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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 시각 : 그 많던 꿀벌과 중산층은 어디로 갔을까?

박진아

2017-01-10

그 많던 꿀벌과 중산층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부터 약 2,400년 전인 오랜 인류 문명의 요람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정치학(Politics)』에서 “가장 완벽한 정치적 공동체란 중산층이 장악하고 있는 정치공동체이며, 중산층 인구는 수적으로 상류층과 하류층보다 많아야 한다”고 했다. 도시국가의 중상층 시민은 상류층처럼 지나치게 오만불손하지도, 그렇다고 빈곤층처럼 이웃의 사유재산를 샘하거나 사악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적당히 안정된 위치를 차지하며 중용을 행사할 수 있는 부류라고 보았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생계에 찌들어 합리적인 사리판단을 할 수 없는 하류층에게 지도자 선출을 맡기는 ‘민주주의(democracy) 제도’는 부와 권력을 독점한 상류층을 위협하게 되고, 이를 원치 않는 상류층은 민주제를 강제로 폐기하고 과두제를 도입해 시민 모두를 억누르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보았다.


조지 크룩생크(George Cruikshank)의 <대영제국 꿀벌통(The British Bee Hive)>

 유럽 문화 속에서 벌집은 부지런함(industry)과 협동(cooperation)을 상징한다.

정교하게 세분화된 19세기 영국 계급사회를 피라미드 모양의 벌집에 비유해 디자인한

조지 크룩생크(George Cruikshank)의 <대영제국 꿀벌통(The British Bee Hive)>,

1840년 스케치/1867년 판화 인쇄. Location: The British Museum, London. Copyright

©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and British Museum Standard Terms of Use.


오늘날 정치가들은 선거공세나 정책연설 때 사회의 안녕과 안정을 약속하는 상징적 언약으로써 중산층 지원을 약속한다. 미국 코넬 대학 역사학 교수 스튜어트 블루민(Stuart Blumin) 박사의 말처럼 중산층은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전통적 체제가 저물고 근대주의 사회 개념과 체제가 들어선 이후 20세기 무렵부터 21세기 오늘날에 와서 지구상의 대다수 사회는 대체로 크게 상류, 중류, 하류라는 3대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인식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화가 조토(Giotto di Bondone)가 페루치 가문예배당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 중에서 은행업무를 보는 페루치 가족의 모습을 묘사한 것

 

14-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대출 및 환전업으로 막대한 부자 가문으로 떠오른 메디치 가나 페루치 가는

귀족 혈통이 전혀 섞인 적 없는 상인계층 출신이었다. 직물업의 부흥과 떠오른 양모무역과 국제환업무의 호황은

피렌체를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도시로 만들었고 그 파급효과로 건축과 미술의 황금기를 낳았다.

이 그림은 화가 조토(Giotto di Bondone)가 페루치 가문예배당에 그린 프레스코 벽화 중에서 은행업무를 보는 페루치 가족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1309-1315년경 프레스코화. Location: Peruzzi Altarpiece, Firenze.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동서고금 어디서나 인류사회는 중간계층이 없던 적이 더 많았다. 태곳적부터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2분적 계급 구조 ㅡ부와 권력을 독점한 소수의 지주 엘리트층과 지배층에 대한 복종과 육체노동을 생존수단으로 삼았던 다수의 피지배 계급으로 구성된ㅡ 로 운영되었다. 또 과거시대, 계급이란 타고나는 숙명의 굴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근대기 이후부터는 개인의 노력(그리고 절호의 시운)으로 성취한 부의 축적과 경제력을 기준으로 신분 상승과 계급 이동이 가능해졌다. 특히 20세기 이후 유럽과 미국을 위시로 한 산업화 국가들의 중산층 인구의 성장은, 곧 능력주의(meritocracy)가 인정되는 평등지향적이고 근대적인 사회로 해석되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중산층의 등장과 성장은 고작해야 300년 남짓 되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학자들은 글을 깨우친 식자층 인구가 늘어나고 새로운 기술과 이기가 발명되고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면, 중산층 인구가 증가하게 된다는 이치에 대체로 동의한다. 유럽의 경우, 초기의 중산층 집단은 글을 배우고 지식을 쌓아서 자주자립을 향한 욕구와 자기의식이 생긴 전문 직업집단 ㅡ예컨대 무역가, 은행가, 법조인, 예술공방의 예술가 또는 장인수공업자ㅡ의 독립적인 사업가(entrepreneur)로 출발하여 길드를 형성하거나 시장경쟁을 통해 경제적인 몸집을 불려 신흥부유층으로 등극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구적 개념의 중산층은 17-18세기 고려시대 송상(松商 또는 開城商人)의 형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근검절약, 책임감, 자립 사상에 기초한 중산층 가치관, 대국적이고 진취적인 상업활동을 통한 혁신과 부의 축적, 성과주의에 대한 보상이라는 고려시대적 초기자본주의 사상은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의 억상정책과 상인계급의 천대로 한국만의 토착 상공업 사업가 문화와 중산층 계급의 성장이 단절되었다.


카날레토(Canaletto)의 <리알토 다리 부근 카날레 그란데 광경(The Grand Canal near the Rialto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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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유럽-아시아 간 비단 무역을 비롯한 국제무역과 은행업의 요충지로 막강한 부의 도시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배경 무대이자 북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북서쪽 아드리아 해에 위치한 베네치아 시는

수천만 개의 나무 기둥 위에 건설한 인공섬이다. 중세말과 르네상스 유럽 최강의 해운과 무역 항구도시로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얻은 상인들이

경쟁적으로 건축을 지었다. 카날레토(Canaletto)의 <리알토 다리 부근 카날레 그란데 광경(The Grand Canal near the Rialto Bridge)>,

1728년경 Location: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영국의 사회학자 E.P 톰슨이 저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에서 내린 정의에 따르면, 계급이란 유사한 경제적 관계가 ‘역사적인 현상’으로 일정 세월 반복해서 ‘벌어지는’ 유사한 경제적 배경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이라 했다. 중산층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급격한 과학기술의 혁신, 사고와 패러다임의 변화가 폭발적인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제부흥기에 출현하는 계층이다.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아 등 도시국가가 주도한 섬유생산, 무역, 은행업을 통한 경제번영의 결과였다. 17-18세기 네덜란드와 북부 독일의 항구도시들 그리고 저멀리 오토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아우르는 유럽 휘하의 도시들은 수출입 무역과 항만사업의 번성으로 신흥중산층을 생산해냈다. 이어서 18세기식 계몽주의 시대는 19-20세기의 산업혁명으로 이어져 근대적 신흥부유층을 탄생시켰다.

상공업자들의 경제적 번성과 그에 뒤따른 경제적・사회적 지위 상승과 정치적 영향력의 성장은 비서구 문화권에서도 널리 등장한 보편적인 역사적 현상이었다. 예컨대, 영국 식민주의하 19세기 인도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보면서 인도내 계급의식 변화를 거쳤고, 1960-1970년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했던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아랍문화권도 유럽과 미국의 산업 중산층 인사들과 사업가 정신에 자극받아 근대적 사고방식, 매너, 소비성향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역시 송상의 예 말고도, 한국전쟁 직후 20세기 후반에 이룬 근대적 산업화는 눈부시게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중산층 인구의 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에 영향을 끼쳤다.


아드리엔 반 우트레히트(Adriaen van Utrecht)의 <연회상 정물화(Banquet Stil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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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부유한 집안에서만 먹을 수 있던 진귀한 해산물, 과일, 그리고 값진 테이블웨어와 집기는 그림 주인의 재력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카톨릭 교회가 주도하던 알프스 이남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오늘날 벨기에 영토에서는 귀족적 바로크 미술에서 영향받은

풍부하고 화려한 정물화가 신흥부유층의 집안 벽을 꾸몄다. 아드리엔 반 우트레히트(Adriaen van Utrecht)의 <연회상 정물화(Banquet Still Life)>,

1644년, 캔버스에 유채, 185 x 242.5cm. Location: Rijksmuseum, Amsterdam.


조지 오웰(George Owell)은 “상류계급은 상류계급으로 머물고 싶어 하고, 중간계급은 상류계급을 타파하고 싶어 하며, 하류계급은 무계급 체제를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천 년 만 년 끄떡없을 것만 같았던 유럽의 절대귀족주의와 귀족계층의 특권은 영원하지 못했다. 유럽의 귀족층에게 ‘귀족스럽게 산다’는 건 대대로 물려받은 방대한 시골 부동산과 막대한 재산을 기반으로 노동하지 않고 특권을 누리면서 한가롭게 사는 것을 뜻했던 반면, 신흥 부유층은 주로 도시 성관 안에 거주하며 전문직 생업에 종사하는 부지런한 사업가들이었고 이들의 성공은 부의 축적으로 측정했다. 그런가 하면 귀족들의 휘하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고, 자중과 근검절약, 성실과 신중이라는 가치관을 기초로 사업가 정신과 비전을 갖고 은행대출금으로 사업을 단행할 위험을 감수한 사업가로서 소작농을 비롯한 하층계급보다 우월하단 자의식도 있었다.


빌렘 클라스 헤다(Willem Claesz Heda)의 <굴, 은제 컵, 유리잔이 있는 정물화(Still Life with Oysters, a Silver Tazza, and Glassware)>

 바니타스(Vanitas), 아무리 호화로운 부와 영광도 부질없는 것. 진귀한 해산물과 수입해온 과일과 비싼 식기를 통해서

넉넉한 부를 자랑함과 동시에 쓰러진 은제접시와 유리잔은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인생무상을 경고한다.

자만과 욕심에 빠지지 말고 겸손과 근면하라 가르치는 네덜란드풍 정물화. 개신교 영향하의 네덜란드, 독일, 북부  칸디나비아권에서는

근검절약과 겸손을 미덕이며 과시적으로 부를 자랑하는 것을 금해서 부유한 가정에서도 엄격한 분위기와 교훈성 강한 미술품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빌렘 클라스 헤다(Willem Claesz Heda)의 <굴, 은제 컵, 유리잔이 있는 정물화(Still Life with Oysters, a Silver Tazza, and Glassware)>,

1635년. 목판에 유채, 49.8 x 80.6cm. Location: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계몽주의 사회의 도래와 함께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고 법률, 금융, 의학, 무역 같은 전문지식을 요하는 직종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그 수가 급증한 전문직 신흥 부유층들의 가슴속에서도 저마다의 경제적 규모에 맞게 부를 누리고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댔다. 신흥 부유층의 부와 자의식의 성장은 당연히 문화 향유와 보다 운치 있는 가정환경을 장식하고 싶어 하는 물욕으로 표현되었고, 그들이 동경과 모방의 기준으로 삼았던 모범은 바로 귀족들의 선진적이고 세련된 취향이었다. 예컨대 귀족적 장식미술이 지배했던 오스트리아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인테리어 양식이 된 비더마이어 양식(Biedermeier Style)은 화려한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과 엠파이어 양식을 적절히 혼합하여 중산층 가정의 경제 규모와 집안 환경에 맞게 간소화한 사실상 최초의 중산층 대상 홈 디자인이었다. 대륙권 유럽의 비더마이어 양식(Biedermeier Style)은 19세기 전반기까지 전 유럽적 양식으로 대대적으로 유행하며 영국으로 건너가 19세기 빅토리아풍 인테리어와 장식미술로 널리 응용됐다.  


프리드리히 폰 아메를링(Friedrich von Amerling)의 <루돌프 폰 아르타버 내외와 자녀들(Rudolf von Arthaber with his Children)>


1840년경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된 비더마이어 양식의 팔걸이 안락의자

비더마이어 양식은 화려한 바로크 및 로코코 양식과 엠파이어 양식을 적절히 혼합하여

중산층 가정의 경제 규모와 집안 환경에 맞게 간소화한 최초의 중산층 대상 홈 디자인 양식이었다. 

1. 프리드리히 폰 아메를링(Friedrich von Amerling)의 <루돌프 폰 아르타버 내외와 자녀들(Rudolf von Arthaber with his Children)>,

가족초상화는 전형적인 비더마이어 시대의 단란한 가족과 집안 모습을 담았다. 1837년, 캔버스에 유채, 221 x 155cm.

©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2. 1840년경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된 비더마이어 양식의 팔걸이 안락의자, 호두나무와 직물 패딩

© MAK – Austrian Museum of Applied Arts / Contemporary Art. 


신흥부유층의 부상과 함께 유럽 사회에서 점점 늘어나는 이른바 중산층 인구는 그 특유의 계층적 캐릭터 때문에 종종 사회의 상류층과 하류 빈곤층은 물론 사회의 지식층과 예술가들 사이에서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갑자기 큰 돈을 갖게 되었지만 교양 없는 졸부 또는 가진 돈을 품위 있게 소비할 줄 모르는 천박한 부자로 비치며 부러움과 미움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한국의 압구정동 오렌지족 현상을 통해서 그와 유사한 경제 과도기적 경험을 한 바 있다. 본래 도시거주자라는 의미의 프랑스 어휘에서 도래한 부르조아지(Bourgeoisie) 계급은 근면과 절약, 신중한 사업활동과 재투자ㅡ그리고 얼마간의 행운과 인맥의 도움ㅡ에 힘입어 부를 축적하고 재산을 늘린 진정한 의미의 자수성가 사업가였지만, 2-3세대 이상에 걸쳐 가업 및 부의 세습을 거듭하는 동안 안일함, 나태, 보수성이라는 부정적 부르조아지 상을 잉태시켰다.

역설적이게도 중산층을 향해 조롱과 비판을 가한 대다수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은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부르조아 출신이다. 예컨대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스테펜볼프(Steppenwolf)』에서 “내가 중산층에 대해 가장 밉고 혐오스럽고 저주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그들(중산층)의 만족감, 건전함과 안락함, 그리고 조심스럽게 보존된 낙관주의, 이 살찌고 풍족한 평범함의 무리다”라고 19세기 독일의 중산층을 묘사했다. 독일의 화가 게로르크 그로슈(George Grosz)는 근대기 독일 메트로폴리스이던 베를린과 드레스덴에서 살면서 도시 속의 매몰찬 “부르조아지와 쁘띠부르조아지들이 ‘문화’로 무장하고 봉기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억누르고 있다”고 분개했다. 카를 막스는 영국에서 급박하게 벌어지던 산업혁명을 목격하면서 부르조아지 계급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노동력 착취상을 고발했고, 곧 러시아 프롤로타리아 혁명을 이룬 레닌은 욕심 많은 부르조아지는 세금과 인플레라는 이정표적 맷돌로 으깨버려야 한다”고 선동했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풍족한 환경에서 컷던 20세기 중후반기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그의 기호학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천착했던 주제는 다름 아닌 중산층에 속한 자신과 그 무리를 향한 혐오와 자기비판이었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증권거래소에서의 초상(Portraits, à la B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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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파리나 런던의 증권시장과 금융계를 드나들며 축적한 부를 부풀렸던 금융가들은 흔히 탐욕스럽고 음흉한 자들로 묘사되곤 했다.

드가는 본래 중산층 가정에서 유복하게 컸으나 은행업 부도로 집안이 몰락한 후 화가가 되었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증권거래소에서의 초상(Portraits, à la Bourse)>,

1878-1879년경. 캔버스에 유채, 100 × 82cm. Location: Musée d’Orsay, Paris.


20세기는 중산층의 시대였다. 20세기 중엽,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산업적 규모의 살상과 파괴를 겪은 전 세계는 경제재건이라는 새 국면을 맞았다. 과거 응용미술 또는 공예는 이제 ‘디자인’으로 불리며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 체제 속의 중산층 대중에 봉사했다. 미국은 1929년 뉴욕 월가의 폭락과 1930년대의 경제대공황이라는 악몽을 서서히 잊고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점으로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전에 보지 못한 ‘붐 타임’을 경험했다. 대기업 설립 붐, 부동산 경제 활성화와 내집마련 붐, 도시화와 화이트칼라 직종에 종사하는 중산층의 급부상과 증가로 스스로 중산층으로 부르는 미국 국민의 수는 급증했고, 낙관적인 경제 분위기와 소비욕구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 시기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는 아름답게 포장된 제품 포장, 기업 로고, 유선형으로 매끄럽게 몰딩된 디자인 제품과 교통수단을 소개하며, 1950-1960년대 미국 경제를 본격적인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 기반의 대중경제로 끌어올린 20세기 소비주의 경제와 문화를 활짝 열었다.

유럽에서도 2차 세계대전은 승자와 패자를 가릴 것 없이 경제재건과 눈부신 성장을 거쳤다. 20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정치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주도된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인의 복지를 약속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정착시켰다. 경제성장을 뒷바침할 고용활성화 정책 덕분에 엄격한 계급의식은 강건히 잔재했지만, 역사상 최초로 가정적 배경, 인맥, 학맥 같은 지연에 구애받지 않고 성과주의에 입각한 사회적 지위상승이 가능해졌다. 드디어 각종 기관 소속 공무원, 무역업무 종사자, 교통통신 종사자, 사무직 종사자, 교육자, 상점소유주 등 근대기와 함께 새로 탄생한 이른바 ‘화이트칼라 사무노동’을 하는 안정된 봉급생활자도 중산층 대열에 합류해 구미권 산업사회는 전에 없이 두터운 중산층을 양산했고, 일반인들의 생활수준도 상향평준화되어 갔다.

 

      

    두말할 것 없이 20세기 중산층의 눈부신 등장과 성장은 분명 경제적 성장과 번영의 산물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마샬 정책의 도움을 받고 국가별 가족단위 중소기업이 원동력이 된 산업화로 경제 성장을 이뤄나갔다. 예컨대 독일은 바우하우스 학파의 디자인 철학을 대량생산 체제로 연결시켜 디자인을 독일의 경제 기적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탈리아 산업계는 북이탈리아의 산업 가문이 주도된 중소기업들이 자동차, 스쿠터, 가정용 생활용품, 사무용품 등 근대사회를 편리하고 스타일리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제품 디자인 일체를 체계적으로 대중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전후 국민 대대수가 농촌에 거주하던 농민・노동자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던 프랑스는 어느새 국민 절대 다수가 중산층이 되어 넉넉한 소비경제 생활을 누리며, 특히 ‘황금의 30년(Trentes Glorieuses)’이라 불린 1945-1975년간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풍요롭고 안정된 세월이었다. 인구의 도시화, 제조업과 사무직 고용 증대와 경제적 안정, 금융완화에 따라 용이해진 신용대부조건과 대출의 대중화로 과거 농업 등 1차 산업에 의존하던 빈곤층은 어느덧 한결 윤택해진 경제생활을 누리는 도시시민이 되었고 소비성향도 눈에 띄게 커졌다. 이 시기 중산층 가정을 꾸몄던 미드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 인테리어 디자인은 냉전기라는 정치이념적 배경 속에서 미국, 유럽, 일본의 중산층들이 한껏 만끽했던 20세기 최고의 풍요기에 대한 기억과 낙관주의을 표현하여 대중 소비자들과 컬렉터들 사이에서 다시금 인기를 끌고 있다.

     

    리차드 노이트라(Richard Neutra)의 <팜 스트링스 카우프만 가족 집(Kaufmann House, Palm Springs)>


    시트로엥 DS19(Citroën DS19)

    내 집과 자가용 승용차는 20세기 중산층의 여유 있는 삶의 대표적인 심벌이었다.

    1. 전후 미국에서는 신흥 부유층과 중산층이 늘어 집과 휴가용 별장을 건축가에게 맡겨 설계 건축했다.

    리차드 노이트라(Richard Neutra)의 <팜 스트링스 카우프만 가족 집(Kaufmann House, Palm Springs)>, 1946년. Photo: Julius Schulman.

    © J. Paul Getty Trust. Julius Schulmann Photography Archive.Research Library at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2. 전후 중산층 프랑스를 대변한 자동차 시트로엥 DS19(Citroën DS19) 모델은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책

    『신화들(Mythologies)』에서 중산층 문화 해부의 대상이 되었다.


    언론은 최근 전 세계 여러 통계조사 결과를 근거로, 산업화된 구미사회의 중산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중산층 평균 가구당 연간 수입도 감소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사회는 물론이고 일찍이 유럽,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도 과거 30-40년 경험했던 경제성장세가 사실상 멈추었다. 그 결과 경제성장 둔화, 기성세대의 조기 퇴직과 재고용의 어려움, 청년실업, 서비스 산업과 여성노동률의 증가라는 21세기적 경제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 현대인들이 가족제도로부터 해체되어 경제적으로 1인가구화・원자화돼 가는 추세도 중산층 인구 감소 현상을 심화시킨다.

    21세기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이 바탕된 미디어 혁명은 과거 19-20세기 산업혁명기 인류가 경험했던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그에 뒤따른 일반 대중의 경제적 풍요 상승곡선을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구글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2030년 즈음이면 로봇은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 예견한다. 또 스티븐 호킹 같은 석학부터 빌 게이츠나 엘론 머스크 같은 비저너리들은 나날이 똑똑해지고 정교해지는 인공지능(AI)이 향후 10년 뒤에는 인간노동력 상당을 대체할 것이며, 일자리를 잃은 인간은 정부보조금에 의존해 생존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암울한 예견을 하기도 했다. 21세기 문턱을 넘어선 우리는 이제 당장 중산층의 감소가 인류의 경제체제와 존재성 붕괴라는 한결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design

 

 

  • 디자인
  • 중산층
  • 박진아
  • 계층
  • 아리스토텔레스
  • 계몽주의 사회
  • 신흥부유층
  • 오렌지족
필자 박진아
박진아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17년째 미술사가, 디자인 칼럼니스트, 번역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문과 역사를 거울 삼아 미술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쓴다.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월간미술』의 비엔나 통신원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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