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들을 보면서 흥미롭게 여겼던 질문은,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에서 차이가 거의 없는데 왜 인공 지능 로봇들은 그토록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걸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이들은 생물학적 신체가 아니라 전자 두뇌와 기계 몸체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과 같은 생물학적 신체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무엇이었을까?
SF 영화와 철학
<푸른 요정을 찾아서> 책 표지(이미지 출처 : 알라딘)
필자는 지금 대학에서 'SF 영화로 배우는 철학'이란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SF 영화를 소재로 해서 여러 철학적 문제 및 관련 이론이나 견해를 소개하는 과목이다. 필자가 대학생이었을 때에는 대개 '철학 개론' 혹은 '철학 입문'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과목이다. 필자가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처음 저술한 책도 SF 영화를 통하여 심리 철학과 인공 지능 철학의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려는 책이었다. 2008년에 출간된 『푸른 요정을 찾아서』란 책이었는데, 두 편의 인공 지능 SF 영화를 중심으로 심리 철학의 주요 입장을 간략히 소개하고 인공 지능과 관련된 철학적 쟁점, 그리고 인공 지능의 인격적 지위 문제를 다루었다. 대중서로 기획된 책이어서 초판을 3,000부 인쇄하였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꽤 많은 부수의 책을 찍었던 것 같다.
책은 기대처럼 불티나게 팔리지는 않았다. 필자는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책 제목 때문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프로네시스라는 조그마한 임프린트 출판사에서 기획한 <지식전람회> 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당시 그 시리즈에는 재미도 있고 유익할 뿐 아니라 제목이 눈길을 끄는 책들이 꽤 있었다. 필자도 그에 질세라 약간의 고민 끝에 책 제목을 『푸른 요정을 찾아서』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나름 신박하고 주제적으로도 매우 알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정적 문제는 독자들이 제목만으론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출판사의 편집자도 비슷한 걱정을 했는지, 결국 ‘인공 지능과 미래 인간의 조건’이란 부제를 달고 출판되었다. 그나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초판이 다 팔려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부제 덕분이었을 것이다.
인공 지능 로봇을 인간으로 만들어 줄 ‘푸른 요정’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에이아이> 포스터(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요즘도 인공 지능에 관한 수업을 할 때면, 학생들에게 ‘푸른 요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냐고 물어본다. 학생들은 대개 어리둥절하며 그 표현을 듣는 것도 처음이지만, 인공 지능이 도대체 그것과 무슨 상관인가 하는 요령부득의 표정을 짓는다. ‘푸른 요정’은 동화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에이아이>는 엄마로부터 버려진 꼬마 로봇 데이빗이 엄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하여 푸른 요정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무 인형 피노키오가 그랬던 것처럼, 데이빗은 ‘푸른 요정’이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포스터(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이 책은 <에이아이> 외에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바이센테니얼 맨>이란 영화도 다룬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인공 지능 로봇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꼬마 로봇 데이빗은 아이가 없는 부모들에게 자식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감정 로봇으로,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이 거의 존재의 목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로봇이다.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로빈 윌리암스가 연기한 로봇은 가정부 로봇으로 설계되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인해 지능과 호기심을 갖게 된 로봇이다. 로봇 앤드류는 주인 가족의 배려에 힘입어 교육을 받게 되며 점점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간다. 그리고, 급기야는 손녀딸인 포샤와 사랑에 빠지게 되며, 포샤와의 결혼을 위해 인간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불멸을 포기하고 유한한 생명을 지닌 존재로 변신한 앤드류는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을 넣는다. 하지만, 생전에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결국 숨을 거둔 다음에야 인간이 되었다는 판결 결과를 전달받게 된다.
인공 지능 로봇은 어떻게 해야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이 영화들을 보면서 흥미롭게 여겼던 질문은,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에서 차이가 거의 없는데 왜 인공 지능 로봇들은 그토록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걸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이들은 생물학적 신체가 아니라 전자 두뇌와 기계 몸체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과 같은 생물학적 신체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무엇이었을까?
대개의 SF 영화는 미래에 대한 상상인 동시에 지금의 우리 모습에 대한 거울상으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우화로 기능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들은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에 관한 질문은 사실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던 질문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개념은 결코 생물학적 종인 호모 사피엔스와 등가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다. ‘인간’은 언제나 특권화된 소수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으며, 노예, 여성, 혹은 인종이나 지역 등에 의해 타자화된 많은 존재들은 비인간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어찌 보면 이들이 자신들의 인권과 자유를 열망하며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싸워온 과정이 바로 인류 진보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이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인공 지능 로봇도 인간과 유사한 권리와 대우를 누릴 수 있는지, 즉 도덕적이거나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 답하려면, 우리는 먼저 인공적이거나 자연의 다른 존재들과 구분하여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인간은 왜 존엄한가? 필자가 책에서 내린 결론은 인간이 가진 특수함은 인간이 보이는 도덕성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즉 인간은 자신의 결의를 통하여 도덕적 원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조직하고 행위할 수 있기에 ‘특별’하며, 존엄함 또한 거기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함’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인간이 갖는 특별함은 대개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며 다른 존재보다 위계적으로 우위에 있는 특권적 존재임을 정당화하고,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이용하는 일을 허용하는 이유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태도를 ‘인간 중심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최근에 필자가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포스트 휴먼’ 담론은 이러한 사고 방식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와 같은 생태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진단하며,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주요한 이론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동등성의 원칙’, 로봇과 인간을 차별하는 근거
<바이센테니얼 맨> 스틸 이미지(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인공 지능의 인격적 지위에 관한 문제는, 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 지능에 대해 쏟아진 엄청난 관심과 함께, 이제는 주요한 철학적 쟁점으로 부상하여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출판된 2008년에는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외국에서도 이 주제를 다룬 문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푸른 요정을 찾아서』가 시대의 트렌드를 꽤 앞서 나갔던 셈이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인공 지능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거니와, 인공 지능의 도덕적 지위라는 매우 생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그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책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던 방식은 ‘동등성의 원칙’이라 불리는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 원칙은 우리가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어떤 존재를 대우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차별을 정당화해주는 적절한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덕적으로 우리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가령 우리가 동물을 인간과 달리 대우한다면, 이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러한 차별 대우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모종의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가 내렸던 결론은, 만약 AI 로봇이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존재라면 그들은 이미 우리와 같은 인격적 존재이며, 그들을 ‘인간’으로 만들어 줄 ‘푸른 요정’을 필요로 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결론에는 몇 가지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먼저 인공 지능 기술을 통하여 영화 속의 인공 지능과 같은 로봇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이 인간에 비견할 수 있는 사고나 판단, 감정, 행위 능력을 갖추도록 만들어야 한다. 『푸른 요정을 찾아서』를 쓰던 당시 필자는 오늘날 가장 널리 인정되는 마음에 관한 철학 이론과 인공 지능에 대한 논의 등을 통하여 그러한 로봇을 만드는데 원리적 장애는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물론 그 가능성은 여전히 뜨거운 철학적, 기술적 논쟁의 대상이다. 필자는 지금도 인공 지능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다면 그러한 인공 지능 로봇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한 로봇을 도덕적이거나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기준과 관련해서는 약간 생각을 바꾸었다. 책에서 물었던 질문은 그들과 인간 사이에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할 적절한 차이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을 존엄하게 만들고 도덕적 권리를 갖도록 하는 특성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보통 도덕·인격적 지위와 유관하게 간주되는 속성으로 합리성, 지향성, 의식, 자유 의지 등을 거론한다. 만약 인공 지능 로봇이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에게도 인격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었다.
로봇의 속성보다 인간과 로봇이 어떤 관계 맺느냐가 중요
소니 로봇 강아지 '아이보'(이미지 출처 : 소니 홈페이지)
인공 지능 로봇이 도덕과 유관해 보이는 이러한 성질들을 실제로 소유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도덕·인격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도덕 속성 실재론’이라 부를 수 있다. 필자가 『푸른 요정을 찾아서』에서 취했던 입장은 이러한 ‘도덕 속성 실재론’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필자는 인공 지능의 도덕·인격적 지위와 관련해서, 속성 실재론보다는 관계론적 접근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관계론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로봇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가를 따지는 일보다 일상적 경험 속에서 우리가 그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즉, 로봇이 도덕과 유관한 성질을 실제로 갖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우리가 로봇이 마치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에 맞추어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로봇에게 모종의 인격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봇 강아지인 ‘아이보’의 장례식을 치르는 일본인들의 마음이나, 이라크 전쟁 당시 폭탄 제거 목적으로 투입되었다 파괴된 로봇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자신들의 전우로 받아들인 미국 군인들의 사례들처럼 말이다. 물론 이 문제는 아직도 많은 논쟁이 진행 중이므로 여기서 그 해답을 성급하게 내릴 필요는 없다.
SF 영화는 우리가 인공 지능 로봇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여러 방식을 다양한 서사를 통하여 보여준다. 이런 서사들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갖는 속성을 통해 로봇의 인격적 지위를 따지는 것보다, 먼저 로봇들과 상호 작용하는 다양한 사회 정치적 조건과 일상의 경험들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SF 서사가 보여주는 관계적 양상을 단순히 프로그램된 ‘기계’라는 고정된 은유가 아니라 훨씬 더 풍부한 은유를 통해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여러 해석적 가능성을 고려해 볼 시점이다.
현재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 포스트휴먼 융합인문학 협동과정 주임교수. 주요 관심 분야는 심리 철학, 인공 지능의 철학, 정보 철학, 트랜스 휴머니즘, 포스트 휴머니즘이다. 저서로 『호모사피엔스의 미래-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푸른 요정을 찾아서-인공 지능과 미래 인간의 조건』,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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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 로봇들에게 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가
-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 ‘푸른 요정’을 기대한 인공 로봇들, 영화 <에이아이>, <바이센테니얼맨>
신상규
2021-04-26
이 영화들을 보면서 흥미롭게 여겼던 질문은,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에서 차이가 거의 없는데 왜 인공 지능 로봇들은 그토록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걸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이들은 생물학적 신체가 아니라 전자 두뇌와 기계 몸체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과 같은 생물학적 신체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무엇이었을까?
SF 영화와 철학
<푸른 요정을 찾아서> 책 표지(이미지 출처 : 알라딘)
필자는 지금 대학에서 'SF 영화로 배우는 철학'이란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SF 영화를 소재로 해서 여러 철학적 문제 및 관련 이론이나 견해를 소개하는 과목이다. 필자가 대학생이었을 때에는 대개 '철학 개론' 혹은 '철학 입문'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과목이다. 필자가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처음 저술한 책도 SF 영화를 통하여 심리 철학과 인공 지능 철학의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려는 책이었다. 2008년에 출간된 『푸른 요정을 찾아서』란 책이었는데, 두 편의 인공 지능 SF 영화를 중심으로 심리 철학의 주요 입장을 간략히 소개하고 인공 지능과 관련된 철학적 쟁점, 그리고 인공 지능의 인격적 지위 문제를 다루었다. 대중서로 기획된 책이어서 초판을 3,000부 인쇄하였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꽤 많은 부수의 책을 찍었던 것 같다.
책은 기대처럼 불티나게 팔리지는 않았다. 필자는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책 제목 때문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프로네시스라는 조그마한 임프린트 출판사에서 기획한 <지식전람회> 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당시 그 시리즈에는 재미도 있고 유익할 뿐 아니라 제목이 눈길을 끄는 책들이 꽤 있었다. 필자도 그에 질세라 약간의 고민 끝에 책 제목을 『푸른 요정을 찾아서』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나름 신박하고 주제적으로도 매우 알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정적 문제는 독자들이 제목만으론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출판사의 편집자도 비슷한 걱정을 했는지, 결국 ‘인공 지능과 미래 인간의 조건’이란 부제를 달고 출판되었다. 그나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초판이 다 팔려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부제 덕분이었을 것이다.
인공 지능 로봇을 인간으로 만들어 줄 ‘푸른 요정’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에이아이> 포스터(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요즘도 인공 지능에 관한 수업을 할 때면, 학생들에게 ‘푸른 요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냐고 물어본다. 학생들은 대개 어리둥절하며 그 표현을 듣는 것도 처음이지만, 인공 지능이 도대체 그것과 무슨 상관인가 하는 요령부득의 표정을 짓는다. ‘푸른 요정’은 동화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에이아이>는 엄마로부터 버려진 꼬마 로봇 데이빗이 엄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하여 푸른 요정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무 인형 피노키오가 그랬던 것처럼, 데이빗은 ‘푸른 요정’이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포스터(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이 책은 <에이아이> 외에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바이센테니얼 맨>이란 영화도 다룬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인공 지능 로봇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꼬마 로봇 데이빗은 아이가 없는 부모들에게 자식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감정 로봇으로,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이 거의 존재의 목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로봇이다.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로빈 윌리암스가 연기한 로봇은 가정부 로봇으로 설계되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인해 지능과 호기심을 갖게 된 로봇이다. 로봇 앤드류는 주인 가족의 배려에 힘입어 교육을 받게 되며 점점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간다. 그리고, 급기야는 손녀딸인 포샤와 사랑에 빠지게 되며, 포샤와의 결혼을 위해 인간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불멸을 포기하고 유한한 생명을 지닌 존재로 변신한 앤드류는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을 넣는다. 하지만, 생전에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결국 숨을 거둔 다음에야 인간이 되었다는 판결 결과를 전달받게 된다.
인공 지능 로봇은 어떻게 해야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이 영화들을 보면서 흥미롭게 여겼던 질문은,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에서 차이가 거의 없는데 왜 인공 지능 로봇들은 그토록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걸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이들은 생물학적 신체가 아니라 전자 두뇌와 기계 몸체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과 같은 생물학적 신체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무엇이었을까?
대개의 SF 영화는 미래에 대한 상상인 동시에 지금의 우리 모습에 대한 거울상으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우화로 기능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들은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에 관한 질문은 사실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던 질문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개념은 결코 생물학적 종인 호모 사피엔스와 등가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었다. ‘인간’은 언제나 특권화된 소수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으며, 노예, 여성, 혹은 인종이나 지역 등에 의해 타자화된 많은 존재들은 비인간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어찌 보면 이들이 자신들의 인권과 자유를 열망하며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싸워온 과정이 바로 인류 진보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이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인공 지능 로봇도 인간과 유사한 권리와 대우를 누릴 수 있는지, 즉 도덕적이거나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 답하려면, 우리는 먼저 인공적이거나 자연의 다른 존재들과 구분하여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인간은 왜 존엄한가? 필자가 책에서 내린 결론은 인간이 가진 특수함은 인간이 보이는 도덕성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즉 인간은 자신의 결의를 통하여 도덕적 원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조직하고 행위할 수 있기에 ‘특별’하며, 존엄함 또한 거기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함’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인간이 갖는 특별함은 대개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며 다른 존재보다 위계적으로 우위에 있는 특권적 존재임을 정당화하고,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이용하는 일을 허용하는 이유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태도를 ‘인간 중심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최근에 필자가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포스트 휴먼’ 담론은 이러한 사고 방식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와 같은 생태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진단하며,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주요한 이론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동등성의 원칙’, 로봇과 인간을 차별하는 근거
<바이센테니얼 맨> 스틸 이미지(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인공 지능의 인격적 지위에 관한 문제는, 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 지능에 대해 쏟아진 엄청난 관심과 함께, 이제는 주요한 철학적 쟁점으로 부상하여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출판된 2008년에는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외국에서도 이 주제를 다룬 문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푸른 요정을 찾아서』가 시대의 트렌드를 꽤 앞서 나갔던 셈이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인공 지능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지금처럼 높지 않았거니와, 인공 지능의 도덕적 지위라는 매우 생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그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책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던 방식은 ‘동등성의 원칙’이라 불리는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 원칙은 우리가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어떤 존재를 대우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차별을 정당화해주는 적절한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덕적으로 우리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가령 우리가 동물을 인간과 달리 대우한다면, 이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러한 차별 대우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모종의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가 내렸던 결론은, 만약 AI 로봇이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존재라면 그들은 이미 우리와 같은 인격적 존재이며, 그들을 ‘인간’으로 만들어 줄 ‘푸른 요정’을 필요로 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결론에는 몇 가지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먼저 인공 지능 기술을 통하여 영화 속의 인공 지능과 같은 로봇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이 인간에 비견할 수 있는 사고나 판단, 감정, 행위 능력을 갖추도록 만들어야 한다. 『푸른 요정을 찾아서』를 쓰던 당시 필자는 오늘날 가장 널리 인정되는 마음에 관한 철학 이론과 인공 지능에 대한 논의 등을 통하여 그러한 로봇을 만드는데 원리적 장애는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물론 그 가능성은 여전히 뜨거운 철학적, 기술적 논쟁의 대상이다. 필자는 지금도 인공 지능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다면 그러한 인공 지능 로봇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한 로봇을 도덕적이거나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기준과 관련해서는 약간 생각을 바꾸었다. 책에서 물었던 질문은 그들과 인간 사이에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할 적절한 차이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을 존엄하게 만들고 도덕적 권리를 갖도록 하는 특성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보통 도덕·인격적 지위와 유관하게 간주되는 속성으로 합리성, 지향성, 의식, 자유 의지 등을 거론한다. 만약 인공 지능 로봇이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에게도 인격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었다.
로봇의 속성보다 인간과 로봇이 어떤 관계 맺느냐가 중요
소니 로봇 강아지 '아이보'(이미지 출처 : 소니 홈페이지)
인공 지능 로봇이 도덕과 유관해 보이는 이러한 성질들을 실제로 소유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도덕·인격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도덕 속성 실재론’이라 부를 수 있다. 필자가 『푸른 요정을 찾아서』에서 취했던 입장은 이러한 ‘도덕 속성 실재론’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필자는 인공 지능의 도덕·인격적 지위와 관련해서, 속성 실재론보다는 관계론적 접근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관계론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로봇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가를 따지는 일보다 일상적 경험 속에서 우리가 그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즉, 로봇이 도덕과 유관한 성질을 실제로 갖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우리가 로봇이 마치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에 맞추어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로봇에게 모종의 인격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봇 강아지인 ‘아이보’의 장례식을 치르는 일본인들의 마음이나, 이라크 전쟁 당시 폭탄 제거 목적으로 투입되었다 파괴된 로봇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자신들의 전우로 받아들인 미국 군인들의 사례들처럼 말이다. 물론 이 문제는 아직도 많은 논쟁이 진행 중이므로 여기서 그 해답을 성급하게 내릴 필요는 없다.
SF 영화는 우리가 인공 지능 로봇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여러 방식을 다양한 서사를 통하여 보여준다. 이런 서사들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갖는 속성을 통해 로봇의 인격적 지위를 따지는 것보다, 먼저 로봇들과 상호 작용하는 다양한 사회 정치적 조건과 일상의 경험들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SF 서사가 보여주는 관계적 양상을 단순히 프로그램된 ‘기계’라는 고정된 은유가 아니라 훨씬 더 풍부한 은유를 통해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여러 해석적 가능성을 고려해 볼 시점이다.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인공 지능 로봇들에게 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가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인간은 운명에 맞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 포스트휴먼 융합인문학 협동과정 주임교수. 주요 관심 분야는 심리 철학, 인공 지능의 철학, 정보 철학, 트랜스 휴머니즘, 포스트 휴머니즘이다. 저서로 『호모사피엔스의 미래-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푸른 요정을 찾아서-인공 지능과 미래 인간의 조건』,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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