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스카이라인을 올려다보며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습니다. 이 많은 아파트 중에 왜 내가 머물 집은 없을까, 서글픈 의문도 듭니다. 사람이 집을 고르는지 집이 사람을 고르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사상 처음으로 100%를 넘었습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3.3%를 기록했습니다.(출처 : e-나라지표)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집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60.1% (출처: ‘한국의 사회동향 2017’, 통계청). 주택 10채 중 여섯 채가 아파트입니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도 아파트가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치솟는 아파트 가격이 얄궂습니다. 사람들은 애가 탑니다.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9년을 모아야 서울에서 평균값 하는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수많은 젊은 이들은 내 집 장만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상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만을 꿈꿉니다.
산업화와 함께 하는 아파트 개발의 역사
산업화 시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집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허가 없이 대충 지은 판자촌이 늘어만 갔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획기적인 주거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값싼 시민아파트가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1966년, 서울시는 시장 김현욱을 중심으로 공격적으로 아파트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무허가 판자촌을 허물고 10만 호 아파트를 짓는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짓는 일이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이 위태로운 계획은 1970년 4월 8일 새벽, 마침내 사달을 내고 맙니다. 당시 ‘와우아파트’라는 이름의 5층짜리 아파트 한 동이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수많은 입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은 건축비를 빼돌린 담당자와 안전불감증에 걸린 건설사가 만든 총체적 인재였습니다. 시장이 물러나고, 시민아파트 사업은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정부는 민간 건설회사에 아파트 건축을 부추겼습니다. 대단지 아파트가 생겨났고,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높게 솟은 아파트의 높이를 보고 놀라고, 아파트 수에 한 번 더 놀랍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아파트 건설 붐은 우리나라 대도시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서울에서 아파트가 없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어떤 역사를 품고 있을까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충정아파트입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충정아파트는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 이름이 바뀌면서 아직까지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지은 최초의 한국식 아파트는 1958년, 성북구 종암동에 세운 종암아파트입니다. 4층짜리 건물 4동에 152가구인 종암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수세식 변기를 집안에 들여놓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엔 획기적인 주거시설이었죠. 당시에는 생소한 단어였던 ‘아파트먼트 하우스(apartment house)’라는 말을 이때부터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962년, 단지형 아파트의 효시인 마포아파트가 탄생하면서 아파트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마포아파트는 정부 주도로 주택건설을 추진하는 대한주택공사(현 LH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건설했습니다. 통칭 ‘주공’으로 불린 이 기관은 도시화에 따른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과 신도시, 신시가지 건설에 앞장섰습니다. 주공을 따라 많은 건설회사가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방보다는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먼저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강남 개발 이후 서울은 인구 분산을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신시가지를 여러 곳에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목동과 상계동의 아파트 단지뿐만 아니라 1990년대 조성된 일산, 분당, 산본 등의 서울 근교 지역은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진행된 아파트 개발 역사에는 개발 시대의 명암이 뚜렷하게 교차합니다.
빈민구제책에서 주거의 아이콘으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② 아파트
이중일
2019-09-30
아파트 스카이라인을 올려다보며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습니다. 이 많은 아파트 중에 왜 내가 머물 집은 없을까, 서글픈 의문도 듭니다. 사람이 집을 고르는지 집이 사람을 고르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사상 처음으로 100%를 넘었습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3.3%를 기록했습니다.(출처 : e-나라지표)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집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60.1% (출처: ‘한국의 사회동향 2017’, 통계청). 주택 10채 중 여섯 채가 아파트입니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도 아파트가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치솟는 아파트 가격이 얄궂습니다. 사람들은 애가 탑니다.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9년을 모아야 서울에서 평균값 하는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수많은 젊은 이들은 내 집 장만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상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만을 꿈꿉니다.
산업화와 함께 하는 아파트 개발의 역사
산업화 시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집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허가 없이 대충 지은 판자촌이 늘어만 갔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획기적인 주거대책이 필요했습니다. 값싼 시민아파트가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1966년, 서울시는 시장 김현욱을 중심으로 공격적으로 아파트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무허가 판자촌을 허물고 10만 호 아파트를 짓는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짓는 일이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이 위태로운 계획은 1970년 4월 8일 새벽, 마침내 사달을 내고 맙니다. 당시 ‘와우아파트’라는 이름의 5층짜리 아파트 한 동이 완전히 무너진 것입니다. 수많은 입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은 건축비를 빼돌린 담당자와 안전불감증에 걸린 건설사가 만든 총체적 인재였습니다. 시장이 물러나고, 시민아파트 사업은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정부는 민간 건설회사에 아파트 건축을 부추겼습니다. 대단지 아파트가 생겨났고,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높게 솟은 아파트의 높이를 보고 놀라고, 아파트 수에 한 번 더 놀랍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아파트 건설 붐은 우리나라 대도시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서울에서 아파트가 없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어떤 역사를 품고 있을까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충정아파트입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충정아파트는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 이름이 바뀌면서 아직까지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지은 최초의 한국식 아파트는 1958년, 성북구 종암동에 세운 종암아파트입니다. 4층짜리 건물 4동에 152가구인 종암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수세식 변기를 집안에 들여놓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엔 획기적인 주거시설이었죠. 당시에는 생소한 단어였던 ‘아파트먼트 하우스(apartment house)’라는 말을 이때부터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962년, 단지형 아파트의 효시인 마포아파트가 탄생하면서 아파트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마포아파트는 정부 주도로 주택건설을 추진하는 대한주택공사(현 LH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건설했습니다. 통칭 ‘주공’으로 불린 이 기관은 도시화에 따른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설과 신도시, 신시가지 건설에 앞장섰습니다. 주공을 따라 많은 건설회사가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방보다는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먼저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강남 개발 이후 서울은 인구 분산을 위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신시가지를 여러 곳에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목동과 상계동의 아파트 단지뿐만 아니라 1990년대 조성된 일산, 분당, 산본 등의 서울 근교 지역은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진행된 아파트 개발 역사에는 개발 시대의 명암이 뚜렷하게 교차합니다.
디자인 - ⓒ김지나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빈민구제책에서 주거의 아이콘으로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삶을 품어준, 집
박사
우주소년, 집을 떠날 준비를 마치다
최진영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