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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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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중산층]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ScienTech

by 박재용 / 2017.01.10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1만 년 전 어디쯤에선가 인류는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때 구대륙의 인간이 살 수 있는 대부분의 곳엔 인간이 들이 차 있었다. 더구나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천적도 없는 상태. 자연스레 인구가 급증하면서 수렵과 채집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인류는 스스로 먹을 것을 생산하기로 결심한다. 수렵 대신 유목을, 채집 대신 농경을 시작했다.


그중 농경을 선택한 집단은 재배한 곡식이 자신들과 가족을 먹이고도 남는 ‘여유’를 가졌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여 땅을 갈고, 가축을 이용하고, 보관용 용기를 제작하면서 풍요로움은 집단을 대규모로 키웠다. 그래서 모두 행복해졌을까? 다들 알다시피 잉여생산물은 집단의 지배자들이 독차지하고, 나머지 농민들은 이전의 수렵채집 시절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살았다. 연구에 따르면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영양상태가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늘어난 것은 오히려 농민들의 노동량이었다.


그 후 1만 년 동안 기술은 단속적으로 혹은 꾸준히 발전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여유와 풍요를 누리기보다는 더 많은 노동, 더 큰 위기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운동이 그러하다. 증기기관과 방직기의 도입은 이전까지 길드를 통해 권리를 향유했던 섬유노동자를 실직에 빠트리고 대규모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했다. 그 결과 러다이트운동(기계파괴운동)이 나타났다. 19세기 후반 자동차가 대량 공급되자 마차 인부들이 집단적으로 실업에 빠진 것도 그러한 예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예는 흔하다. 1980년대 시내버스에서 토큰제를 실시했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버스 한 대마다 기사 한 명에 버스 안내원 한 명이던 시스템이 기사 한 명만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 안내원들은 모두 해고당하고 길거리에 내몰렸다. 안내원들의 항의와 농성이 있었지만 제대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지도 못했던 당시, 항의는 수면 아래로 잦아들고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대부분 저학력의 젊은 여성들이었던 그들은 일부는 공장으로 일부는 술집 등 유흥가로 흘러들어 갔다.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엔 전화교환원들이 집단해고를 당했다. 전자식 전화교환기를 도입하면서 수동으로 전화를 연결해주던 교환원들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동네 양복점과 양장점, 양화점의 몰락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기술의 혜택은커녕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삼두마차는 자율주행차와 A.I. 그리고 로봇이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보는 본격적인 자율주행차의 도입은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며, 그 변화의 와중에 수많은 이들이 직업을 잃을 것이다. 처음엔 비교적 자율주행차를 도입하기 쉬운 영역부터 시작될 것이다. 물류기지와 물류기지 사이를 왕복하는 화물트럭,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부터 시작되어 점차적으로 시내버스와 택시 등 영업용 차량들로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차량 운전을 직업으로 삼는 노동자 대부분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A.I.가 본격화되면 번역과 통역 분야를 시작으로 사무 관련직의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게 될 것이다. 또한 A.I.는 손님을 상대하는 서비스직 분야에서도 빠르게 도입될 뿐만이 아니라 약사, 변호사, 재무 컨설던트, 심지어 의사에 이르기까지 전문 직종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벌써 암 진단 영역에서 의사의 일을 뺏기 시작했다. 


로봇은 로봇대로 산업현장에서 인력을 급속히 대체하기 시작한다. 아디다스의 스마트 팩토리는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동남아의 아디다스 공장은 적게는 1,000명에서 많게는 1만 명 이상을 고용하는데 반해서, 독일에 설립한 스마트 공장은 같은 양의 더 다양한 종류의 신발을 만드는 데 고작 160명 가량의 인력만 필요하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는 이를 ‘창조적 파괴’라 지칭했다. 기술 혁신으로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행위야말로 기업 경제의 원동력이며, 이윤은 이 창조적 파괴를 이끈 기업가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파괴되는 것은 단순히 ‘이전의 낡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창조적 행위가 오로지 기업가만의 성취인지, 아니면 전체 사회 구성원의 성취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기업은 창조를 위한 파괴에 대해 책임이 없는 것인지도 물어야 한다. 기본적인 교육시스템이 인재를 길러냈고, 그런 인재들에 의해서 기술은 개발된다. 사회의 제반 인프라가 이러한 혁신이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유지한다. 창조는 기업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룬 것이다.  

우리는 사회구성원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혁신을 지지하는 것이지, 기업가들이 ‘자신의 이윤’을 독차지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혁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단순히 기업가들이 돈을 많이 벌면, 번 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에 만족할 순 없다. 또한 혁신으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최저임금 정도의 실업 수당을 받고, 직업 전환 훈련을 몇 개월 받는 정도로도 만족할 수 없다. 창조로 인한 과실은 기업이 가져가고, 파괴로 인한 대가는 사회가 지불하는 시스템에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엘론 머스크의 ‘기본 소득basic income’은 대단히 흥미롭다. 즉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매월 일정한 기본 소득을 제공한다면 앞서 제기한 여러 문제가 모두는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 해결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새로운 기술로 발생하는 이익의 일정한 비율을 기업으로부터 추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본소득은 아직 제안일 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심심찮게, 그리고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기본소득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그리고 기본소득 말고도 다양한 방식이 제안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발달의 혜택을 사회가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역사는 기술의 발달이 인류 모두의 행복이었던 적이 극히 드물다는 슬픈 사실을 보여준다. 나는 비관적이지만, 21세기에는 그에 대한 반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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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재용
박재용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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