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는 언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가. 그 순간이 머지않아 올 것이며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엎드려 울면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이층이라면, 이층의 내 방 조그만 창문을 열고서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서 거리를 바라보다가 언젠가는 거리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카페에서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나는 카페에서는 원고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주로 카페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여럿 알고 있다.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부러워서다. 나는 카페에서는 원고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이미 써 둔 원고를 읽거나 교정을 보는 것까지는 간신히 가능하지만 이마저 마감을 코앞에 두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내가 완전히 새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은 딱 한 가지뿐이다. 아무런 음악도 존재하지 않을 것. 음악이 없는 곳에서만 나는 쓴다.
이유는 단순하다.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음악이 있는 곳에서는 음악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감을 위해 나는 한 줌의 음악도 없는 곳을 찾아 숨는 일을 반복해 왔다. 가장 취약한 종목은 역시 ‘가요’다. 십 대의 어느 날부터 줄곧, 모국어로 이루어진 노래에 매혹당했다. 그 맨 첫 순간에 있는 이름은 ‘다섯손가락’이다.
내가 처음 들었던 그들의 노래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이었다. 특이점은 원곡이 아니었다는 것.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춘기의 절정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단체 생활이라면 질색할 무렵이었으므로, 이젠 장소조차 떠오르지 않는 여름 캠프에 참석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지루하기만 했던 일정이 끝나는 마지막 밤, 캠프파이어 시간에 (아마도 대학생이었을) 조교 선생님 중 한 명이 그 노래를 불렀다. 그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슬퍼 보이는 오늘 밤에는 아름다운 꿈을 주고파. 깊은 밤에도 잠 못 이루던 내 마음을 그녀에게 주고 싶네. 한 송이는 어떨까 왠지 외로워 보이겠지. 한 다발은 어떨까 왠지 무거워 보일 거야. 시린 그대 눈물 씻어주고픈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이보다 더 정확한 사랑의 고백을 나는 알지 못한다.
사랑에 관해 생각하는 밤이면 떠오르던 물음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다섯손가락 1집의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슬퍼 보이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꿈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그런 자신의 마음이 외로워 보이지도, 무거워 보이지도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사랑에 관해 생각하는 밤이면 그 물음이 오래도록 함께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다섯손가락’은 내 삶 한가운데로 훅 들어왔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다섯손가락 1집의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거실에 놓인 아버지의 전축이 아니라, 나의 작은 워크맨으로 혼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손으로 산 첫 번째 음반이었다. 곧 다섯손가락 2집이 출시되었다. 타이틀 곡인 <사랑할 순 없는지>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누군가 이 못난 나를 사랑할 순 없는지 서글픈 내 몸짓에 가난한 내 영혼까지. 그대 여린 가슴을 놀라게 하긴 싫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였다.
해가 바뀌고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수험생이라고들 했다. 책가방에 교과서는 빼먹어도, 소형 워크맨과 이어폰만은 신체의 일부처럼 지니고 다녔다. 음악을 듣는 동안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87년 그해 봄, 세상은 몹시 어수선했고, 국립 대학과 멀지 않았던 동네 어귀에만 나서도 최루탄 냄새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휴지에 치약을 묻혀 코끝에 대면 최루탄 냄새를 한결 견딜만하다는 비법을 친구들과 나누었다. 수학 시간에도 영어 시간에도,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앉아 연습장에 나도 모를 글들을 끼적였다.
어느 종례 시간, 생전 시국에 관한 이야기라곤 안 하던 젊은 담임선생님이 흥분에 겨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너희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꼭 알아야 할 것 같아 알려주는 거다.” 봄 내내 기다리던 다섯손가락 3집이 곧 출시되었다. 대기 중의 최루탄 냄새가 좀 가신 것도 같았다. <이층에서 본 거리>가 거기 있었다.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
길거리 약국에서 담배를 팔 듯
세상은 평화롭게 갈 길을 가고
분주히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온종일 구경하는 아이도 있고
시간이 숨을 쉬는 그 길가에는
낯설은 그리움이 나를 감싸네
이층에서 본 거리
평온한 거리였어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해묵은 습관처럼 아침이 오고
누군가 올 것 같은 아침이 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유로
하루는 나른하게 흘러만 가고
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가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도 있고
안개가 피어나는 그 길가에는
해묵은 그리움이 다시 떠오면
이층에서 본 거리 평온한 날이었어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이층에서 본 거리> 중에서, 이두헌 작사/작곡)
‘구경만 하는 아이’와 ‘세상을 사는 어른’의 거리
열여섯 살의 나는 그 지상과 이층 사이의 단차(段差)에 대해 간절히 알고 싶었다.
처음으로, 화자의 위치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직접 거리를 걷는 것이 아니라 이층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감각이었다. 땅이 아니지만, 더 높은 고층이 아니라 다만 이층이었다. 그 사실이 의미심장했다. 거기서 보는 세상은 ‘조금’ 다를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일지 몰랐으나 나에게는 그 ‘조금’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가왔다. 열여섯 살의 나는 그 지상과 이층 사이의 단차(段差)에 대해 간절히 알고 싶었다. 말하고 싶었다. 쓰고 싶었다.
‘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는 언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가. 그 순간이 머지않아 올 것이며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엎드려 울면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이층이라면, 이층의 내 방 조그만 창문을 열고서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서 거리를 바라보다가 언젠가는 거리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그 정도의 희망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는 일이 어쩌면 2층에서 거리를 보는 일과 비슷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 노래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들른 강원도의 한 작은 읍내에서 ‘2층에서 본 거리’라고 적힌 간판을 보았다. 소박한 건물 2층의 커피숍이었다. 정말로, 창문이 거리 쪽으로 나 있었다. 거기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궁금했지만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집으로 오는 길,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깨달았다. ‘이층에서 본 거리 평온한 날이었어,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이 문장들은 과거형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유는 없었다. 열여섯 살은 아주 오래전에 지났지만 그런 날은 언제고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소설가
2002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장편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중편 소설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짧은 소설 『말하자면 좋은 사람』 등을 출간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이미지 출처: 창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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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은 아주 오래전에 지났지만
- 당신은 어떤‘가요’ - 처음 화자의 위치를 떠올린 노래, ‘다섯손가락’의 <이층에서 본 거리>
정이현
2021-04-30
'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는 언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가. 그 순간이 머지않아 올 것이며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엎드려 울면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이층이라면, 이층의 내 방 조그만 창문을 열고서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서 거리를 바라보다가 언젠가는 거리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카페에서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나는 카페에서는 원고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주로 카페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여럿 알고 있다.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부러워서다. 나는 카페에서는 원고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이미 써 둔 원고를 읽거나 교정을 보는 것까지는 간신히 가능하지만 이마저 마감을 코앞에 두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내가 완전히 새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은 딱 한 가지뿐이다. 아무런 음악도 존재하지 않을 것. 음악이 없는 곳에서만 나는 쓴다.
이유는 단순하다.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음악이 있는 곳에서는 음악 외에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감을 위해 나는 한 줌의 음악도 없는 곳을 찾아 숨는 일을 반복해 왔다. 가장 취약한 종목은 역시 ‘가요’다. 십 대의 어느 날부터 줄곧, 모국어로 이루어진 노래에 매혹당했다. 그 맨 첫 순간에 있는 이름은 ‘다섯손가락’이다.
내가 처음 들었던 그들의 노래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이었다. 특이점은 원곡이 아니었다는 것.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춘기의 절정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단체 생활이라면 질색할 무렵이었으므로, 이젠 장소조차 떠오르지 않는 여름 캠프에 참석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지루하기만 했던 일정이 끝나는 마지막 밤, 캠프파이어 시간에 (아마도 대학생이었을) 조교 선생님 중 한 명이 그 노래를 불렀다. 그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슬퍼 보이는 오늘 밤에는 아름다운 꿈을 주고파. 깊은 밤에도 잠 못 이루던 내 마음을 그녀에게 주고 싶네. 한 송이는 어떨까 왠지 외로워 보이겠지. 한 다발은 어떨까 왠지 무거워 보일 거야. 시린 그대 눈물 씻어주고픈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이보다 더 정확한 사랑의 고백을 나는 알지 못한다.
사랑에 관해 생각하는 밤이면 떠오르던 물음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다섯손가락 1집의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슬퍼 보이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꿈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그런 자신의 마음이 외로워 보이지도, 무거워 보이지도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사랑에 관해 생각하는 밤이면 그 물음이 오래도록 함께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다섯손가락’은 내 삶 한가운데로 훅 들어왔다.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다섯손가락 1집의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거실에 놓인 아버지의 전축이 아니라, 나의 작은 워크맨으로 혼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손으로 산 첫 번째 음반이었다. 곧 다섯손가락 2집이 출시되었다. 타이틀 곡인 <사랑할 순 없는지>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누군가 이 못난 나를 사랑할 순 없는지 서글픈 내 몸짓에 가난한 내 영혼까지. 그대 여린 가슴을 놀라게 하긴 싫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였다.
해가 바뀌고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수험생이라고들 했다. 책가방에 교과서는 빼먹어도, 소형 워크맨과 이어폰만은 신체의 일부처럼 지니고 다녔다. 음악을 듣는 동안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1987년 그해 봄, 세상은 몹시 어수선했고, 국립 대학과 멀지 않았던 동네 어귀에만 나서도 최루탄 냄새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휴지에 치약을 묻혀 코끝에 대면 최루탄 냄새를 한결 견딜만하다는 비법을 친구들과 나누었다. 수학 시간에도 영어 시간에도,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앉아 연습장에 나도 모를 글들을 끼적였다.
어느 종례 시간, 생전 시국에 관한 이야기라곤 안 하던 젊은 담임선생님이 흥분에 겨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되었다. 너희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꼭 알아야 할 것 같아 알려주는 거다.” 봄 내내 기다리던 다섯손가락 3집이 곧 출시되었다. 대기 중의 최루탄 냄새가 좀 가신 것도 같았다. <이층에서 본 거리>가 거기 있었다.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
길거리 약국에서 담배를 팔 듯
세상은 평화롭게 갈 길을 가고
분주히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온종일 구경하는 아이도 있고
시간이 숨을 쉬는 그 길가에는
낯설은 그리움이 나를 감싸네
이층에서 본 거리
평온한 거리였어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해묵은 습관처럼 아침이 오고
누군가 올 것 같은 아침이 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유로
하루는 나른하게 흘러만 가고
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가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도 있고
안개가 피어나는 그 길가에는
해묵은 그리움이 다시 떠오면
이층에서 본 거리 평온한 날이었어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이층에서 본 거리> 중에서, 이두헌 작사/작곡)
‘구경만 하는 아이’와 ‘세상을 사는 어른’의 거리
열여섯 살의 나는 그 지상과 이층 사이의 단차(段差)에 대해 간절히 알고 싶었다.
처음으로, 화자의 위치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직접 거리를 걷는 것이 아니라 이층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감각이었다. 땅이 아니지만, 더 높은 고층이 아니라 다만 이층이었다. 그 사실이 의미심장했다. 거기서 보는 세상은 ‘조금’ 다를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일지 몰랐으나 나에게는 그 ‘조금’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가왔다. 열여섯 살의 나는 그 지상과 이층 사이의 단차(段差)에 대해 간절히 알고 싶었다. 말하고 싶었다. 쓰고 싶었다.
‘구경만 하고 있는 아이’는 언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가. 그 순간이 머지않아 올 것이며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눈물이 나왔다. 엎드려 울면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이층이라면, 이층의 내 방 조그만 창문을 열고서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서 거리를 바라보다가 언젠가는 거리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그 정도의 희망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는 일이 어쩌면 2층에서 거리를 보는 일과 비슷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 노래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들른 강원도의 한 작은 읍내에서 ‘2층에서 본 거리’라고 적힌 간판을 보았다. 소박한 건물 2층의 커피숍이었다. 정말로, 창문이 거리 쪽으로 나 있었다. 거기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궁금했지만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집으로 오는 길,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깨달았다. ‘이층에서 본 거리 평온한 날이었어,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이 문장들은 과거형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유는 없었다. 열여섯 살은 아주 오래전에 지났지만 그런 날은 언제고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당신은 어떤'가요'] 열여섯 살은 아주 오래전에 지났지만
[당신은 어떤'가요] 감정을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소설가
2002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장편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중편 소설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짧은 소설 『말하자면 좋은 사람』 등을 출간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이미지 출처: 창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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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열여섯 살은 아주 오래전에 지났지만'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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