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역사 서술 속 사건들의 인과 관계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우상(또는 망상)이라 주장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은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역사 사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원인을 잘못짚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례가 많다고 해서, 사건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사건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핑곗거리 찾기에 집착하는 인간들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지난 8회 칼럼 <역사가 교훈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에서 사건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의 보편적인 습성이며, 그것에 집착하면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에 나오는 여우처럼 엉뚱한 핑계를 대는 인지 부조화1)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처럼 엉뚱한 원인을 드는 사례로 필자가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몇 년 전 필자는 도보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곁에 있던 할머니들의 흥미로운 대화를 들었다. 한 할머니가 친구의 아들이 사기죄로 구속된 사실을 전하자 동행인 할머니가 사기꾼이 된 원인을 물었다. 그러자 말을 꺼낸 할머니는 “그놈이 어릴 적부터 사기성이 있었다.”라고 했다. 구체적 사례를 묻자 다시 돌아온 답변은 “그놈이 네 살 때 몇 살이냐 물어보니 다섯 살이라고 사기를 치더라.”는 것이었다. 곁에 있던 필자가 그 말을 듣고 ‘빵 터지는’ 바람에 할머니의 눈총을 받았는데, 누가 들어도 빵 터질 만한 이런 사례에서 인과 관계에 대한 인간의 섣부른 판단을 엿볼 수 있다.
1)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 : 여우가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먹고 싶었지만 높은 곳에 달려 있어서 따먹지 못하자, “저 포도는 틀림없이 시어서 먹을 수가 없을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다. 루쉰의 『아큐정전(阿Q正傳)』에 보이는 주인공 아큐의 ‘정신 승리’와 유사한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 부조화’라고 한다.
역사학도 이와 같이 사건의 원인을 알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따라서 동서양 공히 사건들의 인과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역사 연구 본연의 목적이라 여겨왔다. 서양의 경우 헤로도토스가 『히스토리아』를 서술하면서 저술 목적이 전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함이라 밝힌 점이 그러하고, 동양에서도 사건의 발단을 먼저 서술해 놓고 뒤이어 ‘선시(先是 또는 先時, 이에 앞서)’라는 표현을 써서 사건의 원인부터 되돌아간 후 경과를 서술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히스토리아』에서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아르고스에서 ‘이오’라는 공주가 포함된 여성들을 납치해 이집트로 데려간 것이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 전쟁의 발단이라는 페르시아인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고, 『고려사』에서는 무신정변(고려 의종(毅宗) 24년인 1170년 무신들이 일으킨 정변)이 일어나기 24~26년 전에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불태운 짓(김돈중이 급제한 1144년에서 인종(仁宗)이 승하한 1146년 사이의 일로 추정)이 정변의 원인이라 꼽고 있다.
전근대 역사서에서의 원인, 인정 못 받는 경우 많아
그런데 현대 역사학에서는 이와 같은 전근대 역사서에 보이는 ‘원인’의 상당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김돈중의 천둥벌거숭이 행각이 무신정변의 주된 원인이라 가르치고 배웠지만, 이제는 가십거리로만 소개할 뿐이다. 또한 무신정변의 발발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보현원(普賢院,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곳에 있는 원(院)으로 고려 의종이 못을 만들어 즐기기 위해 자주 찾던 곳,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서 진행된 수박희(手搏戱, 우리나라 전통 무예의 하나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승부를 겨룸) 때 구경하던 종5품 문신 한뢰가 종3품 무신 이소응을 따라가 뺨을 때린 사건 때문이라 설명했지만, 현재는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을 수는 있어도 주된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즉 무신정변은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무신들의 불만이 누적된 데서 일어난 것이므로 언제 일어나도 일어날 일이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과거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세르비아의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을 꼽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단지 도화선이 되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가 서로 편을 갈라 대립하고 있었고 산업혁명의 결과 각국이 공급 과잉을 겪고 있었던 데 있다고 설명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에 대한 시각이 전환된 것은 역사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고 역사가 필연적으로 어딘가 정해진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 19세기와 20세기 전반 역사학 풍토의 영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읽는 역사학 입문서인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에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흥미로운 예시를 들고 있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미지 출처: 알라딘)
“평상시의 음주량 이상을 마시고 파티에서 돌아오고 있던 존스는 거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컴컴한 길모퉁이에서, 나중에 브레이크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차로 로빈슨을 치어 죽였는데, 로빈슨은 마침 그 길모퉁이에 있는 가게에서 담배를 사기 위해 길을 건너던 중이었다. 혼란이 수습된 후 우리는, 예컨대 지방 경찰서 같은 곳에 모여서 그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게 된다. 그것은 운전자가 반쯤 취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형사 소추가 가능할 것이다. 아니면 결함이 있는 브레이크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겨우 1주일 전에 그 차를 정밀 검사한 수리점에 대해 무엇인가 조치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컴컴한 길모퉁이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도로를 관리하는 당국이 문제점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소환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실제적인 문제들을 논의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의 유명 인사―나는 그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겠다―가 방으로 불쑥 들어와서는 우리에게, 만일 그날 밤 담뱃갑에 담배만 있었던들 로빈슨은 그 길을 건너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로빈슨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이 원인을 무시하는 모든 조사는 시간 낭비가 될 것이며, 그런 조사에서 이끌어 낸 어떠한 결론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대단히 유창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기 시작한다. 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E. H. 카, 합리적 원인과 우연적 원인 구별 강조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이 예시를 통해 E. H. 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합리적 원인’과 ‘우연적 원인’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사건(여기서는 교통사고)의 원인은 다양한 경우가 많고(원인의 다양성), 그 다양한 원인 중에는 직접적인 것과 직접적이지 않은 것이 있는데(원인의 등급성), 음주 운전, 브레이크 결함, 컴컴한 길모퉁이 등은 직접적이고 합리적인 원인이고 담배 문제는 직접적이지 않고 우연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색안경을 끼지 않고 E. H. 카의 설명을 따라가면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교통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는 중에 담배 때문에 죽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궤변이기 때문이다. 로빈슨이 컴컴한 길모퉁이를 건너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가능성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카는 그러한 반론을 예상하고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컴컴한 길모퉁이”로 한정해 버렸다. 그래서 필자처럼 ‘역사학 입문’이나 ‘사학 개론’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카의 설명을 토대로 역사에서의 인과 문제를 진지하게(!) 가르치고 학생들도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그런데 카의 위와 같은 예시에 허점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자. 법적으로는 로빈슨의 흡연 습관에 교통사고의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존스의 음주 운전이 상습적이거나, 브레이크 결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운행을 계속하거나, 길모퉁이가 컴컴한 도로 사정이 지속된다면 로빈슨이 사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누군가는 사고를 당할 개연성이 높으므로 음주 운전, 브레이크 결함, 도로 사정 등에 사고의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로빈슨의 입장에서는 그전에 담배를 끊었거나 그날 담배가 남아 있었더라면 바로 그날 그 시간에 담배를 사러 가다가 존스의 차에 치여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2) 즉 사고 원인이 아니라 로빈슨이 무엇을 하다가 죽었는지를 묻는다면 누구든 “담배를 사러 가다 죽었다.”라고 할 것이므로 담배와 로빈슨의 죽음이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2) “바로 그날 그 시간에 … 존스의 차에 죽지는”이란 표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운명론을 믿는 이라면 “로빈슨이 (존스의 차가 아니라도) 그날 죽을 운명이었다.”든가 “로빈슨이 (그날이 아니라도) 존스의 차에 죽을 운명이었다.”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결정론과 자유의지론과 연관되어 있는데, 다음 10회 칼럼에서 다루어 보겠다.
E. H. 카는 위와 같은 예시를 들기 전에,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악티움 해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파스칼(프랑스의 수학자, 1623~1662)의 농담이나, 14세기 오스만튀르크의 바자제트 술탄(이슬람 세계의 통치자)이 통풍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중부 유럽이 초토화됐을 것이라는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의 과장이나 알렉산더 왕이 애완 원숭이에게 물려 죽지 않았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영국의 수상 처칠(1874~1965)의 연설을 언급했다. 즉 당시 많은 역사가와 호사가들이 클레오파트라의 코나, 바자제트의 통풍이나, 알렉산더 왕의 원숭이 같은 ‘우연’이 역사에서 중요한 논점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카는 위와 같은 우연은 로빈슨의 담배처럼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E. H. 카가 역사의 인과 관계에서 우연의 비중을 위와 같이 설명하기 10여 년 전에 카의 주장과는 전혀 반대의 주장이 나온 바 있었다. 지난 8회 칼럼에서 소개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 5장 1절 ‘원인의 개념’에서 나온 예시이다.
우연적 원인을 소홀히 하지 않은 마르크 블로크
마르크 블로크의 책 『역사를 위한 변명』(이미지 출처: 알라딘)
“어떤 사람이 알프스 산속의 오솔길을 걷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발을 헛디뎌 절벽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러한 사고는 수많은 요소에 의해서 일어났다. 주요인으로 중력의 법칙과 오랜 지질학상의 변천에 따른 토지의 기복, 그리고 마을과 여름의 방목장을 연결하는 길 등을 들 수 있다. 만약 천체역학의 법칙이 다르게 작용했거나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그리고 알프스산맥의 구조가 계절에 따른 양 떼의 이동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았더라면 추락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추락 사고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다 발을 헛디뎠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추락 사고에서 발을 헛디뎠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밖의 다른 요인 역시 발을 헛디딘 것과 같은 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발을 헛디뎠다는 사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뚜렷한 특징에 따라 다른 것과 구별된다. 즉 그것이 마지막에 일어났다는 것, 세상의 일반적인 질서 속에서 극히 우발적이고 예외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보편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쉽게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발을 헛디뎠다는 사실은 사건의 결과에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보이며, 우리는 그것만이 그러한 결과를 낳게 한 유일한 원인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카가 제시한 예시에서 로빈슨의 담배, 즉 우연이 중요하지 않다고 동의했던 독자들도 마르크 블로크가 제시한 위 사례에서는 발을 헛디딘 우연한 사건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블로크(1886~1944)의 『역사를 위한 변명』은 1949년에 발간한 유작이고, 카(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의 케임브리지 대학 강연록인 바, 블로크의 명성을 감안하면 카가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카는 왜 블로크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주장만 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르크 블로크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의 선구인 아날학파의 공동 창립자인 반면, E. H. 카는 모더니즘 역사학의 끄트머리로 분류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다. 즉 시기적으로는 블로크가 카보다 선배 격이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오히려 카가 구세대였던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이크 블로크(1886~1944)(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앞서 소개했듯이 E. H. 카는 ‘원인의 등급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마르크 블로크는 마치 훗날 누군가가 그러한 분류를 할 것을 예견이라도 했듯이 “실제로 일종의 정신적인 편의에 지나지 않는 원인의 등급적 분류를 절대시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경고하면서, “현실은 우리에게 동일한 현상을 유발하는 무수히 많은 ‘힘의 선’3)을 보여 주고 있다.그러한 ‘힘의 선’ 가운데 우리가 행하는 선택은 극히 주목할 만한 특징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의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조건’에 대립하는 특별한 원인이 있다는 생각은 매우 자의적이다. … 역사에서 유일한 원인이 있다는 미신은 때때로 책임자를 밝혀내는 일, 따라서 가치 판단의 교활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3) 힘의 선: ‘사건의 원인’ 또는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인 듯하다.
“역사적 사건들의 인과 관계는 망상”이란 주장도
이런 면에서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역사 서술 속 사건들의 인과 관계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우상(또는 망상)이라 주장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더 나아가 역사적 사실은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역사 사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사실 실제 역사서에서 ‘기원의 우상(또는 망상)’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령 동서양 공히 고대의 역사 서술에서는 왕이 돌아갈 조짐으로 천재지변이나 비과학적 현상을 앞에 서술하거나, 왕의 승하(昇遐)에 대한 하늘의 화답으로 천재지변이나 비과학적 현상을 뒤에 서술한 사례가 숱하게 많다. 마르크 블로크는 고대의 역사 서술에서 자연 현상을 왕들의 죽음과 뒤섞어 서술한 것을 고대 역사가들의 무신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했지만, 그것은 고대인들 나름의 소박한 인과 관계 찾기였다. 문제는 그 인과 관계가 과학적으로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인데, 아마도 블로크는 그 점에서 인과 관계 찾기가 아니라 무신경이라 이해한 듯하다.
필자는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으면서 의문을 품었다(이미지 출처: 알라딘)
앞서 소개한 예들은 『삼국사기』 같은 원전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으니 좀 더 흔한 예를 들어 보겠다. 필자는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위인이 어린 시절에서 나쁜 짓을 한 이야기를 소개해 놓고 그것이 그가 훌륭한 사람이 된 계기라고 설명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선한 사람은 모든 것이 선하고, 나쁜 놈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쁘다는 식으로 배웠는데, 교과서 밖의 위인전에서는 이런 사례가 제법 있었으므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 똑같이 도둑질을 했는데 위인은 그게 위인이 된 원인이 되고, 나쁜 놈은 마치 이 글 서두에서 소개한 네 살 때 다섯 살이라고 우긴 것이 사기죄의 원인이 되었다는 할머니의 주장처럼 그게 악인의 본모습이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위인전에서 강조하는 것은 나쁜 짓 자체가 아니라 나쁜 짓의 반성 여부였다. 그런데 다시 따져보자. 위인전의 서술 목적은 일단 그럴 듯하고 일견 바람직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정말로 맞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반성하면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착하고 훌륭한 일만 하는가? 사람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고 때로 실수도 하지 않은가? 따라서 위인전의 위와 같은 역사 서술은 일종의 ‘기원의 망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원인은 탐구 대상, 못 찾는다고 없다고 할 수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로 못 찾는 것이지 원인이 아예 없지는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원인을 잘못짚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례가 많다고 해서, 사건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사건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할머니의 주장을 상기해 보자. 사실 할머니의 해석도 아주 터무니없는 해석은 아니다. 네 살짜리 아이가 나이를 올려 말한 것에서 훗날 사기 행각을 벌일 것이 배태되어 있었다고 말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거짓말하는 버릇이 성장 과정에서 계속되었고 그것을 고치지 않은 것이 결국 사기범이 된 원인이라면 일견 그럴듯하지 않은가? 혹여 성장 과정의 거짓말 버릇이 성장 후의 사기 행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기 행각의 원인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고,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로 못 찾는 것이지 원인이 아예 없지는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기원의 우상’이라는 단어는 마르크 블로크가 쓴 말이며,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이 말을 따라 한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시각은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이 그가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총살당했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은 유작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블로크가 남긴 원고의 마지막 문장이 “한마디로 말해,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사에서의 원인은 가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미루어 보면, 그가 ‘기원의 우상’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적하고자 했던 바는 성급하게 원인 탐구를 가장한 “책임자를 밝혀내는”, 즉 희생양을 꼽는 “가치 판단의 교활한 행태”였을 뿐, 그도 역시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역사학자였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 문제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만 읽으면 매우 쉬워 보이지만, 그 가부를 깊이 따져보면 매우 어려운 논제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문제는 역사에서의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과 관련이 있는데, 이 역시 역사학에서 오랫동안 매우 심도 있게 다루어 온 것이므로 다음 10회 칼럼에서 살펴보겠다.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댓글(1)
이**
2021-06-15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9. 역사 사건의 원인을 정확히 짚을 수 있는가?'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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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역사 사건의 원인을 정확히 짚을 수 있는가?
-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 역사 ‘인과론’ (2)
윤진석
2021-05-18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역사 서술 속 사건들의 인과 관계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우상(또는 망상)이라 주장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은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역사 사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원인을 잘못짚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례가 많다고 해서, 사건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사건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핑곗거리 찾기에 집착하는 인간들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지난 8회 칼럼 <역사가 교훈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에서 사건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의 보편적인 습성이며, 그것에 집착하면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에 나오는 여우처럼 엉뚱한 핑계를 대는 인지 부조화1)를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처럼 엉뚱한 원인을 드는 사례로 필자가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몇 년 전 필자는 도보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곁에 있던 할머니들의 흥미로운 대화를 들었다. 한 할머니가 친구의 아들이 사기죄로 구속된 사실을 전하자 동행인 할머니가 사기꾼이 된 원인을 물었다. 그러자 말을 꺼낸 할머니는 “그놈이 어릴 적부터 사기성이 있었다.”라고 했다. 구체적 사례를 묻자 다시 돌아온 답변은 “그놈이 네 살 때 몇 살이냐 물어보니 다섯 살이라고 사기를 치더라.”는 것이었다. 곁에 있던 필자가 그 말을 듣고 ‘빵 터지는’ 바람에 할머니의 눈총을 받았는데, 누가 들어도 빵 터질 만한 이런 사례에서 인과 관계에 대한 인간의 섣부른 판단을 엿볼 수 있다.
1)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 : 여우가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먹고 싶었지만 높은 곳에 달려 있어서 따먹지 못하자, “저 포도는 틀림없이 시어서 먹을 수가 없을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다. 루쉰의 『아큐정전(阿Q正傳)』에 보이는 주인공 아큐의 ‘정신 승리’와 유사한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 부조화’라고 한다.
역사학도 이와 같이 사건의 원인을 알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따라서 동서양 공히 사건들의 인과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역사 연구 본연의 목적이라 여겨왔다. 서양의 경우 헤로도토스가 『히스토리아』를 서술하면서 저술 목적이 전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함이라 밝힌 점이 그러하고, 동양에서도 사건의 발단을 먼저 서술해 놓고 뒤이어 ‘선시(先是 또는 先時, 이에 앞서)’라는 표현을 써서 사건의 원인부터 되돌아간 후 경과를 서술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히스토리아』에서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아르고스에서 ‘이오’라는 공주가 포함된 여성들을 납치해 이집트로 데려간 것이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 전쟁의 발단이라는 페르시아인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고, 『고려사』에서는 무신정변(고려 의종(毅宗) 24년인 1170년 무신들이 일으킨 정변)이 일어나기 24~26년 전에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불태운 짓(김돈중이 급제한 1144년에서 인종(仁宗)이 승하한 1146년 사이의 일로 추정)이 정변의 원인이라 꼽고 있다.
전근대 역사서에서의 원인, 인정 못 받는 경우 많아
그런데 현대 역사학에서는 이와 같은 전근대 역사서에 보이는 ‘원인’의 상당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김돈중의 천둥벌거숭이 행각이 무신정변의 주된 원인이라 가르치고 배웠지만, 이제는 가십거리로만 소개할 뿐이다. 또한 무신정변의 발발에 대해서도 과거에는 보현원(普賢院,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곳에 있는 원(院)으로 고려 의종이 못을 만들어 즐기기 위해 자주 찾던 곳, 출처: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서 진행된 수박희(手搏戱, 우리나라 전통 무예의 하나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승부를 겨룸) 때 구경하던 종5품 문신 한뢰가 종3품 무신 이소응을 따라가 뺨을 때린 사건 때문이라 설명했지만, 현재는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을 수는 있어도 주된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즉 무신정변은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무신들의 불만이 누적된 데서 일어난 것이므로 언제 일어나도 일어날 일이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과거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세르비아의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을 꼽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단지 도화선이 되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가 서로 편을 갈라 대립하고 있었고 산업혁명의 결과 각국이 공급 과잉을 겪고 있었던 데 있다고 설명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에 대한 시각이 전환된 것은 역사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고 역사가 필연적으로 어딘가 정해진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 19세기와 20세기 전반 역사학 풍토의 영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읽는 역사학 입문서인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에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매우 흥미로운 예시를 들고 있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미지 출처: 알라딘)
“평상시의 음주량 이상을 마시고 파티에서 돌아오고 있던 존스는 거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컴컴한 길모퉁이에서, 나중에 브레이크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차로 로빈슨을 치어 죽였는데, 로빈슨은 마침 그 길모퉁이에 있는 가게에서 담배를 사기 위해 길을 건너던 중이었다. 혼란이 수습된 후 우리는, 예컨대 지방 경찰서 같은 곳에 모여서 그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게 된다. 그것은 운전자가 반쯤 취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형사 소추가 가능할 것이다. 아니면 결함이 있는 브레이크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겨우 1주일 전에 그 차를 정밀 검사한 수리점에 대해 무엇인가 조치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컴컴한 길모퉁이 때문이었는가? ― 그럴 경우 도로를 관리하는 당국이 문제점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소환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실제적인 문제들을 논의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의 유명 인사―나는 그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겠다―가 방으로 불쑥 들어와서는 우리에게, 만일 그날 밤 담뱃갑에 담배만 있었던들 로빈슨은 그 길을 건너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로빈슨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이 원인을 무시하는 모든 조사는 시간 낭비가 될 것이며, 그런 조사에서 이끌어 낸 어떠한 결론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대단히 유창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기 시작한다. 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E. H. 카, 합리적 원인과 우연적 원인 구별 강조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이 예시를 통해 E. H. 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합리적 원인’과 ‘우연적 원인’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사건(여기서는 교통사고)의 원인은 다양한 경우가 많고(원인의 다양성), 그 다양한 원인 중에는 직접적인 것과 직접적이지 않은 것이 있는데(원인의 등급성), 음주 운전, 브레이크 결함, 컴컴한 길모퉁이 등은 직접적이고 합리적인 원인이고 담배 문제는 직접적이지 않고 우연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색안경을 끼지 않고 E. H. 카의 설명을 따라가면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교통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는 중에 담배 때문에 죽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궤변이기 때문이다. 로빈슨이 컴컴한 길모퉁이를 건너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가능성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카는 그러한 반론을 예상하고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컴컴한 길모퉁이”로 한정해 버렸다. 그래서 필자처럼 ‘역사학 입문’이나 ‘사학 개론’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카의 설명을 토대로 역사에서의 인과 문제를 진지하게(!) 가르치고 학생들도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그런데 카의 위와 같은 예시에 허점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자. 법적으로는 로빈슨의 흡연 습관에 교통사고의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존스의 음주 운전이 상습적이거나, 브레이크 결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운행을 계속하거나, 길모퉁이가 컴컴한 도로 사정이 지속된다면 로빈슨이 사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누군가는 사고를 당할 개연성이 높으므로 음주 운전, 브레이크 결함, 도로 사정 등에 사고의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로빈슨의 입장에서는 그전에 담배를 끊었거나 그날 담배가 남아 있었더라면 바로 그날 그 시간에 담배를 사러 가다가 존스의 차에 치여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2) 즉 사고 원인이 아니라 로빈슨이 무엇을 하다가 죽었는지를 묻는다면 누구든 “담배를 사러 가다 죽었다.”라고 할 것이므로 담배와 로빈슨의 죽음이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2) “바로 그날 그 시간에 … 존스의 차에 죽지는”이란 표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운명론을 믿는 이라면 “로빈슨이 (존스의 차가 아니라도) 그날 죽을 운명이었다.”든가 “로빈슨이 (그날이 아니라도) 존스의 차에 죽을 운명이었다.”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결정론과 자유의지론과 연관되어 있는데, 다음 10회 칼럼에서 다루어 보겠다.
E. H. 카는 위와 같은 예시를 들기 전에,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악티움 해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파스칼(프랑스의 수학자, 1623~1662)의 농담이나, 14세기 오스만튀르크의 바자제트 술탄(이슬람 세계의 통치자)이 통풍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중부 유럽이 초토화됐을 것이라는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의 과장이나 알렉산더 왕이 애완 원숭이에게 물려 죽지 않았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영국의 수상 처칠(1874~1965)의 연설을 언급했다. 즉 당시 많은 역사가와 호사가들이 클레오파트라의 코나, 바자제트의 통풍이나, 알렉산더 왕의 원숭이 같은 ‘우연’이 역사에서 중요한 논점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카는 위와 같은 우연은 로빈슨의 담배처럼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E. H. 카가 역사의 인과 관계에서 우연의 비중을 위와 같이 설명하기 10여 년 전에 카의 주장과는 전혀 반대의 주장이 나온 바 있었다. 지난 8회 칼럼에서 소개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 5장 1절 ‘원인의 개념’에서 나온 예시이다.
우연적 원인을 소홀히 하지 않은 마르크 블로크
마르크 블로크의 책 『역사를 위한 변명』(이미지 출처: 알라딘)
“어떤 사람이 알프스 산속의 오솔길을 걷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발을 헛디뎌 절벽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러한 사고는 수많은 요소에 의해서 일어났다. 주요인으로 중력의 법칙과 오랜 지질학상의 변천에 따른 토지의 기복, 그리고 마을과 여름의 방목장을 연결하는 길 등을 들 수 있다. 만약 천체역학의 법칙이 다르게 작용했거나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그리고 알프스산맥의 구조가 계절에 따른 양 떼의 이동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았더라면 추락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추락 사고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다 발을 헛디뎠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추락 사고에서 발을 헛디뎠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밖의 다른 요인 역시 발을 헛디딘 것과 같은 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발을 헛디뎠다는 사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뚜렷한 특징에 따라 다른 것과 구별된다. 즉 그것이 마지막에 일어났다는 것, 세상의 일반적인 질서 속에서 극히 우발적이고 예외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보편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쉽게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발을 헛디뎠다는 사실은 사건의 결과에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보이며, 우리는 그것만이 그러한 결과를 낳게 한 유일한 원인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카가 제시한 예시에서 로빈슨의 담배, 즉 우연이 중요하지 않다고 동의했던 독자들도 마르크 블로크가 제시한 위 사례에서는 발을 헛디딘 우연한 사건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블로크(1886~1944)의 『역사를 위한 변명』은 1949년에 발간한 유작이고, 카(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의 케임브리지 대학 강연록인 바, 블로크의 명성을 감안하면 카가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카는 왜 블로크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주장만 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르크 블로크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의 선구인 아날학파의 공동 창립자인 반면, E. H. 카는 모더니즘 역사학의 끄트머리로 분류할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다. 즉 시기적으로는 블로크가 카보다 선배 격이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오히려 카가 구세대였던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이크 블로크(1886~1944)(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앞서 소개했듯이 E. H. 카는 ‘원인의 등급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마르크 블로크는 마치 훗날 누군가가 그러한 분류를 할 것을 예견이라도 했듯이 “실제로 일종의 정신적인 편의에 지나지 않는 원인의 등급적 분류를 절대시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경고하면서, “현실은 우리에게 동일한 현상을 유발하는 무수히 많은 ‘힘의 선’3)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한 ‘힘의 선’ 가운데 우리가 행하는 선택은 극히 주목할 만한 특징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의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조건’에 대립하는 특별한 원인이 있다는 생각은 매우 자의적이다. … 역사에서 유일한 원인이 있다는 미신은 때때로 책임자를 밝혀내는 일, 따라서 가치 판단의 교활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3) 힘의 선: ‘사건의 원인’ 또는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인 듯하다.
“역사적 사건들의 인과 관계는 망상”이란 주장도
이런 면에서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역사 서술 속 사건들의 인과 관계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우상(또는 망상)이라 주장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더 나아가 역사적 사실은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역사 사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실제 역사서에서 ‘기원의 우상(또는 망상)’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령 동서양 공히 고대의 역사 서술에서는 왕이 돌아갈 조짐으로 천재지변이나 비과학적 현상을 앞에 서술하거나, 왕의 승하(昇遐)에 대한 하늘의 화답으로 천재지변이나 비과학적 현상을 뒤에 서술한 사례가 숱하게 많다. 마르크 블로크는 고대의 역사 서술에서 자연 현상을 왕들의 죽음과 뒤섞어 서술한 것을 고대 역사가들의 무신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했지만, 그것은 고대인들 나름의 소박한 인과 관계 찾기였다. 문제는 그 인과 관계가 과학적으로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인데, 아마도 블로크는 그 점에서 인과 관계 찾기가 아니라 무신경이라 이해한 듯하다.
필자는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으면서 의문을 품었다(이미지 출처: 알라딘)
앞서 소개한 예들은 『삼국사기』 같은 원전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으니 좀 더 흔한 예를 들어 보겠다. 필자는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위인이 어린 시절에서 나쁜 짓을 한 이야기를 소개해 놓고 그것이 그가 훌륭한 사람이 된 계기라고 설명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선한 사람은 모든 것이 선하고, 나쁜 놈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쁘다는 식으로 배웠는데, 교과서 밖의 위인전에서는 이런 사례가 제법 있었으므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 똑같이 도둑질을 했는데 위인은 그게 위인이 된 원인이 되고, 나쁜 놈은 마치 이 글 서두에서 소개한 네 살 때 다섯 살이라고 우긴 것이 사기죄의 원인이 되었다는 할머니의 주장처럼 그게 악인의 본모습이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위인전에서 강조하는 것은 나쁜 짓 자체가 아니라 나쁜 짓의 반성 여부였다. 그런데 다시 따져보자. 위인전의 서술 목적은 일단 그럴 듯하고 일견 바람직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정말로 맞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반성하면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착하고 훌륭한 일만 하는가? 사람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고 때로 실수도 하지 않은가? 따라서 위인전의 위와 같은 역사 서술은 일종의 ‘기원의 망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원인은 탐구 대상, 못 찾는다고 없다고 할 수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로 못 찾는 것이지 원인이 아예 없지는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원인을 잘못짚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례가 많다고 해서, 사건들이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사건들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할머니의 주장을 상기해 보자. 사실 할머니의 해석도 아주 터무니없는 해석은 아니다. 네 살짜리 아이가 나이를 올려 말한 것에서 훗날 사기 행각을 벌일 것이 배태되어 있었다고 말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거짓말하는 버릇이 성장 과정에서 계속되었고 그것을 고치지 않은 것이 결국 사기범이 된 원인이라면 일견 그럴듯하지 않은가? 혹여 성장 과정의 거짓말 버릇이 성장 후의 사기 행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기 행각의 원인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고,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로 못 찾는 것이지 원인이 아예 없지는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기원의 우상’이라는 단어는 마르크 블로크가 쓴 말이며,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이 말을 따라 한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시각은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이 그가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총살당했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은 유작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블로크가 남긴 원고의 마지막 문장이 “한마디로 말해,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사에서의 원인은 가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되어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미루어 보면, 그가 ‘기원의 우상’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적하고자 했던 바는 성급하게 원인 탐구를 가장한 “책임자를 밝혀내는”, 즉 희생양을 꼽는 “가치 판단의 교활한 행태”였을 뿐, 그도 역시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역사학자였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 문제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만 읽으면 매우 쉬워 보이지만, 그 가부를 깊이 따져보면 매우 어려운 논제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문제는 역사에서의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과 관련이 있는데, 이 역시 역사학에서 오랫동안 매우 심도 있게 다루어 온 것이므로 다음 10회 칼럼에서 살펴보겠다.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9. 역사 사건의 원인을 정확히 짚을 수 있는가?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8. 역사가 교훈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댓글(1)
이**
2021-06-15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9. 역사 사건의 원인을 정확히 짚을 수 있는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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