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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트라토리아 : 카페 소스페조, 나누는 일들의 의미

by 박찬일 / 2017.06.27

카페 소스페조, 나누는 일들의 의미


유럽 어디든 구걸하는 이들이 도심에 많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걸인이나 홈리스, 그 밖의 유랑자들에 대해 각박하지 않은 물정이 유럽엔 남아 있다. 30여 년 전부터는 아프리카계 불법 이민자들이 걸인 대열에 합류했다. 직업을 구할 마땅한 신분이 없으니 늘 위험한 상태에 내몰린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실 하루를 연명할 식사와 잠자리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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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때 걸인들을 많이 보았다. 이들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경험이 여럿 있다. 언어를 공부하러 중부의 한 대학도시에 있을 때였다. 대학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일군의 이방인 무리가 보였다. 시내 어디서든 짝퉁 선글래스나 비가 올 때 우산 같은 걸 파는, 어쩔 때는 대마초를 팔기도 하는 그런 사내들이었다. 모두 아프리카의 불법 이민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 벌어서 어떻게 음식과 잠을 구할까’ 하고 늘 의심스러웠다. 그다지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건이 워낙 조악한 데다 단속이 간혹 있었으므로 집중해서 장사할 상황이 못 되었다. 하여튼 그들이 식사하는데 커다란 물병이 보였다. 우리 같은 학생들의 식탁에는 올라 있지 않은 물병이었다. 이탈리아 친구가 알려주었다. “저거, 수돗물(아쿠아 푸블리카, 즉 공공의 물)이야.” 나는 크게 놀랐다. 이탈리아 거리에서 수돗물은 먹을 수 없는 물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시내에서는 물을 사먹었다. 한 병에 1유로니 2유로쯤 하는 것들이었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구내식당은 그나마 저렴했다. 아마 0.5유로나 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돈이 없어서(또는 아끼기 위해) 공공의 물, 즉 수돗물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탈리아 친구의 다음 말이었다. “그래도 빵은 여기서 얼마든지 주게 되어 있어. 공공식당에서는 딴 건 몰라도 빵은 공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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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았다. 그들은 대여섯 명이었는데, 시킨 음식은 두어 그릇의 파스타가 전부였다. 대신 빵을 수북히 쌓아 놓고 먹고 있었다. 공장에서 구운 것이라 유달리 맛이 없었던 구내식당의 빵. 그러나 그들에게는 복음이었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간혹 학생들이 그들의 자리를 지나가며 자신이 셀프 서비스로 구매한 어떤 식품들, 즉 쟁반에 담긴 무엇이라도 하나씩 내놓고 가는 장면이었다. 디저트로 파는 오렌지와 사과나 요거트, 과일주스, 간혹 고기 접시. 더러는 포도주와 맥주를 내놓기도 했다. 대학 구내식당에서는 포도주와 맥주는 일종의 ‘물’로 취급되어 당당히 파는 나라가 이탈리아니까.

동해안의 해안도시에 들렀을 때였다. 시내에서 한 노인에게 맛있고 싼 식당을 물었다. 시청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을 알려주었다. 과연 음식 맛이 좋았다. 거기에서도 일군의 아프리카계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반 병짜리 와인을 그들에게 내놓았다. 그들은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내가 그들에게 내민 건 작은 동정일지 모른다. 그래도 그들은 기쁘게 받았고, 나는 흐뭇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밀라노에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시내에서 호텔로 퇴근하는 길 입구에 늘 흑인이 한 명 서서 구걸했다. 나는 종종 동전을 주었다. 한번은 그에게 커피를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서 있는 자리 뒤가 바로 카페(이탈리아에서는 바르Bar라고 부른다)였다. 그는 커피는 이미 마셨으니 대신 샌드위치를 사달라고 했다. 커피 한잔보다는 한 끼의 밥이 소중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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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나눔 운동이 있다. 바로 ‘카페 소스페조Caffe sospeso’, 영어로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다. 카페 소스페조란 ‘맡겨둔 커피’란 뜻이다. 돈이 없어 커피를 마실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누군가가 커피 한 잔을 맡겨두는 것이다. 이는 나폴리에서 약 1백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운동이 그다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지는 못했다. 나폴리 일부 지역의 고유한 전통 정도였다. 그러다가 2010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이탈리아에서 ‘서스펜디드 커피 네트워크’란 페스티벌 조직이 만들어졌다. 나폴리에서 관광객들은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아무 흥미로운 체험이기 때문이다. 두 잔 값을 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부담을 주게 되면 이 ‘자선’이 지속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딱 한 잔 값인 1유로 미만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선과 나눔이 일상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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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것도 아니고 커피였을까. 바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하루에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신다. 스타벅스로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커피의 메뉴들, 그러니까 에스프레소니 카페 라떼니 카푸치노니 하는 것이 바로 이탈리아의 오리지널 커피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당연히 값도 싸다. 세계에서 가장 커피가 싼 곳이 바로 이탈리아다. 소비가 많으므로 커피 값을 싸게 책정할 수 있다. 만약 한국처럼 한 잔에 4,5천 원씩 받는다면, 그들은 커피를 마시다가 파산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일상화 속에서 걸인이나 홈리스들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쉽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것이 커피 소스페조가 퍼질 수 있었던 환경이다.

우리는 이런 관습을 만들 수 없을까. 몇몇 운동가들이 이런 유사한 운동을 제창한 걸로 알지만, 아직 우리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 더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사회관계가 흔하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이 얽혀 있지만 그것이 연대로 이어지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다. 연대란 평면적인 연결이 아니라 공감을 통한 이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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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데, 종로3가 허리우드극장 앞이라는 공간은 가난한 노인과 걸인들의 집합지였다.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1천원 받는 음식을 거기에서는 절반에 공급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된 역사다. 이 지역은 대략 대여섯 군데 정도의 식당이 초저가의 음식을 팔았다. 지금은 두세 곳으로 줄었지만 한때 대단하게 번성했다. 이곳이 흥미로운 건 음식 값도 값이지만, 걸인이 쫓겨나지 않는 곳이었다는 점이다. 걸인이 돈을 구걸하는 곳이 아니라 돈을 ‘쓰는’ 곳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행색이나 차림으로 차별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일대의 쓸쓸한 기운을 막아주는 하나의 연대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서울역 같은 큰 공간에서 한 그릇의 밥을 나누면서 종교적 생색을 드러내는 곳보다, 차라리 이 같은 공간이 걸인에게는 더 편안한 곳이었을 테다. 다만 그 지역이 서스펜디드 밀Meal의 성지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흠결이라는 점은 가슴 아프지만. 우리는 가난할 때 더 잘 나누었던 것 같다. 바가지밥을 얻는 걸인들이 흔했던 옛 서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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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공유 음식 나누기 카페소스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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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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