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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기 쉽지 않은 현실 속 탈출구, 청년 세대의 ‘회귀’ 충동

- K컬처로 인문하기 -

이상연

2021-02-26

k컬처로 인문하기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요, 드라마, 음식, 영화 등 문화전반을 통틀어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k컬처 현상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난 점, 다른 나라의 문화를 부러워만 했던 과거로부터 탈출한 점은 환영하고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k컬처 현상의 원천이 무엇이고 나아가 k컬처의 어떤 면이 세계의 주목을 끄는지, 앞으로 k컬처가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본격적으로 고찰해본 적은 없는 듯하다. 인문학의 시각으로 k컬처 현상을 진단하고 그것의 무궁한 가능성과 열린 미래를 그려보는 장을 마련해봤다.



거의 사건, 과거의 상처로부터 극복하고 나 자신을 긍정하자는 메시지는 케이팝에서 아주 뚜렷하게 반복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대표 앨범인 <화양연화> 시리즈의 내용은 이렇다. 각각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멤버들이 있다. 멤버 중 한 사람인 진은 이들을 꿈으로 초대하고 그들이 가진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되돌려 그들을 상처 입힌 사건들의 전개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파편화된 이미지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추리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수많은 팬은 ‘감동받았다’......



시간을 되돌이키는 주인공들의 등장


 

영화 테넷 포스터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영화 <테넷> 포스터(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요즘 들어 시간을 되돌이키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천천히 떠올려보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이야기가 눈에 띄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년 하반기 말 코로나 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부터 넷플릭스 개봉작 <콜> 같은 영화들뿐만 아니라 드라마 <철인황후>, <앨리스> 등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거나 혹은 과거와 직접적으로 소통해서 현재의 사건을 바꿔버리는 이야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왜 지금의 대중들은 시간을 되돌리는, 과거와 소통하는 이야기에 빠진 것일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이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을 이동하는 모든 작품을 ‘타임 슬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장르는 다시 세부적으로 나뉜다. 일정한 시간대 예를 들면, 하루, 몇 달, 몇 년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루프물’도 있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주인공이 혼자서 갑자기 여행하듯 과거 혹은 ‘이세계(異世界)로’ 떨어지는 ‘회귀물’도 있다.(현재 장르소설 시장에서는 이세계로 가는 이야기 또한 ‘회귀물’ 로 인식되고 있다.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이세계로 가는 것 또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을 공유한다고 가정한다. 필자 주)


한 장르의 다양한 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일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과감히 제안하자면 이러한 모든 시간 여행물은 하나의 충동을 공유한다. 과거를 극복해 미래로 나가고 싶은 그 마음이다. 과거를 극복한다는 것은 마음속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그것을 이겨낸 힘으로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커밍업쇼트 책 표지 이미지 출처 알라딘

<커밍업쇼트> 책 표지(이미지 출처 : 알라딘)



미국의 사회학자인 제니퍼 M. 실바 인디애나 대학 교수가 2013년 발표한 『커밍 업 쇼트』(2020.10.10., 리시올 발행)에 따르면 지난 30여 년간 경제·산업·시민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서 젊은 청년들이 성인으로서 성장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송두리째 바꾸었다. 노동 환경이 유연화됨에 따라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가족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 세대로부터 완전히 자립하기 힘들어진 청년들은 기존의 경제적,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성인 자아를 구축할 수 없다. 남은 것은 “과거에 겪은 고통의 치유를 성인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아 해방되고 변형된 성인 자아를 구축”하는 일뿐이다. 미국 사회의 노동 계급 청년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지만 충분히 대한민국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청년들 역시 과거로 돌아가 지난 상처를 극복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는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과거를 반복하는 청년들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역사 발전 혹은 미래를 믿기 힘든 청년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책 표지 이미지 출처 알라딘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책 표지(이미지 출처 : 알라딘)



지난해 5월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의 ‘청년 고용의 현황 및 정책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에 들어가 일을 시작하는 것이 1년 늦어질 경우, 같은 연령의 근로자에 비해 약 10년간 임금이 연평균 4~8% 낮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청년 실업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취업 포기자 비율이 25% 이상 급증한 상황 속에서 청년 세대에 대한 전망을 알려 주는 각종 지표 역시 눈에 띄게 악화하였다. 누구도 청년들의 미래와 상대적 빈곤에 대해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청년들의 리스크는 개인의 책임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다가올 삶에 대해 긍정할 수 없는 청년들은 더이상 역사가 발전한다는 명제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다. 자본을 확보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무기력감을 줄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그 사실만이 공평한 상황에서 과거는 누구나 가진 유일한 것이다. 이들은 이제 과거로부터 성장의 서사를 찾는다. 과거의 아픔을 이겨냈던 나만이 아는 나의 성장 이야기 말이다. ‘힐링’이나 ‘상처’를 주제로 하는 대중서들의 인기 또한 이런 일련의 흐름을 증명한다. 2018년도 종합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같은 책은 직접적으로 “이제는 어른이 된 그때의 어린이들”을 향해 쓰인 책이다. 이런 현상은 젊은 세대가 어른이 된 자신에게 뚜렷하게 이질적인 감각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이세계’



시간을 되돌리는 이미지

시간을 되돌리는 이미지



이러한 대중의 무의식을 또렷하게 반영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이다. 이제 대중 문학, 대중 문화의 영역에서는 과거를 강렬하게 인식하는 콘텐츠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수의 문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청년들이 주 소비자가 되어 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웹 소설 시장에서도 ‘회귀’는 비교 대상이 없다고 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일명, ‘회귀물’이라고 이름 붙은 세부 장르에서 나온 일련의 작품들은 거의 시장을 대표할 만한 흐름을 보여 준다. 회귀라는 말은 작품에서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다수 작품에서 주인공은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으며 사건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주인공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사건에 휩쓸려 수동적으로 시간이 바뀌었다면 ‘회귀’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귀라는 말에 내재된 분명한 의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의지가 반영된 일이다. 평범한 인물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대입할 여지가 많은 주인공은 과거로, 과거로 기꺼이 돌아가고자 하며 오직 과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을 경험한다. 그렇기에 많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기꺼이 과거로 돌아가길 원한다.


다음은 ‘회귀물’의 예시이다.

경제적 궁핍, 반복되는 일상, 기약 없는 미래에 지친 아주 평범한 10대, 20대 대한민국 청년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이세계’(異世界)1)에서 눈을 뜬다. ‘이세계’(異世界)는 종종 그들이 보던 소설책 속 세계이기도 하고, 현실 세계의 역사적 분기점이 된 어떤 시기이기도 하다.(예를 들면, 임진왜란,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 등) 회귀 후 그들은 ‘이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거나 아름다운 외모와 든든한 배경 그리고 무엇보다 비할 데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힘을 갖게 된 주인공은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 한다. 그리고 사랑을 한다. 모든 토대의 불안이 소거된 상황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과 대의와는 상관없는 로맨스의 실현이다. 물론 이러한 '로맨스 중심주의'에 반대하여 특별히 의도를 갖고 로맨스를 없애는 대안적 흐름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서 그릇된 행동들을 바로잡고 그곳에서 진정한 사랑을 차지하는 일련의 서사들은 오히려 지금 동시대의 현실 사회에서 청년들이 무엇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지 말해 준다.

1) 이세계(異世界) :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



공평한 것은 시간뿐, 과거만 자아성장 동력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 이미지 출처 문피아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미지 출처 : 문피아)



200억 매출, 누적 조회 수 2억 회에 달하는 메가 히트작 『전지적 독자 시점』(작가 싱숑)은 웹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이와 같은 ‘회귀’ 웹 소설은 몇 년간, 몇백 프로의 성장을 거쳐오며 청년 문화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웹 소설 읽는 것이 취미인 평범한 회사원 김독자는 어느 날 어렸을 때부터 읽어온 소설이 완결되었다는 걸 알게 되고 고마움을 담아 작가에게 쪽지를 보낸다. 다음날 김독자는 소설 속 세상에서 눈을 뜬다. 유일하게 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는 김독자는 올바른 결말을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주인공인 김독자와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 두 사람이 겪어가는 모험을 통해 흘러가는 이 이야기는 회귀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는다. 주인공은 평범한 인물이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세계로 이동한다. 자신의 기억은 유지되고 있지만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며 세계를 변혁하고자 한다. 또한 일정한 시간대를 반복하기도 한다. 여기서 세계와 ‘나’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깝다. ‘나’는 세계를 바꾸는 데 직접 참여하며 세상의 운명을 쥐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제니퍼 M. 실바의 분석을 가져오자면, 청년 시기에 최상의 삶을 도출해야 할 모든 ‘선택’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실질적으로 삶을 더 낫게 할 그 어떤 조건도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자아의 성장과 진보는 ‘상상’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사실상 시간뿐인 상황에서 과거만이 자아 성장의 재료가 된다. 과거를 반복하는 것, 다시 말해 루프함으로써 자신의 통제력과 성장, 그리고 세상에 대한 선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무기력 혹은 간절함... BTS <화양연화> 시리즈도



방탄소년단 화양연화 시리즈 이미지 출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 <화양연화> 시리즈(이미지 출처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또한 ‘루프물’이 활발하게 활용되는 분야는 또 있다. 바로, 케이팝이다. 과거의 사건, 과거의 상처로부터 극복하고 나 자신을 긍정하자는 메시지는 케이팝에서 아주 뚜렷하게 반복되고 있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을 대표하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화양연화> 시리즈(‘I NEED U’, ‘쩔어’, ‘RUN’ 등의 대표곡이 있다.)의 내용은 이렇다. 각각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멤버들이 있다. 멤버 중 한 사람인 진은 이들을 꿈으로 초대하고 그들이 가진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되돌려 그들을 상처입힌 사건들의 전개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파편화된 이미지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추리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수많은 팬은 ‘감동 받았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음악에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은 방탄소년단이 구가하는 전 지구적 인기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고자 하는 충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지를 택해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감각은 역사 발전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무기력이 선택하는 반로(返路)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선택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될 수 있다는 강렬한 마음의 증표이기도 하다. 과거를 통해서만 존엄을 얻을 수 있는 이 시대의 가장 유효한 서사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소설을 통해, 음악을 통해서 해방과 성장을 상상한다. 미래를 변화시킬 수 없는 시대의 정확한 표상이다.




 

[K컬처로 인문하기] 바꾸기 쉽지 않은 현실 속 탈출구, 청년 세대의 ‘회귀’ 충동

[K컬처로 인문하기] 한국문학, 세계를 향해 이제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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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이상연

대중문화 평론가
영상이론을 공부하고 지금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공저로 『비주류 선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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