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내 TV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밴드 러빙 스푼풀(The Lovin' Spoonful)의 팝송 ‘서머 인 더 시티(Summer in the city)’는 시기적으로는 오래된, 1966년산(産) 올드 팝이지만 지금도 전파를 타면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는 명곡이다.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1001’ 가운데 하나로도 꼽혔으며 대표적인 여름 송가로 남아있다. 특히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자동차(폭스바겐) 경적음과 착암용 드릴 소리는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도시의 여름을 훌륭한 사운드로 축약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목처럼 곡 자체가 도시의 여름을 대변하듯 후텁지근하다.
폭염이 낭만적인 여름이 되는 순간
‘온 동네, 도시의 여름은 뜨겁네요 / 목 뒤가 더러워지고 까끌까끌해요 / 축 늘어져, 애처롭지 않나요?
/ 도시에는 그늘도 없지요 / 주변 사람들 모두 반쯤 죽은 듯해요 / 성냥보다 더 뜨거운 보도(步道)를 걷고 있지요...’
- 러빙 스푼풀(The Lovin' Spoonful)의 팝송 ‘서머 인 더 시티(Summer in the city)’ 가사 중
올해 7월과 8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를 찜통으로 만든 이례적인 폭염의 고통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더위 때문에 미쳐 버리겠다’ 쯤으로 해석된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그리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등 걸작을 주조해낸 명장 빔 벤더스(Ernst Wilhelm Wenders)의 장편 데뷔영화 제목이 <도시의 여름>인 게 이해가 간다. 그는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불안과 망명의 정서를 스크린에 옮긴 인물이다.
러빙 스푼풀과 ‘Summer in the city’의 광팬인 빔 벤더스 감독은 흑백으로 담은 이 영화에서 ‘계절을 바꿔’ 주인공이 혹독하게 추운 날 눈에 뒤덮인 거리를 걷는 조금은 이상하지만 인상적인 장면에서 러빙 스푼풀의 곡을 동원한다. 그 얼음 같은 날씨에 무더운 여름이 당연히 그리웠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러빙 스푼풀의 ‘섬머 인더 시티’는 비록 미칠 정도로 더운 여름이지만 그래도 견딜 수는 있는 조금은 낭만적인 여름임을 알 수 있다. 폭염은 엄연한 자연재해로서, 그리울 수가 없는 존재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노래의 후반부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온다.
‘밤은 다른 세상이죠 / 밖으로 나가서 여자를 찾아요 / 어서 어서 밤새도록 춤춰요
/ 비록 열기는 있지만 다 좋을 거예요(Despite the heat it'll be all right).’
밤이 정말 이렇다면 낮은 충분히 견딜 수 있다. 낭만적인 밤을 그리는 이 노래는 여름과 정을 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여름을 반기는 사실상 여름 송가인 것이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와 벤처스(Ventures)의 서핀 뮤직(Surfin' music) 등 많은 여름 음악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한다.
여름을 노래하는 대중가요
가수 클론(Clon)의 ‘도시 탈출’을 보라. 이 노래에서 여름은 사랑스럽게 표현된다.
‘한낮에 찌는 듯한 무더위는 붉은 태양 아래 쏟아지고 / 젊음의 이글대는 여름은 또 푸른 파도로 날 유혹하고
/ 저기 나를 오라 손짓하는 바닷가 세상 모든 근심걱정들은 잊어버리고 / 젊은 태양아래 우리 모두 모여 노랠 불러 봐요 신나는 여름을
/ 룰루랄라 룰루랄라 바다로 달려가요!’
하지만 온 세상이 화로 안에 있음을 가리키는 만국여재홍로중(萬國如在紅爐中)*인 상황이라면 어찌 이성(理性)과 즐거움을 기대하겠는가. 밤낮없는 열돔 현상과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데, 여름을 빗대어 ‘신나는’, ‘룰루랄라’, ‘바다로 달려가요’라는 말이 당최 무슨 소리인가.
*만국여재홍로중(萬國如在紅爐中): 더위가 아주 심함을 이르는 말.
밤에도 영상 25도가 넘는 열대야. 급기야는 30도가 넘어서는 초열대야 현상이 지속되면 이런 낭만은 있을 수 없다. 지구 온난화와 녹지 파괴 등 익숙한 환경 문제가 거론되는 마당에서는 차라리 모든 게 갈아 엎어지기를 갈구하는 한영애의 노래 ‘조율’이 나을지 모른다.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 드높았던 파란 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 잠자는 하늘 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거창한 환경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중가요는 단순하게 더위를 식힐 시원함을 그리는 게 상책이다. 여름은 얼음, 수박, 빙수의 계절이 아닌가. 특히, 빙수는 우리 가요에 잊을 수 없는 두 애창곡을 남겨주었다. 지난 2001년 윤종신의 ‘팥빙수’ 그리고 팥빙수가 세상에 나온 지 정확히 12년 뒤인 2013년, 악동뮤지션이 발표한 ‘콩떡빙수’다. ‘팥빙수’가 수록된 윤종신의 9집 앨범은 원래 타이틀곡이 ‘그늘’이었지만, 좀 더 파격적인 제목을 힘입은 ‘팥빙수’가 ‘골든 서머 송(Golden Summer Song)’으로 자리를 굳혔고, ‘콩떡빙수’는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이 한 제과업체의 모델로 발탁되어 CM송으로 불렀음에도 널리 사랑을 받았다.
‘빙수기 얼음 넣고 밑에는 예쁜 그릇 얼음이 갈린다, 갈린다 / 얼음에 팥 얹히고 프루츠 칵테일에 체리로 장식해, 장식해
/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 / 팥빙수, 팥빙수 여름엔 이게 왔다야! 주의사항 팥 조릴 때 설탕은 충분히
/ 찰떡 젤리 크림 연유 빠지면 섭섭해...’
-윤종신 ‘팥빙수’ 가사 중
‘오빠 빙수 먹으러 갈래? 콜! Let’s go! /... 한 입 딱 떠먹고 텁텁함은 다 까먹고 / 무더운 한여름에도 시원한 아야야
/ 콩떡콩떡한 날에 흠뻑 젖은 얼음 파티가 열리는 곳 파리바게뜨로 팔로우 미!’
- 악동뮤지션 ‘콩떡빙수’ 가사 중
전자는 팥빙수의 보기 드문 레시피 송이고 후자는 사실상 CF 송이었지만, 두 곡 모두 더운 여름을 식히는 데는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음악 관계자들은 근래 TV 프로그램에서 요리 관련 콘텐츠, 그중에서도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이 대세라는 점을 인식하여 앞으로는 이러한 구체적인 여름철 식음료 소재 노래들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조용필의 ‘여름을 떠나요’, 클론의 ‘도시탈출’, 쿨의 ‘해변의 여인’, 유엔의 ‘파도’, 유피의 ‘바다’, DJ DOC의 ‘여름 이야기’ 그리고 듀스의 ‘여름 안에서’ 등의 바캉스 노래보다 더 우세하리라는 것이다.
여름엔 겨울을, 겨울엔 여름을 동경한다
본래 겨울은 여름을 원하고, 여름은 겨울을 부러워한다. 하동(夏冬)은 극단이기 때문에 서로를 애호한다. 작곡가들은 너무 더운 나머지 ‘8월의 크리스마스’를 꿈꾸고 추우면 따뜻한 해변의 여름을 갈망한다. 팝의 명곡 ’캘리포니아 드림(California Dreamin')’은 캘리포니아가 고향인 작곡가 존 필립스(John Phillips)가 뉴욕에 와 너무 추운 나머지, 태양이 이글거리는 고향을 그리며 쓴 곡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캐럴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는 반대로 푹푹 찌는 여름날에 더위를 잊기 위해 눈 내리는 겨울을 동경하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바깥 날씨가 너무 춥네요 / 안의 불은 이렇게 따뜻한데요 / 어차피 어디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죠 / 눈 내리네요 눈 내리네요 눈 내리네요...’
가사만 들어도 열이 떨어질 것 같다.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의 액션 영화 <다이 하드(Die Hard)>에서 모든 것이 종료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본 먼로(Vaugha Monroe)의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는 정말 기막힌 선곡이다. 실제로 구미(歐美) 방송국의 디스크자키(Disk jockey)들은 한여름에 자주 이 곡을 튼다고 한다.
시원한 음악으로 여름나기
폭염을 넘어서는 방법은 기다림 밖에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기에 진리를 담은 긍정적 사고를 곁들이면 한결 낫지 않겠는가. 우리의 정신과 육체적인 것까지 모두 개방해야만 하는 여름이라면 우린 참된 개방성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영원한 명작 ‘서머타임(Summertime)’이 그렇다.
‘여름날 여름날 / 삶은 평온하고 / 물고기는 뛰놀고 / 목화는 풍년이다...’
소설가 이어령은 ‘여름의 숲속에는 벌레들의 음향으로 가득 차 있다. 은폐가 없고 침묵이 없는 여름의 자연은 나체처럼 싱싱하다’고 여름을 찬양했고, 시인 조병화는 ‘우리 생명의 큰 에너지 원천,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는 계절’이라고 했다. 에어컨과 얼음이 없던 옛날에도 폭염이 없었을까. 선대(先代) 사람들도 푹푹 찌는 날씨에 괴로워하면서도 여름을 견뎠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이렇게 말했다.
‘백우선을 부치기도 귀찮다 / 숲속에 들어가 벌거숭이가 되자 / 건을 벗어 석벽에 걸고 / 머리에 솔바람이나 쐬자’라는 시를 읊었다. 정약용은 이렇게 썼다. ‘지루한 여름날에 불같이 타는 더위 / 땀은 축축 찌는 듯 등골이 다 젖었을 때/ 시원한 바람 불고 소나기 쏟아져 / 어느덧 오 벼랑에 폭포수 드리웠네...’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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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싸우는 음악
명작으로 보는 무더위 탈출법
임진모
2018-08-13
한때 국내 TV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밴드 러빙 스푼풀(The Lovin' Spoonful)의 팝송 ‘서머 인 더 시티(Summer in the city)’는 시기적으로는 오래된, 1966년산(産) 올드 팝이지만 지금도 전파를 타면서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는 명곡이다.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1001’ 가운데 하나로도 꼽혔으며 대표적인 여름 송가로 남아있다. 특히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자동차(폭스바겐) 경적음과 착암용 드릴 소리는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도시의 여름을 훌륭한 사운드로 축약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목처럼 곡 자체가 도시의 여름을 대변하듯 후텁지근하다.
폭염이 낭만적인 여름이 되는 순간
‘온 동네, 도시의 여름은 뜨겁네요 / 목 뒤가 더러워지고 까끌까끌해요 / 축 늘어져, 애처롭지 않나요?
/ 도시에는 그늘도 없지요 / 주변 사람들 모두 반쯤 죽은 듯해요 / 성냥보다 더 뜨거운 보도(步道)를 걷고 있지요...’
- 러빙 스푼풀(The Lovin' Spoonful)의 팝송 ‘서머 인 더 시티(Summer in the city)’ 가사 중
올해 7월과 8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를 찜통으로 만든 이례적인 폭염의 고통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더위 때문에 미쳐 버리겠다’ 쯤으로 해석된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그리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등 걸작을 주조해낸 명장 빔 벤더스(Ernst Wilhelm Wenders)의 장편 데뷔영화 제목이 <도시의 여름>인 게 이해가 간다. 그는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불안과 망명의 정서를 스크린에 옮긴 인물이다.
러빙 스푼풀과 ‘Summer in the city’의 광팬인 빔 벤더스 감독은 흑백으로 담은 이 영화에서 ‘계절을 바꿔’ 주인공이 혹독하게 추운 날 눈에 뒤덮인 거리를 걷는 조금은 이상하지만 인상적인 장면에서 러빙 스푼풀의 곡을 동원한다. 그 얼음 같은 날씨에 무더운 여름이 당연히 그리웠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러빙 스푼풀의 ‘섬머 인더 시티’는 비록 미칠 정도로 더운 여름이지만 그래도 견딜 수는 있는 조금은 낭만적인 여름임을 알 수 있다. 폭염은 엄연한 자연재해로서, 그리울 수가 없는 존재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노래의 후반부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온다.
‘밤은 다른 세상이죠 / 밖으로 나가서 여자를 찾아요 / 어서 어서 밤새도록 춤춰요
/ 비록 열기는 있지만 다 좋을 거예요(Despite the heat it'll be all right).’
밤이 정말 이렇다면 낮은 충분히 견딜 수 있다. 낭만적인 밤을 그리는 이 노래는 여름과 정을 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여름을 반기는 사실상 여름 송가인 것이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와 벤처스(Ventures)의 서핀 뮤직(Surfin' music) 등 많은 여름 음악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한다.
여름을 노래하는 대중가요
가수 클론(Clon)의 ‘도시 탈출’을 보라. 이 노래에서 여름은 사랑스럽게 표현된다.
‘한낮에 찌는 듯한 무더위는 붉은 태양 아래 쏟아지고 / 젊음의 이글대는 여름은 또 푸른 파도로 날 유혹하고
/ 저기 나를 오라 손짓하는 바닷가 세상 모든 근심걱정들은 잊어버리고 / 젊은 태양아래 우리 모두 모여 노랠 불러 봐요 신나는 여름을
/ 룰루랄라 룰루랄라 바다로 달려가요!’
하지만 온 세상이 화로 안에 있음을 가리키는 만국여재홍로중(萬國如在紅爐中)*인 상황이라면 어찌 이성(理性)과 즐거움을 기대하겠는가. 밤낮없는 열돔 현상과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데, 여름을 빗대어 ‘신나는’, ‘룰루랄라’, ‘바다로 달려가요’라는 말이 당최 무슨 소리인가.
*만국여재홍로중(萬國如在紅爐中): 더위가 아주 심함을 이르는 말.
밤에도 영상 25도가 넘는 열대야. 급기야는 30도가 넘어서는 초열대야 현상이 지속되면 이런 낭만은 있을 수 없다. 지구 온난화와 녹지 파괴 등 익숙한 환경 문제가 거론되는 마당에서는 차라리 모든 게 갈아 엎어지기를 갈구하는 한영애의 노래 ‘조율’이 나을지 모른다.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 드높았던 파란 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 잠자는 하늘 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거창한 환경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중가요는 단순하게 더위를 식힐 시원함을 그리는 게 상책이다. 여름은 얼음, 수박, 빙수의 계절이 아닌가. 특히, 빙수는 우리 가요에 잊을 수 없는 두 애창곡을 남겨주었다. 지난 2001년 윤종신의 ‘팥빙수’ 그리고 팥빙수가 세상에 나온 지 정확히 12년 뒤인 2013년, 악동뮤지션이 발표한 ‘콩떡빙수’다. ‘팥빙수’가 수록된 윤종신의 9집 앨범은 원래 타이틀곡이 ‘그늘’이었지만, 좀 더 파격적인 제목을 힘입은 ‘팥빙수’가 ‘골든 서머 송(Golden Summer Song)’으로 자리를 굳혔고, ‘콩떡빙수’는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이 한 제과업체의 모델로 발탁되어 CM송으로 불렀음에도 널리 사랑을 받았다.
‘빙수기 얼음 넣고 밑에는 예쁜 그릇 얼음이 갈린다, 갈린다 / 얼음에 팥 얹히고 프루츠 칵테일에 체리로 장식해, 장식해
/ 팥빙수, 팥빙수 난 좋아 열라 좋아 / 팥빙수, 팥빙수 여름엔 이게 왔다야! 주의사항 팥 조릴 때 설탕은 충분히
/ 찰떡 젤리 크림 연유 빠지면 섭섭해...’
-윤종신 ‘팥빙수’ 가사 중
‘오빠 빙수 먹으러 갈래? 콜! Let’s go! /... 한 입 딱 떠먹고 텁텁함은 다 까먹고 / 무더운 한여름에도 시원한 아야야
/ 콩떡콩떡한 날에 흠뻑 젖은 얼음 파티가 열리는 곳 파리바게뜨로 팔로우 미!’
- 악동뮤지션 ‘콩떡빙수’ 가사 중
전자는 팥빙수의 보기 드문 레시피 송이고 후자는 사실상 CF 송이었지만, 두 곡 모두 더운 여름을 식히는 데는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음악 관계자들은 근래 TV 프로그램에서 요리 관련 콘텐츠, 그중에서도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이 대세라는 점을 인식하여 앞으로는 이러한 구체적인 여름철 식음료 소재 노래들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조용필의 ‘여름을 떠나요’, 클론의 ‘도시탈출’, 쿨의 ‘해변의 여인’, 유엔의 ‘파도’, 유피의 ‘바다’, DJ DOC의 ‘여름 이야기’ 그리고 듀스의 ‘여름 안에서’ 등의 바캉스 노래보다 더 우세하리라는 것이다.
여름엔 겨울을, 겨울엔 여름을 동경한다
본래 겨울은 여름을 원하고, 여름은 겨울을 부러워한다. 하동(夏冬)은 극단이기 때문에 서로를 애호한다. 작곡가들은 너무 더운 나머지 ‘8월의 크리스마스’를 꿈꾸고 추우면 따뜻한 해변의 여름을 갈망한다. 팝의 명곡 ’캘리포니아 드림(California Dreamin')’은 캘리포니아가 고향인 작곡가 존 필립스(John Phillips)가 뉴욕에 와 너무 추운 나머지, 태양이 이글거리는 고향을 그리며 쓴 곡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캐럴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는 반대로 푹푹 찌는 여름날에 더위를 잊기 위해 눈 내리는 겨울을 동경하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바깥 날씨가 너무 춥네요 / 안의 불은 이렇게 따뜻한데요 / 어차피 어디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죠 / 눈 내리네요 눈 내리네요 눈 내리네요...’
가사만 들어도 열이 떨어질 것 같다.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의 액션 영화 <다이 하드(Die Hard)>에서 모든 것이 종료되고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본 먼로(Vaugha Monroe)의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 렛 잇 스노우(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는 정말 기막힌 선곡이다. 실제로 구미(歐美) 방송국의 디스크자키(Disk jockey)들은 한여름에 자주 이 곡을 튼다고 한다.
시원한 음악으로 여름나기
폭염을 넘어서는 방법은 기다림 밖에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기에 진리를 담은 긍정적 사고를 곁들이면 한결 낫지 않겠는가. 우리의 정신과 육체적인 것까지 모두 개방해야만 하는 여름이라면 우린 참된 개방성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영원한 명작 ‘서머타임(Summertime)’이 그렇다.
‘여름날 여름날 / 삶은 평온하고 / 물고기는 뛰놀고 / 목화는 풍년이다...’
소설가 이어령은 ‘여름의 숲속에는 벌레들의 음향으로 가득 차 있다. 은폐가 없고 침묵이 없는 여름의 자연은 나체처럼 싱싱하다’고 여름을 찬양했고, 시인 조병화는 ‘우리 생명의 큰 에너지 원천,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는 계절’이라고 했다. 에어컨과 얼음이 없던 옛날에도 폭염이 없었을까. 선대(先代) 사람들도 푹푹 찌는 날씨에 괴로워하면서도 여름을 견뎠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이렇게 말했다.
‘백우선을 부치기도 귀찮다 / 숲속에 들어가 벌거숭이가 되자 / 건을 벗어 석벽에 걸고 / 머리에 솔바람이나 쐬자’라는 시를 읊었다. 정약용은 이렇게 썼다. ‘지루한 여름날에 불같이 타는 더위 / 땀은 축축 찌는 듯 등골이 다 젖었을 때/ 시원한 바람 불고 소나기 쏟아져 / 어느덧 오 벼랑에 폭포수 드리웠네...’
선선한 바람과 소나기를 기다리자. 시원한 음악을 들으면서.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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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폭염과 싸우는 음악'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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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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