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몸 안에서 회충과 편충은 가진 자들이었다. 회충은 길이 30센티가량의 커다란 기생충이었고, 편충은 길이는 3~5센티에 불과하지만 기다란 채찍을 지니고 있어 다른 기생충들이 감히 맞서지 못했다. 그들은 음식물이 지나는 요충지에 자리를 잡고 맛있는 음식물을 독점했다. 처음에 다른 기생충들은, 그래 봤자 저들도 기생충인데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느냐고 생각했다. “우리가 멧돼지를 선택한 것도 멧돼지가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잖아. 회충, 편충이 먹고 남은 것만 먹어도 다른 곳에 사는 것보다 훨씬 잘 먹을 수 있다고.” 돌이켜보면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낙수효과1는 존재하지 않았고, 회충과 편충이 남겨준 것들은 도저히 못 먹을 것들뿐이었다.
기생충1: 야야, 콩나물 뿌리만 남았네. 우리가 아무리 기생충이라도, 이걸 어떻게 먹냐?
기생충2: 그러게 말이다. 이럴 바엔 일반 생물로 사는 게 훨씬 낫겠다.
그러던 차에 새로운 종이 탄생했으니, 크기가 작아 억압받던 기생충들에겐 새로운 기회였다. 인간들이 멧돼지를 사냥하던 날, 기생충 1, 2를 포함한 작은 기생충들은 멧돼지의 몸 밖으로 탈출했다. 일단 그들의 옷가지에 숨어 숙소까지 따라간 그들은 인간이 잠든 틈에 입을 통해 그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이제 꽃길만 걷자.”
1 대기업, 재벌 등 고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와 투자 등이 확대되어 낙후 부문에 유입되어 최종적으로는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인간
기다란 식도를 타고 내려갔더니, 곧 넓디넓은 ‘위’가 나왔다. 여기서 한잠 잘까 했지만, 곧 그들은 위산의 공격을 받는다.
“아이, 따가워. 위산은 아무리 익숙해져도 좋아지질 않아.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어.”
아래쪽에 있는 샘창자(십이지장)를 지나자 긴 빈창자(공장)2가 나왔다.
기생충1: 이야, 광활한 대지가 펼쳐지는구나!
기생충2: 내가 꿈꾸던 곳이 바로 여기였어.
기생충들은 각자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기생충1: 이제 뭘 하면 되지?
기생충2: 뭘 하긴. 밥때를 기다리면 되지. 하하하.
오래지 않아 식사가 배달됐다. 첫 식사는 멧돼지고기였다.
기생충1: 야, 이렇게 맛있는 식사는 처음 먹어본다. 인간들이 음식 구하는 솜씨가 제법인데?
기생충2: 그렇지?
간혹 사냥에 실패해 먹을 것이 없는 적도 있었지만, 서로 아껴서 먹으니 그것도 견딜 만했다. 그렇게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기생충1이 회의를 소집했다.
기생충1: 우리는 회충, 편충처럼 음식물 독점하고 그러지 말자. 우리 먹을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아래로 내려보내 주자고. 우리 모두 같이 잘 살아야지.
그 말에 사람 몸 안에 있던 모든 기생충들이 동의를 표했다.
인간의 몸에 먹을 것이 많고, 또 그 안에 있는 기생충들이 사심 없이 음식을 배분한다는 소문이 나자 다른 기생충들이 인간의 몸으로 몰려들었다.
2 작은창자를 구성하고 있는 한 기관으로 길이는 약 2m정도. 작은창자에서 일어나는 소화와 영양흡수의 대부분이 빈창자(공장)에서 일어난다.
젠트리피케이션
“휴, 겨우 찾아왔네.”
기생충1은 갑자기 나타난 회충 때문에 혼비백산했다.
“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
“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지도 않니?”
기생충1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회충은 넉살 좋게 웃었다.
“너,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얘기해줄까?”
작은 기생충들이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온 반면, 회충은 그 크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회충은 으슥한 곳에 숨어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노리던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변을 볼 때, 회충은 그 사람의 항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행히 회충은 항문이 닫히기 전에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거꾸로 놓인 ‘ㄷ’자를 거슬러 올라와야 했거든. 인간이 직립보행이라 더 힘들었다고. 몇 번이나 굴러떨어지고. 참, 여기 음식은 쓸만해?”
회충은 빈창자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난 이 자리가 좋더라. 음식물이 알맞게 소화돼서 이리로 배달되잖아. 인생은 역시 샘창자야.”
기생충1이 항의했다.
“이봐. 이런 게 어디 있어? 여기는 이미 다른 기생충들이 살고 있잖아?”
회충이 입술 3개를 크게 벌리며 웃었다.
“난 그딴 거 몰라. 난 여기 살 거야.”
회충의 득세에 놀란 다른 기생충들이 서둘러 짐을 쌌다. 기생충1과 2가 그대로 서 있자 회충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는 왜 안가? 조금 있으면 내 친구들도 올 건데, 그러면 이 자리도 모자라. 어, 저기 왔다. 편충! 반가워.”
기생충1이 그쪽을 바라보자 편충과 더불어, 대체 어떻게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길이가 5미터에 달하는 광절열두조충까지 나타났다.
“내가 자리 잡아 놨다고. 이쪽이야, 이쪽.”
▲ 회충이 기생하는 빈창자
엑소더스
기생충1과 2, 그리고 다른 기생충들은 빈창자를 떠나 이주를 시작했다. 기생충1이 택한 곳은 ‘간’이었다.
“내 설명을 들어봐. 소화된 음식물이 빈창자에 배달되잖아? 그 뒤엔 혈관을 따라 간으로 배달된다고. 그러니까 간에 가서 그 음식들을 받아먹으면 되지 않을까?”
기생충1은 2에게 같이 간으로 가자고 졸랐다.
“내가 한번 가봤는데, 간은 굉장히 넓더라. 빈창자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니까. 지평선이 보이더라고.”
기생충2는 고개를 저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운데, 난 사실 식탐이 없어. 그저 신선한 공기나 좀 쐬고 싶을 뿐이야.”
기생충1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생충은 공기만 먹고 살 수는 없어. 밥을 먹어야지. 거기서 대체 뭘 먹고 살 거야?”
기생충2는 대답 대신 씩 웃었을 뿐이었다.
기생충1은 결국 간에 자리를 잡았다. 간은 생각보다 살기가 좋았다. 게다가 배달된 영양분들을 재료로 해서 간이 만들어내는 포도당은 빈창자에서 맛볼 수 없는 별미였다. 그곳에서 기생충1은 수많은 자손을 낳으며 오래도록 살았다. 후대 사람들은 기생충1을 가리켜 ‘간디스토마’3라고 불렀다. 참고로 간디스토마의 수명은 10년 정도다.
3 기생충의 일종으로 간, 정확히는 담도에 기생하며 담도암을 유발한다.
▲ 간에 기생하는 간디스토마(간흡충)
기생충2는 훨씬 더 힘든 경로를 밟았다. 폐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장을 뚫고 복강으로 나왔다가, 거기서 횡격막을 뚫고 폐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는 경로는 힘들었지만, 폐에 도착하고 나자 기생충2는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폐에는 자신이 원하던 산소가 무한정 공급됐으니 말이다. 기생충1, 그러니까 간디스토마의 말처럼 먹을 게 없긴 했지만, 그거야 폐를 뜯어먹고 살면 되는 일이었다.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회충의 폭정에 시달리는 것보다야 나았다. 게다가 가끔씩, 아주 가끔씩, 알 수 없는 이유로 밥풀 같은 것이 굴러들어왔기에, 사는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기생충2를 ‘폐디스토마’4라고 불렀다. 또다시 밥풀이 들어왔을 때, 폐디스토마는 자신의 숙주5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4 이름처럼 폐를 침범해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이며, 폐흡충이라고도 한다. 민물에 사는 가재나 게가 인체 감염원으로, 가재즙이나 민물게장을 먹을 때 기생충의 유충이 사람에게 들어와 폐에 병변을 일으킨다.
5 생물학과 의학에서 기생충이나 균류 등이 기생하거나 공생하는 상대의 생물이다.
“아이참, 또 사레들렸어. 요즘 왜 이러지?”
▲ 폐에 기생하는 폐디스토마(폐흡충)
에필로그
먼 훗날, 경제발전과 환경개선으로 인해 회충은 멸종단계에 접어들었다. 반면 간디스토마는 아직도 굳건히 감염률을 유지하고 있고, 폐디스토마도 어려운 환경에서 분전 중이다. 회충의 후손은 이렇게 푸념했다.
몸 속 기생충 생존기
기생충들의 수다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몸
서민
2019-02-22
멧돼지
20만 년 전, 멧돼지의 몸에 살던 기생충들은 새로운 종의 출현을 목격한다.
회충: 오오, 못 보던 생물체인데?
편충: 그러게. 두 다리로 서서 걷고 있어!
회충: 저기 들어가 살면 멀미 날 것 같지 않아?
편충: 맞아. 우린 여기가 제일 좋아.
그들의 대화를 들은 기생충1은 자신이 사는 곳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했다.
기생충2: 새로운 종이 탄생했다는 게 정말이야?
기생충1: 정말이고말고. 내가 이 눈으로 봤다니까.
기생충2: 회충과 편충이 안 간다고 한 거 맞지? 그렇다면 내가 간다. 너는?
기생충1: 나도 당연히 가야지. 거기서 떵떵거리며 살아보자.
▲ 회충과 편충(암컷)
멧돼지 몸 안에서 회충과 편충은 가진 자들이었다. 회충은 길이 30센티가량의 커다란 기생충이었고, 편충은 길이는 3~5센티에 불과하지만 기다란 채찍을 지니고 있어 다른 기생충들이 감히 맞서지 못했다. 그들은 음식물이 지나는 요충지에 자리를 잡고 맛있는 음식물을 독점했다. 처음에 다른 기생충들은, 그래 봤자 저들도 기생충인데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느냐고 생각했다. “우리가 멧돼지를 선택한 것도 멧돼지가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잖아. 회충, 편충이 먹고 남은 것만 먹어도 다른 곳에 사는 것보다 훨씬 잘 먹을 수 있다고.” 돌이켜보면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낙수효과1는 존재하지 않았고, 회충과 편충이 남겨준 것들은 도저히 못 먹을 것들뿐이었다.
기생충1: 야야, 콩나물 뿌리만 남았네. 우리가 아무리 기생충이라도, 이걸 어떻게 먹냐?
기생충2: 그러게 말이다. 이럴 바엔 일반 생물로 사는 게 훨씬 낫겠다.
그러던 차에 새로운 종이 탄생했으니, 크기가 작아 억압받던 기생충들에겐 새로운 기회였다. 인간들이 멧돼지를 사냥하던 날, 기생충 1, 2를 포함한 작은 기생충들은 멧돼지의 몸 밖으로 탈출했다. 일단 그들의 옷가지에 숨어 숙소까지 따라간 그들은 인간이 잠든 틈에 입을 통해 그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이제 꽃길만 걷자.”
1 대기업, 재벌 등 고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와 투자 등이 확대되어 낙후 부문에 유입되어 최종적으로는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인간
기다란 식도를 타고 내려갔더니, 곧 넓디넓은 ‘위’가 나왔다. 여기서 한잠 잘까 했지만, 곧 그들은 위산의 공격을 받는다.
“아이, 따가워. 위산은 아무리 익숙해져도 좋아지질 않아.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어.”
아래쪽에 있는 샘창자(십이지장)를 지나자 긴 빈창자(공장)2가 나왔다.
기생충1: 이야, 광활한 대지가 펼쳐지는구나!
기생충2: 내가 꿈꾸던 곳이 바로 여기였어.
기생충들은 각자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기생충1: 이제 뭘 하면 되지?
기생충2: 뭘 하긴. 밥때를 기다리면 되지. 하하하.
오래지 않아 식사가 배달됐다. 첫 식사는 멧돼지고기였다.
기생충1: 야, 이렇게 맛있는 식사는 처음 먹어본다. 인간들이 음식 구하는 솜씨가 제법인데?
기생충2: 그렇지?
간혹 사냥에 실패해 먹을 것이 없는 적도 있었지만, 서로 아껴서 먹으니 그것도 견딜 만했다. 그렇게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기생충1이 회의를 소집했다.
기생충1: 우리는 회충, 편충처럼 음식물 독점하고 그러지 말자. 우리 먹을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아래로 내려보내 주자고. 우리 모두 같이 잘 살아야지.
그 말에 사람 몸 안에 있던 모든 기생충들이 동의를 표했다.
인간의 몸에 먹을 것이 많고, 또 그 안에 있는 기생충들이 사심 없이 음식을 배분한다는 소문이 나자 다른 기생충들이 인간의 몸으로 몰려들었다.
2 작은창자를 구성하고 있는 한 기관으로 길이는 약 2m정도. 작은창자에서 일어나는 소화와 영양흡수의 대부분이 빈창자(공장)에서 일어난다.
젠트리피케이션
“휴, 겨우 찾아왔네.”
기생충1은 갑자기 나타난 회충 때문에 혼비백산했다.
“어, 어떻게 네가 여기에?”
“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지도 않니?”
기생충1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회충은 넉살 좋게 웃었다.
“너,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얘기해줄까?”
작은 기생충들이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온 반면, 회충은 그 크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회충은 으슥한 곳에 숨어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노리던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변을 볼 때, 회충은 그 사람의 항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다행히 회충은 항문이 닫히기 전에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거꾸로 놓인 ‘ㄷ’자를 거슬러 올라와야 했거든. 인간이 직립보행이라 더 힘들었다고. 몇 번이나 굴러떨어지고. 참, 여기 음식은 쓸만해?”
회충은 빈창자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난 이 자리가 좋더라. 음식물이 알맞게 소화돼서 이리로 배달되잖아. 인생은 역시 샘창자야.”
기생충1이 항의했다.
“이봐. 이런 게 어디 있어? 여기는 이미 다른 기생충들이 살고 있잖아?”
회충이 입술 3개를 크게 벌리며 웃었다.
“난 그딴 거 몰라. 난 여기 살 거야.”
회충의 득세에 놀란 다른 기생충들이 서둘러 짐을 쌌다. 기생충1과 2가 그대로 서 있자 회충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는 왜 안가? 조금 있으면 내 친구들도 올 건데, 그러면 이 자리도 모자라. 어, 저기 왔다. 편충! 반가워.”
기생충1이 그쪽을 바라보자 편충과 더불어, 대체 어떻게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길이가 5미터에 달하는 광절열두조충까지 나타났다.
“내가 자리 잡아 놨다고. 이쪽이야, 이쪽.”
▲ 회충이 기생하는 빈창자
엑소더스
기생충1과 2, 그리고 다른 기생충들은 빈창자를 떠나 이주를 시작했다. 기생충1이 택한 곳은 ‘간’이었다.
“내 설명을 들어봐. 소화된 음식물이 빈창자에 배달되잖아? 그 뒤엔 혈관을 따라 간으로 배달된다고. 그러니까 간에 가서 그 음식들을 받아먹으면 되지 않을까?”
기생충1은 2에게 같이 간으로 가자고 졸랐다.
“내가 한번 가봤는데, 간은 굉장히 넓더라. 빈창자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니까. 지평선이 보이더라고.”
기생충2는 고개를 저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운데, 난 사실 식탐이 없어. 그저 신선한 공기나 좀 쐬고 싶을 뿐이야.”
기생충1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생충은 공기만 먹고 살 수는 없어. 밥을 먹어야지. 거기서 대체 뭘 먹고 살 거야?”
기생충2는 대답 대신 씩 웃었을 뿐이었다.
기생충1은 결국 간에 자리를 잡았다. 간은 생각보다 살기가 좋았다. 게다가 배달된 영양분들을 재료로 해서 간이 만들어내는 포도당은 빈창자에서 맛볼 수 없는 별미였다. 그곳에서 기생충1은 수많은 자손을 낳으며 오래도록 살았다. 후대 사람들은 기생충1을 가리켜 ‘간디스토마’3라고 불렀다. 참고로 간디스토마의 수명은 10년 정도다.
3 기생충의 일종으로 간, 정확히는 담도에 기생하며 담도암을 유발한다.
▲ 간에 기생하는 간디스토마(간흡충)
기생충2는 훨씬 더 힘든 경로를 밟았다. 폐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장을 뚫고 복강으로 나왔다가, 거기서 횡격막을 뚫고 폐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가는 경로는 힘들었지만, 폐에 도착하고 나자 기생충2는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폐에는 자신이 원하던 산소가 무한정 공급됐으니 말이다. 기생충1, 그러니까 간디스토마의 말처럼 먹을 게 없긴 했지만, 그거야 폐를 뜯어먹고 살면 되는 일이었다.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회충의 폭정에 시달리는 것보다야 나았다. 게다가 가끔씩, 아주 가끔씩, 알 수 없는 이유로 밥풀 같은 것이 굴러들어왔기에, 사는 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기생충2를 ‘폐디스토마’4라고 불렀다. 또다시 밥풀이 들어왔을 때, 폐디스토마는 자신의 숙주5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4 이름처럼 폐를 침범해 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이며, 폐흡충이라고도 한다. 민물에 사는 가재나 게가 인체 감염원으로, 가재즙이나 민물게장을 먹을 때 기생충의 유충이 사람에게 들어와 폐에 병변을 일으킨다.
5 생물학과 의학에서 기생충이나 균류 등이 기생하거나 공생하는 상대의 생물이다.
“아이참, 또 사레들렸어. 요즘 왜 이러지?”
▲ 폐에 기생하는 폐디스토마(폐흡충)
에필로그
먼 훗날, 경제발전과 환경개선으로 인해 회충은 멸종단계에 접어들었다. 반면 간디스토마는 아직도 굳건히 감염률을 유지하고 있고, 폐디스토마도 어려운 환경에서 분전 중이다. 회충의 후손은 이렇게 푸념했다.
“아이참, 왜 우리 조상님은 빈창자에다 터전을 잡으셔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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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민 교수
단국대에서 기생충을 연구한다. 자신을 교수로 만들어준 기생충에게 보답하는 취지로 기생충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저서로는 <기생충열전>, <기생충콘서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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