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다르지 않다. 트로트가 낯선 이들에게 4박자로 쿵작거리는 특유의 리듬은 호소력 있게 다가오지 않을 터다. 그렇지만 여기에 ‘생각’과 ‘사상’이 담긴다면 어떨까? 삶의 깊이를 더하고 생활을 격조 있게 이끌 지혜가 담겨 있다면, 낯선 리듬과 곡조에 더 빨리 익숙해지지 않을까?
노(老)가수, ‘인생 선배’ 소크라테스에게 묻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 나훈아 작사/작곡, <테스형> 가사 전문
소크라테스는 70살에 죽었다. 가왕(歌王) 나훈아는 이제 그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그는 소크라테스를 형(兄)이라 부르며 애타게 찾는다. 나는 나훈아의 <테스형>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심지어 눈물을 쏟기까지 한다.
나는 일찍이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이를 다룬 숱한 자료와 논문은 나를 울게 하지 않았다. 언제나 나에게 소크라테스는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훈아가 절절하게 찾는 ‘테스형’은 다르다. 노(老)가수에게 소크라테스는 고민을 털어 놓을 만한 진솔한 인생 선배다.
나는 <테스형>을 들을 때마다 2,500여 년 전 아테네 거리의 젊은이가 되는 느낌에 젖어 든다. 나는 절절한 마음으로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찾고 또 찾는다. 마주친 그에게 나는 소리친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왜 이렇게 힘이 듭니까?”, “소크라테스여, 세월은 또 왜 이렇지요? 죽자고 고생하면 우리는 천국 같은 세상에 다다르게 될까요? 먼저 가보시니까 어떠세요? 말 좀 해보세요! 선생님!!!”
최고의 가수도 미래가 두렵고 삶은 힘들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어디 나만 이럴까? <테스형>에는 누구라도 절실하게 내뱉을만한 하소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픔을 묻는다 / 내일이 두렵다 / 왜 이렇게 힘들어 / 사랑은 또 왜 이래 / 모르겠소 테스형
날 꾸짖는 것만 같다 / 아프다 세상이 / 눈물 많은 나에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하나하나가 답답한 마음을 건드리는 명구(名句)들이다. ‘인생 라임(rhyme)’이라 할 만하다.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때는 철학은 좀처럼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다. 반면, 일상이 신산스럽고 앞날은 두렵도록 어두울 때, 철학의 물음들은 강렬하게 영혼을 붙잡을 터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이다. <테스형>이 호소력이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철학자들은 언제나 세상은 왜 이런지, 나의 고통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恨)을 쌓아가며 고생해야 하는 이유가 과연 있는지를 깊게 깊게 파고든다. <테스형> 역시 이런 물음들을 거침없이 내던진다. 그것도 남들 눈에는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차지한 듯 보이는 ‘가수의 왕’ 나훈아가 말이다. 최고의 가수에게조차 미래가 두렵고 삶은 고통스럽다면, 일상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테스형>의 감동과 울림은 인생의 지난함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온다. <테스형>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쏟아지는 이유다.
트로트는 세계화될 수 있을까?
영화 <미스터트롯 더 무비> 스틸컷(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외국인들에게 <테스형>은 어떨까? 이 노래가 그들에게도 가슴 메는 감동으로 다가올까? ‘트로트’라는 형식으로 볼 때 쉽지 않을듯싶다. 외진 나라의 시골 버스에서 기사가 틀어놓은 노래를 떠올려 보라. 그곳 서민들에게는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이겠지만, 이방인들로서는 머리 아픈 소음으로만 여겨지기 쉽다.
트로트는 우리 사회에서도 주류(主流) 음악은 아니다. ‘뽕짝’이라 불리며 수준 낮은 음악으로 여겨지던 장르다. 격조 높은 자리에서 배경 음악으로 트로트가 깔리는 경우는 지금도 매우 드물다. 이런 음악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란 무척 어려울 터다.
하지만 별스러웠던 취향이 세상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컨대, 날생선을 먹는 일본의 스시는 서구인들에게 혐오 식품으로 여겨지곤 했다. 이랬던 스시가 일본의 경제가 커지고 문화가 널리 알려지자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모습은 음악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컨트리 송(Country Song)은 말 그대로 미국의 중서부 지역의 ‘민속 음악’이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급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생긴 문화에는 세상이 쉽게 마음을 연다.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 권을 넘나들뿐더러, K-POP 유행으로 드러나듯 문화적으로도 인정받는 나라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음악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중인 트로트 역시 가까운 미래에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게 되지 않을까?
인간은 감각을 넘어 생각으로 느낀다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Guillaume Duchenne)(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테스형>은 이러한 기대에 조심스럽게 답을 일러주는 명곡(名曲)이다.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Guillaume Duchenne, 1906~1871)에 따르면,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 웃을 때는 입꼬리가 올라가고, 인상을 쓸 때는 눈썹을 찌푸리는 식이다. 심지어 사람 얼굴을 본 적조차 없는 시각 장애인도 웃고 울며 화내는 표정은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얼굴에 담긴 여러 감정 역시 인류는 똑같이 느낀다. 표정을 짓게끔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힘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으며,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예술은 가슴을 울리며 감정을 흔드는 기술이다. 어떤 작품이 인류의 감정에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면, 이는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예컨대, 맛있는 음식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버거운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질 좋은 치즈도 발효 음식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구린내 나는 반쯤 썩은 고체’로 토악질을 이끌 뿐이지 않던가. 건강에 좋은 김치를 여전히 힘들어하는 외국인이 적지 않음을 떠올려 보라. 인간은 누구나 달고 짜고 기름진 맛에 끌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향과 조리법이 낯설면 달고 짜고 기름졌다 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러한 거부감을 넘어서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혀로만 음식을 맛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맛을 생각으로 느낀다. 메뉴에 ‘콩비지 찌개’라고 적혀 있을 때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흘러나온 맑은 약수를 품은 콩을 재료로 만든 건강한 콩비지 찌개’라고 설명되어 있을 때를 견주어 보라. 어느 쪽이 더 음식이 맛깔스러울까? 인간은 느껴지는 대로 느끼기보다, 안내하는 이미지를 따라 감각을 해석하기 마련이다.
트로트에 사상과 생각을 담는다면
비틀즈의 'Let It Be' 앨범(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음악도 다르지 않다. 트로트가 낯선 이들에게 4박자로 쿵작거리는 특유의 리듬은 호소력 있게 다가오지 않을 터다. 그렇지만 여기에 ‘생각’과 ‘사상’이 담긴다면 어떨까? 삶의 깊이를 더하고 생활을 격조 있게 이끌 지혜가 담겨 있다면, 낯선 리듬과 곡조에 더 빨리 익숙해지지 않을까?
비틀즈가 부른 'Let It Be'의 감동은 곡조와 박자의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가사에 담긴 깊은 혜안도 노래의 아름다움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큰 몫을 했으리라. BTS 음악도 다르지 않다. 'Map Of The Soul:Persona'라는 음반에는 인류 모두가 공감할 만한 심리학자 칼 융의 통찰이 새겨져 있다.
나훈아의 <테스형>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가 ‘테스형’이 아닌, 먼저 저세상으로 간 ‘동네 형’을 불렀더라도 똑같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 진리 앞에 겸손해야 한다.”라는 지혜를 주장한, 세계인이 사랑하는 철학자다. 그래서 인생의 온갖 쓰고 단맛을 다 겪은 노가수가 그를 ‘형님’이라며 불러낸 것이 청중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테스형>의 가사는 소크라테스가 평생 쫓았던 핵심적인 철학 물음과 맞닿아 있다. <테스형>의 가사가 제대로 알려진다면, 그 역시 BTS나 비틀즈처럼 세계적인 가수로 우뚝 서지 않을까?
K-POP이 더 뻗어나가려면 노래에 유행을 넘어 생각과 사상을 담아야 한다. <테스형>은 청중의 마음을 소크라테스에게 매달리던 아테네 젊은이들의 심정으로 만들어놓았다. <테스형>에 넘어설 나훈아의 신작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노가수의 새로운 도전이 기다려진다.
철학 교사. 인문360° 기획위원
중동고 철학 교사, 철학 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상 속에서 강연과 집필, 철학 상담 등을 통해 철학함을 펼치는 임상(臨床)철학자이기도 하다.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도서관 옆 철학 카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 역사를 만나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열일곱 살의 인생론』,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철학으로 휴식하라』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등의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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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형은 세계인을 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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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2021-04-27
음악도 다르지 않다. 트로트가 낯선 이들에게 4박자로 쿵작거리는 특유의 리듬은 호소력 있게 다가오지 않을 터다. 그렇지만 여기에 ‘생각’과 ‘사상’이 담긴다면 어떨까? 삶의 깊이를 더하고 생활을 격조 있게 이끌 지혜가 담겨 있다면, 낯선 리듬과 곡조에 더 빨리 익숙해지지 않을까?
노(老)가수, ‘인생 선배’ 소크라테스에게 묻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 나훈아 작사/작곡, <테스형> 가사 전문
소크라테스는 70살에 죽었다. 가왕(歌王) 나훈아는 이제 그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그는 소크라테스를 형(兄)이라 부르며 애타게 찾는다. 나는 나훈아의 <테스형>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심지어 눈물을 쏟기까지 한다.
나는 일찍이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이를 다룬 숱한 자료와 논문은 나를 울게 하지 않았다. 언제나 나에게 소크라테스는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훈아가 절절하게 찾는 ‘테스형’은 다르다. 노(老)가수에게 소크라테스는 고민을 털어 놓을 만한 진솔한 인생 선배다.
나는 <테스형>을 들을 때마다 2,500여 년 전 아테네 거리의 젊은이가 되는 느낌에 젖어 든다. 나는 절절한 마음으로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찾고 또 찾는다. 마주친 그에게 나는 소리친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왜 이렇게 힘이 듭니까?”, “소크라테스여, 세월은 또 왜 이렇지요? 죽자고 고생하면 우리는 천국 같은 세상에 다다르게 될까요? 먼저 가보시니까 어떠세요? 말 좀 해보세요! 선생님!!!”
최고의 가수도 미래가 두렵고 삶은 힘들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어디 나만 이럴까? <테스형>에는 누구라도 절실하게 내뱉을만한 하소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픔을 묻는다 / 내일이 두렵다 / 왜 이렇게 힘들어 / 사랑은 또 왜 이래 / 모르겠소 테스형
날 꾸짖는 것만 같다 / 아프다 세상이 / 눈물 많은 나에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하나하나가 답답한 마음을 건드리는 명구(名句)들이다. ‘인생 라임(rhyme)’이라 할 만하다.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때는 철학은 좀처럼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다. 반면, 일상이 신산스럽고 앞날은 두렵도록 어두울 때, 철학의 물음들은 강렬하게 영혼을 붙잡을 터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이다. <테스형>이 호소력이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철학자들은 언제나 세상은 왜 이런지, 나의 고통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恨)을 쌓아가며 고생해야 하는 이유가 과연 있는지를 깊게 깊게 파고든다. <테스형> 역시 이런 물음들을 거침없이 내던진다. 그것도 남들 눈에는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차지한 듯 보이는 ‘가수의 왕’ 나훈아가 말이다. 최고의 가수에게조차 미래가 두렵고 삶은 고통스럽다면, 일상인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테스형>의 감동과 울림은 인생의 지난함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온다. <테스형>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쏟아지는 이유다.
트로트는 세계화될 수 있을까?
영화 <미스터트롯 더 무비> 스틸컷(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외국인들에게 <테스형>은 어떨까? 이 노래가 그들에게도 가슴 메는 감동으로 다가올까? ‘트로트’라는 형식으로 볼 때 쉽지 않을듯싶다. 외진 나라의 시골 버스에서 기사가 틀어놓은 노래를 떠올려 보라. 그곳 서민들에게는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이겠지만, 이방인들로서는 머리 아픈 소음으로만 여겨지기 쉽다.
트로트는 우리 사회에서도 주류(主流) 음악은 아니다. ‘뽕짝’이라 불리며 수준 낮은 음악으로 여겨지던 장르다. 격조 높은 자리에서 배경 음악으로 트로트가 깔리는 경우는 지금도 매우 드물다. 이런 음악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란 무척 어려울 터다.
하지만 별스러웠던 취향이 세상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컨대, 날생선을 먹는 일본의 스시는 서구인들에게 혐오 식품으로 여겨지곤 했다. 이랬던 스시가 일본의 경제가 커지고 문화가 널리 알려지자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모습은 음악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컨트리 송(Country Song)은 말 그대로 미국의 중서부 지역의 ‘민속 음악’이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급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생긴 문화에는 세상이 쉽게 마음을 연다.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로 세계 10위 권을 넘나들뿐더러, K-POP 유행으로 드러나듯 문화적으로도 인정받는 나라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음악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중인 트로트 역시 가까운 미래에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게 되지 않을까?
인간은 감각을 넘어 생각으로 느낀다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Guillaume Duchenne)(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테스형>은 이러한 기대에 조심스럽게 답을 일러주는 명곡(名曲)이다.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Guillaume Duchenne, 1906~1871)에 따르면,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은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 웃을 때는 입꼬리가 올라가고, 인상을 쓸 때는 눈썹을 찌푸리는 식이다. 심지어 사람 얼굴을 본 적조차 없는 시각 장애인도 웃고 울며 화내는 표정은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얼굴에 담긴 여러 감정 역시 인류는 똑같이 느낀다. 표정을 짓게끔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힘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으며,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예술은 가슴을 울리며 감정을 흔드는 기술이다. 어떤 작품이 인류의 감정에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면, 이는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예컨대, 맛있는 음식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버거운 경우가 드물지 않다. 질 좋은 치즈도 발효 음식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구린내 나는 반쯤 썩은 고체’로 토악질을 이끌 뿐이지 않던가. 건강에 좋은 김치를 여전히 힘들어하는 외국인이 적지 않음을 떠올려 보라. 인간은 누구나 달고 짜고 기름진 맛에 끌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향과 조리법이 낯설면 달고 짜고 기름졌다 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러한 거부감을 넘어서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혀로만 음식을 맛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맛을 생각으로 느낀다. 메뉴에 ‘콩비지 찌개’라고 적혀 있을 때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흘러나온 맑은 약수를 품은 콩을 재료로 만든 건강한 콩비지 찌개’라고 설명되어 있을 때를 견주어 보라. 어느 쪽이 더 음식이 맛깔스러울까? 인간은 느껴지는 대로 느끼기보다, 안내하는 이미지를 따라 감각을 해석하기 마련이다.
트로트에 사상과 생각을 담는다면
비틀즈의 'Let It Be' 앨범(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음악도 다르지 않다. 트로트가 낯선 이들에게 4박자로 쿵작거리는 특유의 리듬은 호소력 있게 다가오지 않을 터다. 그렇지만 여기에 ‘생각’과 ‘사상’이 담긴다면 어떨까? 삶의 깊이를 더하고 생활을 격조 있게 이끌 지혜가 담겨 있다면, 낯선 리듬과 곡조에 더 빨리 익숙해지지 않을까?
비틀즈가 부른 'Let It Be'의 감동은 곡조와 박자의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 가사에 담긴 깊은 혜안도 노래의 아름다움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큰 몫을 했으리라. BTS 음악도 다르지 않다. 'Map Of The Soul:Persona'라는 음반에는 인류 모두가 공감할 만한 심리학자 칼 융의 통찰이 새겨져 있다.
나훈아의 <테스형>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가 ‘테스형’이 아닌, 먼저 저세상으로 간 ‘동네 형’을 불렀더라도 똑같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 진리 앞에 겸손해야 한다.”라는 지혜를 주장한, 세계인이 사랑하는 철학자다. 그래서 인생의 온갖 쓰고 단맛을 다 겪은 노가수가 그를 ‘형님’이라며 불러낸 것이 청중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테스형>의 가사는 소크라테스가 평생 쫓았던 핵심적인 철학 물음과 맞닿아 있다. <테스형>의 가사가 제대로 알려진다면, 그 역시 BTS나 비틀즈처럼 세계적인 가수로 우뚝 서지 않을까?
K-POP이 더 뻗어나가려면 노래에 유행을 넘어 생각과 사상을 담아야 한다. <테스형>은 청중의 마음을 소크라테스에게 매달리던 아테네 젊은이들의 심정으로 만들어놓았다. <테스형>에 넘어설 나훈아의 신작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노가수의 새로운 도전이 기다려진다.
[K컬처로 인문하기] 테스형은 세계인을 울릴 수 있을까
[K컬처로 인문하기] 좀비는 그냥 좀비가,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고
철학 교사. 인문360° 기획위원
중동고 철학 교사, 철학 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상 속에서 강연과 집필, 철학 상담 등을 통해 철학함을 펼치는 임상(臨床)철학자이기도 하다.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도서관 옆 철학 카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 역사를 만나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열일곱 살의 인생론』,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철학으로 휴식하라』 『식탁은 에피쿠로스처럼』 등의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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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 로봇들에게 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가
신상규
열여섯 살은 아주 오래전에 지났지만
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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