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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 꾸밈없고 용기 있는 노래, 자우림의 <샤이닝> - 당신은 어떤 '가요' -

최은영

2021-03-19

당신은 어떤가요는? 누구에게나  살면서 기쁘고 즐겁고 놀라고 슬프고 우울했을 때, 혹은 무심코 한 시절 건너가고 있을 때 가슴 한구석 갑자기 훅 들어와 자리 잡았던 노래 한곡 있었을 터.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연히 만났지만 참 특별했던 자신만의 노래에 얽힌 추억과 이야기를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정은 나쁜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않고 지나가면 병이 된다. <샤이닝>을 처음 들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는 문장을 쓰면서 나는 조금 주저했다. 내 안의 오래된 비판자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중2병이냐? 음악 듣고 감상에 젖어서 눈물이나 흘리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진실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우림 6집 ashes to ashes 출처 예스24

자우림 6집 (이미지 출처 : 예스24)



샤이닝


노래/자우림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의 나 홀로 서 있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 있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자우림의 <샤이닝>은 꾸밈이 없는 노래다. 외로움, 괴로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고통이 별다른 수사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글쓰기를 할 때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인물의 행동이나 습관, 표정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글을 쓸 때의 감정이나 정서가 진실하다면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거나 에둘러 세련되게 표현하거나 하는 건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한 감정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전해지기 마련이라는 믿음이 생겨서다.


<샤이닝>이 전하는 감정은 강렬하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사 내용 그대로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내 앞에 보여주는 것 같았고 나는 이 노래를 통해 위로받았고 분명 정화되었다. 내게 전달된 이 감정은 진실한 것이었다. 짐작하고 꾸며서 그런 척 이런 노래를 만들어내고 부를 수는 없다. 그 어둡고 어려운 감정들을 하나하나 느끼고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이런 노래를 만들어내고 부르고 타인들과 연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감정을 제대로 못 느끼게 하나



부끄러움

부끄러움



감정적인 것은 나약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회에서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건 거의 금기시되어 있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것이 인간의 타고난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감정을 억압하는 학습을 하며 어른이 된다. 그러다 보니 자기감정을 잘 모르고,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니 그것을 당연히 소화하지 못하고 치워버린다. 치워버린 감정은 어디로 가나.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자기 마음 안에 남아서 소화되지 못한 채로 가라앉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나는 내가 내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친숙한 감정은 슬픔이었는데 슬픔을 느끼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을 정도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일매일 슬픔을 느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내가 슬프다는 걸 안다고. 나는 내 슬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상담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내가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나의 더 깊은 감정들을 가려 덮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슬프다고 느끼는 그 순간, 내가 억압했던 감정은 대부분의 경우 분노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나의 분노는 누구에게도 수용되지 못했고 분노를 표출하는 건 부끄러운 일,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내 안에 자리 잡았기에 나는 화가 날 때조차도 내가 화가 나는 줄 인식하지 못했고 무작정 슬퍼하거나 불안해했다.


상담을 받을 때 가장 어려웠던 건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한참을 이야기하면 상담 선생님은 ‘지금 무슨 감정이에요?’라고 물으셨는데 그 순간 정말 대부분의 경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거나 슬플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상담 2년 차에 접어들어서야 나는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화가 나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분노를 인지하고, 내게 분노가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더는 부끄럽거나 죄스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상생활을 할 때도 내가 화가 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내 분노의 이유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나갈 수 있었다.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않고 지나가면 병이 된다. <샤이닝>을 처음 들었을 때 눈물을 흘렸다는 문장을 쓰면서 나는 조금 주저했다. 내 안의 오래된 비판자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중2병이냐? 음악 듣고 감상에 젖어서 눈물이나 흘리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나는 그의 말이 더는 두렵지 않기에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 내면의 비판자는 내 마음의 독재자였고 감정을 느끼는 나를 큰 소리로 조롱하고 꾸짖었다. 나는 그에게 복종했고 늘 죄스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상담을 2년 정도 진행하고 나서야 나는 내 안의 비판자의 목소리가 사실은 형편없는 두려움의 목소리라는 것을 인지했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하고 수치스러워하는 마음은 모두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샤이닝>은 용기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노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고, 이토록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 이 노래는 세상에 나왔고 숱한 사람들의 마음과 연결되었다.



몰랐던 감정을 대신해 수많은 사람을 살린

 

쓰시마 유코 소설, 김훈아 옮김 묵시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쓰시마 유코 소설 『묵시』 책 표지(이미지 출처 : 알라딘)



<샤이닝> 공연 영상에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 노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을까.’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문자 그대로 이 노래는 사람들을 살렸을 것이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상상하는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이 노래를 들으며 쓰시마 유코(일본의 소설가, 1947~2016)가 쓴 『묵시』가 생각났다. 자신의 상실의 경험에 대해 쓴 단편들의 모음집인 『묵시』는 읽기 쉬운 소설이 아니었다. <샤이닝>에서 느껴지는 화자의 감정이 『묵시』에 실린 한 편, 한 편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버려졌다는 느낌, 소속될 수 없다는 느낌, 가장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느낌, 단절되는 느낌, 외로움, 말 그대로 ‘살아있다는 괴로움’. 읽으며 마음이 아프면서도 내가 몰랐던 내 감정을 작가가 설명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덜 외로워졌고 그런 글을 쓴 작가의 용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작가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내고 혼자 일하는 존재들이다. 때로는 내가 세상 사람들과 너무 외따로 지내 인간 집단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나는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나 또한 내 글을 통해 나와 단 한 번 스치지 않은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곤 한다.


자우림의 음악이, 쓰시마 유코의 글이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놓친 감정을 살피고 나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고 너그러워질 수 있게 했듯이 나의 글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가갈 수 있다면 작가로서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



 

[당신은 어떤 ‘가요’] 감정을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당신은 어떤 ‘가요’] 눈이 오네. 눈이 쌓이네. 그리고 녹아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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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최은영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2014년, 2017년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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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진 이미지

김**

2021-03-25

노래 가사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

정** 사진 이미지

정**

2021-03-27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반짝입니다. 글이 전해주는 색다른 즐거움으로.......감정은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때마다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즐거움이나 기쁨 등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드러내지만 아쉬움, 안타까움, 분노, 힘겨움처럼 좋지 않은 감정은 참아야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그래서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이성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남길 수 있어요.힘들고 어려울수록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 속으로는 어쩔 줄 모르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고 지나치는 게 바른 생활을 하는 것처럼.자우림의 '샤이닝'을 듣고 있으니 마음의 끈이 툭 풀어지는......잔잔하면서도 단순하게 부르는 노래는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애써 외면해온 자신을 마주하며 감정에 솔직해도 괜찮다고 다독여봅니다. 유코의 '묵시' 제목에서 전해져오는 묵묵함은 궁굼함을 갖게 합니다. 꼭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비오는 봄 날 오후, “샤이닝“과 함께 하는 시간은 특별한 선물로......

심** 사진 이미지

심**

2021-03-28

노래가사가 주는 감동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노래가사 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여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박** 사진 이미지

박**

2021-03-31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노래가 있지요. 음악이 만들어주는 힘은 그 시대속으로 이끌어가는 강력함이 있는데 < 샤이닝> 음악을 통해 마음을 끄집어내는 것, 삭막한 세상이라 마음일 꺼내는 것이 때로는 스스로에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가로막에서 벗어나 내 감정에 솔직해질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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