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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 사회 이해 및 고증 부족한 시대극들

-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

석지훈

2021-03-25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은? 영화, 드라마 등 일반시민들에게 익숙한 대중문화콘텐츠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역사 속 특정 장면은 그 앞뒤로 어떤 시대적 상황과 맥락, 역사적 진실과 논란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걸까.  역사 전문가들의 친절한 소개와 설명을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 접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가깝게 다가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방 이전과 이후를 넘나드는 이 영화의 엉터리 고증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영화관에 걸린 <사랑에 속고 돈의 울고>의 포스터를 보면 더욱 심각하다. 이 포스터는 사실 1939년에 제작된 원래의 영화가 아니라 1965년에 제작된 리메이크작 <홍도야 울지마라>의 포스터를 베껴 그린 것으로,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버젓이 생존해 있는 이 리메이크작의 주연배우 신영균과 김지미의 얼굴을 그대로…….



대중적 호응 큰 한국 근대 시대극들



1945년, 지옥섬 군함도 그곳에 조선인들이 있었다 류승완 감독 작품 군함도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 절찬 상영중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군함도> 포스터(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생의 끝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사의찬미 이종석 11.27 신혜선 이미지 출처 SBS

드라마 <사의 찬미>(이미지 출처 : SBS)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내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와 드라마들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장르 중 하나는 이른바 시대극(時代劇)이다. 이 장르의 작품들은 실제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한국 역사 속 사회의 분위기와 모습을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시대극이라는 단어 자체는 거의 모든 역사 시대를 포괄하는 것이지만, 대개 한국의 근대와 현대, 즉 20세기 전반 한국 사회를 무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본격적으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2000년대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 제작된 시대극의 경우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하여, 당대에 신문물을 접하고 근대적인 인간형으로 변화해 가던 인물들, 소위 “모뽀(모던 보이, Modern Boy)”나 “모껄(모던 걸, Modern Girl)” 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다. 당장 떠오르는 작품들만 보아도 <라듸오 데이즈>(2007), <모던보이>(2008), <마이웨이>(2011), <암살>(2015), <밀정>(2016), <군함도>(2017), <말모이>(2018) 등의 영화와, <경성스캔들>(2007), <각시탈>(2012), <사의 찬미>(2016), <미스터 션샤인>(2018) 등의 드라마들이 그러하다. 어찌 보면 현대 시청자들과 관객의 흥미 및 오락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흥미로운 과도기적인 인간형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격변의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요즘 핫하다는 개화기의상 입고 호텔델루나 촬영지에서 인생샷 남기기, 합천영상테마파크 이미지 출처 합전 관광 공식 페이스북

각종 시대극의 촬영지로 즐겨 사용되고 있는 합천영상테마파크(이미지 출처 : 합천 관광 공식 페이스북)



실제로 이러한 시대극 작품들의 대중적인 인기나 관심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서울 종로의 익선동과 같은 이른바 “레트로(Retro)” 감성을 자극하는 ‘핫플레이스’ 곳곳에 시대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겨난 일제강점기 혹은 ‘개화기’ 풍의 음식점, 카페, 셀프 사진관 등 각종 점포가 생겨나 성업 중이다. 또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근현대의 풍경이 대체로 잘 남아있는 인천, 목포, 군산, 대전 등의 구도심(舊都心) 지역 역시 시대극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최근 들어 ‘근대역사문화거리’ 등의 이름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FM 주파수? 65년 작 영화 포스터도



하지만 20세기 전반 (주로 일제강점기)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대극 콘텐츠를 보다 보면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앞서 밝혔던 것처럼, 이들 대부분은 완전한 허구의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주고 있기에 각 작품들의 줄거리라든가, 개별 완성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필요는 없고, 필자 역시 비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정말 큰 문제는 이러한 작품에서 그려지는 20세기 전반의 한국 사회, 혹은 그 시대의 일상이나 문화에 대한 고증에 있어 매우 기초적인 부분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가 너무나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물론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이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소품이나 시대상을 당대 사회 그대로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지만, 그간 한국에서 제작된 절대다수의 시대극과 영화들의 경우는 영화 제작진이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고증 오류는 결과적으로 작품 내용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가령 “이 영화는 철저한 고증을 거친 실화입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 <박열>의 경우, 영화 초반에 주인공 박열과 그 일행이 1923년 10월 일본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는 뉴스를 라디오로 듣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일본에서 대중 라디오 방송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부터 1년 반 가까이 지난 1925년 3월의 일이므로, 박열 일행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계엄령 소식을 접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더구나 이 장면에서 박열 일행이 귀를 기울이는 라디오에는 우스꽝스럽게도 1950년대에나 상용화된 FM 주파수 표시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조선어학회 사건(1942년 10월부터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을 검거해 재판에 회부한 사건.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말모이>도, 주인공 판수(유해진 분)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어처구니없는 고증 오류가 줄줄이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1941년 경성 조선극장’이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상영되고 있는 조선극장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일단 경성에 있던 실제의 조선극장은 1936년 6월 11일 화재로 타 영영 문을 닫았기 때문에 1941년의 경성에 조선극장이라는 극장은 존재할 수 없다. 영화에 드러난 건물의 모습 역시 실제의 조선극장과는 전혀 다른 모양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1958년에 충무로에 개관했던 대한극장 건물의 모습을 얼추 재현한 것에 가깝다.



사랑에 짓밟히고 몸부림처야 하는 한 홍도야 우지마라 이미지 출처 왓챠피디아

1965년 개봉된 영화 <홍도야 우지 마라>. 1939년 제작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말모이> 첫 장면에 등장하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포스터는 이것을 그대로 베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이미지 출처 : 왓챠피디아)



이처럼 해방 이전과 이후를 넘나드는 이 영화의 엉터리 고증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영화관에 걸린 <사랑에 속고 돈의 울고>의 포스터를 보면 더욱 심각해진다. 이 포스터는 사실 1939년에 제작된 원래의 영화가 아니라 1965년에 제작된 리메이크작 <홍도야 울지마라>의 포스터를 베껴 그린 것으로,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버젓이 생존해 있는, 이 리메이크작의 주연 배우 신영균과 김지미의 얼굴을 그대로 넣었다.


심지어 영화의 뒷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저히 일제강점기에는 있을 수 없는 “대한” 운운하는 이름이 붙은 회사 간판까지 고스란히 걸려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좋은 관객이라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이처럼 허술하게 고증을 하고 있으니, 필자와 같은 전공자나, 혹은 조금이라도 이런 부분들에 대해 세밀한 관찰을 하는 관객들로서는 도무지 이 영화의 개연성을 느낄 수 없고 내용에도 몰입하기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 감성 자극 위해 역사적 사실 왜곡까지



한편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해어화>는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사회 및 일상사에 대한 무지에다, 20세기 전반의 대중 매체, 그중에서도 특히 이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음반(레코드)에 대한 무지까지 덧붙여져 정말로 줄거리의 개연성 자체를 알아보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일제강점기에 땅에 파묻힌 레코드가 고스란히 출토된다는 설정은 당시 사용된 음반 매체인 유성기 음반(표준시간 음반(standard playing record; SP) 또는 78회전 음반(78rpm record)이라고 불렸으며 한 면당 3~4분 분량밖에 녹음이 안 됐음. LP 음반이 나오면서 사라지게 됨, 편집자 주)이 가벼운 충격이나 압력에도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완전한 난센스라고밖에 할 수 없다. 또 기생들에게도 “애국”과 “절제”를 강요하던 1940년대에 영화에서와 같은 대규모의 기생 권번(券番, 일제강점기 기생들의 활동을 돕던 조합)이 제대로 그 면모를 유지했을지도, 해방 이전에 변변한 녹음 스튜디오와 음반 생산 시설이 단 하나도 없었던 조선이 그렇게 쉽게 음반을 제작했을지도 의문이다.



영화 헤어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윤우’ 역을 맡은 배우 유연석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해어화> 속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윤우’ 역을 맡은 배우 유연석(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황당무계한 장면은 남자주인공인 윤우(유연석 분)가 술집에서 일본 군가를 부르는 일본군 병졸들에 맞서 피아노로 아리랑을 연주하다 집단으로 구타당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라고 알려진 <아리랑>을 등장시켜 식민 지배의 압박을 받던 조선인들의 울분을 표출시켜 관객들의 민족주의적인 감성을 자극하고자 하는 시도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특히 1930년대 이후에 <아리랑>과 <도라지> 등의 조선 민요가 일본에서도 널리 유행하여 애창·애청되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장면이다. 사실 일제 말기까지 <아리랑>을 소재로 한 음반들이 조선과 일본에서 꾸준히 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해방이 된 뒤 1950년대까지도 일본에서 <아리랑>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이런 의미에서 이 장면은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는 완전히 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 말기, 일제가 조선에서 자행한 각종 억압과 만행을 강조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당대의 현실을 완전히 왜곡하는 방향으로 이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Korean Folksong (Waltz) THE SONG OF ARIRANG Arr: Raymond Hattorl Grace Amemiya Columbia Orchestri A 1288 2212374 Columbia Record MADE BY NIPPON COLUMBIA Columbia CO., LTD. KAWASAKI. JAPAN 이미지 출처 필자 소장 직접 촬영

1951년 일본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발매된 <아리랑의 노래 Song of Arirang>.

일본계 미국 가수인 그레이스 아메미야(Grace Amemiya)가 노래하고 있다.(이미지 출처 : 필자 소장, 직접 촬영)



잘못된 역사 콘텐츠, 한류와 국가 이미지에 악영향



이러한 시대극들의 크고 작은 고증 오류나 왜곡은 사실 너무나도 많아 짧은 지면 안에서 전부 다루기는 힘들다. 그간 우리나라 사극과 시대극의 고증 오류는 이미 수많은 이들에게 지적되어 온 바 있지만, 단순히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해어화>의 경우처럼 오늘날의 일반적인 대중 서사, 즉 <아리랑>을 비롯한 조선의 민요들이 일제에 의해 박해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생각과는 다른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한 지적은 자칫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려 한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와 TV 시리즈가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만 소비되지 않고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지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엉터리 고증은 20세기 전반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이미지를 해외에도 널리 퍼뜨릴 수 있다. 앞으로는 이에 대해 좀 더 면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본의 혐한 ‘넷우익’들을 비롯한 적지 않은 해외 네티즌들이 엉터리로 고증이 이뤄진 한국산 콘텐츠를 악의적으로 활용해 한국인들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로 매도하는 데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곤 한다.


이미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지난 먼 과거인 고대사나 중세사가 아니라, 가깝게는 70여 년에서 100여 년 정도 남짓, 즉 우리의 조부모들께서 살았던 상대적으로 가까운 과거를 그려내는 것인 만큼, 앞으로는 이에 대해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이러한 부작용이나 악용이 덜해지지 않을까.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근현대 한국 사회 이해 및 고증 부족한 시대극들

[그 장면 전후사의 재인식] 그냥 지켜볼 수만 없었던 명과 왜의 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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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훈
석지훈

연세대학교 사학과(한국 근대사)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30년대 조선악의 근대적 기획과 보급”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아시아문화언어학부(Asian Languages and Cultures)에서 수학하였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사학과(한국 근대사)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http://www.78archive.co.kr)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다. 20세기 전반에 사진, 영상, 음향 등의 대중매체가 한국 문화와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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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사진 이미지

유**

2021-03-25

역사왜곡 드라마에 대한 논란이 종종 있는 가운데, 좋은 내용의 칼럼 잘 읽었습니다!

김** 사진 이미지

김**

2021-03-25

요즘 새로 방영하는 '조선구마사' 라는 드라마에서 조선기생집에 나온 중국식 상차림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봤어요. 영화 , 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되는 것은 분명 쾌거임에도, 잘못된 역사를 수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구** 사진 이미지

구**

2021-03-29

요즘 한참 역사왜곡 드라마등으로 시끄러웠던 중이라 더 생각해보면서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영화나드라마등 작품의 영향력이 큰만큼 역사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고증뿐 아니라 역사를 존중하는 태도도 꼭 필요할 것 같아요

오** 사진 이미지

오**

2021-03-30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다보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잘못 고증한 탓인지 이상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만큼 시청자들에게 주의 안내 등의 문구를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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