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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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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날 선 시각 : 걸작은 예상치 않은 신의 한 획인가?

by 박진아 / 2016.12.08

걸작은 예상치 않은 신의 한 획인가?


우연에 의해서든 아니면 운명에 의해서든, 우리 인간에게 인생이란 예측하지 않은 순간에 기대하지 않은 사건들의 연속 속에서 우리가 모든 상황을 잘 통제・관리하고 우리의 이해능력 안에서 해명하고 받아들이는 사건사와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철학과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인간 활동과 세상만사 사이의 연관성을 위해 우연과 필연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애써왔다. 인류 역사의 피고 진 수많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돌이켜보면, 인간은 대체로 역사의 성장기와 융성기에 인간의 적극적인 행동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여기는 반면, 사회와 체제 분위기가 경직되면 운명주의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경향으로 치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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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발견이 과학적 진보를 낳듯, 예술창조 과정에서도 우연은 작품을 새로 창작하고 바라보는 시각적 가능성을 확장해준다.

독일의 개념주의 미술가 디터 하커(Dieter Hacker)의 설치작품 <기하흡수적으로 증가한 사물(Multipliziertes Objekt)> 1968년 작,

목재, 폴리스타이렌, 래커, 지름 140cm. Galerie Michael Sturm. Photo: Frank Kleinbach, Stuttgart © Dieter Hacker

 

일찍이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과학이란 지각(perception)에 다름없다’라고 했다. 우연(coincidence) 혹은 기회(chance)는 흔히 발견(find)-발명(invention)-혁신(innovation)으로 이어졌다. 특히 과학사에 기록된 여러 중대한 비약은 사소한 순간에 포착된 우연의 발견(discovery)이 중대한 통찰(insight)로 이어졌을 때 이루어진 것이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담긴 물이 넘치는 것에서 부피의 원칙을 깨달았고, 아이작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렸으며, 스코틀랜드의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씻지 않고 쌓아둔 더러운 식기에 핀 포도상구균에서 페니실린 항생제를 만들어냈다는, 과학사에서 길이 남아 회자되는 재미있는 뒷이야기들이 이를 입증한다.


혁신적인 예술작품 - 운이 내려준 일필휘지인가, 아니면 계획된 실행인가?


그렇다면 인간의 창조적 예술활동은 얼마나 우연의 도움을 받을까? 흔히 예술의 중대한 비약은 우리가 예술을 이해하는 시점과 사고방식을 뒤바꾸는 양식상의 돌파구와 혁신으로 표현되곤 했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신은 우주를 갖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며 우주의 이치란 무작위의 우연이 아닌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임을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예술가는 훌륭한 창조물을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의도된 창조적 목적을 계획하고 우연이라는 개념을 예술작품의 한 요소로 활용하는 이른바 ‘계산된 우연(calculated chance)’을 작품으로 표현한다고 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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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셀 블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 <비(La Pluie (Projet pour un texte)>, 1969년 작, DVD 16mm 흑백 무성영화,
상영시간 2분 © Estate Marcel Broodthaers /VG Bild-Kunst, Bonn 2016 2. 오스카 도밍게즈(Oscar Dominguez), 마르셀 장(Marcel Jean) & 소피 토이버 아르프(Sophie Taeuber-Arp) 공동작 <우아한 시체(Cadavre exquis)> 1937년 작, 콜라주와 드로잉, 30.7 x 23.7cm. Stiftung Arp e.V., Berlin / Rolandswerth. Photo: Wolfgang Morell © VG Bild-Kunst, Bonn 2016 für Oscar Dominguez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가이자 시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문장가로서만 아니라 여간 재주 있는 스케치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글을 쓰다가 따분해지면 원고 위에 실수로 떨어뜨린 잉크 방울을 문지르고 붓과 펜으로 덧그려 즉흥적인 초상화나 풍경화를 구석구석 그려 남겼는데, 특히 그가 남긴 시집 『꿈(Le Rêve)』(1866년)은 원고용지에 흘린 ‘사고(accident)’로서의 잉크 얼룩이,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으로서의 ‘우연’으로 재프레이밍 되어 보기 좋은 수채화로 승화된 ‘창조의 과정(creative process)’을 일축해 보여준 사례다.

 

20세기 모더니즘 시대는 예술 개념과 지평을 확장했던 실험과 창조의 분수령이었다. 창조적 폭발 에너지가 대기에 충만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의 괴팍하고 기인적인 젊은 미술인들은 초현주실주의와 다다주의 운동에 뛰어들어 대담한 미술 실험을 단행했다. 미술계에 물의를 일으켰던 악동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서양 미술사상 최초로 세상사의 ‘무작위성’을 미술작품으로 설명하려 시도했다. 예를 들어 <3개의 표준정지장치(Trois stoppages étalon)>(1913-1914년)는 1m 길이의 실 3개를 나무판에 무작위로 떨어뜨려 보존시켰다. 뒤샹에 따르면 이 작품은 순간의 우연을 영원히 얼려놓은 ‘우연의 통조림(canned cha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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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뒤샹 <3개의 표준정지장치> 1964년 작(1913-1914년 원작의 모사본), 아상블라주, 캔버스에 실, 목재, 유리, 40 x 130 x 90cm.

Staatsgalerie Stuttgart, Stuttgart. Photo: bpk / Staatsgalerie Stuttgart, Stuttgart © Succession Marcel Duchamp /VG Bild-Kunst, Bonn 2016

 

초현실주의 운동도 비슷한 철학을 내걸고 의도된 우연의 개념을 예술화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한스와 토이버 아르프의 <우아한 시체>도 ‘찢어진 종이론(papiers déchirés)’, 즉 미술작품의 창작은 우연에 맡겨야 한다는 초현실주의 원칙에 충실하여 ‘일부러 의도한 우연’이라는 개념을 유희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본래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화가로 전향한 스테판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가 발표한 시집 『주사위 던지기(Un coup de dès)』(1897년)에 나타난 의도된 우연성은 동료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는 색상을 가지고 마치 고대 그리스 기회와 운의 신 카이로스(Kairos)가 스치고 지나간 듯, 우연히 온갖 현란한 색채가 기묘하게 섞여 아름다운 풍경화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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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스 에른스트 <생선가시의 숲(Grätenwald)>, 1926년 작, 캔버스에 유채, 38 x 46cm. Kunstmuseum Bonn, Bonn. Photo: Reni Hansen

© VG Bild-Kunst, Bonn 2016
2.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 <슈팅페인팅/변주 제64번(Karabinerbild / Variante ’64)>, 1964년 작, Edition MAT collection 54,

색색 주머니에 석고부조, 69 x 51 x 5cm. Kunstmuseum Bonn, Photo: Reni Hansen ©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VG Bild-Kunst, Bonn 2016

 

다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정신적 유산은 유럽의 양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한동안 잦아들었다가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국제 슈퍼파워와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추상미술이 우연적 요소를 미술의 창작 과정으로 포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활기를 맞았다. 1940-1950년대 뉴욕에서 잭슨 폴락은 캔버스를 눕혀놓고 물감을 떨어뜨려 그린 드립 페인팅으로 회화의 의미를 새로운 경지로 밀어붙였다. 1960년대 미국의 전위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는 고대 중국의 주역학 논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변화의 음악(Music of Changes)>으로 음악의 창조 과정도 무작위적 요소(randomness)를 지닐 수 있음을 실험했다. 한편 대서양 건너편 대륙권 유럽에서는 지독하게 지적이고 추상적 경도의 구체 예술(Concrete Art) 운동이 젊은 예술인들의 영감을 사로잡았는데, 예컨대 1960-1970년대 활동한 스위스의 니키 드 생팔은 총으로 쏴서 산산 조각난 캔버스를 알록달록한 미학으로 재구성한 일명 ‘슈팅페인팅(Shooting Painting)’을 통해 세심히 의도하고 연출된 우연을 미술작품에 활용했다.

 

그런가 하면 20세기의 디자인은 순수미술계의 사조로부터 일부 영향을 받으며 실용을 겸비한 아름다운 그래픽, 패키지, 광고, 제품으로 탄생했다. 19세기 말엽 일상용품에 순수미술의 아름다움과 기능성을 겸비한 ‘응용미술(applied art)’로 불리다가, 20세기 산업화와 더불어 ‘디자인’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전문화・세분화된 20세기 디자인은 순수한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영감보다는 일상생활의 안락과 편의, 과학과 기술적 요소가 가미된 기능성을 두루 충족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우연이나 운이라는 예측불허의 요소를 쉽게 포용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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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산업디자이너 겸 이론가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와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두 거장이 함께 결성한 알키미아 그룹과

에토레 소트사스가 알키미아에서 탈퇴하여 결성한 멤피스 그룹은 20세기 후반기 포스트모던 디자인을 평정하며 여러 1990년대 유명 산업디자이너들을 배출했다.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은 더 이상 기능주의의 시녀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예술적 감성이 반영된 개념적 오브제 겸 예술적 아이콘이 되었다. 

1.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진부한 사물(Oggetto banale - caffettiera)>, 1980년, 한정수 생산, 개인소장 2. 멤피스 그룹 양식의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데코한 거실, Courtesy: The Dennis Zanone Collection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해 1980-1990년대까지 대륙권 유럽의 대중시각문화를 강타한 알키미아 운동과 멤피스 운동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순풍을 등에 업고, 기능주의와 이성주의라는 모더니즘적 이상과 도그마에 저항하며 과거 요소의 자유로운 차용, 감성(emotion), 직관(intuition), 재미(fun), 유희(playfulness) 등 순수미술적 요소들을 디자인으로 포섭했다. 그 결과, 특히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감성주의를 중심으로 모여 활동한 알키미아 동인들의 디자인은 제품화되기보다는 착상 콘셉트로 머문 경우가 많았으며, 소량생산으로 제품화되었다 하더라도 기능성은 부족한 ‘파격적인 오브제’로서 디자인사에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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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트 모어(Manfred Mohr) <컴퓨터 조각 제1번(Computer Sculpture I (P-003))>, 1969년 작,

목재에 래커칠, 38 x 38 x 38cm. Manfred Mohr, New York. Photo: Frank Kleinbach, Stuttgart © Manfred Mohr


미래시대 인간 대 기계 - 누가 더 뜻밖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것인가?


지난 30여 년부터 21세기 현재, 순수미술과 디자인 두 분야는 영상, 컴퓨터 기술에 기반을 둔 기법, 인터넷 기반 디지털 이미지 등과 같은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포섭해오며 둘 사이의 경계가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 다시금 개념주의로 경도되어온 최근 현대미술계에서 미술인들은 물리학과 수학 등 현대 과학과 전산과학 이론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인간이 이 우주 속에서 두루 경험하는 질서와 혼돈 현상을 설명하고 시각화하며 예측하고 싶어 한다.

 

인간의 일상은 언뜻 복잡하고 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우연과 복불복의 도가니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나날이 극도로 지능적이고 세련화되는 컴퓨터라는 기계와 인공지능(AI)은 머지않아 우리 인간에게 무질서해 보이는 모든 현상 뒤에는 세심하게 계산된 내적 인과법칙을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현대 철학자 막스 벤제(Max Bense)는 컴퓨터는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기회의 수를 계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의된 규칙과 주어진 알고리듬에 따라 문학, 미술, 음악을 포함한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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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울리히스(Timm Ulrichs) <3차원 정육면체(Dreidimensionaler Würfel-Text «WÜRFEL»)>, 1964년 작,

목재 정육면체에 흰색 래커칠과 흑색 실크스크린 글자, 7 x 7 x 7cm. Timm Ulrichs, Hannover. Photo: Carsten Gliese, Köln © VG Bild-Kunst, Bonn 2016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시대에 막강한 명망을 자랑했던 전략가 마키아벨리는 무릇 탁월한 정치전략가란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가 내려주는 절호의 기회와 운의 도움만 있으면 인간은 용기와 지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와 거의 동시대에 살며 마키아벨리 커리어의 운명의 기복을 목격했던 피렌체 출신의 역사가 귀치아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의 생각은 마키아벨리의 그것보다 염세적이었다. 궁극적으로 우연과 필연, 행운과 불운 사이에서 바람 속에서 팔랑대는 이파리처럼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존엄 있고 지혜로운 태로는 합리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여 기어이 찾아오게 될 운명 또는 죽음을 겸허히 포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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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주사위 놀이에 심취했다. 유럽 정물화에 등장하는 주사위나 풍경화 속 주사위 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불량한 인생 목표나 헛된 삶,

죄 많고 불손한 인생살이, 헛되고 하찮은 세속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생살이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임을 상징하기도 한다.

헨드릭 데르브루그헨(Hendrick ter Brugghen) <도박꾼들(The Gamblers)>, 1623년 작, 캔버스에 유채. Collection: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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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박진아
필자 박진아
박진아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17년째 미술사가, 디자인 칼럼니스트, 번역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문과 역사를 거울 삼아 미술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쓴다.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월간미술』의 비엔나 통신원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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