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모르는 무신경한 여자한테 인생을 폄훼당하면서도 이 남자는 유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인간이다. 아름다운 인간이 망가진 것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증에 시달리며 이렇게까지 말해지는 상태이다. “그는 여러 개의 전구가 전선에 줄줄이 달려 있어도 단 하나의 전구에 흠이 있으면 불이 모두 나가버릴 수밖에 없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라고…….
살아 돌아왔지만 가장 딱한 사람
J. D. 샐린저의 『아홉 가지 이야기』 안에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가 실려 있다. 최승자 시인이 우리말로 옮겼다. (이미지 출처: 알라딘)
그 남자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딱한 사람이다. 소설 속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말이다. 나이는 20대 중후반으로 추정, 현재 직업은 군인, 이름은 모른다. 이 남자는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격전지에 투입되어 망가지게 된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도 많고, 팔다리가 잘린 사람도 많은데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느냐고?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겪고 나면 그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이다. 연애나 실패나 좌절이나 모두. 하물며, 전쟁이다. 전쟁을 겪고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살아남은 걸까?’라고 말이다. 전쟁은 죽거나 죽지 않거나 하는 문제이니, 살기 위해서 죽여야 했던 사람이 있을 것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봤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을 것인지 말이다.
1954년, 덴마크에서 번역 출간된 책의 표지에는 ‘X 하사’를 연상시키는 남자가 그려져 있다.
표지의 남자가 쓰고 있는 모자는 ‘오버시즈 캡(Overseas Cap)’으로, 미군들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쓰던 챙 없는 약식 모자다.(이미지 출처: amazon website)
그는 J. D. 샐린저의 단편 소설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에서 ‘나’이거나 ‘X 하사’로 등장한다. 내가 이 남자를 가장 딱하게 여기게 된 것은 담담한 목소리 때문이다. 어디 담담하기만 한가? 유머도 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담담하면서 동시에 유머까지 구사하며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는 이 남자를 보면 말할 수 없이 슬퍼진다. 나는 그가 곧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가 죽은 사람과 죽인 사람들의 그림자를 지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슬프고 서툰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총알이 쏟아지는 가운데 산책을 나가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내 주위에서 터지는 번갯불의 번뜩임은 무시했다. 번갯불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나 그러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니까.” ‘번갯불의 번뜩임’이란 그러니까 대포나 폭탄이나 총알이나 그런 것이다. ‘총성이 대지를 뒤덮었다’라고 하지 않고 ‘내 주위에서 터지는 번갯불의 번뜩임’이라 표현하는 이 비범한 남자는 대체 어디를 가고 있나? 별다른 목적은 없다. 단지 간절히, 아주 간절히 걷고 싶고, 세상의 한 부분과 접촉하고 싶어 한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전투 하루 전 교회에서 만난 소녀
J. D. 샐린저는 1941년 12월,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자 통신 장교 학교와
테네시주 내슈빌의 항공 사관 후보생의 육상 훈련 학교에서도 근무하기도 했다.(이미지 출처: NY Times website)
그 간절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남자가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 알아야 한다. 미국인인 그는 영국 데번에서 3개월째 ‘다소 전문화된’ 침공 전 훈련을 받는 중인데 그게 막 끝났다. 그리고 내일 실전에 투입된다. 어쩌면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의 말대로 “번갯불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나 그러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니까.” 번갯불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다면 그의 산책은 마지막 일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편지를 가족과 연인들에게 쓰는 비장한 부대원들을 뒤로하고 나와 어느 교회에 가게 된다. 무심코 게시판을 읽다 어린이 성가대 연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어린이의 부모들 틈에서 그걸 보게 된다. 그리고 에스메를 만난다.
두드러지는 음색을 지녔지만, 자기의 노래 실력을 지겨워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열세 살가량의 소녀가 에스메다. 교회에서 나온 남자가 비를 피해 들어온 카페에 에스메도 들어오고 둘은 눈이 마주치고 미소를 교환했던 것이다. “그것은 조용하고 기품 있는 미소들이 때때로 그러하듯, 기이하게 빛나는 미소”였다고 말하는 남자는 에스메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간 “그가 놓치고 있던 사교적인 균형 감각”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오랫동안 사교는커녕 교류도 없었다. “붙임성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그의 동료 정보병들은 업무가 끝나면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자유 시간을 가진다. 세상에는 이런 내성적이고 개인주의자인 군인들이 나오는 전쟁 소설도 있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군인들처럼 패거리를 지어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고 이렇게 고요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군인들, 무슨 연구소의 연구원들처럼도 보이는 군인 같지 않은 군인들, 꽤나 독특하다고 말해지는 60명의 정보병에게 나는 헤밍웨이의 활달한 군인들보다 더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군대에 끌려오기 전에는 어땠나? 그에게는 말이 안 통하는 부인과 부인을 닮은 장모가 있었고, 그들은 지금도 곧 죽을 수도 있는 남편과 사위에게 투정 어린 일상에 대해 쓰거나 아니면 캐시미어 털실을 사서 보내 달라고 하고 있다. 또, 일 년쯤 지나 이 남자가 얼굴을 실룩대고, 수전증과 신경 쇠약을 얻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전쟁에서 망가졌을 때 그의 형은 어떤 편지를 보냈던가? “이제 전쟁도 끝나고, 모르긴 해도 네가 여유가 생길 테니까”라며 총검이나 나치 문양을 자기 아이들에게 보내 주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고……. 그는 찢어버린다.
성인 남자와 소녀가 나눈 빛나고 진귀한 30분
나는 얼마 전에 낸 책에서 이 남자와 에스메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소설은 성인 남자가 열세 살 소녀 에스메와 나누는 빛나고도 진귀한 만남의 기록이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미국 남자가 영국으로 파병 가지 않았더라면 이 진귀한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30분간 대화를 하면서 인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그건 이 소설에서 ‘나’인 성인 남자가 ‘열세 살 소녀에게 인생이 있어?’라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소녀로부터 인생을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흔치 않은 남자라서 그렇다.”라고.
에스메는 전쟁터로 나가는 그에게 이렇게 당부했었다. “아저씨의 모든 재능을 그대로 지닌 채 전쟁에서 귀환하길 바랄게요.” 그는 에스메의 당부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명색이 단편 소설 작가인 그가 단편 소설 한 편을 읽으려다 한 시간이 넘도록 같은 단락에 머물러 있고, 더 읽어내질 못한다. 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경 쇠약에 걸렸는데 그의 동료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여자친구에게서 들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단지 전쟁 때문에 신경 쇠약에 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원래 문제가 있었고, 인생 전체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전하며 편지에 쓸 문구를 알려 달라는 무신경한 동료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그녀의 통찰력이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고.
전쟁 때문에 모든 게 서툴고 비참해진
얼굴도 모르는 무신경한 여자한테 인생을 폄훼당하면서도 이 남자는 유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인간이다. 아름다운 인간이 망가진 것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증에 시달리며 이렇게까지 말해지는 상태이다. “그는 여러 개의 전구가 전선에 줄줄이 달려 있어도 단 하나의 전구에 흠이 있으면 불이 모두 나가버릴 수밖에 없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라고. 그러니 자기의 모든 재능을 그대로 지닌 채 전쟁을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남자가 얼마나 서툴고 비참하게 되었나. 지루하고 한심한 편지일망정 뜯는 것조차 어렵고, 편지를 쓰기 위해 타자기에 종이를 끼우는 것도 어렵다. 단편 소설 작가이고, 글을 쓰는 게 살아가는 이유였을 그인데 말이다. “손가락들이 이제는 너무 심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두 손을 옆구리에 내린 다음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편지지를 손으로 구겨버리고 말았다.”라는 문장을 읽다가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전쟁에 나간 사람은 있어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말이다.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를 썼으며 테마 소설집 『도시와 나』, 『안녕, 평양』 등에도 작품을 실었다. 에세이로는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오늘도 초록』,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등의 책을 썼다.
댓글(1)
김**
2021-03-27
전쟁에 나간 사람은 있어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가슴을 치게 하네요. 좋은 글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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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 J. D. 샐린저 단편 소설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
한은형
2021-03-22
얼굴도 모르는 무신경한 여자한테 인생을 폄훼당하면서도 이 남자는 유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인간이다. 아름다운 인간이 망가진 것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증에 시달리며 이렇게까지 말해지는 상태이다. “그는 여러 개의 전구가 전선에 줄줄이 달려 있어도 단 하나의 전구에 흠이 있으면 불이 모두 나가버릴 수밖에 없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라고…….
살아 돌아왔지만 가장 딱한 사람
J. D. 샐린저의 『아홉 가지 이야기』 안에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가 실려 있다. 최승자 시인이 우리말로 옮겼다. (이미지 출처: 알라딘)
그 남자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딱한 사람이다. 소설 속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말이다. 나이는 20대 중후반으로 추정, 현재 직업은 군인, 이름은 모른다. 이 남자는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격전지에 투입되어 망가지게 된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도 많고, 팔다리가 잘린 사람도 많은데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느냐고?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겪고 나면 그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이다. 연애나 실패나 좌절이나 모두. 하물며, 전쟁이다. 전쟁을 겪고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살아남은 걸까?’라고 말이다. 전쟁은 죽거나 죽지 않거나 하는 문제이니, 살기 위해서 죽여야 했던 사람이 있을 것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봤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을 것인지 말이다.
1954년, 덴마크에서 번역 출간된 책의 표지에는 ‘X 하사’를 연상시키는 남자가 그려져 있다.
표지의 남자가 쓰고 있는 모자는 ‘오버시즈 캡(Overseas Cap)’으로, 미군들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쓰던 챙 없는 약식 모자다.(이미지 출처: amazon website)
그는 J. D. 샐린저의 단편 소설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에서 ‘나’이거나 ‘X 하사’로 등장한다. 내가 이 남자를 가장 딱하게 여기게 된 것은 담담한 목소리 때문이다. 어디 담담하기만 한가? 유머도 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담담하면서 동시에 유머까지 구사하며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는 이 남자를 보면 말할 수 없이 슬퍼진다. 나는 그가 곧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가 죽은 사람과 죽인 사람들의 그림자를 지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슬프고 서툰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총알이 쏟아지는 가운데 산책을 나가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내 주위에서 터지는 번갯불의 번뜩임은 무시했다. 번갯불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나 그러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니까.” ‘번갯불의 번뜩임’이란 그러니까 대포나 폭탄이나 총알이나 그런 것이다. ‘총성이 대지를 뒤덮었다’라고 하지 않고 ‘내 주위에서 터지는 번갯불의 번뜩임’이라 표현하는 이 비범한 남자는 대체 어디를 가고 있나? 별다른 목적은 없다. 단지 간절히, 아주 간절히 걷고 싶고, 세상의 한 부분과 접촉하고 싶어 한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전투 하루 전 교회에서 만난 소녀
J. D. 샐린저는 1941년 12월,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자 통신 장교 학교와
테네시주 내슈빌의 항공 사관 후보생의 육상 훈련 학교에서도 근무하기도 했다.(이미지 출처: NY Times website)
그 간절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남자가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 알아야 한다. 미국인인 그는 영국 데번에서 3개월째 ‘다소 전문화된’ 침공 전 훈련을 받는 중인데 그게 막 끝났다. 그리고 내일 실전에 투입된다. 어쩌면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의 말대로 “번갯불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나 그러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니까.” 번갯불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다면 그의 산책은 마지막 일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편지를 가족과 연인들에게 쓰는 비장한 부대원들을 뒤로하고 나와 어느 교회에 가게 된다. 무심코 게시판을 읽다 어린이 성가대 연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어린이의 부모들 틈에서 그걸 보게 된다. 그리고 에스메를 만난다.
두드러지는 음색을 지녔지만, 자기의 노래 실력을 지겨워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열세 살가량의 소녀가 에스메다. 교회에서 나온 남자가 비를 피해 들어온 카페에 에스메도 들어오고 둘은 눈이 마주치고 미소를 교환했던 것이다. “그것은 조용하고 기품 있는 미소들이 때때로 그러하듯, 기이하게 빛나는 미소”였다고 말하는 남자는 에스메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간 “그가 놓치고 있던 사교적인 균형 감각”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오랫동안 사교는커녕 교류도 없었다. “붙임성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그의 동료 정보병들은 업무가 끝나면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자유 시간을 가진다. 세상에는 이런 내성적이고 개인주의자인 군인들이 나오는 전쟁 소설도 있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군인들처럼 패거리를 지어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고 이렇게 고요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군인들, 무슨 연구소의 연구원들처럼도 보이는 군인 같지 않은 군인들, 꽤나 독특하다고 말해지는 60명의 정보병에게 나는 헤밍웨이의 활달한 군인들보다 더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군대에 끌려오기 전에는 어땠나? 그에게는 말이 안 통하는 부인과 부인을 닮은 장모가 있었고, 그들은 지금도 곧 죽을 수도 있는 남편과 사위에게 투정 어린 일상에 대해 쓰거나 아니면 캐시미어 털실을 사서 보내 달라고 하고 있다. 또, 일 년쯤 지나 이 남자가 얼굴을 실룩대고, 수전증과 신경 쇠약을 얻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전쟁에서 망가졌을 때 그의 형은 어떤 편지를 보냈던가? “이제 전쟁도 끝나고, 모르긴 해도 네가 여유가 생길 테니까”라며 총검이나 나치 문양을 자기 아이들에게 보내 주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고……. 그는 찢어버린다.
성인 남자와 소녀가 나눈 빛나고 진귀한 30분
나는 얼마 전에 낸 책에서 이 남자와 에스메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소설은 성인 남자가 열세 살 소녀 에스메와 나누는 빛나고도 진귀한 만남의 기록이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미국 남자가 영국으로 파병 가지 않았더라면 이 진귀한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30분간 대화를 하면서 인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다. 그건 이 소설에서 ‘나’인 성인 남자가 ‘열세 살 소녀에게 인생이 있어?’라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소녀로부터 인생을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흔치 않은 남자라서 그렇다.”라고.
에스메는 전쟁터로 나가는 그에게 이렇게 당부했었다. “아저씨의 모든 재능을 그대로 지닌 채 전쟁에서 귀환하길 바랄게요.” 그는 에스메의 당부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명색이 단편 소설 작가인 그가 단편 소설 한 편을 읽으려다 한 시간이 넘도록 같은 단락에 머물러 있고, 더 읽어내질 못한다. 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경 쇠약에 걸렸는데 그의 동료는 심리학을 전공하는 여자친구에게서 들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단지 전쟁 때문에 신경 쇠약에 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원래 문제가 있었고, 인생 전체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전하며 편지에 쓸 문구를 알려 달라는 무신경한 동료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그녀의 통찰력이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고.
전쟁 때문에 모든 게 서툴고 비참해진
얼굴도 모르는 무신경한 여자한테 인생을 폄훼당하면서도 이 남자는 유머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인간이다. 아름다운 인간이 망가진 것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증에 시달리며 이렇게까지 말해지는 상태이다. “그는 여러 개의 전구가 전선에 줄줄이 달려 있어도 단 하나의 전구에 흠이 있으면 불이 모두 나가버릴 수밖에 없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라고. 그러니 자기의 모든 재능을 그대로 지닌 채 전쟁을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남자가 얼마나 서툴고 비참하게 되었나. 지루하고 한심한 편지일망정 뜯는 것조차 어렵고, 편지를 쓰기 위해 타자기에 종이를 끼우는 것도 어렵다. 단편 소설 작가이고, 글을 쓰는 게 살아가는 이유였을 그인데 말이다. “손가락들이 이제는 너무 심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두 손을 옆구리에 내린 다음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편지지를 손으로 구겨버리고 말았다.”라는 문장을 읽다가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전쟁에 나간 사람은 있어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말이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이해의 능력’ - 이상한 사람,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를 썼으며 테마 소설집 『도시와 나』, 『안녕, 평양』 등에도 작품을 실었다. 에세이로는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오늘도 초록』,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등의 책을 썼다.
댓글(1)
김**
2021-03-27전쟁에 나간 사람은 있어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가슴을 치게 하네요. 좋은 글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감정을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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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 사회 이해 및 고증 부족한 시대극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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