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뛰어난 과학자였던 그는 위험한 실험을 잘 수행하기 위해 기계 팔을 자신의 몸에 부착시켜 스스로 사이보그가 된다. 그런데 AI가 실험 도중 일어난 사고로 폭주하면서 그의 두뇌까지 지배하게 된다. 기계 팔의 AI가 실험이 성공할 때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기계 팔의 AI에 지배당하는 과학자는 실험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없애버리려고 하면서 결국 닥터 옥토퍼스라는 악당이 되고 만다.
『타임머신』의 충격적인 인류 미래상
영국의 SF 작가 H.G.웰스와 그의 대표작 『타임머신』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SF 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인 영국 작가 H. G. 웰스. 그의 대표작으로 흔히 『타임머신』, 『우주 전쟁』, 『투명 인간』 세 편을 꼽는다. 그 중에서 『타임머신』은 시간 여행 장치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주제는 시간 여행보다 인류의 미래 모습에 방점이 찍혀 있다.
주인공이 80만 년 뒤의 아득한 미래에서 만난 인간은 엘로이와 몰록이라는 두 종족으로 나뉘어있다. 엘로이족은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용모를 지닌 천진난만한 사람들이지만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오로지 놀고먹기만 하는 삶을 산다. 반면에 몰록족은 지하에서 살고 있는데 인간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늘 노동에만 종사한다. 알고 보니 엘로이족의 무위도식이 가능한 것은 몰록족이 의식주 모든 것을 챙겨 주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까지 가혹하게 노동 착취를 당하던 19세기 영국 사회를 본 웰스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계급의 미래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나온다. 몰록족은 사실 엘로이족을 사육하고 있었던 것이어서, 때가 되면 한 번씩 엘로이들을 잡아먹는다. 이런 반전을 알고 작품을 다시 보면, 엘로이는 귀여운 애완동물이나 다름없이 퇴화한 모습이다. 반면에 몰록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지능이 높은 육식동물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E.T.〉의 외계인은 미래의 인류 모습?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어 1982년에 개봉한 영화 〈E.T.〉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SF 영화 역사상 외계인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던 〈E.T.〉는 주인공 ‘ET’의 독특한 외모로도 인기를 끌었다. 커다란 머리와 눈, 근육이라곤 없어 보이는 가는 팔, 비만형인 땅딸막한 체구 등등. 그런데 생물학자 중에는 인류가 미래에 진화하면 이와 비슷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갈수록 정보가 넘쳐나서 생각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에 두뇌가 점점 커져서 머리도 커진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사람이 힘을 쓸 일이 줄어들어 근육은 퇴화한다. 평균적인 영양 상태는 좋아지는데 다들 운동 부족이 되어 체형이 비만형으로 바뀐다. 이런 추세들이 쌓이면 결국 인간은 미래에 ET와 비슷한 외모를 지닐 것이라는 얘기다.
바로 이런 미래 인류의 모습이 그대로 등장하는 작품이 장편 애니메이션 〈월-E〉이다.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우주로 피난을 간 인류는 하나같이 비만해서 제 발로 걷기조차 못한다. 다들 1인용 비행 의자에만 앉아 지내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손가락으로 터치스크린만 조작하면 해결된다. 3D에 해당하는 일은 모두 로봇이 대신해준다.
이야기 막바지에 인간들은 비행 의자가 작동 오류를 일으키면서 땅바닥에 떨어지는데, 그때 자기 발로 일어서면서 스스로 놀라는 장면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해 보인다.
생물적 진화 대신 사이보그 인류가 탄생할까
인류의 진화 과정
위에서 언급한 인류의 미래상은 다 생체적 변화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인간이 수백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하여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생 인류 종으로 진화했듯이, 미래에는 또 어떤 생물학적 진화를 겪을 것인지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물학적 진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류가 변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숱한 SF에서 묘사해오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여 사이보그가 되는 것이다.
사이보그가 된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로보캅〉과 〈공각기동대〉를 들 수 있다. 경찰이었던 〈로보캅〉의 주인공은 악당들과 대결하다가 신체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되어 버린 채 사실상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의 두뇌만은 온전히 남았기에 과학자들은 그에게 기계 몸체를 새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부활한 주인공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새로운 삶을 산다.
1970년대에 제작된 〈6백만 불의 사나이1, 2〉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아재 세대들에게 익숙한 미드 〈6백만 불의 사나이〉 역시 사이보그가 주인공이다.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은 우주 비행사가 로봇 팔과 다리, 기계 눈을 달고는 비밀 요원으로서 새롭게 숨은 영웅의 길을 간다.
〈로보캅〉이나 〈6백만 불의 사나이〉가 신체 일부를 잃어버려 불가피하게 사이보그가 되는 주인공들을 다루었다면, 그 이후의 SF는 멀쩡한 신체를 개조하여 사이보그가 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공각기동대〉이다.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 인간, 사이버스페이스로 가다
신체를 개조해서 사이보그가 되는 사람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사이보그 인간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바로 사이버스페이스 접속 유무이다. 〈로보캅〉이나 〈6백만 불의 사나이〉는 개인으로 보면 월등한 신체 능력을 지니기는 했지만,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을 써야 한다. 즉 언어로 소통하거나 눈으로 활자나 시각 정보를 봐야 하는 것. 사실 〈로보캅〉은 디지털 방식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 〈로보캅〉 1편이 나온 1987년은 아직 ‘사이보그 + 사이버스페이스 접속’이라는 개념이 영상물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전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 자체는 이미 1982년 작 〈트론〉에서 잘 묘사되지만, 여기엔 사이보그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컴퓨터와 합체한 신체를 지닌 사이보그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지닐 수 있는지 그 무한한 가능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 바로 1995년 작 〈공각기동대〉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근미래 사회에서는 신체가 멀쩡한 사람들도 스스로 사이보그 시술을 받는데, 더 나아가서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의 경우 마음대로 사이버스페이스를 넘나들며 그때그때 원하는 몸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쯤 되면 사이보그가 된 호모 사피엔스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류의 탄생인 것이다. 즉 〈공각기동대〉는 사이보그의 차원을 넘어 현생 인류와는 완전히 다른 신인류의 탄생을 전망하고 있다. 그 실체는 바로 인간도 아니고 AI도 아닌, 그 둘이 융합한 ‘포스트휴먼’이다.
기계의 지배, ‘닥터 옥토퍼스’가 주는 경고
인간이 AI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악당이 되는 영화 〈스파이더맨 2〉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2004년 영화 〈스파이더맨 2〉에 등장하는 닥터 옥토퍼스는 AI와 융합한 사이보그 인간이 자칫 빠져들 수 있는 암울한 가능성을 잘 묘사한 캐릭터이다. 원래 뛰어난 과학자였던 그는 위험한 실험을 잘 수행하기 위해 기계 팔을 자신의 몸에 부착시켜 스스로 사이보그가 된다. 그런데 기계 팔을 통제하는 AI가 실험 도중 일어난 사고로 폭주하면서 그의 두뇌까지 지배하게 된다. 기계 팔에 부착된 AI는 실험을 완수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 작동하도록 설정되어 있는데, 실험이 실패로 끝나자 성공할 때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기계 팔의 AI에 지배당하는 과학자는 실험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없애버리려고 하면서 결국 닥터 옥토퍼스라는 악당이 되고 만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혜택을 마음껏 누리게 된 현대 사회지만, 동시에 그런 환경에서 우리 인간의 생활 습관이나 생리 역시 변화하는 시대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간이 과학 기술을 만들고 이제 그 과학 기술이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 일상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없이는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F에서는 이러한 컴퓨터들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와서 신체와 융합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물론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크게 보면 대세는 그런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과연 그런 때가 와도 우리는 고유의 인간성을 잘 고수할 수 있을까?
‘미세먼지’, ‘전자파’…… 생물학적 진화의 못다 한 이야기
이제 SF가 아닌 현실을 돌아보자. 이 글에서 인류의 미래상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했다. 하나는 생물학적 진화의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와 결합하여 사이보그가 되는 방향이다.
생물적 진화의 가능성 중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들이 있다. 바로 환경 변화에 따른 변이이다. 먼저 우리 몸에 지금도 끊임없이 축적되고 있는 미세 먼지나 미세 플라스틱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이 만약 생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우리 유전자에 영향을 준다면 돌연변이가 탄생할 수도 있고, 그 변이가 환경에 더 잘 적응한다면 호모 사피엔스 다음의 진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전자파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처럼 많은 전자파를 일상적으로 쬐면서 살게 된 것은 수십만 년의 역사 중에서 불과 최근 50여 년 정도이다. 21세기 세대들은 태어날 때부터 전자파에 갇혀 산다. 스마트폰, 컴퓨터, TV, 그밖에 집 안팎에 무수히 깔려 있는 각종 전기·전자 장치들. 아직까지는 이런 전자파들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마 2, 3세대는 지나야 윤곽이 드러날 것인데,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생물학적 변이의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유전 공학이 있다. 1997년 영화 〈가타카〉에서 잘 표현한 ‘유전자 편집 아기’ 기술은 이미 SF가 아닌 현실이다. 2018년에 중국에서 세계 최초의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태어나자 전 세계에서 비난이 쏟아졌고 중국 당국도 그 과학자를 구금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 기술은 언젠가 허용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유전공학에 의한 새로운 진화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 윤리적 상상력의 ‘특이점’이 핵심이다
스웨덴 교통카드 칩 (이미지 출처: KBS 뉴스)
사이보그 분야 역시 착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의족이나 의수의 경우 제한된 영역이나마 타고난 신체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들이 이미 등장했다. 불구자가 아닌 신체가 멀쩡한 사람이 몸에 반도체 칩을 심어 넣는 일도 이미 1998년에 영국 레딩 대학의 케빈 워릭 교수를 시작으로 지금은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의 한 외신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손등에 교통카드 칩을 주사해 넣은 사람이 4,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적인 발명가이자 ‘특이점(Singularity)’ 이론의 옹호자로 유명한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면 인간은 컴퓨터와 결합하여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공각기동대〉가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섣부른 것이라며 비판도 많지만, 결국 인간은 언젠가는 이렇게 컴퓨터와 결합된 사이보그의 길로 갈 가능성이 꽤 크다. 흔히 말하는 포스트휴먼, 즉 신인류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바로 사이보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숱한 SF를 통해 어떤 성찰을 해야 할까? 그 답은 앞에서 소개한 ‘닥터 옥토퍼스’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에 사로잡혀 휴머니즘을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을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AI와 결합한 신인류에게 걸맞을 휴머니즘이란 어떤 것일지도 모색해야 한다.
21세기의 SF는 과학적 상상력 못지않게 윤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포스트휴먼에게는 그에 맞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패러다임이 있어야 한다. 그 새로운 휴머니즘이란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설거나 두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인류 문명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려면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답이 없다. 반성해 보자. 우리 20세기 세대들은 지금 21세기 세대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있는가?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 빈부 격차가 가속되는 사회 체제,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마구 유통되는 가짜 뉴스 같은 쓰레기 데이터 등등.
성찰이 없었던 과학 기술의 시대였던 20세기에 SF는 꾸준히 그 어두운 면을 지적해 왔다. 이제 성찰하는 과학 기술의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SF의 윤리적 상상력이 더더욱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 SF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미래상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고찰해 보자.
SF 평론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30여 년째 SF 및 교양 과학 전문 기획번역가, 칼럼니스트, 강사로 활동해왔다. 장르문학 전문잡지 〈판타스틱〉의 창간 편집장, SF전문출판 〈오멜라스〉 대표, 한국SF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금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로서 근현대 한국의 SF 및 과학 기술 문화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는 활동도 병행한다. 지은 책으로 『미래에서 온 외계인 보고서』,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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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서 전망한 인간 진화의 두 가지 시나리오
- 장르 문화 속 인문 찾기 - 생물학적 진화 혹은 사이보그 그리고 새로운 휴머니즘 -
박상준
2021-06-30
원래 뛰어난 과학자였던 그는 위험한 실험을 잘 수행하기 위해 기계 팔을 자신의 몸에 부착시켜 스스로 사이보그가 된다. 그런데 AI가 실험 도중 일어난 사고로 폭주하면서 그의 두뇌까지 지배하게 된다. 기계 팔의 AI가 실험이 성공할 때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기계 팔의 AI에 지배당하는 과학자는 실험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없애버리려고 하면서 결국 닥터 옥토퍼스라는 악당이 되고 만다.
『타임머신』의 충격적인 인류 미래상
영국의 SF 작가 H.G.웰스와 그의 대표작 『타임머신』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SF 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인 영국 작가 H. G. 웰스. 그의 대표작으로 흔히 『타임머신』, 『우주 전쟁』, 『투명 인간』 세 편을 꼽는다. 그 중에서 『타임머신』은 시간 여행 장치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주제는 시간 여행보다 인류의 미래 모습에 방점이 찍혀 있다.
주인공이 80만 년 뒤의 아득한 미래에서 만난 인간은 엘로이와 몰록이라는 두 종족으로 나뉘어있다. 엘로이족은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용모를 지닌 천진난만한 사람들이지만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오로지 놀고먹기만 하는 삶을 산다. 반면에 몰록족은 지하에서 살고 있는데 인간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늘 노동에만 종사한다. 알고 보니 엘로이족의 무위도식이 가능한 것은 몰록족이 의식주 모든 것을 챙겨 주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까지 가혹하게 노동 착취를 당하던 19세기 영국 사회를 본 웰스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계급의 미래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나온다. 몰록족은 사실 엘로이족을 사육하고 있었던 것이어서, 때가 되면 한 번씩 엘로이들을 잡아먹는다. 이런 반전을 알고 작품을 다시 보면, 엘로이는 귀여운 애완동물이나 다름없이 퇴화한 모습이다. 반면에 몰록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지능이 높은 육식동물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E.T.〉의 외계인은 미래의 인류 모습?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어 1982년에 개봉한 영화 〈E.T.〉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SF 영화 역사상 외계인이 주인공인 작품으로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던 〈E.T.〉는 주인공 ‘ET’의 독특한 외모로도 인기를 끌었다. 커다란 머리와 눈, 근육이라곤 없어 보이는 가는 팔, 비만형인 땅딸막한 체구 등등. 그런데 생물학자 중에는 인류가 미래에 진화하면 이와 비슷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갈수록 정보가 넘쳐나서 생각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에 두뇌가 점점 커져서 머리도 커진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사람이 힘을 쓸 일이 줄어들어 근육은 퇴화한다. 평균적인 영양 상태는 좋아지는데 다들 운동 부족이 되어 체형이 비만형으로 바뀐다. 이런 추세들이 쌓이면 결국 인간은 미래에 ET와 비슷한 외모를 지닐 것이라는 얘기다.
바로 이런 미래 인류의 모습이 그대로 등장하는 작품이 장편 애니메이션 〈월-E〉이다.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우주로 피난을 간 인류는 하나같이 비만해서 제 발로 걷기조차 못한다. 다들 1인용 비행 의자에만 앉아 지내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손가락으로 터치스크린만 조작하면 해결된다. 3D에 해당하는 일은 모두 로봇이 대신해준다.
이야기 막바지에 인간들은 비행 의자가 작동 오류를 일으키면서 땅바닥에 떨어지는데, 그때 자기 발로 일어서면서 스스로 놀라는 장면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해 보인다.
생물적 진화 대신 사이보그 인류가 탄생할까
인류의 진화 과정
위에서 언급한 인류의 미래상은 다 생체적 변화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인간이 수백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하여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생 인류 종으로 진화했듯이, 미래에는 또 어떤 생물학적 진화를 겪을 것인지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물학적 진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류가 변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숱한 SF에서 묘사해오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여 사이보그가 되는 것이다.
사이보그가 된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로보캅〉과 〈공각기동대〉를 들 수 있다. 경찰이었던 〈로보캅〉의 주인공은 악당들과 대결하다가 신체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되어 버린 채 사실상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의 두뇌만은 온전히 남았기에 과학자들은 그에게 기계 몸체를 새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부활한 주인공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새로운 삶을 산다.
1970년대에 제작된 〈6백만 불의 사나이1, 2〉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아재 세대들에게 익숙한 미드 〈6백만 불의 사나이〉 역시 사이보그가 주인공이다.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은 우주 비행사가 로봇 팔과 다리, 기계 눈을 달고는 비밀 요원으로서 새롭게 숨은 영웅의 길을 간다.
〈로보캅〉이나 〈6백만 불의 사나이〉가 신체 일부를 잃어버려 불가피하게 사이보그가 되는 주인공들을 다루었다면, 그 이후의 SF는 멀쩡한 신체를 개조하여 사이보그가 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공각기동대〉이다.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 인간, 사이버스페이스로 가다
신체를 개조해서 사이보그가 되는 사람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사이보그 인간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바로 사이버스페이스 접속 유무이다. 〈로보캅〉이나 〈6백만 불의 사나이〉는 개인으로 보면 월등한 신체 능력을 지니기는 했지만,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을 써야 한다. 즉 언어로 소통하거나 눈으로 활자나 시각 정보를 봐야 하는 것. 사실 〈로보캅〉은 디지털 방식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 〈로보캅〉 1편이 나온 1987년은 아직 ‘사이보그 + 사이버스페이스 접속’이라는 개념이 영상물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전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 자체는 이미 1982년 작 〈트론〉에서 잘 묘사되지만, 여기엔 사이보그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컴퓨터와 합체한 신체를 지닌 사이보그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지닐 수 있는지 그 무한한 가능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 바로 1995년 작 〈공각기동대〉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근미래 사회에서는 신체가 멀쩡한 사람들도 스스로 사이보그 시술을 받는데, 더 나아가서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의 경우 마음대로 사이버스페이스를 넘나들며 그때그때 원하는 몸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쯤 되면 사이보그가 된 호모 사피엔스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류의 탄생인 것이다. 즉 〈공각기동대〉는 사이보그의 차원을 넘어 현생 인류와는 완전히 다른 신인류의 탄생을 전망하고 있다. 그 실체는 바로 인간도 아니고 AI도 아닌, 그 둘이 융합한 ‘포스트휴먼’이다.
기계의 지배, ‘닥터 옥토퍼스’가 주는 경고
인간이 AI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악당이 되는 영화 〈스파이더맨 2〉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2004년 영화 〈스파이더맨 2〉에 등장하는 닥터 옥토퍼스는 AI와 융합한 사이보그 인간이 자칫 빠져들 수 있는 암울한 가능성을 잘 묘사한 캐릭터이다. 원래 뛰어난 과학자였던 그는 위험한 실험을 잘 수행하기 위해 기계 팔을 자신의 몸에 부착시켜 스스로 사이보그가 된다. 그런데 기계 팔을 통제하는 AI가 실험 도중 일어난 사고로 폭주하면서 그의 두뇌까지 지배하게 된다. 기계 팔에 부착된 AI는 실험을 완수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 작동하도록 설정되어 있는데, 실험이 실패로 끝나자 성공할 때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드로 들어간 것이다. 기계 팔의 AI에 지배당하는 과학자는 실험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없애버리려고 하면서 결국 닥터 옥토퍼스라는 악당이 되고 만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혜택을 마음껏 누리게 된 현대 사회지만, 동시에 그런 환경에서 우리 인간의 생활 습관이나 생리 역시 변화하는 시대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간이 과학 기술을 만들고 이제 그 과학 기술이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 일상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없이는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F에서는 이러한 컴퓨터들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와서 신체와 융합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물론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크게 보면 대세는 그런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과연 그런 때가 와도 우리는 고유의 인간성을 잘 고수할 수 있을까?
‘미세먼지’, ‘전자파’…… 생물학적 진화의 못다 한 이야기
이제 SF가 아닌 현실을 돌아보자. 이 글에서 인류의 미래상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했다. 하나는 생물학적 진화의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와 결합하여 사이보그가 되는 방향이다.
생물적 진화의 가능성 중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들이 있다. 바로 환경 변화에 따른 변이이다. 먼저 우리 몸에 지금도 끊임없이 축적되고 있는 미세 먼지나 미세 플라스틱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이 만약 생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우리 유전자에 영향을 준다면 돌연변이가 탄생할 수도 있고, 그 변이가 환경에 더 잘 적응한다면 호모 사피엔스 다음의 진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전자파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처럼 많은 전자파를 일상적으로 쬐면서 살게 된 것은 수십만 년의 역사 중에서 불과 최근 50여 년 정도이다. 21세기 세대들은 태어날 때부터 전자파에 갇혀 산다. 스마트폰, 컴퓨터, TV, 그밖에 집 안팎에 무수히 깔려 있는 각종 전기·전자 장치들. 아직까지는 이런 전자파들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마 2, 3세대는 지나야 윤곽이 드러날 것인데,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생물학적 변이의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유전 공학이 있다. 1997년 영화 〈가타카〉에서 잘 표현한 ‘유전자 편집 아기’ 기술은 이미 SF가 아닌 현실이다. 2018년에 중국에서 세계 최초의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태어나자 전 세계에서 비난이 쏟아졌고 중국 당국도 그 과학자를 구금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 기술은 언젠가 허용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유전공학에 의한 새로운 진화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 윤리적 상상력의 ‘특이점’이 핵심이다
스웨덴 교통카드 칩 (이미지 출처: KBS 뉴스)
사이보그 분야 역시 착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의족이나 의수의 경우 제한된 영역이나마 타고난 신체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들이 이미 등장했다. 불구자가 아닌 신체가 멀쩡한 사람이 몸에 반도체 칩을 심어 넣는 일도 이미 1998년에 영국 레딩 대학의 케빈 워릭 교수를 시작으로 지금은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의 한 외신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손등에 교통카드 칩을 주사해 넣은 사람이 4,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적인 발명가이자 ‘특이점(Singularity)’ 이론의 옹호자로 유명한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면 인간은 컴퓨터와 결합하여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공각기동대〉가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섣부른 것이라며 비판도 많지만, 결국 인간은 언젠가는 이렇게 컴퓨터와 결합된 사이보그의 길로 갈 가능성이 꽤 크다. 흔히 말하는 포스트휴먼, 즉 신인류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바로 사이보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숱한 SF를 통해 어떤 성찰을 해야 할까? 그 답은 앞에서 소개한 ‘닥터 옥토퍼스’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것에 사로잡혀 휴머니즘을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을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AI와 결합한 신인류에게 걸맞을 휴머니즘이란 어떤 것일지도 모색해야 한다.
21세기의 SF는 과학적 상상력 못지않게 윤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포스트휴먼에게는 그에 맞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패러다임이 있어야 한다. 그 새로운 휴머니즘이란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설거나 두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인류 문명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려면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답이 없다. 반성해 보자. 우리 20세기 세대들은 지금 21세기 세대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있는가?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 빈부 격차가 가속되는 사회 체제,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마구 유통되는 가짜 뉴스 같은 쓰레기 데이터 등등.
성찰이 없었던 과학 기술의 시대였던 20세기에 SF는 꾸준히 그 어두운 면을 지적해 왔다. 이제 성찰하는 과학 기술의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SF의 윤리적 상상력이 더더욱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 SF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미래상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고찰해 보자.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SF에서 전망한 인간 진화의 두 가지 시나리오
- 지난 글: [장르문화 속 인문 찾기] 수수께끼는 모든 곳에 있다
SF 평론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30여 년째 SF 및 교양 과학 전문 기획번역가, 칼럼니스트, 강사로 활동해왔다. 장르문학 전문잡지 〈판타스틱〉의 창간 편집장, SF전문출판 〈오멜라스〉 대표, 한국SF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금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로서 근현대 한국의 SF 및 과학 기술 문화사 관련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는 활동도 병행한다. 지은 책으로 『미래에서 온 외계인 보고서』,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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