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시집이 꾸준히 출판된다고, 수많은 시인이 시를 쓰고 있노라고 무슨 케이팝 자랑하듯 우리의 시단과 시집 출판을 자랑스레 여기면서 본질적인 질문은 외면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시집을 만드는 과정보다, 이 시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항상 곤궁... ...
신용목 시집 <아무 날의 도시>(이미지 출처 : 문학과지성사)
최근 번역원 주최의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사회자로 참여했습니다. 예년 같았으면 서울로 초청된 해외의 작가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을 자리지만, 올해는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터넷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초대 작가는 멕시코시티에 사는 젊은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멕시코에 있고 저는 여기에 있었지만 그도 시를 쓰고 저도 시를 쓴다는 공통점이 우리를 실제 거리보다 훨씬 가깝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웹사이트(https://poesiamexa.wordpress.com/)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젊은 시인들의 시와 프로필이 있었고요. 운영 계기를 물으니 그가 답하길 시집을 묶을 기회가 거의 없어 인터넷으로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비하면 해마다 새로운 시집이 쏟아지는 우리는 사정이 좀 나은가 싶다가도, 어떻게든 시를 쓰고 읽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짧은 대화를 나눴고, 펜데믹이 종료되고 우리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그날이 오길 함께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시는 누가 읽는 것일까요?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그래도 우리는 시집이 꾸준히 출판된다고, 수많은 시인이 시를 쓰고 있노라고 무슨 케이팝 자랑하듯 우리의 시단과 시집 출판을 자랑스레 여기면서 본질적인 질문은 외면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혹시 시가 수요 없는 시장에 과잉 생산되고 있는 상품이 아닌가 하는 저의 불민한 의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좋아서 쓰는 것과 이것이 좋기 때문에 권하는 건 다른 문제이겠죠. 사람들은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시집을 만드는 과정보다, 이 시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항상 곤궁했습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한 ‘무용함의 유용함’이 지금까지도 유효할까요. 우리는 그 문장에 기대 너무나도 게으르게 수십 년을 보낸 게 아닐까요. 이런 질문이 시를 쓰고, 시집을 만드는 내내 제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외면해도 그 자리에 있어요. 이 어려운 질문을 선생님께 드립니다. 무엇이든 답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려운 짐을 무턱대고 뜬금없이 떠안긴 것 같아 면구스럽습니다만,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는 반가움이 그 어려움을 상쇄하길 괜히 기대해 봅니다.
[이달의 질문] 쏟아지는 시집들... 우리는 시를 왜 읽어야 할까요? / 질문자 - 서효인 시인
Q. 시는 누가 읽는 것일까요?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시집을 만드는 과정보다, 이 시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항상 곤궁했습니다. 신용목 시인님에 답변을 구합니다.
시인,편집자
1981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매일같이 여러 책을 만나고 붙들고 꿰어서 내보내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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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시집들... 우리는 시를 왜 읽어야 할까요?
- 이달의 질문 -
서효인
2020-12-03
그래도 우리는 시집이 꾸준히 출판된다고, 수많은 시인이 시를 쓰고 있노라고 무슨 케이팝 자랑하듯 우리의 시단과 시집 출판을 자랑스레 여기면서 본질적인 질문은 외면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시집을 만드는 과정보다, 이 시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항상 곤궁... ...
신용목 시집 <아무 날의 도시>(이미지 출처 : 문학과지성사)
최근 번역원 주최의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사회자로 참여했습니다. 예년 같았으면 서울로 초청된 해외의 작가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을 자리지만, 올해는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터넷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초대 작가는 멕시코시티에 사는 젊은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멕시코에 있고 저는 여기에 있었지만 그도 시를 쓰고 저도 시를 쓴다는 공통점이 우리를 실제 거리보다 훨씬 가깝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웹사이트(https://poesiamexa.wordpress.com/)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젊은 시인들의 시와 프로필이 있었고요. 운영 계기를 물으니 그가 답하길 시집을 묶을 기회가 거의 없어 인터넷으로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비하면 해마다 새로운 시집이 쏟아지는 우리는 사정이 좀 나은가 싶다가도, 어떻게든 시를 쓰고 읽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짧은 대화를 나눴고, 펜데믹이 종료되고 우리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그날이 오길 함께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시는 누가 읽는 것일까요?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그래도 우리는 시집이 꾸준히 출판된다고, 수많은 시인이 시를 쓰고 있노라고 무슨 케이팝 자랑하듯 우리의 시단과 시집 출판을 자랑스레 여기면서 본질적인 질문은 외면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혹시 시가 수요 없는 시장에 과잉 생산되고 있는 상품이 아닌가 하는 저의 불민한 의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좋아서 쓰는 것과 이것이 좋기 때문에 권하는 건 다른 문제이겠죠. 사람들은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시집을 만드는 과정보다, 이 시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항상 곤궁했습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한 ‘무용함의 유용함’이 지금까지도 유효할까요. 우리는 그 문장에 기대 너무나도 게으르게 수십 년을 보낸 게 아닐까요. 이런 질문이 시를 쓰고, 시집을 만드는 내내 제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외면해도 그 자리에 있어요. 이 어려운 질문을 선생님께 드립니다. 무엇이든 답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려운 짐을 무턱대고 뜬금없이 떠안긴 것 같아 면구스럽습니다만,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는 반가움이 그 어려움을 상쇄하길 괜히 기대해 봅니다.
[이달의 질문] 쏟아지는 시집들... 우리는 시를 왜 읽어야 할까요? / 질문자 - 서효인 시인
Q. 시는 누가 읽는 것일까요?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시집을 만드는 과정보다, 이 시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항상 곤궁했습니다. 신용목 시인님에 답변을 구합니다.
12월 [이달의 질문] 쏟아지는 시집들... 우리는 시를 왜 읽어야 할까요? ⑦
11월 [이달의 답변] 숨은 역사 찾는 발굴과 보전, 개발 쫓겨 뒷전은 곤란 ⑥
11월 [이달의 질문] 문화재 보존 vs 경제 개발, 영원한 딜레마를 풀 해결책은 ⑤
시인,편집자
1981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매일같이 여러 책을 만나고 붙들고 꿰어서 내보내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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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모든 답이 그런 건 아니지만 모든 질문은 옳으니까요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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