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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시간의 변화와 장수의 비결

죽음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늦추는 방법

이성민

2018-03-02

 

각자의 1년
한나 아렌트는 인생 노년에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유작 『정신의 삶』에서 시간에 관한 흥미로운 관찰을 한다. 읽고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어쩐지 쓸모가 있어 보이는 관찰을. 그곳에 장수의 비결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아렌트 연구자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아렌트의 관찰에 의하면, 1년의 길이에 대한 체험은 인생을 통해 극적으로 변한다. “다섯 살 아이에게 실존의 온전한 5분의 1을 이루는 1년은 지상에서 그의 시간의 단지 20분의 1이나 30분의 1을 이루는 때보다 틀림없이 훨씬 더 길어 보일 것이다.” 즉 살아온 나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스무 살 성인의 1년 길이가 20분의 1이라면, 다섯 살 아이의 1년 길이는 5분의 1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1년은 더 짧게 느껴진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1년이 실제로 더 짧게 느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아렌트의 통찰은 진실이라고 해도 별로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렌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수록 한해 한해가 어떻게 점점 더 빨리 회전하는지 안다. 그러다가 마침내 노년이 다가오면 다시금 느려지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예상된 떠남의 날짜에 맞대어 그것을 측량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노년에 이르지 않았기에, 죽음에 가까워질 때 정말로 1년의 체감속도가 다시 느려지는지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나는 현재 1년이 51분의 1로 아주 빠르게 느껴지는 인생 시기를 살고 있다. 그러면 ‘1년의 길이’는 정확히 언제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할까?

 
  • 시계

노숙,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기
아렌트는 그것을 다만 ‘노년’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노년은 언제부터 인생에 찾아올까? 어쩌면 예리한 독자는 이 질문 속에서 ‘노년’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통상적인 빛깔이나 희망이 이미 달라져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노년의 빛깔은 그렇게 밝지 않으며, 우리는 인생의 노년이 늦게 찾아오길 희망한다. 하지만 노년이 늦게 찾아올수록 한 사람의 1년 길이는 그때까지 계속 짧아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기에 평생을 청춘처럼 살자고 하는 오늘날의 인생관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능한 한 늦게까지 청춘처럼 살 경우, 그 남은 활동적 인생은 아마 쏜살처럼, 그것도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화살처럼 지나가 버릴 테니 말이다.
노년이 찾아 왔다는 말은 죽음의 의미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시기가 왔다는 말이다. 죽음의 의미를 받아들이거나 발견한 상태를 긍정적 의미에서 ‘노숙’이라고 불러보자. 노숙은 정신적으로 빨리 찾아올 수도 있고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 백 세 시대인 오늘날 나이 오십을 노숙이 찾아오는 때라고 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인생의 정중앙이다. 그리고 가령 활동적인 삶을 80세까지로 본다면, 아직 그런 삶이 30년이나 남아 있는 나이다. 그런데 이 쉰 살의 1년은 이제 50분의 1로 빨라져 있다. 실제로 한달 한달이 금방 지나간다. 백 세 시대도 다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계속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면 말이다. 시간을 늦출 수는 없을까?

 
  •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의 뒷모습
  • 묘지

시간의 반전과 죽음
아렌트의 관찰을 이용하자면, 시간을 늦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부터 죽음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뿐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쉰 살의 1년은 다시 계산될 것이고, 50분의 1에서 30분의 1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해의 1년은 29분의 1로 늘어날 것이다. 이제 50분의 1일에서 51분의 1로 점점 더 빨라지는 남은 인생의 길이와, 반대로 30분의 1에서 29분의 1로 점점 더 느려지는 남은 인생의 길이를 계산해보는 일이 남았다.
노년이 되면 우리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예상된 우리의 떠남의 날짜에 맞대어 자연스레 한 해를 측량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이 오십에 자연스러운 일일 수는 없다.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얼마 전 출간된 나의 책 『철학하는 날들』의 제3장 ‘K의 마지막 삶과 노년의 비밀’에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한 가지 비밀을 밝혀 놓았다.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려고 한다.
오늘날 만연한, 인생을 청춘처럼 살자는 인생관은 인생을 더 잘살게 할 것 같지만 실은 남은 인생의 시간을 허무하게 ‘죽이는’ 인생관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확히 이데올로기다. 사회와 인간의 삶에서 죽음의 의미를 몰아내는 이데올로기.
우리는 죽음과 죽음의 의미를 몰아내는 사회, 심지어 죽은 자의 묘지도 몰아내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게 죽음을 몰아낼 때, 우리는 삶의 이름으로 삶을 몰아낸다. 죽음의 이름으로 삶을 되찾을 때, 우리는 백 세 시대 진정한 장수와 완전한 삶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 3월
  • 변화
  • 이성민
  • 한나 아렌트
  • 시간의 상대성
  • 노년
  • 죽음
  • 인생관
필자 이성민
이성민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정신분석 등을 공부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신나게 놀 수 있는 세상, 어른들이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주된 관심사다. 저서로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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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진 이미지

신**

2018-03-19

나의 죽음과 시간의 죽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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