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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월, 전쟁이 시작되는, 그래서 평화가 절실한

-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 -

함규진

2022-03-11

열두 달로 알아보는 역사 이야기는?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흔적이고, 그 사람들은 숫자와 구간에서 어떤 상징을 떠올렸을 것이기에, 어떤 달이나 날에 대한 특별한 관념과 개념이 연결지어질 수 있다. 가령 ‘1월’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시작’을 떠올리리라. 영어로 ‘March’라고 할 때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래서 여기서는 그러한 열두 달에서 연상되는 각각의 개념들, 그 개념들의 역사와 오늘에 다가오는 의미를 열두 달에 걸쳐 풀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열두 달에서 연상되는 개념들’의 역사다. ‘열두 달별로 일어났던 사건들’의 역사는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달에 일어났던 사건을 서술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사건이 그 달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의미가 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독자들이 이 잡문을 읽고, 흥미와 함께 어떤 의미를 음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근대 시절, 겨울철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워낙 춥고, 눈과 얼음 때문에 움직이기 힘든 데다, 가을에 비축해 둔 식량을 전쟁 때 소모해 버리면 다음 봄부터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겨울에는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잘 쉬고 힘을 길러 두었다가, 봄이 되면 슬슬 무기를 잡고 진군의 나팔을 불곤…….



겨울과 봄의 경계, 생명의 시작… 전쟁도



2022년 3월 달력

2022년 3월 달력



3월, 한때는 새해 첫 달이었다. 1월도 아니고 2월도 지나서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3월을 첫 달로 삼고 자신들의 수호신인 마르스의 이름을 붙여 ‘마르티우스’라고 했다. ‘야누아리우스’가 1월이 된 건 기원전 46년에 율리우스력(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시행한 역법으로 1년을 365일로 하고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윤년을 인정함)을 채택한 다음부터다. 로마인만이 아니다. 러시아는 15세기까지, 영국은 무려 18세기 중엽까지 3월을 첫 달로 여겨오다 율리우스력을 개편한 그레고리력(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8세가 도입한 역법)을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1월에 새해를 맞게 되었다. 이란의 경우에는 아직도 우리의 음력설처럼 3월 21일 춘분을 민속 ‘설날’로 쇠고 있다.


로마인과 여러 민족들이 3월에 새해가 시작된다 여긴 까닭은 이때 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봄은 겨우내 움츠려온 모든 생명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그런 시작에는 전쟁도 포함된다. 전근대 시절, 겨울철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워낙 춥고, 눈과 얼음 때문에 움직이기 힘든 데다, 가을에 비축해 둔 식량을 전쟁 때 소모해 버리면 다음 봄부터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겨울에는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잘 쉬고 힘을 길러 두었다가, 봄이 되면 슬슬 무기를 잡고 진군의 나팔을 불곤 했다. 로마의 수호신이며 3월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마르스(mars)가 전쟁의 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어로 3월을 뜻하는 march는 ‘행군’이라는 뜻도 있고, 중세 유럽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설정했던 완충지대의 뜻도 있다. 둘 다 ‘경계’라는 고어에서 비롯되었다. 3월은 겨울과 봄의 경계다. 행군은 경계를 넘어 상대방의 땅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적인가? 친구인가?



전쟁 중 사격

전쟁 중 사격



전쟁은 왜 시작되는 것일까? 오래전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답변을 내놓았다. 가장 오래되고, 많은 호응을 받아온 답변의 하나는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킬러 본능’이 있다. 원시시대에는 돌도끼와 몽둥이로 싸우다가 이제는 미사일과 드론으로 싸울 뿐, 인간인 이상 인간은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일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서로에 대해 늑대다’라고 본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영국의 사상가, 1588~1679)가 그렇게 생각했고, 동물에 대한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킬러 본능을 믿게 된 콘라트 로렌츠(Conrad Lorenz,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1903~1989)도 『공격성에 대하여』에서 여기에 동의했다. 이런 쪽으로 생각한다면, 전쟁은 없앨 수 없으며 최소화할 수만 있다. 어떻게? 전쟁 대신 킬러 본능을 해소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다. ‘유럽 축구 리그가 시작된 뒤, 그토록 치열하게 자주 싸워온 유럽에서 전쟁이 사라졌음은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던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의 지적은 간단한 농담이 아니다.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인간은 본래 평화를 사랑하는 동물이며, 자연상태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고 지냈다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프랑스의 사상가, 1712~1778)가 『인간불평등기원론』, 『사회계약론』에서 그렇게 보았으며, 문화인류학의 선구자의 하나인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미국의 인류학자, 1901~1978)도 『문명의 시작』에서 같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수없이 있어온 전쟁은 대체 왜 일어난단 말인가? 그것은 ‘재산’ 때문이다! 루소는 ‘전쟁이란 인간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사물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잉여 생산물이라는 것이 생기고 이를 축적하게 되자, 스스로 일하기보다 남이 축적해 둔 생산물을 빼앗아서 쓰자는 욕심이 생겼다. 이를 염려해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도 생겼다. 그리하여 뺏으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 사이에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전쟁을 근본적으로 없애려면 사유재산을 없애거나, 소유 상태를 두루 균등하게 만들어야 한다. 킬러 본능론이 대체로 우파에게 먹혀들었다면, 재산론은 좌파들에게 주로 신봉되었다.



국가가 없다고 상상한다면?



존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john lennon)〉 앨범 표지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존레논의 노래 〈이매진〉 앨범 표지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홉스가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루소가 재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여기는 ‘국가’야말로 전쟁 시작의 주원인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전쟁을 부추긴다. 이슬람 역사가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1406)이 본 것처럼, 국가는 ‘민족’, ‘종교’, ‘역사’ 등을 끝없이 소환시키며 ‘우리 조상들이 당한 일을 복수해야 한다!’, ‘우리의 옛 땅을 되찾아야 한다!’며 개인과는 큰 상관이 없는 집단의 일에 목숨을 내던지라고 개인에게 강요한다. 머나먼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진 일에 전 유럽이 복수에 나서야 한다며 십자군을 제창한 교황 우르반 2세(Urbanus Ⅱ, 1035-1099)도, 19세기에 한때 아르헨티나 땅이었다고 1982년에 포클랜드를 점령, 영국과의 전쟁도 불사한 레오폴도 갈티에리(Leopoldo Galtieri, 아르헨티나의 전직 대통령, 1926~2003)도 그런 식이었다.


한편 ‘우리가 먼저 전쟁에 나서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라는 국가적 차원의 공포감이 전쟁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한반도는 일본 열도를 겨눈 칼’이라며 그 칼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손에 쥐어지기 전에 나서야 한다고 부추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그랬다. 유대인들이 세계의 여러 정부들을 몰래 움직이고 있으며, 그들이 게르만 민족을 박멸하는 전쟁을 펼치기 전에 먼저 유대인을 박멸하자고 외친 히틀러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지도자나 권력 집단의 사적 계산 때문에 전쟁이 결정되기도 한다. 13세기 몽골 제국은 사신으로 보냈던 저고여 피살 사건 때문에 고려를, 자신들의 보호하에 있던 이슬람 대상(大商)들의 피습 사건 때문에 호라즘(1077년부터 1231년까지 유지됐던 서아시아 지역의 이슬람 왕조)을 침공했다. 그것은 ‘모욕을 당하고서도 보복하지 않는다’는 말이 돌게 되면 자신의 권위가 무너질까 두려워한 대칸의 입장이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642년, 고구려의 영류왕은 중국에 저자세를 보인다는 이유로 연개소문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시해당했다. 한편 지도층이 이런저런 이유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전쟁을 획책하는 수도 있다. 1914년, 내우외환으로 흔들리고 있던 황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한편 1936년 다니엘 게랭(Daniel Guérin,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 역사가, 1904~1988)의 연구에서 1961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1890~1969) 미국 대통령의 퇴임 연설, 그리고 이라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2000년대 미국 시위대에 이르기까지, 고도 산업화 국가에서 군수업체와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비밀 동맹관계가 이뤄지고 그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전쟁이 벌어진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었다. 물론 광적인 지도자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자 전쟁이 선택되는 수도 많다. 임진왜란, 그것은 세 가지의 예가 모두 적용된 경우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실제로 아시아의 제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 한편 명나라에 대한 조공무역 중단으로 피해를 입고 있던, 자신을 지원해온 상인들의 입장을 챙겨 줘야 했다. 그리고 전국시대를 막 마감한 상태에서 아직 불온한 기미가 있는 서부의 다이묘(지역의 권력자)와 사무라이들을 외국과의 전쟁에 내몰 필요도 있었다.


국가가 전쟁의 주된 원인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의 『이매진』처럼 ‘국가를 없앤다고 상상해 보자. 아무도 죽고 죽이지 않으리라. 종교마저도 없어진다면’처럼만 생각하는 것은 현실성이 너무 없다. 그 대안은 국가지도자들이 제멋대로, 또는 국민을 부추겨 전쟁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독일 철학자, 1724~1804)는『영구평화론』에서 모든 나라가 공화주의(共和主義)로 바뀌고, 그 다음에 국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국제 기구를 마련한다면 영구적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보았다. 공화주의란 국민의 의사가 실제로 정책에 반영되는 체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국민은 전쟁을 바라지 않을 것이므로, 전쟁의 추진력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1856~1924)의 이상주의와 국제연맹 체제에서 어느 정도 실현되었지만, 뒤이은 역사는 그 또한 너무 순진했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하지만 ‘민주평화론’, 즉 민주국가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진 사례는 없으며 모든 나라가 민주화되면 전쟁은 사라질 것이라는 국제정치이론은 1983년 마이클 도일(Michael Doyle,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전 유엔 사무차장, 1948~)이 처음 제시한 이래 꾸준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평화를 위해, 평화에 대비해야 한다



아마도 실제의 전쟁은 이런저런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도 있고, 단순한 우연 때문에 벌어진 전쟁도 있을 것이다. ‘평화를 꿈꾸려면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은 아마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진심으로, 절실하게 ‘평화를 꿈꾸는 일’ 또한 쉽지 않고, 전쟁을 대비하는 일보다 더 앞서서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전쟁으로 많은 아픔을 겪었으며 끝나지 않은 전쟁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저 멀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상황을 바라보며, 단지 ‘내 주식 가격’ 이외의 것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3. 3월, 전쟁이 시작되는, 그래서 평화가 절실한

- 지난 글: 2. 2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과 화합이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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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받았다. 전공은 정치학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글을 쓴다. 동양과 서양, 보수와 진보 등의 대칭이 대립을 넘어 조화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조약의 세계사』, 『벽이 만든 세계사』, 『왕의 밥상』, 『정약용,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을 썼고, 『죽음의 밥상』, 『피에 젖은 땅』, 『공정하다는 착각』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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