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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의 테마, 360도 관점

힐링 예술

휴식, 일상으로부터의 격렬한 탈출

대중예술을 통한 일상 탈출

by 박병성 / 2017.08.08


휴식(休息)이라는 한자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숨을 쉬는(息) 모습을 형상화한 단어이다. 그렇게 보면 상쾌한 공기가 온몸으로 스며들 것 같은 상황이 떠오르는데 막상 우리가 흔히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그것과 그다지 닮지 않았다. 일에서 잠시 멀어져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전투적으로 쉬려고 한다. 휴가를 떠나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차가 막히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며 새벽 댓바람부터 짐을 챙겨 나서고, 여행지에 가서도 이것저것 구경하고 경험하고 맛봐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쉬기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한다. 성과사회는 무의식적으로 자발적인 활동성을 요구하고 현대인은 끊임없는 활동으로 스스로를 피로하게 만든다. 휴식조차 치열한 모습은 성과사회의 영향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치열함 속에는 쫓기듯 지속되는 각박함이 아니라 설렘이 동반한다는 것이다. 치열한 여행으로 비록 몸은 천근만근일지라도 입가에는 웃음이 머무는 이유다.


대중예술을 통한 일상 탈출


팔을 펼치고 있는 여성 2명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삶의 굳은살로부터 벗어나는 행위, 그 벗어남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쾌감을 느끼고 힐링이 된다.
치열하게 쉬는 행위는 몸을 피로하게 할지는 몰라도 마음만은 가볍게 한다. 그것이 어떤 성과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활동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휴식이라고 부르는 행위는 ‘쉼’보다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 가까운 것 같다.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삶의 굳은살로부터 벗어나는 행위, 그 벗어남이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쾌감을 느끼고 힐링이 된다. 휴식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행위라면, 회복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휴식의 본래적 의미에 어울리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유유자적할 수도 있지만 격렬한 일탈 역시 새로운 활력을 북돋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예술의 순기능을 ‘휴식’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대중예술을 공격하는 사람들,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대중예술의 맹목적인 무비판성을 비판한다. 대중예술은 세상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정신적인 아편 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중예술이 현실의 문제를 이상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에 대리만족하여 현존하는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폐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는 대중예술의 목적을 잘못 이해한 결과다. 대중예술은 세상을 ‘인식’하는 예술이 아니라 사람들을 ‘휴식’하게 하는 데 목적을 둔 예술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중예술 비판에 대해 옹호자들은 야구장과 와인을 비유로 들며 대중예술의 역할을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야구장에서 팝콘이나 치킨에 알코올을 곁들인다면 맥주를 선택하지, 와인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와인이 어울릴 때가 있고 맥주가 어울릴 때가 있는 것처럼, 세상의 인식을 넓히는 예술이 있는가 하면 복잡한 생각을 비우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예술도 필요하다. 바로 대중예술이 후자의 역할을 한다. 대중예술은 일상의 단조로움으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얻게 한다.


일상에서의 도피


대중예술이 오락적인 기능을 통해 휴식과 힐링을 주는 방식은 두 가지 도피로 일어난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비판했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성격'이야말로 대중예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것은 비판받을 사항이 아니라, 대중예술이 지닌 특성인 것이다.
첫 번째는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이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서스펜스가 있고 모험이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세상을 경험하길 원한다. 대표적인 대중예술인 영화에서 어드벤처나 스릴러물이 많은 이유다. 영화는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관객들을 데리고 성배를 찾아 아마존 밀림으로 떠나고, 악당 무리에 몰래 잠입하여 최첨단 기계의 도움을 받아 적들을 물리친다. 때로는 평범한 소년이 거미에 물린 후 거미인간이 되어 자유롭게 빌딩 숲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이런 초능력을 지닌 영웅물의 경우 평범한 인물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평범한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해서 자연스럽게 모험의 세계로 따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X맨의 경우도 그들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면서 아웃사이더라는 측면에서 대중들이 다가가기 좋은 대상이 된다. 관객들을 대중예술의 세계에서 악당의 음모에 맞서고 운명적인 로맨스를 통해 대리만족하면서 잠시나마 안식을 얻게 된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포스터


<스파이더맨> 포스터

▲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스파이더맨> 포스터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상황과 인물에 감정 이입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다. 한쪽이 낭떠러지인 절벽을 차로 달리고 원시인들이 쫓아오는 상황이 현실이라면 서스펜스가 아니라 식은땀이 흐를 것이다. 버나드 샤라트 교수는 대중예술은 이중 도피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가상 세계로 도피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도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중예술의 도피를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실이 견딜 만하다는 믿음을 얻게 된다.


완전한 세계로의 도피


2015년 영국에서 공연된 연극 『햄릿』 포스터

▲ 2015년 영국에서 공연된 연극 『햄릿』


두 번째 도피는 완전한 세계로의 도피이다. 비교적 대중예술의 세계는 혼란스럽지 않은 세계를 추구한다. 비극의 세계가 분열된 세계라면 대중예술의 세계는 완전한 세계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의 적은 아버지를 죽인 숙부 클로디어스가 아니라 햄릿 자신이다. 햄릿은 아버지 유령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확인한다. 고귀한 영혼을 지닌 그는 정당한 이유 없이 친족을 살인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한다. 한편으론 왕위를 승계받을 수 있는 지위인데, 유령의 말을 따른다면 그는 목숨을 걸고 왕에 대항해야 한다. 햄릿은 생각이 많고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행동을 미룬다. 비극의 세계는 그 어떤 행위를 선택해도 완벽하게 정당화되지 않는 분열된 세계이다.


2015년 영국에서 공연된 연극 『햄릿』장면들

▲ 2015년 영국에서 공연된 연극 『햄릿』


그러나 대중예술의 세계는 다르다. 비극의 주인공 햄릿을 선이나 악으로 선명하게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중예술에서는 흔히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뉘고 둘이 대결하면 보통 선이 이긴다. 인과응보, 해피엔딩의 구조를 택한다. 선이 악에게 패한다고 해도 세계의 완전성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선과 악의 선명성이 그 세계를 완전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은 무미건조한 일상이 반복되는 삶이기도 하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이다. 일상의 많은 일들이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가치들이 혼재하는 모호한 세상에서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대중예술의 세계는 초등학교 산수 문제처럼 분명하고 쉽다. 우리는 그런 단순하고 명확한 세계에서 일상에서의 혼란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세상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면서 수만 가지 다른 가치와 가능성이 혼재한 모호성이 지배한다.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예술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물론 일상의 탈피가 휴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평범한 대중들은 현실을 잊고 일탈하고 명확한 세상을 경험함으로써 잠시나마 마음의 안식을 취하게 된다.

8월 휴식 예술 일상탈출 대중예술 일상도피
필자 박병성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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