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역사서는 정의로운 삶과 도덕적인 삶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삶을 꾸짖었지만 따져보면 정의로운 이와 도덕군자의 삶은 불행하고 그렇지 못한 이는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예가 더 많았다. 내세의 삶을 믿는 이에게는 이승의 불행과 부귀영화가 별것 아니겠지만, 시궁창에 뒹굴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역사가의 평가가 별 소용이......
역사는 사실과 기록, 역사학은 탐구와 구명
▲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미지 출처 : 까치)
<역사란 무엇인가?> 영국 출신의 외교관이자 유명한 역사학자 E. H. 카가 쓴 책 제목이다. 그런데 서점이나 도서관의 도서 목록을 살펴보면 다른 저자에 의한 같은 제목의 책이 몇 권 있고, 유사하거나 패러디한 제목을 가진 책이 숱하게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논제가 카의 독창적 물음이 아니라 역사학의 가장 기초적이며 궁극적인 검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역사 또는 역사학의 정의(定義)’를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흔히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떠올리지만, 카가 자신의 역사철학을 추상화한 말일 뿐 ‘역사’의 본래 정의는 아니다.
지난 호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사전에서는 ‘역사’를 “과거의 사실 또는 그 기록”으로 풀이하는데, 유명한 철학자인 헤겔이 그의 저서 『역사철학강의』에서 전자를 ‘객관적인 역사’로, 후자를 ‘주관적인 역사’로 구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전자는 과거의 사실 그 자체이며, 후자는 그 가운데 선택된 기록이다. ‘역사’의 서양식 표현인 히스토리 또는 히스토리아(historia)의 어원은 ‘탐구’ 또는 ‘구명(究明)’이다. ‘히스토리아’는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책 이름이기도 한데, 그는 이를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를 종합하면 ‘역사’는 사실과 기록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역사 서술과 역사학은 기록이 사실에 부합하는가를 탐구하고 구명하는 데서 비롯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역사를 왜 배우나?, 보편성과 현재와의 연관성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역사를 왜 배우는가?”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역사의 효용성 및 역사교육의 목적에 대한 물음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 이 질문을 하면 대개 답변을 머뭇거린다. 실제로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 즉 “박물학적 취미”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을 텐데, 그렇게 솔직하게 답변하면 속된 말로 ‘싼티’나 보일 것 같아서다. 때문에 대개는 “삶에 필요한 교훈을 얻기 위해”라든가, “과거 사실을 통해 현재 사실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이런 답은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 관련 도서에 나오는 설명을 따라한 것이다. 전자는 역사 속 사실과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 즉 역사가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시각에, 후자는 과거 역사가 현재와 미래와 연관되어 있다는 시각에 바탕하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즉 역사의 정의와 효용성에 대한 물음은 교양인뿐 아니라 전문 연구자도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역사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해 ‘소설’이라 평가받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긴다. 역사학에서는 재미보다는 ‘팩트’를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연구자가 ‘소설’ 다음으로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은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연구자 가운데 ‘소설’ 소리를 들은 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의미’ 타령은 석ㆍ박사 논문 심사 때 대다수가 겪어 본 일이다. 지도 교수와 심사위원들이 빠짐없이 하는 말인데, 연구의 필요성을 묻는 것이다. 문제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문을 썼거나 지도ㆍ심사 과정에서 첨삭을 당하여 연구자가 처음에 가졌던 문제의식이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을 지적하고 스스로 찾도록 깨우쳐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 지적은 그리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살아서 불행인데 사후 평가가 무슨 소용?
진정으로 수치스러운 순간은 역사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가 역사 공부를 신선놀음 취급하며 “그것이 인간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하고 타박할 때다. 전문연구자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역시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든가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식으로 항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신선놀음답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설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유사 이래로 과거의 역사만 열심히 연구한 책상물림이 정치ㆍ사회ㆍ경제ㆍ외교 등의 분야에 큰 족적을 드러내거나 탁월한 판단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다수 역사서는 정의로운 삶과 도덕적인 삶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삶을 꾸짖었지만(동양의 유교사관에서 말하는 포폄(褒貶)이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다.), 실상 따져보면 정의로운 이와 도덕군자의 삶은 불행하고 그렇지 못한 이는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예가 더 많았다. 종교가 확고하여 내세의 삶을 믿는 이에게는 이승의 불행과 부귀영화가 별것 아니겠지만, 시궁창에 뒹굴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역사가의 평가가 별 소용이 없다.
▲ 사마천(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과거의 역사가들도 이러한 부조리를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다. 『사기』를 지은 동양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은 열전 첫머리인 「백이열전」에서, 하늘의 도는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들었는데 백이ㆍ숙제와 안회는 불행한 삶을 살다 일찍 죽었으니, “하늘이 선인에게 보답함이 어찌 이와 같은가”하고 묻고, 나아가 도척이라는 악인은 사람의 고기를 날로 먹으며 천수를 누리다 죽었으니, 이 사람은 무슨 덕이 있어 이런 복을 누렸는가 하고 물었다. 황제1)에게 직언하다가 궁형2)을 받은 자신의 억울함을 백이ㆍ숙제와 안회의 불우한 삶에 빗대어 항변한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사탕을 줘야지 매를 준다면 무엇을 배우겠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항변으로 그쳤을 뿐, 하늘의 도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하늘이 자신에게 역사서술의 사명을 주었다고 여기고 수치와 고통을 감내하여 『사기』를 완성했다. 그는 “군자는 세상을 떠나서는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면서 백이ㆍ숙제의 이름을 드러낸 공자의 업적을 기리며 자신이 그 과업을 이었다고 천명했다.
1) 한나라 7대 황제 무제. 재위기간 기원전 147년~기원전 87년
2) 사람의 생식기능을 훼손시키는 형벌
이상한 짓을 않도록 해주는 역사 공부
하지만 모든 이가 사마천 같지는 않다. 자고로 군자는 소수요, 다수는 속인이라, 필자 같은 속인은 억울한 매를 감내할 용기가 없고, 사탕의 달콤함에 끌린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는 인간의 삶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의 권오영 교수는 최근 자신의 새롭게 내놓은 책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출간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이상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이상한 짓’이란 과도한 국수주의나 터무니없는 상상에 사로잡혀 역사상을 어지럽히거나 그에 현혹되는 것을 이르는데, 따라서 역사 공부가 이상한 짓을 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주사의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 감염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치료의 효험도 있다. 권오영 교수는 해당 저서의 ‘나가는 글’에서 자신이 학부시절 <환단고기>를 읽고 관심을 가졌고 전공수업 과제에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을 깊이 반영했던 것을 고백했다. 이후 고고자료와 문헌자료 공부를 통하여 그것이 이상한 짓임을 깨달았고 나아가 전문 연구자가 되었으니 공부를 통해 완치된 사례로 들 수 있겠다.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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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의 정의와 역사의 효용성
-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
윤진석
2020-10-12
2.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의 정의와 역사의 효용성
대다수 역사서는 정의로운 삶과 도덕적인 삶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삶을 꾸짖었지만 따져보면 정의로운 이와 도덕군자의 삶은 불행하고 그렇지 못한 이는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예가 더 많았다. 내세의 삶을 믿는 이에게는 이승의 불행과 부귀영화가 별것 아니겠지만, 시궁창에 뒹굴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역사가의 평가가 별 소용이......
역사는 사실과 기록, 역사학은 탐구와 구명
▲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미지 출처 : 까치)
<역사란 무엇인가?> 영국 출신의 외교관이자 유명한 역사학자 E. H. 카가 쓴 책 제목이다. 그런데 서점이나 도서관의 도서 목록을 살펴보면 다른 저자에 의한 같은 제목의 책이 몇 권 있고, 유사하거나 패러디한 제목을 가진 책이 숱하게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논제가 카의 독창적 물음이 아니라 역사학의 가장 기초적이며 궁극적인 검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역사 또는 역사학의 정의(定義)’를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흔히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떠올리지만, 카가 자신의 역사철학을 추상화한 말일 뿐 ‘역사’의 본래 정의는 아니다.
지난 호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사전에서는 ‘역사’를 “과거의 사실 또는 그 기록”으로 풀이하는데, 유명한 철학자인 헤겔이 그의 저서 『역사철학강의』에서 전자를 ‘객관적인 역사’로, 후자를 ‘주관적인 역사’로 구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전자는 과거의 사실 그 자체이며, 후자는 그 가운데 선택된 기록이다. ‘역사’의 서양식 표현인 히스토리 또는 히스토리아(historia)의 어원은 ‘탐구’ 또는 ‘구명(究明)’이다. ‘히스토리아’는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책 이름이기도 한데, 그는 이를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를 종합하면 ‘역사’는 사실과 기록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역사 서술과 역사학은 기록이 사실에 부합하는가를 탐구하고 구명하는 데서 비롯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역사를 왜 배우나?, 보편성과 현재와의 연관성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역사를 왜 배우는가?”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역사의 효용성 및 역사교육의 목적에 대한 물음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 이 질문을 하면 대개 답변을 머뭇거린다. 실제로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 즉 “박물학적 취미”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을 텐데, 그렇게 솔직하게 답변하면 속된 말로 ‘싼티’나 보일 것 같아서다. 때문에 대개는 “삶에 필요한 교훈을 얻기 위해”라든가, “과거 사실을 통해 현재 사실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이런 답은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 관련 도서에 나오는 설명을 따라한 것이다. 전자는 역사 속 사실과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 즉 역사가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시각에, 후자는 과거 역사가 현재와 미래와 연관되어 있다는 시각에 바탕하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즉 역사의 정의와 효용성에 대한 물음은 교양인뿐 아니라 전문 연구자도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역사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해 ‘소설’이라 평가받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긴다. 역사학에서는 재미보다는 ‘팩트’를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연구자가 ‘소설’ 다음으로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은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연구자 가운데 ‘소설’ 소리를 들은 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의미’ 타령은 석ㆍ박사 논문 심사 때 대다수가 겪어 본 일이다. 지도 교수와 심사위원들이 빠짐없이 하는 말인데, 연구의 필요성을 묻는 것이다. 문제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문을 썼거나 지도ㆍ심사 과정에서 첨삭을 당하여 연구자가 처음에 가졌던 문제의식이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을 지적하고 스스로 찾도록 깨우쳐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 지적은 그리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살아서 불행인데 사후 평가가 무슨 소용?
진정으로 수치스러운 순간은 역사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가 역사 공부를 신선놀음 취급하며 “그것이 인간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하고 타박할 때다. 전문연구자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역시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든가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식으로 항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시 신선놀음답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설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유사 이래로 과거의 역사만 열심히 연구한 책상물림이 정치ㆍ사회ㆍ경제ㆍ외교 등의 분야에 큰 족적을 드러내거나 탁월한 판단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다수 역사서는 정의로운 삶과 도덕적인 삶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삶을 꾸짖었지만(동양의 유교사관에서 말하는 포폄(褒貶)이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킨다.), 실상 따져보면 정의로운 이와 도덕군자의 삶은 불행하고 그렇지 못한 이는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예가 더 많았다. 종교가 확고하여 내세의 삶을 믿는 이에게는 이승의 불행과 부귀영화가 별것 아니겠지만, 시궁창에 뒹굴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역사가의 평가가 별 소용이 없다.
▲ 사마천(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과거의 역사가들도 이러한 부조리를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다. 『사기』를 지은 동양역사학의 아버지 사마천은 열전 첫머리인 「백이열전」에서, 하늘의 도는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들었는데 백이ㆍ숙제와 안회는 불행한 삶을 살다 일찍 죽었으니, “하늘이 선인에게 보답함이 어찌 이와 같은가”하고 묻고, 나아가 도척이라는 악인은 사람의 고기를 날로 먹으며 천수를 누리다 죽었으니, 이 사람은 무슨 덕이 있어 이런 복을 누렸는가 하고 물었다. 황제1)에게 직언하다가 궁형2)을 받은 자신의 억울함을 백이ㆍ숙제와 안회의 불우한 삶에 빗대어 항변한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사탕을 줘야지 매를 준다면 무엇을 배우겠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항변으로 그쳤을 뿐, 하늘의 도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하늘이 자신에게 역사서술의 사명을 주었다고 여기고 수치와 고통을 감내하여 『사기』를 완성했다. 그는 “군자는 세상을 떠나서는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면서 백이ㆍ숙제의 이름을 드러낸 공자의 업적을 기리며 자신이 그 과업을 이었다고 천명했다.
1) 한나라 7대 황제 무제. 재위기간 기원전 147년~기원전 87년
2) 사람의 생식기능을 훼손시키는 형벌
이상한 짓을 않도록 해주는 역사 공부
하지만 모든 이가 사마천 같지는 않다. 자고로 군자는 소수요, 다수는 속인이라, 필자 같은 속인은 억울한 매를 감내할 용기가 없고, 사탕의 달콤함에 끌린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는 인간의 삶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의 권오영 교수는 최근 자신의 새롭게 내놓은 책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출간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이상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이상한 짓’이란 과도한 국수주의나 터무니없는 상상에 사로잡혀 역사상을 어지럽히거나 그에 현혹되는 것을 이르는데, 따라서 역사 공부가 이상한 짓을 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주사의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 감염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치료의 효험도 있다. 권오영 교수는 해당 저서의 ‘나가는 글’에서 자신이 학부시절 <환단고기>를 읽고 관심을 가졌고 전공수업 과제에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을 깊이 반영했던 것을 고백했다. 이후 고고자료와 문헌자료 공부를 통하여 그것이 이상한 짓임을 깨달았고 나아가 전문 연구자가 되었으니 공부를 통해 완치된 사례로 들 수 있겠다.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2.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의 정의와 역사의 효용성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1. 재밌는 역사 이야기, 난해한 역사학 공부
역사학자. 계명대학교에서 철학과 사학을 복수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5~7세기 신라정치사를 연구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계명대학교 강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역사학 입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서>, <한국사 사료읽기>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2.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의 정의와 역사의 효용성'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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