태이다. 이 경우에 휴식은 노동으로 소진된 힘을 회복하기 위한 활력 충전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휴식은 노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귀족이나 만년백수에게 휴식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

 

휴식과 관련된 디자인이라면 의자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휴식이라는 행위를 담아내는 사물로는 의자가 대표적이기 때문이다. 의자는 기능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작업용과 휴식용. 그러니까 일하는 의자와 쉬는 의자가 있는 셈이다. 이 역시 노동과 휴식의 이분법에 각기 대응한다. 작업용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스툴, 사무용 의자, 이발소 의자나 치과 의자처럼 전문적인 기능을 가진 것들이 있다. 휴식용 의자 역시 소파, 안락의자, 마사지 기능을 갖춘 안마의자 등 많은 종류가 나와 있다.

 

(왼)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 ©Knoll.com

 

(오) 르코르뷔지에의 ‘긴 의자’

▲ (왼)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 ©Knoll.com / (오) 르코르뷔지에의 ‘긴 의자’

 

의자가 디자인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은 꽤 큰데, 그것은 입식생활 위주의 서양문화에서 의자는 매우 중요한 가구이기 때문이다. 의자의 역사는 오래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적 감각의 의자를 선보인 것은 바우하우스 출신인 마르셀 브로이어였다. 그가 디자인한 ‘바실리 체어’는 구부린 철제 파이프에 천이나 가죽을 끼운 것으로서,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가히 현대 의자 디자인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브로이어의 의자가 사무용 작업 의자인 반면, 이것을 휴식용으로 재해석한 것이 바로 르코르뷔지에의 ‘긴 의자(Chaise Longue)’이다. 르코르뷔지에는 브로이어의 철제 의자를 길게 늘인 다음 뒤로 젖혀지게 만들어 휴식용 안락의자를 만들었다. 고대에는 권위를 표현하는 것이 의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체어맨!’).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의자는 작업을 위한 기능적인 가구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짝지어서 휴식용 의자가 등장한 것 역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메다 마사노리가 디자인한 ‘복싱 링(Boxing Ring)’ © 2017, Art Media ARTNEWS, LLC. 110 Greene Street, 2nd Fl., New York, NY 10012.

▲ 우메다 마사노리가 디자인한 ‘복싱 링(Boxing Ring)’ © 2017, Art Media ARTNEWS, LLC. 110 Greene Street, 2nd Fl., New York, NY 10012.

 

흥미로운 것으로 르코르뷔지에의 동료였던 샤를로트 페리앙이 일본으로 건너가, 르코르뷔지에의 ‘긴 의자’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사례가 있다. 페리앙은 철관과 가죽으로 된 서양의 휴식용 의자에 대나무와 밀짚을 씌움으로써, 동양적인 좌식문화가 주는 휴식의 정서적 느낌을 살려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유럽인인 페리앙의 동양적 해석에 카운터펀치를 날린 일본 디자이너도 있다. 이탈리아의 다국적 디자인 그룹인 멤피스(Memphis)의 일원이었던 일본 디자이너 우메다 마사노리가 디자인한 ‘복싱 링(Boxing Ring)’은 일본식 다다미 바닥에 권투용 링을 두른 독특한 작업인데, 동양적 차분함의 상징인 다다미와 치열한 격투의 장인 권투 링이 낯설지만 묘한 매치감을 자아낸다. 우메다는 휴식이란 마치 권투만큼이나 치열한 삶의 일부이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위르겐 베이의 통나무 의자 ©droog.com

▲ 위르겐 베이의 통나무 의자 ©droog.com

 

작업용 의자와 휴식용 의자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벗어나 전혀 다른 의자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네덜란드의 디자인 그룹 ‘드로흐 디자인’의 위르겐 베이(Jurgen Bey)였다. 위르겐 베이는 통나무에 등받이 몇 개를 꽂은 성의 없는(?) 디자인으로 의자와 휴식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통나무에 등받이를 꽂으면 그것은 통나무인가 의자인가, 의자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물을 의자로 만드는가. 펄럭이는 것은 깃발인가, 바람인가, 아니면 그대의 마음인가, 뭐 이런 선문답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앉으면 불편할 것 같은 이 의자는 앉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명상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휴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하는 의자도, 쉬는 의자도 아닌, 생각하는 의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숲은 원래 인간 최초의 거주지였고 놀이터였다. 현대의 놀이터는 숲의 대체물이다. 그렇게 본다면 숲 속의 통나무집이 아닌, 숲 속의 통나무야말로 최초의 의자이자 현대인들의 무거운 엉덩이가 여전히 돌아가야 할 고향 같은 자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물음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간 바꿔서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당신이 생각하는 휴식이 무엇인지 알려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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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실리체어
필자 최범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등 여러 권의 평론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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