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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경험하는 인생의 맛

지난 2014년에 개봉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투 이탈리아>

이화정

2017-07-20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경험하는 인생의 맛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투 이탈리아>

 

지난 2014년에 개봉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투 이탈리아> 포스터

▲ 지난 2014년에 개봉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트립 투 이탈리아>


“태양 없이는 살아도 와인 없이 살 수는 없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잠깐 이 속담을 이탈리아로 불러와 본다. 이탈리아의 햇살을 머금고 자란 포도를 수확해 만든 와인과, 그 와인에 어울리는 각종 만찬을 매 끼니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시간이 연차, 여름휴가를 겨우겨우 욱여내어 만든 게 아니라, 5박6일간 이탈리아 지방을 여행하며 그저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기만 하면 되는 한 편의 영화 속 과정이라면. 여름의 이탈리아, 이변이 없는 한 눈부신 태양 역시 빠지지 않을게 분명해 보이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을까.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피에몬테의 모습

▲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피에몬테의 모습


<트립 투 이탈리아>는 영국 잡지 『옵저버』의 의뢰로 일주일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서 로마, 남부 카프리까지 먹고 마시고 수다 떨며 즐기다 오는 여행을 제안 받은 두 남자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물론 이 행운의 주인공이 일반인은 아니고,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스탠딩 코미디언인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다. 중년의 두 남자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활동 영역이 비슷해 모종의 라이벌 관계라는 긴장 관계도 형성하고 있다. 쿠건은 그런 실제의 쿠건을, 브라이든은 그런 브라이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데, 늘 촬영용 카메라가 함께하니 이건 또 ‘자신을 연기하는’ 행위가 되는 셈이다. 쿠건 스스로도 영화에서는 실제보다 조금쯤 과장되어 있다는 걸 인정하는데, 그는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편집하며 살아가지 않나. (재미를 위해) 나의 모습 중 주로 못생긴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립 투 이탈리아>의 한장면


여행과 음식이 결합됐다는 점에서 <트립 투 이탈리아>는 현재 우후죽순 생겨난 ‘먹방 프로그램’의 전형으로 보이지만, 이 기획의 시작은 벌써 한참 전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이클 윈터바텀은 이 영화의 프리퀄 격에 해당하는 영국 BBC2의 TV시트콤 <더 트립>을 연출했고, 여기서 쿠건과 브라이든은 이미 영국을 돌아다니며 여섯 번의 점심을 함께한 사이다(이후 극장판 <트립 투 잉글랜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땐 추운 겨울 북부 잉글랜드 여행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윈터바텀 감독은 워낙 ‘길 위에서’ 벌어지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연출하기로 정평이 난 감독이다.


 <인 디스 월드>의 포스터,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포스터


<온 더 로드> 의 포스터

▲ 다양한 여정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리얼함을 그려내 온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왼쪽부터 <인 디스 월드> <관타나모로 가는 길> <온 더 로드>.


<인 디스 월드>(2002)는 파키스탄에서 런던으로 떠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여정을 그렸고, <관타나모로 가는 길>(2006)은 런던에서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최근작 <온 더 로드>(2016)는 영국 록 밴드의 투어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트립 투> 시리즈는 이들 작품보다는 다소 가벼운 톤이지만, 역시 미니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길 위에서’ 중년 남성들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한다는 점에서 윈터바텀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영화다. 극영화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리얼함을 바탕으로 한 윈터바텀 영화 특유의 톤은, 이 먹방 여행기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 지역의 레스토랑을 리뷰하며, 문화와 인생관을 나누는 영화의 기획이 시작된 것에 대해 윈터바텀 감독은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주제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즐거운 대화들에 관한 영화. 모두가 식사를 나누면서 하는 대화는 촬영하기도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식당 야외 테이블


테이블 위 이탈리안 음식


한 가지 조건으로 내건 설정은 여행하며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셸리를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윈터바텀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장소와 레스토랑을 대부분 바이런과 셸리와 연관된 곳 위주로 찾았다. 이탈리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인 각종 파스타부터 냄비에 구운 토끼 요리, 문어 그릴 등 그 지역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이 전면에 부각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대다수가 느끼는 감흥은 음식에 대한 보다 밀접한 조명과 설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두 남자가 애초 제안 받은 것이 레스토랑 리뷰임에도, 둘 모두 막상 요리에 대해서는 그닥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짧은 이야기가 끝.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 위에서 정작 그들의 ‘요리’는 두서없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수다의 향연이다. 이 수다 역시 대부분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대사가 대부분이다. 108분에 달하는 영화를 위해 쓰여진 시나리오는 겨우 50페이지 정도였고, 시나리오에는 그들이 각각의 레스토랑에서 대화할 법한 대사들과, 어떻게 한 장면을 끝내야 할지 정도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쿠건과 브라이든은 대문호의 행적을 돌아보며 “200년 후에 우리는 기억이나 될까?” 같은 인생을 돌아보는 관조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곧장 알 파치노, 마이클 케인, 크리스찬 베일, 톰 하디 같은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성대모사에 빠져드는데, 정말 배꼽 빠지게 만드는 연기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의 한장면

▲ tvN의 신작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일명 <알쓸신잡>에서 출연진들이 여행지에서 식사하며 대화하는 것은 프로그램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 tvN <알쓸신잡>


결국 눈길을 사로잡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도, 이탈리아 맛집의 코스 요리도, 매일매일 나이 들어감을 몸으로 체감하는 중년의 남자들에겐 그저 대화를 이어나갈 ‘배경’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산해진미를 두고도 자기들 이야기에 바쁜 두 남자가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한다. 우리 역시 레스토랑에 가면, 음식이 나올 때야 SNS 업로드용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도 막상 먹다보면 대화하기에 더 바쁘다. 심지어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의 출연자들은 ‘앞에 먹는 음식을 두고도, 정작 다른 음식 이야기로 더 바쁘다’는 이야기로 한참을 떠들기도 했다. 윈터바텀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쿠건이 유독 여자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뒷이야기를 전하며 “나는 그들이 음식에는 관심이 적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레스토랑에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음식을 먹지만, 대화는 사실 그들 자신에 관한 것이 많다”라며 이들의 행동이 자연스럽다는 점을 강조한다.


2017년 8월 개봉 예정인 시리즈 3편 <트립 투 스페인> 의 한장면

▲ 2017년 8월 개봉 예정인 시리즈 3편 <트립 투 스페인>


2010년에 시작된 프로젝트가 시간이 흘러 2편이 만들어졌고, 그만큼 두 배우도 늙어갔다. 윈터바텀 감독은 그새 또 시리즈의 3편이 되는 <트립 투 스페인>을 완성했다. 국내에서도 8월 개봉 예정인 이 작품은 이번에도 스페인의 산탄데르에서 시작해 말라가를 거쳐 북아프리카와의 경계까지 이어지는 길 위에서 맛있는 음식과 두 남자의 수다가 끊임없이 눈을 즐겁게, 귀를 쫑긋하게 만들 예정이다. 윈터바텀 감독은 스페인에서 운전을 하며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쿠건과 브라이든을 ‘돈키호테’와 ‘산초’에 비유했다. 다시 또 시간이 흘렀다. 음식 맛이 유명하기로는 빼놓을 수 없는 스페인 요리들을 눈앞에 펼쳐놓고 그들이 나누는 ‘수다 요리’가 이번엔 어떤 맛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영나 사진의 필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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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화정
이화정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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