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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ech : 마을의 탄생과 종말

박재용

2017-06-07

마을의 탄생과 종말

 

인간이 무리를 이루게 된 것은 아프리카 열대우림 속에서 다른 영장류와 별다를 바 없이 살았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속이 더 단단해진 것은 숲에서 쫓겨나서부터이다.

원래 아프리카는 지금보다 더 낮은 위도에 인도, 남극과 같이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받치는 맨틀이 대륙을 떼어내어 북쪽으로 밀었다. 수천 만년 동안 아프리카는 북쪽으로 조금씩 이동했고, 마침내 유라시아 대륙과 만난다. 우리가 아는 세계지도의 모습과 비슷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만남은 아프리카의 광활한 열대우림에 살던 생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유럽과 가까워지자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이 판의 충돌에 의해 밀려 올라가 아틀라스 산맥을 만들었고, 대서양의 습한 공기는 더이상 산맥을 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수에즈 지협에서 아프리카 남쪽을 향하는 거대한 지질활동이 시작됐다. 이 지질활동은 아프리카의 동쪽 내륙을 가로지르는 그레이트리프트밸리(Great Rift Valley)를 만든다. 그 동쪽은 고원지대와 산악지대가 되었다. 이제 인도양의 습한 바람도 고지대를 넘어서지 않는다. 비가 드물어지고, 대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열대우림 대부분은 초원으로 변했고, 열대우림은 중서부 일부에 국한되었다.
열대우림에 살던 영장류들로서는 엄청난 위기다. 줄어드는 열대우림에는 그곳에서 어떻게든 버티는 영장류가 있었고, 다른 영장류와의 경쟁에서 패해 쫓겨나는 또 다른 영장류가 있었다. 숲에서 버틸 수 있었던 영장류는 현재의 고릴라와 침팬지, 보노보가 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은 숲에서 쫓겨난 패배자였다. 그들은 아무 가진 것 없이 초원에 서게 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임대 자영업자와 같은 존재였다.

 

열대우림 사진

 

열대우림은 진정 에덴동산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곳마다 과일이 있고, 나뭇가지를 지나가는 벌레도 손쉽게 집어 먹을 수 있다. 천적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초원은 사진이 달랐다. 천적을 피해 도망갈 곳도 없고, 먹이를 구하기도 힘들다. 더구나 초원에서 인간은 무력했다. 이빨도 발톱도 강인한 근육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단 인간은 허리를 피고 꼿꼿이 서서 걷기 시작했다. 직립보행이야말로 영장류 중 일부가 인간으로 진화하는 첫걸음이었다. 광활한 초원에서 멀리까지 천적과 먹잇감을 살펴보기 위해, 지평선까지 긴 거리를 걷기 위해 인간은 직립보행을 해야 했다. 그리고 집단의 결속이 강화되었다. 혼자서는 어떠한 먹이도 구할 수 없고, 천적을 피할 수도 없었다. 인간은 먼저 가족으로 연결되고, 다시 씨족 집단으로 결합된 상황에서만 잠시라도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립보행은 여성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직립보행을 위해 골반이 작아졌고, 더 이상 혼자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게 되었다. 더구나 집단생활은 더 많은 학습을 요구했고, 아이가 한 사람의 성인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미는 아비에게 가족을 위한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고, 그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는 수컷만 받아들였다. 그리해서 인간은 사회적 일부일처제로 진화한다. 부부가 있는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아이를 기를 수 없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같다.
인간 집단이 여타 영장류와 다른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다른 영장류는 혼자 혹은 가족단위로 살거나, 집단일 경우에도 가족형태는 일부다처제 혹은 다부다처제 사회다. 인간처럼 일부일처이면서 동시에 집단을 이루는 경우는 없다. 배타적 성관계를 가지면서도 집단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동족이 보는 곳에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회피하게 되었다. 인류 문화에 뿌리 깊은 ‘둘만의 은밀한 사랑’은 이런 과정에서 진화된 결과다.
그리고 이런 내밀함과 별도로 조손관계가 깊어진다. 젊어서 수렵과 채집에 능한 이들은 집단으로 먹이를 구하고, 그 빈 시간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나이든 노인들이었다. 더구나 가임연령의 여자들이 새로 아이를 임신하기 위해서도 조부모가 손자를 보살피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가족의 결속은 더욱 깊어진다. 인간의 기본 집단은 그래서 가족이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그러했다는 것이고, 현재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음은 씨족집단이다. 가족만으로는 초원에서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 더 많은 인원이 모여야 사자가 사냥한 먹이의 나머지라도 시라소니나 대머리독수리와 싸워 얻어갈 수 있고, 강가에서 악어를 피해 조개를 줍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숲에서 과일을 모으고 덩이식물의 저장줄기나 뿌리를 캐는 것도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숲에선 여전히 천적과 경쟁자들이 인간을 노리고 있었다. 이 모든 곳은 당시의 인간이 살아가기에 필수적인 장소였고, 다른 인간들로부터도 이 영역을 지켜야 했다. 씨족은 공동으로 일하는 단위이고, 공동으로 싸우는 단위이며, 공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단위였다.
일정한 공간을 씨족의 영역으로 확보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기에 주변의 다른 씨족과는 영역을 중심으로 맹렬한 다툼을 하며 때로는 타협도 하였다. 서로간의 영역을 지키는 한은 이웃이었고, 침범하면 적이었다. 환경이 좋을 때는 이웃이었지만 가뭄이 들거나 장마가 오면 적으로 돌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한 씨족과 이웃 씨족 사이에는 배타적 경계가 생겼고, 씨족의 성원들에게는 그 영역이 하나의 세계였다. 우리는 그 영역과 그 영역 안의 삶을 ‘마을’이라고 한다.

 

잔디위에 여러사람이 모여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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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인에서 가족으로, 그리고 사회로 마을의 영역을 넓혀왔다. ©aigarius via Foter.com


그 영역은 농경과 유목을 하면서 부족과 국가라는 차츰 더 큰 단위 안에 포함되어가지만 몇 십만 년을 지속해온 그 삶이 어디 쉽게 사라지랴. 마을은 인간이라는 종의 거대한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마을은 해체되고 있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마을의 물리적 경계는 흐려졌다. 직장과 집의 공간적 격리는 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과 SNS는 새로운 관계맺음을 만들고, 우리는 더 이상 마을에서 삶을 영위하지 않는다. 다만 마을과 공동체는 해체되는데 번식과 양육은 여전히 부모에게 맡겨져 있고, 조부모에게 그 양육의 일부를 감당케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공동체가 해체되어가고 그 일을 맡아야 할 사회와 정부가 외면하면서 가족에게 부과되는 짐은 더욱 커져만 간다. 더구나 그 가족조차 해체되어 가는 흐름 속에서 더 이상 개인 혹은 부부는 번식과 양육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제 인간이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유전자의 명령’만 따르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전처럼 마을 공동체로 되돌아가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이런 조건에선 번식을 포기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섹스도 이제 더 이상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니 어찌 보면 이것이 인류의 새로운, 역설적으로 바람직한 흐름일 수도 있겠다. 공동체의 해체를 대신할 다른 대안이 없다면 인류는 각기의 개인으로 돌아가 즐겁게 서서히 종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점과 선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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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재용
박재용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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