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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널 : 아파트 덕후들의 세계

정다영

2017-04-13

아파트 덕후들의 세계

 

나는 최근 트위터(twitter)에서 ‘아파트 덕후’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40자 단문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쉴 새 없이 올리는 소셜 네트워크의 세계에서 유독 눈에 띄는 흐름이었다. ‘새가 지저귀듯’ 발설하는 말들은 타임라인을 타고 흘러가지만, 몇몇 트위터리언이 올리는 아파트 사진과 그에 대한 해석들은 나를 사로잡았다. 특히 그들은 철거를 앞둔 오래된 아파트나 주로 학계나 언론의 비판을 받았던 대단지 아파트에 주목하고 있었다. 예술 혹은 학문의 영역에서 다뤄지는 주거 건축이나 시장의 영역에서 주목하는 신생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꾸준히 아파트 사진을 올려 타임라인을 갱신하는 그들 중에는 건축을 공부하거나 업을 삼은 사람도 있었지만 전공이나 일과 상관없이 정말 순전히 아파트가 좋아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도 많아 보였다. 그들이 올리는 정보들은 집요하고 특정적인 나머지 하나의 계열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덕후’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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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오타쿠’를 우리말로 바꾼 ‘덕후’라는 말은 취미를 전문가 이상으로 끌어올린 열정적인 사람들을 뜻하는 긍정적 의미를 갖게 됐다. 예전에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이상한 취미생활을 일삼는 이를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컸다. 반면 최근에는 ‘학위 없는 전문가’로 불릴 정도다. 심지어 덕후들의 활동을 공공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일도 일어났다. 4월 11일부터 7월 9일까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는 덕후들을 작가들의 활동무대로 초대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덕후들이 양지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전례 없는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 덕분이다. 본인의 사적 취미 생활을 공적 공간에서 공유하고 호응을 이끌어내는 일이 손쉬워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텀블벅(Tumblbug)’과 같은 커뮤니티 기반의 온라인 펀딩 플랫폼의 등장으로 덕후들의 활동은 출판이나 이벤트, 제품 디자인 등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에서 가장 각광받는 것은 출판이다. ‘독립출판’이라는 독특한 영역은 취미와 취향의 세계를 넘어 기존 디자인·출판 시장과 제도를 긴장시키는 존재가 됐다. 작년에 성황리에 막을 내린 독립출판 행사 <언리미티드에디션>(ue8)에서도 아파트 덕후들의 사진집이나 소책자가 많은 인기를 얻었다.

 

독립출판을 위한 축제였던 ‘언리미티드에디션 8(unlimited edition 8)-서울아트북페어 2016’ 현장 모습

▲ 독립출판을 위한 축제였던 ‘언리미티드에디션 8(unlimited edition 8)-서울아트북페어 2016’ 현장 모습 ©unlimited-edi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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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덕후는 사실상 건축을 직접 가서 보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정 주제에 집중한 경우다. 20세기 초 발터 벤야민이 파리에 생긴 아케이드와 같은 건축물을 기록하고 대도시의 감수성을 예찬한 것처럼, 21세기형 건축 산책자들도 도시를 애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아파트 덕후로 활동하는 이들은 아파트를 고향으로 둔 이른바 ‘아파트 키드’라는 점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국가가 신도시 개발계획을 연이어 발표한 그때 출생한 세대이다. 신도시에 세워진 대단지 아파트에서 태어난 이들은 아파트에 대해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욕망에서 비켜나 있고, 그저 아파트가 고향인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골목길보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더 익숙한 일상의 장소이다. 따라서 아파트 덕후의 이야기는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에 미치다』 『아파트 한국 사회』 『아파트 게임』 등에 담긴 사회학자와 건축학자들의 기존 담론과 차이를 둔다. 아파트 덕후들은 본인들의 고향이자 친구들의 거주지인 아파트를 탐방하고 구석구석 관찰한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아파트도 아니고 평당 3,000만원이 넘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아파트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은 평범한 아파트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아파트 단지의 나무(조경), 샤시, 도색, 월텍스트, 입면의 패턴 등과 같은 미시적인 영역에 주목하고 계절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담는 등 나의 아파트와 너의 아파트가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기록한다. 거기에는 어떤 평가의 잣대가 포함되지 않는다. 내 눈에 보기 좋으니 네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발견의 기쁨과 사랑의 표현 의지가 크다.

 

아파트의 옆면(측면)만 기록한 일본 사이트 ‘단지측면사진’ 일부

▲ 아파트의 옆면(측면)만 기록한 일본 사이트 ‘단지측면사진’ 일부 ©www.ne.jp/asahi/yos/studio/soku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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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덕후의 원조는 역시나 일본이다. 일본의 아파트 덕후들은 그 규모나 생산의 깊이가 남다르다. 덕후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창작물에서는 기획자이자 작가로서 이들의 남다른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아파트의 반복된 입면을 정갈하게 촬영하고, 배치도와 평면도를 분석한 다양한 기록들은 전문가만큼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던 ‘단지측면사진(団地側面写真)’과 같은 사이트에서는 기존 아파트 연구에서 보지 못한 참신한 관찰과 분석이 돋보였다.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얻어 일본 아파트 덕후와 한국의 아파트 덕후들이 소통하며 정보를 교환했던 당시의 타임라인은 아직도 내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아파트 덕후들은 일본과는 다르게 단지 아파트가 좋다는 이유로만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일종의 의무와 통감, 상실, 비애의 감각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최근 스스로를 아파트 덕후라고 칭하는 이들의 활동 계기는 본인의 고향이었던 아파트가 사라지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들이 대체로 30여년이 지나 재건축을 앞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올해 하반기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한 잡지『안녕, 둔촌주공아파트』, 마찬가지로 과천주공아파트 단지에 대한 책 『과천주공아파트 101동 102호』 등은 사라지는 고향을 붙잡아 두기 위한 기억 공동체의 아카이브인 셈이다. 둔촌과 과천은 물론 반포, 잠실, 개포, 고덕 등에서 나고 자란 청년 세대들의 아파트 덕후 활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애호의 의미를 넘어서 장소의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대안적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하고 있는 비정기간행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를 기록하고 있는 비정기간행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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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다영
정다영

(건축기획자)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에서 건축전문기자로 일했다. 201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아트폴리 큐브릭>,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아키토피아의 실험>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공저로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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