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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philo : 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라민 바흐러니 감독의 <라스트 홈>

이화정

2017-01-18

서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민 바흐러니 감독의 <라스트 홈>


얼마 전 아파트를 사서 이사한 지인에게 “그래도 집이 있으니 이제 한시름 놓았네”라는 말을 건넸다. 돌아온 대답은 좀 회의적이었다. “이게 어디 내 집인가 싶어. 은행집이지.” 대출을 하도 많이 받고 집을 산 탓에 오히려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노예가 된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도 2년 마다 오르는 전세금 때문에 늘 이사 준비를 하는 고통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서, 무리를 했다는 것이었다. 대학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 사는 지방 출신의 그는, 이제 이사하면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다. 직장에 다니는 그는 어쨌든, 앞으로 몇 년간은 월급을 꼬박꼬박 은행에 갖다 바치는 생활이 될 거라며, ‘저당 잡힌’ 삶을 토로했다. 주변에 그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많아 보였다. ‘집을 샀지만 내 집은 아니다’는 그의 궤변 같은 발언이 어쩌면 지금의 서민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싶었다. 아득바득, 내 집 마련을 위한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서민들이 존재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 노력 없이 숫자 놀음만으로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부를 축적해 나간다.

 

먼 미국의 일이지만, 최근에는 모순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허점을 고발하는 영화들이 부쩍 많이 등장했다. 특히 아담 맥케이 감독이 연출한 <빅쇼트>는 적나라하게 시스템을 고발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2008년 미국 경제를 혼란에 빠트린 서브프라임 사태. 원인은 이랬다. 저금리로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이루었고,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낮추며 서민들의 집사기 열풍에 가담했다. 은행으로서는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니 담보로 집을 잡으면 걱정이 없는 비즈니스였다. 아니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고위험 채권, 파생상품의 우후죽순 증가로 부동산 대출 시장은 결국 붕괴했다. 영화 <빅쇼트>는 이로 인한 월스트리트의 주가폭락으로 시작된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다.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 하나에 담보를 냈던 서민들에게 남은 건 무한대로 늘어난 빚뿐, 이 게임의 승자는 자본을 가진 몇몇에 불과했다. 바로 현대 자본주의사회가 가진 맹점이자, 지옥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위기상황이었다. 듣기만 해도 골치 아플 경제 용어들에 긴장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지만, 영화에서는 이 사태의 핵심이 무엇인지 전달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꽤 친절하고 재치 있는 방식의 주석을 곁들인다. 영화의 주인공은 은행의 교묘한 노림수와 그로 인해 닥칠 파장을 예견하고 대처한 4명의 천재적인 투자자들이다. 판돈의 크기가 무려 20조. 세계경제를 담보로 한 도전이었다. 결국 그 허점을 짚어낸 이들은 엄청난 부를 얻게 되지만, 이 승리의 서사에서 보통 할리우드 영화들이 결말 부분에서 전달하는 통쾌함을 맛보기는 힘들다. <빅쇼트>가 남긴 감정은 나 역시 이 거대한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씁쓸함과 두려움이었다.

 

라스트 홈 포스터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경고한 <빅쇼트>와 함께 빼놓을 수 없이 언급해야 하는 영화가 <라스트 홈>이다. 사태를 역이용해 수익을 거둔 <빅쇼트>의 인물들과 달리, <라스트 홈>의 주인공은 당시 금융위기로 결국 홈리스가 희생자, 즉 이 사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속수무책 당해야만 했던 서민들의 삶을 그린다. 말 그대로 <빅쇼트>의 씁쓸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라스트 홈>에서는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시작부터 충격을 전달한다. 가족들을 위해 막노동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청년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는 주택 대출금 연체로 단 2분 만에 집 없는 홈리스로 전락한다. 차압 당일, 부동산 브로커인 릭 카버(마이클 섀넌) 일당은 데니스의 집에 들이닥치고, 그는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길가로 내몰리게 된다. 릭은 갑작스러운 불행 앞에서 혼돈에 빠진 데니스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이고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한다. 바로 데니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 서민들의 집을 강제 차압하는 일이다. 빼앗긴 당사자에서 이제 자신이 빼앗는 역할을 하게 되는 모순에 빠져 있지만, 자신의 집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이마저도 고민할 틈이 없다.

 

가난했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릭은 그 가난을 후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 밑바닥에서부터 악으로 올라섰고 그 과정에서 편법은 불가피하다 여겼다. 그가 감정에 연연하지 않는 냉혈한 부동산 브로커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100명 중 1명만 방주에 타는 거야. 나머지 99명은 가라앉는 거지.”라는 릭의 철칙은, 부유한 상위 1%의 사람들만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작동 원리를 대변하는 말이다. 마침내 올랜도 전역의 집 1,000채를 매매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빅딜을 손에 쥐게 된 데니스. 그는 릭에게 협조하지만 매일매일 땀 흘려 노동하고 모은 돈으로 집을 마련했던 데니스는 이 상황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집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30일 내에 거리로 내쫓아야 한다. 서민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집 한 채는 그들에게 꿈이자 실체가 있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릭의 옆에서 그가 바라 본 집은 부동산, 은행, 정부, 투자자들에게는 자본의 축적을 위한 허구의 숫자에 불과했다.

 

영화 라스트 홈의 장면

 

피해자가 곧 가해자, 악행에 가담하는 이 영화 같은 현실에 대해서 영화는 오히려 담담한 시선을 취한다. 신자유주의의 모순들 속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자본을 소유한 부유한 계층이 아닌 결국 경제의 근간이 되는 서민들에 불과하다. 살아남기 위해 서민들은 결국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진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이야기지만, <라스트 홈>이 재연하는 지옥도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문제다. 연일 소유주와 세입자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재개발을 위한 철거, 용역업체의 등장으로 인한 혈투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공포이자 아슬아슬함이 아닐까. 영화를 연출한 라민 바흐러니 감독은 영화 속 배우들을 실제로 주택 퇴거를 지시한 보안관과 부동산 브로커, 집을 뺏긴 인물들로 꾸렸다. 사실감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공포는 이렇게 가까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의 가난이, 우리의 불행이, 나의 게으름을, 무능력함을 탓하게 만드는 압력으로 다가 올 때 그에 우리에게 수긍하고 자신을 다그치거나, 자괴감에 빠지는 대신, 시스템의 문제에 먼저 접근해야 한다. 서민의, 개인의 힘은 미약할지라도 연대와 각성만이 이 모순된 사회에서 굴복하지 않고 한발 더 전진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필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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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화정
이화정

영화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영화 속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 즐겨 한다. 저서로 여행 에세이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과 인터뷰집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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