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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는다는 것

- 오늘, 키워드 인문학 -

김영옥

2021-07-30

오늘, 키워드 인문학은?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 마음,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키워드들……. 우리는 왜 어쩌다 이들의 움직임과 향방에 대해 시시때때로 관심을 기울이고 촉각을 세우게 되는 걸까요? 각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의 지금을 좌지우지하는 다양한 키워드들에 대해 흥미롭고도 새로운 인문학적 통찰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어떤 탤런트의 안티 에이징이나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스타가 되는 할머니들의 웰 에이징, 혹은 뛰어난 근육과 체력을 자랑하며 젊은이들의 물컹하고 나른한 몸을 부끄럽게 만드는 고령자들의 웰 에이징만이 모범 답안으로 선전·보도되는 현상은 당혹스럽다. 이런 현상은 살다가, 나이 들고, 아프며 죽는 생의 과정 자체를, 공동체 관점에서 함께 추구해야 할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 개인의 자기 계발식 성공 드라마로 부추긴다.



100세 시대에 접어든 초고령화 사회

100세 시대에 접어든 초고령화 사회



웰 에이징(Well-aging)이 많은 이들에게 화두가 되고 있다. ‘까딱 잘못하면 100살까지 살지도 모른다’가 블랙 유머가 되는 시대에 당연한 일이다. 잘 늙기는 잘 살기, 그리고 잘 죽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어떤 과정의 원인과 결과라는 뜻이 아니라 한 과정의 세 국면이라는 뜻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잘 늙고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 삶은 한 사람의 생명이 완전히 멈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되는 것이기에 늙음의 과정과 죽음의 순간, 혹은 죽음의 앞뒤를 세 토막으로 구분 지어 살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잘 늙기가 독립적인 의미와 무게를 지니고 부상하게 된 것은 늙음의 생애 단계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관점과 평가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의료 기술의 진화는 현대인의 생애 단계 이해에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어느 연령대를 노년기의 시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사회문화적 합의를 도출하기조차 꽤 어려워졌다. 그러나 모든 연령대는 질문으로서든 갈등으로서든 나름의 나이 ‘문제’를 갖고 있으며, 나름의 나이 드는 경험과 인식을 요청한다. 그리고 이 경험과 인식은 사회문화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나이/나이 듦의 문제’는 전문가들만이 답할 수 있는 분석의 대상도 아니며,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사적 문제도 아닌 것이다.


어떤 게 잘 살고, 잘 늙고, 잘 죽는 것인지에 대해 규범적인 모델을 찾기에 앞서, 사람들은 각자의 사회문화적·경제적 자원을 바탕으로 어떤 ‘일상’을 사는지, 그 일상 속에서 어떤 감각으로 나이 들고, 죽음을 경험하는지 다양하게 듣고 참조하는 게 더 윤리적이다. 65세에도 하이힐을 신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으며, 머리채 잡고 격하게 싸우는 장면을 찍는다는 어떤 탤런트의 안티 에이징이나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스타가 되는 할머니들의 웰 에이징, 혹은 뛰어난 근육과 체력을 자랑하며 젊은이들의 물컹하고 나른한 몸을 부끄럽게 만드는 고령자들의 웰 에이징만이 모범 답안으로 선전·보도되는 현상은 당혹스럽다. 이런 현상은 살다가, 나이 들고, 아프며 죽는 생의 과정 자체를, 공동체 관점에서 함께 추구해야 할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 개인의 자기 계발식 성공 드라마로 부추긴다.


이런 일방적이고 편협한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뜻에서 나는 두 개의 장면을 소개하려 한다. 하나는 마포구의 한 종합사회복지관 노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들이 들려주는 나이 듦과 죽음과 삶의 이야기다. 또 다른 하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한 철학가의 기록이다. 이 이야기들은 세간에 떠도는 ‘안티 에이징’으로서의 ‘웰 에이징’과 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잘 늙고 잘 죽는 것 그리고 잘 살아낸 삶: 어느 종합사회복지관의 장면



잘 늙고 잘 죽는 것 그리고 잘 살아낸 삶

잘 늙고 잘 죽는 것 그리고 잘 살아낸 삶



우리는 모두 일곱 명이었다. 내가 예순넷,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리곤 예순일곱, 예순여덟이 각각 하나, 일흔둘이 둘, 일흔여섯이 다시 둘. ‘인생 2막 나이 듦 교실’을 진행 중이었다. 살아온 생과 살아낼 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매주 한 번씩 만나온 게 벌써 여덟 번째. 일일이 묻지 않았건만, 이제 우리는 각자의 살아온 내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번엔 잘 늙다가 잘 죽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차례. 서로 얼굴 표정을 살필 수 있도록 우리는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았다.


“죽음 이후엔 어디로 가나요?” 나의 질문에 일흔여섯인 이** 님이 장난스럽게 “글쎄요, 김 선생님이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씀하셔서, “아이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우주로 가지 않을까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에 예순일곱인 최** 님이 “왔던 곳으로 가는 거죠.”라고 말했고, 일흔둘인 장** 님은 “가봤어야 알지.”라고 중얼거리셨다. 그때 예순여덟 박** 님이 “나는 갔다 왔잖아요.”라며 자신 있게 말문을 열었다. 몇 년 전 두 번째로 뇌출혈을 겪으셨던 분이다.


“갔다 와 보니 모든 이들이 고맙더라고요. 깨어나서 다시 말할 수 있자마자 친구들이며 친척들이며 떠오르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전화해서 고맙다고 말했어요. 아니,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무에 그리 어렵다고 사랑한다, 고맙다 말을 못 하고 살았는지, 정신 들자마자 그게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끌어안고 살지 말고 다 내주며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간절하더군요.”


“끌어안고 살지 말고 다 내주며 살아야지”라는 말을 할 때, 그는 두 팔을 안으로 끌어모았다가 시원스레 바깥쪽으로 내뻗었다. 다른 분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저마다의 말을 보탰다.


“근데, 그 사랑한다는 말을 쑥스러워서 어떻게 해?”

“어떨 때는 마음이 참해져서 가슴 위로 뜨거운 게 훅 올라오기도 해요. 근데 그게 순간이에요.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의심이 든다니까…….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전에…….”

“그니까, 사랑까지는 아니고 그냥 고맙다는 말은 하고 살자는 거죠.”

“그래, 고맙지! 이때껏 나랑 놀아주니까 고맙지.”

“가슴이 훅 뜨거워졌다가도 곧 의심이 들어서 뒤로 물러서게 되는 거, 그거 나도 알 것 같아.”


그러자 죽음의 문지방을 넘어갔다 돌아온 박** 님이 다시 말을 꺼낸다.


“그리고 또 내가 갔다 와서 한 게 뭔지 아세요? 내가 친목회 반장이라서 내 통장에 친목 회원들 돈이 다 들어있거든요. 그거 죄다 찾아서 돌려줬어요. 생각해 봐요. 내가 깨어나지 못했으면 그이들은 그 돈 다 떼였을 거잖아요. 그래서 깨달았어요. 늙으면 함께 여행이든 놀러든 가고 싶을 때 그냥 한꺼번에 돈 모아서 가야지, 적금 붓기, 뭐 이런 건 하면 안 된다는 걸요.” 그러자 다른 다섯 분이 “어머, 그러네, 맞네.” 맞장구를 치셨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확인한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건지, 죽음 이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께름칙한 것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 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역시 남아 있는 사람과의 관계다. 살면서 충분히 사랑한다, 고맙다 마음을 전하지 않은 게 가장 찜찜하게 남는다. 그리고 길 떠날 때는 계산도 정갈하게 마치고 싶다. 무엇이든 깨끗이 청산되지 않은 게 있으면, 그게 친목 회원들에게 미처 돌려주지 못한 돈이라도, 관에서조차 몸을 뒤척일 것 같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잘 죽기에 대한 이야기는 거듭해서 잘 늙기로, 잘 늙기는 또 살아온 이야기로 되감아진다. 스물다섯에 혼인을 하고 스물일곱에 남편이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평생 남편 병시중에다 아이 둘의 양육을 책임졌던 서** 님은 “그땐 세월이 그렇게 더디 가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야속하다.”라고 하신다. 일생을 도둑맞고 이제 일흔둘이 된 그의 슬픔에 다른 분들도 “그렇지, 슬프지”라며 자신의 슬픔과 쓸쓸함을 얹는다.


그런데 이 쓸쓸함에 맞서기라도 하듯 일흔여섯의 이** 님이 “난 외롭지 않아요. 뭐가 외로워요? 재밌어요.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날마다 재밌어요.”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남편과 사별한 그는 혼자 산다. 그는 여덟 살에 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려고 남의 집에 가서 열세 살까지 일했고, 스물 몇에 “일용직 남자와 어쩔 수 없이 혼인을 해서 평생 42번 이사를 했어요.”라고 했다. ‘그리 재밌으시다니, 좀 나누자’라고 청하는 내게 그는 “친구 만나 점심 먹고, 소주 한 잔 마신 다음, 노래방 가서 딱 1시간 노래하고 집에 오는 재미”를 들려준다. 일기를 쓴다는 그는 언제나 공책을 들고 와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꼬박꼬박 적는다. “재밌네, 공부가 재밌네!” 복지관을 나서면서 늘 그가 하는 말이다. 본인도 혼자 살지만, 복지관을 도와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과 밑반찬을 배달하는 일도 그는 “재밌다.”1)

1) 여기 인용한 종합사회복지관 프로그램 참여자분들의 성명은 실명이 아닙니다. (편집자주)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때 ‘세월’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나이에 이르면 ‘쓸쓸함’ 역시 그리 어색하지 않은 정조(情調)다. 명랑함이나 즐거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죽음’을 끌어안고 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절대적인 미지에 속하기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절대적 미지의 세계로서 죽음은 또한 영원한 신비의 세계다.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은 유한한 존재가 절대적 미지, 영원한 신비를 마주하며 품을 수밖에 없는 경외감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잘 늙고 잘 죽는 것 그리고 잘 살아낸 삶: 이른 죽음을 맞이한 한 철학가의 기록



김진영 철학자(좌)의 저서 『아침의 피아노』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한겨레신문, YES24)/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철학자(좌)의 저서 『아침의 피아노』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한겨레신문, YES24)



일정한 나이가 되면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시간을 산다. 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사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의 기운에 따라 오늘을 충일하게 잘 사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이 현명함은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의식과 습관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범인(凡人)의 역량을 초월하는 일인 것이다. 65세에 암 판정을 받은 김진영 철학가는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2)라고 말한다.

2)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2018, 한겨레출판, 17쪽.


그러나 존경하는 이들의 생몰 기록을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100세 시대에 60대의 죽음은 일반 상식을 벗어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억울함이 아닌 ‘의연한’ 태도로 맞아들이기 위해 그는 비교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


“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 안에는 모든 것들이 충만하다. 눈물도 가득하고 사랑도 가득하다. 왜 생 안에 가득한 축복과 자유들을 다 쓰지 못했던가.”


“늘 듣던 말의 새로움: ‘날마다 오늘이 첫날이고 마지막 날이야.’”


“아침. 다시 다가온 하루. 또 힘든 일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다시 도래한 하루는 얼마나 숭고한가. 오늘 하루를 정중하게 환대하기.”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암 판정을 받고 13개월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명상이 된 마음이고 생각이다. 잘 늙기도 전에 잘 죽어야 하는 지상 최대의 과제를 떠안은 그의 고뇌와 ‘간절한’ 마음에 나도 물든다. 그는 13개월 동안 잘 살고, 잘 늙고, 잘 죽는 것을 동시적으로 해냈다. 삶은 여러 겹의 나이 듦과 죽음을 품고 날마다 새롭게 도래하는 ‘오늘’이다. 그가 남긴 삶의 메시지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잊지 않는 한 매번 펼쳐지는 ‘오늘’의 향연. 우리는 이 향연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웰 에이징’을 위한 고민을



평생 ‘지적 자유인’의 삶을 살고자 노력한 그의 ‘잘 죽기’는 다양한 철학가들의 소환과 함께 진행되었다. 그에게는 복지관의 프로그램이 필요 없다. 서재가 있고 지적 자산을 공유하는 지인들이 있다. 그러나 복지관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경우, 재미와 의미가 있는 ‘노후’는 복지관의 잘 짜인 프로그램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그들에게 복지관은 일생을 되새김질하며 나이 듦을 ‘자기’의 울타리를 넘어 객관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초고령화 사회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웰 에이징’을 위해 어떤 공동체적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하는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사회다. 다면적·교차적 숙고가 필요하다.



[오늘, 키워드 인문학] 잘 늙는다는 것

- 지난 글: [오늘, 키워드 인문학] 함께 바라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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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독일 RWTH Aachen 대학에서 ‘발터 벤야민의 카프카 읽기’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또 하나의 문화>와 <인권연구소 창>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문화예술 전반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실천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왔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노년과 질병, 아픈 몸과 돌봄 등을 여성주의 인권 관점에서 담론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이미지 페미니즘』, 『노년은 아름다워』, 『밀양을 살다』(공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공존을 위한 다문화』(공저), 『발터 벤야민: 모더니티와 도시』(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공역), 『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공역), 『섹슈얼리티와 공간』(공역),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 『행복의 공식,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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