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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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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날 선 시각 : 광장, 진보하는 인류 역사의 극장 무대

by 박진아 / 2016.10.18

광장, 진보하는 인류 역사의 극장 무대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도시 속 광장은 인류 문명의 탄생과 늘 함께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광장은 민주적인 사회와 자유로운 도시라면 꼭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 요소로 여겨지게 되었다. 수많은 익명의 대중이 오가며 공존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광장은 대중의 일상과 욕구를 조절해주는 안전밸브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도시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시위를 벌이며 의사를 관철하거나, 무대 공연 또는 스포츠 행사를 감상하는 문화와 여가의 향유장이기도 했지만, 어지럽고 혼란한 시절에는 시위와 무력이 오가는 격돌과 폭력, 더 나아가 혁명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돌, 파피루스, 양피, 금속이 프로파간다와 메시지를 담는 매체였다.
1. 알렉산더 대왕을 제우스의 아들로 비유하여 묘사한 은주화. 돈은 누구나 호주머니에 갖고 다니며 주고받는 침투력이 큰 교환수단이다. 306-281 B.C. King Lysimachus of Thrace. 소장: Art Institute of Chicago
2.작자 미상, <나람 신의 승리의 석비(Victory stele of Naram-Sin)> 기원전 12세기 아카디아 왕국의 지배자 나람 신이 신파르 전투에서 이기고 가져온 전리품, 석회암, 2 x 1.50m. 소장: Louvre Museum


고대 광장 - 정치적 정당성과 무력을 과시하기 위한 권력자의 홍보 공간


진정한 의미의 광장의 기원은 어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고고 미술사가들이 공히 인류 태초의 예술적 표현의 예로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라스코 동굴 속 동굴벽화나, 4대 고대 인류문명 발상지에서 발견되던 도시 군집터와 숭배용 기념건축물들이 있는 장소도 과거에 광장의 기능을 했을까? 광장의 개념을 인간 대 인간 사이의 의사표현이 실현되는 공간이라 가정해본다면, 일찍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지배자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공간에 건축비와 기념물을 세웠다. 막강한 군사력과 정치적 정당성 과시가 중대사안이던 그 당시, 눈으로 볼 수 있는 대형 기념물은 대중을 압도하고 설득하는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름지기 자유의사를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인간활동과 의도가 밀집된 공간에 모여 언어를 매개로 타인에게 의사를 표현하고 의도를 관철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그러했듯이 전 세계 인류는 세태와 정세에 불만을 표시하고 항의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갔다. 그런 관점에서 문화역사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를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광장(public square 또는 plaza)의 가장 이른 사례로 꼽는다. 기원전 근 한 세기 무렵부터 그리스 시민들은 도시의 심장부인 아고라에 모여 화폐와 재화를 주고받았고, 장사꾼과 무역업자들이 볼일을 봤으며, 강연과 토론을 하러 나온 철학자와 시인, 정치가들이 모여 서로의 옷깃과 팔꿈치를 스쳐 가면서 토론을 벌이며 사상을 발전시켰다.

 

 

재판소, 관공서, 집회장, 은행, 극장, 장터로 두루 쓰이던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로마의 포룸, 유럽 중세의 교회당 같은 공공건물들은 긴 장방형 평면도에 아치 천장과 서열 기둥을 받쳐 지은 바실리카 건축으로, 지금도 영미국식 타운홀(Town Hall)이 그 형태를 계승하고 있다. 1. 철학자들은 스토아(stoa)라는 철학토론을 위한 별도의 공간에서 벌였다. 필리프 토마생(Philippe Thomassin) <아테네 학파(School of Athens)> (라파엘로의 원작 회화 <아테네 학파>를 모사한 판화, 1617년, 51.8 x 81.1cm. Courtesy: Achenbach Foundation for Graphic Arts. 2. 죠토(Giotto, 1266–1337년) <신전에서 환전상과 상인들을 쫓아내는 예수(Casting out the money changers from the Temple)>, 14세기 프레스코화. 소장: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Scrovegni Chapel, Padova).

 

토목공학의 귀재였던 고대 로마인들은 군중심리와 여론을 군사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하게 통제하고 활용할 줄 알았다. 그들은 도시의 핵심 피처(feature)로서 광장 공간을 십분 활용할 줄 알았는데, 건축물을 짓고 도시계획을 하는 이른바 ‘프로파간다로서의 인프라’ 전략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했다. 로마 시민들은 시내 중심부에 있는 포룸(Forum, 복수형은 포로Foro)에서 비즈니스와 상업 거래를 포함한 생계활동을 처리하고 근처 장터인 마셀룸(macellum)에서 먹거리와 일용품 장을 보면서 최신 정치 추문과 화젯거리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들은 콜로세움(Colosseum)과 야외극장에서 박진감 넘치는 스펙터클과 오락거리를 구경한 뒤 장터에 들러 공짜로 배분되는 빵을 얻어 북적대는 인파를 피해 근처 피아차 델라 로툰다(Piazza della Rotunda)로 발길을 옮겨 판테온(Pantheon) 성전에 들어갔을 것이다. 돔 지붕을 통해 들어오는 천연광과 그 아래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로마 신들의 조각들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잠시나마 숙연해지지 않을 자가 어디 있었을까. 영원의 도시 고대 로마는 다양한 기능과 구조를 아름답게 승화시킨 공공건축 공간들로 연출된 도시 토목기술과 공간 디자인으로, 이렇게 근 한 세기 동안 평화로운 로마 제국을 지배했다.

 

 


1. 로마 시민들은 시장에 가서 공짜로 빵을 배급받을 수 있었다.
2. 로마 시내 거리에 나붙었던 글래디에이터 전투를 광고하는 모자이크 그림. “로마제국 시민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오로지 두 가지는 빵과 서커스(라틴어 panem et circenses)”라고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는 세태를 한탄했다. 특히 로마 시대의 황제들은 먹을 거리와 오락거리로 시민들을 달래고 기쁘게 해주는 통치 전략을 잘 활용했다.

 

광장은 도시의 부유한 유지나 지배자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위력을 건축으로 포장하여 과시하기에 안성맞춤인 미적 권력 공간이었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는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복고주의로 건축과 미술의 영광기를 이룩했다. 대형 공공 건축물이나 광장은 대중 사용을 목적으로 개인 유지나 가문의 자발적 헌사 또는 납세의 한 방법으로 건설되는 이른바 ‘정치와 외교적 수단으로서의 문화 후원’의 시대였다.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을 빌어 교권은 재정적・정치적으로 융성한 도시 가문들의 세력을 견제하고 통제했다.

 

그중 한 예로,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의 대명사로, 지금까지도 재력, 정치력 그리고 미적 우월함을 한데 과시한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탄생하기까지 후원자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메디치(Medici) 가문의 팔라초 베키아와 그 앞의 광장 또한 은행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와 정치군사적 권력을 성취했고, 또 스포르자(Sforza) 가가 밀라노에, 데스테(d’Este) 가문이 페라라에 남긴 찬란한 건축과 미술도 그렇게 해서 탄생한 르세상스의 영광이다. 로마의 교황도 경쟁적으로 당대의 건축과 미술 대가들을 고용해 바티칸 교회 안팎을 장식했다. 건축 인프라 건설은 귀족들이 시민들에게 헌사함으로써 속죄하고 교회로부터의 파문을 면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올덴버그가 이름한 정겨운 ‘제3의 장소’로서 공공 공간은 지역 거주민들에게 공동체 의식과 정체성을 부여하고 사회조절 기능을 한다. 과거 유럽의 귀족들은 도시 곳곳에 아름답고 관공건물, 도서관, 교회와 예배당, 우물가와 분수, 광장을 지어 시민들에게 헌사했다.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대도시 안 골목이나 고을에는 해 질 무렵 늦은 오후면 동네 중심지(centro)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띈다. 가스파르 반 비텔(Gaspar van Wittel) <로마 나보라 광장(Piazza Navona, Rome)>,1699년, 캔버스에 유채, 96.5 x 216cm. © Carmen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on loan at Museo Thyssen-Bornemisza.

 

16세기 말부터 17세기 무렵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바다 항해와 신세계 발견, 코페르니쿠스의 지구 원형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알프스 이남북 간 유럽 내 반종교개혁 전쟁은 막강하던 유럽의 교회 권력을 동요시켰다. 귀족들은 자연과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대중은 광장으로 나와 육체적 감각에 호소하는 종교활동이나 떠들썩한 축제행사로 몰입되었다. 예컨대 밀라노의 보로메오 추기경은 빛과 어두움의 극적인 빛 대조효과와 무대성이 강한 기독교 축제행렬을 연출해 시민들을 종교적 무아경지로 몰입시켰던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흡인력 강한 할리우드 영화와 컴퓨터 그래픽 영상에 빠지는 경험과 같은 이치다.

 

▲ “어리석은 인간군중을 보라!” 플랑드르 출신의 풍속화가 피테르 브뤼헐은 가톨릭 교회에서 준수하는 금식 기간에 들기 전 사육제를 벌이는 한 고을의 전형적인 광장의 모습을 묘사했다.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고기를 잔뜩 먹으며 왁자지껄하게 잔치를 벌이는 농군들과 검은 옷으로 몸을 가리고 금식령을 준수하는 독실한 신앙인들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면서, 인간의 어리석음, 욕심과 탐식, 다툼과 파괴 본성을 은근슬쩍 꼬집었다. 피테르 브뤼헬,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1559년, 판넬에 유채, 118 × 164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계몽주의 시대 민주주의의 발현과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장으로서의 광장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에 큰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구텐베르크 인쇄기술이었다. 구텐베르크 인쇄혁명은 문자를 해방시켰지만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의 종교계와 정치 지배자들은 당연히 인쇄물의 대중화를 불편하게 여겨 전에 없이 엄중하게 여론을 통제하고 교권이나 집권정권에 대한 일체의 신성모독과 이설을 단속했다. 모든 인쇄기에 공식인증 허가서를 부착하게 하고 모든 책은 출판되기 전에 출판 및 배포 허가를 받아야 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옥스브리지 대학 두 곳과 런던 인쇄소 스무 곳만 사업허가를 내주고 스테이쇼너스 컴퍼니라는 인쇄소를 전세 내어 친정권 출판물을 제작 배포했다.

 

16세기의 팸플릿*이 주로 종교적 논쟁을 다루어 교권의 횡포로부터 대중을 일깨우는 데 사용되었다면, 17세기의 팸플릿은 정치 파벌이나 친정권 대 반정권 세력 사이의 논쟁과 격론이 벌어지는 ‘지면 전쟁터’ 역할을 했다. 중유럽의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30년 전쟁 끝에 서민들의 삶이 더없이 피폐해지면서 영국인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와 비례하여 특히 정치 팸플릿이 가장 대중적인 정보전파 매체로 널리 읽혔다. 종이와 인쇄비용이 여전히 비쌌던 당시, 팸플릿은 목판화로 비교적 저렴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어 책이나 신문보다 인쇄비용이 저렴했을 뿐만 아니라 먼 곳까지 배포가 용이했다.

 

* 팸플릿(pamphlet)이란 작은 책자로, 유네스코 정의에 따르면 겉표지 제외 5쪽-48쪽 분량의 미제본 혹은 간이 제본된 소책자를 의미함.

 

“세상은 여론에 의해 지배되고 통치된다.” 17세기 수천 부씩 인쇄되어 광장을 비롯해 카페나 서점에서 팔린 정치 팸플릿은 ‘화염병’이라 불릴 정도로 체제 전복적이고 여론형성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대량인쇄술로 포스터나 리플릿 같은 종이 인쇄물이 대중의 여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자, 지식과 정보 전파력은 더 이상 소수 절대 권력자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주로 고딕 서체로 그림과 텍스트가 혼합된 내용으로 흑백 인쇄되었으며 정치적 선언문, 발라드, 단편문예를 실어 폭넓은 독자층을 겨냥했다. (17세기 영국 혁명기에 활동한 평등주의 운동가 중 한 사람인 존 릴번(일명 프리본 존freeborn John)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알리는 팸플릿 <레벌러(Levellers)> 중에서)

 

이어서 18세기와 19세기는 정치풍자 팸플릿의 시대였다. 때는 대륙권 유럽과 영국을 포함하여 유럽인들이 교권과 절대주의 정권이 아닌 상식과 자율에 기초한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정의에 눈뜬 계몽주의(Enlightenment)의 시대이자 프랑스 혁명 20세기 근대주의가 탄생하기까지의 준비기였으며, 또한 신대륙 아메리카땅에서 미국 독립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시기이기도 했다. 절대주의 구정권의 기반이 흔들리고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자 팸플릿 발행인들은 혹독한 검열과 처벌에도 굴하지 않고 체제와 사회를 신랄히 비판하는 팸플릿 출판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유머와 텍스트가 결합한 풍자만화(satire cartoon)가 널리 읽혔는데, 당대 일러스트레이터들 중에서도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 토마스 로랜슨(Thomas Rowlandson), 존 실월(John Thelwall),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작품들은 백미로 꼽힌다. 18세기 말엽 독일의 인쇄업자 알로이스(Aloys Senefelder)가 우연히 유성 크레용을 이용해 더 빠르고 저렴한 컬러인쇄의 혁신을 이룩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리소그래피(lithography) 인쇄법이다.

 

 

 

20세기에 들어 광장은 역사적 격동과 변혁의 현장이 되곤 했다. 광장은 광장공포증(agoraphobia)이라는 어휘가 탄생할 정도로 광장의 절대 규모도 커졌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궁정 광장은 1917년 레닌과 볼셰빅 공산당 세력이 러시아를 정복한 10월 혁명의 산증인이었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은 20세기 미완의 혁명 1968년 청년반문화 운동의 거점이었으며, 피델 카스트로는 하바나의 플라자 데 라 레볼루시온(Plaza de la Revolución, 혁명광장)에서 수천만 군중을 앞에 두고 연설하여 1959년 쿠바의 영웅이 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떠오른 베이징 티아난멘 광장의 민주화 운동, 100년에 걸친 수많은 시민 시위자가 모인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 그리고 2010년부터 불거진 아랍의 봄과 중동의 민주화 운동 이후 카이로의 타리르 광장, 이스탄불 탁심 광장, 그리고 최근 키예프의 마이단 광장에 이르기까지 나라와 도시의 역사와 정치 운명을 뒤바꿨던 역사의 현장들이다.

 

 


1.‘정치풍자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길레이의 <’민중의 친구’와 쪼잔한 새 세금징수원이 존 불의 집을 찾아오다(‘The FRIEND of the PEOPLE', and his Petty New Tax Gatherer, paying John Bull a visit)>이다.
1806년 5월 28일 자 풍자화는 지독하게 높은 세금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고초를 고발했다.
길레이는 동판화에 직접 손으로 채색하여 리소그래피 인쇄 기법을 썼다.
2.‘풍자화의 미켈란젤로’로 불렸던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는 프랑스 시민에 대한 사회풍자화를 그렸다.
이 작품은 <무료입장일 살롱을 방문한 대중관객(Le Public du Salon: Un jour où l'on ne paye pas)>이다.
1852년, 종이에 리소그래피 인쇄. 소장: The Phillips Collection.


 

마오쩌둥은 파키스탄 외교사절단이 선물로 가져온 망고 과실을 공산당에 대한 충성과 숭배대상으로 격상시켰고, 온 중국은 황금 망고 열병을 앓았다. 하얼빈에서의 1968년10월 국가의 날 퍼레이드에서 공산당원들이 마오쩌둥의 초상과 황금 망고 모형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Li Zhensheng (b. 1940) 작 흑백사진, 40 x 47cm. Museum Rietberg Zürich. Gift of Alfreda Murck. Photo: Rainer Wolfsberger.


정치와 소비를 넘어서 - 21세기는 광장 문화 2.0의 시대


그러하다 보니 광장이란 인류평등, 개인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교환을 상징하는 열린 장소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고, 열린 민주사회가 꼭 갖춰야 할 도시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게 되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일반 대중이 늘고 지식계층이 늘어나면서 팸플릿은 정치 선동용이 아닌 정보 전달용 매체로 기능 전환했다. 대량생산 및 소비경제가 자리 잡은 20세기 후반기 이후 광장의 개념과 기능도 달라졌다. 그사이 대중은 광장 대신 백화점, 쇼핑몰, 박물관과 미술관 같은 21세기형 신전이자 소비 공간으로 옮겨갔다. 한때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었던 광장들은 오늘날 인근 주민, 직장인, 관광객들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지나쳐가는 일시적인 통행(transit)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2015년 가을 신건축과 함께 재오프닝한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여러 사람이 모이고 만나는 장소로서의 광장 콘셉트를 건물 곳곳에 응용했다. Photograph © Nic Lehoux

 

최근 현대 도시설계 전문가들과 정책가들 사이에서 민주적 공공장소(democratic spa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이제 광장은 한 공간에서 대중의 다양하고 때론 상충하는 여러 요구사항에 부응할 수 있는 융통성 있고 변화무쌍한 공공장소(adaptive space)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 도시설계 학계의 추세다. 21세기 현대사회는 전에 없이 다층적이고 다분화되었으며 개인들은 전에 없이 원자화되었다.

 

이 같은 점에 기초하여 비영리 도시 기획 및 디자인 단체 PPS(공공 공간을 위한 프로젝트, www.pps.org)는 성공적인 광장 설계를 위한 10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 광장 고유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갖출 것, 2) 주변에 크고 작은 명소가 있는 곳에 자리할 것, 3) 벤치, 산책로, 놀이터 등 편의시설을 갖출 것, 4) 다양한 행사나 이벤트를 주최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공간이 될 것, 5) 계절별로 변화하는 이벤트 기획 전략을 구축할 것(예를 들어 겨울철 스케이트장, 원예 축제, 조각 전시회, 장터 행사 등), 6) 교통편과 접근이 용이한 위치에 자리할 것, 7) 날씨 변화에 대비해 광장의 야외 공간과 실내 공간을 갖출 것, 8) 광장 주변 인근 건물과 도로 등의 인프라와 잘 연결되어 있을 것, 9) 청소, 안전, 설비 수리 등 광장 관리를 철저히 할 것, 10) 광장 관리에 풍족한 예산 및 재정지원을 확보할 것이 그것이다.

 

지능적 기술과 지속가능성을 겸비한 오가닉 공공 서비스 시스템(Organic Public Services) Design by Mario Gagliardi.

 

현대 도시들은 시민들을 위한 공공 공간을 필요로 한다. 미래 시민들은 자연과 공동체를 도시 안으로 다시 끌어들여 일상생활을 윤택하게 해 줄 수 있는 광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자동제어 풍차와 수기압 중심주는 바람과 습기를 발전시켜 공기를 정화해준다. 꿀벌 타운은 도심 속에서도 벌꿀 제조를 가능케 해주고 공동체 김칫독은 이웃들이 김치를 공동으로 보관할 수 있게 해준다. 채소와 허브를 수경 재배하거나 공공 휴식 공간의 지붕에 풀을 심을 수도 있다. © Mario Gagliardi Design, www.mariogagliardi.com.

 

결국 ‘광장이란 무대 장치’이기 때문에 ‘단지 햇볕을 쪼이며 앉아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남들을 구경하고 남들이 나를 구경할 수 있는 총체적 무대성’이 갖춰진 공공 영역이라고 미국의 조경건축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는 진단한다. 도회 환경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여러 개인이 만나고 교환하면서 문화적 마찰을 일으키며 그로부터 새로운 활력을 얻기를 갈망한다는 말이다. 2014년 UN 통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 인구의 54%가 도시에서 살고 있으며, 다가올 2050년이 되면 도시 거주 인구는 70%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 한다. 그에 따라 도시 밀도가 높아지고 1인당 주거 공간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미래에, 인류에게 광장과 같은 공공 영역의 필요성은 더 절실해질 것이다.

 

 

디자인 역사 극장 광장
필자 박진아
박진아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현재 17년째 미술사가, 디자인 칼럼니스트, 번역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문과 역사를 거울 삼아 미술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쓴다.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며 『월간미술』의 비엔나 통신원으로 미술과 디자인 분야의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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