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라고 하면 외래 어종이나 황소개구리만 생각이 난다. 이들은 토종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생태계를 교란한다. 생태계 파괴, 생태계 교란이라고 할 때는 생태계가 나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의미일 텐데, 우문이 들었다. 그 말은 생태계의 모습에도 어떤 정답이 있다는 뜻일까. 지금의 생태계가 다양한 종의 유입으로 재정립된 것이듯, 베스가 들어온 생태계 역시 새로운 질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바로 바뀌었다. 베스가 유입된 생태계는 종의 다양성이 파괴된 생태계라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다. 베스가 없는 강에 수백의 어종이 있었다면 상위 포식자인 데다가 천적마저 없는 베스가 있는 강에는 수십의 어종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한 진리를 이번 ‘생태계’라는 주제를 받고 생각하게 됐다. 생태계란 그 속에 포함된 다양한 개체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건강한 생태계란 다양한 개체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생태계라는 말은 종종 은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때도 특정 집단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생태계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기본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 건강한 생태계이다.
세대별 문화 생태계
12월 31일 일본 NHK에서는 그 해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경쟁을 벌이는 <홍백가합전>을 방영한다.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국내 그룹인 트와이스가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몇 해째 연말을 일본에서 보내다 보니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데, 일본 중장년층의 가요계 수준에 놀라게 된다. 출연자 중 우리로 치자면 설운도나 현철급의 원로 가수가 많기도 하거니와 이들의 의상이나 조명, 무대 퍼포먼스의 규모가 놀라운 수준이었다. 연말 프로그램이라는 성격 때문에 중장년층에 대한 배려가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원로 가수의 참여 비율이나 그들이 보여준 역량은 이벤트 프로그램의 특징으로 한정할 수 없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홍백가합전>으로 판단하건대 일본 가요계는 중장년층이 주도하는 문화다. 젊은 가수들의 무대 역시 그만의 매력은 있었으나 중장년층 가수들의 무대에서 깊은 인상과 압도하는 에너지를 느꼈다. 우리 문화와 비교해 중장년층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반면 한국의 문화는 젊은 층이 주도한 가요계는 아이돌 천국이고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는 이들의 주축이 젊은이들이다. 과문해서인지 모르겠으나 한국의 중장년층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문화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두터운 중장년층이 가요계를 이끌어가는 일본이나 중장년층 문화가 희박한 우리 모두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계 생태계에서는 포식자로 올라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어야 다양한 종이 공존할 수 있다. 인위적인 문화에 자연계와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는 없지만 다양성과 공존의 원리로 보자면, 젊은 층이 문화를 주도하면서 세대가 높아질수록 느슨하게 감소하는 형태가 좀 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일본 가요계처럼 중장년층 문화가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문화 순환이 쉽지 않고, 우리의 경우처럼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문화의 규모가 축소된다면 늘 새로운 공급만 이어질 뿐 그 문화가 성숙하게 발전하기 힘들다.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이어서 더욱 그러했겠지만, 어쨌든 일본 가요계가 수십 년 동안 그 규모를 잃지 않으면서 여전히 활동적이고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부러웠다.
마니아 중심의 공연 문화
내가 몸담고 있는 뮤지컬계 역시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문제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지금 뮤지컬계의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은 많은데 공연을 보는 관객이 적다는 것이다. 뮤지컬 시장은 2000년대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여 현재는 3,500억 원 정도의 시장으로 추정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세계 5대 시장이라는 표현도 있었는데, 규모로만 본다면 세계 5대 시장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인구수가 5천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은 한국이 세계 뮤지컬 시장에 손에 꼽힐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빠른 성장은 과도한 공급을 통한 양적 팽창을 이루었을 뿐 내적으로도 건강한 시장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즉 작품이 많이 올라가면서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제작 환경은 열악하고 관객 규모도 시장에 걸맞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한국 뮤지컬 관객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연말이나 특별한 이벤트 때 뮤지컬을 보는 일반 관객과 상시 즐기는 마니아 관객이다. 여전히 1년에 뮤지컬을 한 편도 안 보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우리 경제 수준에서 대형 뮤지컬의 경우 R석이 13만 원 정도 하는 뮤지컬을 본다는 것이 평범한 서민들에게 큰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우리 뮤지컬 시장은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보는 회전문 관객들에 의존하는 비중이 꽤 크다. 대형 뮤지컬의 경우 한정된 마니아들의 회전문만으로 유지될 수는 없지만 200~300석 미만의 작품일 경우 회전문 관객에 집중해도 수익을 낼 수가 있다. <쓰릴 미> <마마 돈 크라이> <트레이스 유>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더 데빌> 등 아마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뮤지컬이겠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전체 관객 중 반복 관람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앞서 열거한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둘 또는 셋 정도 소수의 배우가 등장하고, 대부분 남자 배우이며, 내용적으로는 브로맨스적인 요소가 있고, 관객이 해석할 여지를 비워둔다. 운영 면에서는 멀티 캐스팅을 통해 페어 별로 비교해서 보는 재미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들 작품은 작품마다 독특한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반복 관람하는 마니아 관객들을 고려해 앞서 언급한 특징을 공유한다. 마니아 관객들이 이러한 요소를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제작사가 성공 스토리를 따라 제작하다 보니 그런 건지, 아마도 둘 다이겠지만 공연 생태계에서 유사한 작품들이 쏠리는 현상은 그 시장을 건강하게 발전시키지 못한다.
마니아 관객층은 그 문화를 활발하게 꽃피우고 소속인들에게 지지와 힘을 준다. 그러나 그 문화의 중심이 마니아에게 있다면 확장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 뮤지컬 시장은 좀 더 다채로운 작품으로 다양한 취향의 대중들을 공연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뮤지컬 생태계적인 측면에서도 건강해지는 길이다.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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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다양성과 공존, 공연 생태계의 원리
다양한 취향을 포용해야 하는 이유
박병성
2018-01-09
생태계라고 하면 외래 어종이나 황소개구리만 생각이 난다. 이들은 토종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생태계를 교란한다. 생태계 파괴, 생태계 교란이라고 할 때는 생태계가 나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의미일 텐데, 우문이 들었다. 그 말은 생태계의 모습에도 어떤 정답이 있다는 뜻일까. 지금의 생태계가 다양한 종의 유입으로 재정립된 것이듯, 베스가 들어온 생태계 역시 새로운 질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바로 바뀌었다. 베스가 유입된 생태계는 종의 다양성이 파괴된 생태계라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다. 베스가 없는 강에 수백의 어종이 있었다면 상위 포식자인 데다가 천적마저 없는 베스가 있는 강에는 수십의 어종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한 진리를 이번 ‘생태계’라는 주제를 받고 생각하게 됐다. 생태계란 그 속에 포함된 다양한 개체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건강한 생태계란 다양한 개체가 공존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생태계라는 말은 종종 은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때도 특정 집단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생태계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대별 문화 생태계
12월 31일 일본 NHK에서는 그 해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경쟁을 벌이는 <홍백가합전>을 방영한다.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국내 그룹인 트와이스가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몇 해째 연말을 일본에서 보내다 보니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데, 일본 중장년층의 가요계 수준에 놀라게 된다. 출연자 중 우리로 치자면 설운도나 현철급의 원로 가수가 많기도 하거니와 이들의 의상이나 조명, 무대 퍼포먼스의 규모가 놀라운 수준이었다. 연말 프로그램이라는 성격 때문에 중장년층에 대한 배려가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원로 가수의 참여 비율이나 그들이 보여준 역량은 이벤트 프로그램의 특징으로 한정할 수 없는 일본 문화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홍백가합전>으로 판단하건대 일본 가요계는 중장년층이 주도하는 문화다. 젊은 가수들의 무대 역시 그만의 매력은 있었으나 중장년층 가수들의 무대에서 깊은 인상과 압도하는 에너지를 느꼈다. 우리 문화와 비교해 중장년층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반면 한국의 문화는 젊은 층이 주도한 가요계는 아이돌 천국이고 문화를 만들고 향유하는 이들의 주축이 젊은이들이다. 과문해서인지 모르겠으나 한국의 중장년층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젊은 층과 중장년층의 문화 중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순환되는 것이 건강한 문화생태계이다. ©Siyff_cc by 3.0
문화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두터운 중장년층이 가요계를 이끌어가는 일본이나 중장년층 문화가 희박한 우리 모두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계 생태계에서는 포식자로 올라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어야 다양한 종이 공존할 수 있다. 인위적인 문화에 자연계와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는 없지만 다양성과 공존의 원리로 보자면, 젊은 층이 문화를 주도하면서 세대가 높아질수록 느슨하게 감소하는 형태가 좀 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일본 가요계처럼 중장년층 문화가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문화 순환이 쉽지 않고, 우리의 경우처럼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문화의 규모가 축소된다면 늘 새로운 공급만 이어질 뿐 그 문화가 성숙하게 발전하기 힘들다.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이어서 더욱 그러했겠지만, 어쨌든 일본 가요계가 수십 년 동안 그 규모를 잃지 않으면서 여전히 활동적이고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은 부러웠다.
마니아 중심의 공연 문화
내가 몸담고 있는 뮤지컬계 역시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문제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지금 뮤지컬계의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은 많은데 공연을 보는 관객이 적다는 것이다. 뮤지컬 시장은 2000년대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여 현재는 3,500억 원 정도의 시장으로 추정된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세계 5대 시장이라는 표현도 있었는데, 규모로만 본다면 세계 5대 시장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인구수가 5천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은 한국이 세계 뮤지컬 시장에 손에 꼽힐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빠른 성장은 과도한 공급을 통한 양적 팽창을 이루었을 뿐 내적으로도 건강한 시장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즉 작품이 많이 올라가면서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제작 환경은 열악하고 관객 규모도 시장에 걸맞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한국 뮤지컬 관객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연말이나 특별한 이벤트 때 뮤지컬을 보는 일반 관객과 상시 즐기는 마니아 관객이다. 여전히 1년에 뮤지컬을 한 편도 안 보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우리 경제 수준에서 대형 뮤지컬의 경우 R석이 13만 원 정도 하는 뮤지컬을 본다는 것이 평범한 서민들에게 큰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우리 뮤지컬 시장은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보는 회전문 관객들에 의존하는 비중이 꽤 크다. 대형 뮤지컬의 경우 한정된 마니아들의 회전문만으로 유지될 수는 없지만 200~300석 미만의 작품일 경우 회전문 관객에 집중해도 수익을 낼 수가 있다. <쓰릴 미> <마마 돈 크라이> <트레이스 유>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더 데빌> 등 아마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뮤지컬이겠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전체 관객 중 반복 관람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앞서 열거한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둘 또는 셋 정도 소수의 배우가 등장하고, 대부분 남자 배우이며, 내용적으로는 브로맨스적인 요소가 있고, 관객이 해석할 여지를 비워둔다. 운영 면에서는 멀티 캐스팅을 통해 페어 별로 비교해서 보는 재미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들 작품은 작품마다 독특한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반복 관람하는 마니아 관객들을 고려해 앞서 언급한 특징을 공유한다. 마니아 관객들이 이러한 요소를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제작사가 성공 스토리를 따라 제작하다 보니 그런 건지, 아마도 둘 다이겠지만 공연 생태계에서 유사한 작품들이 쏠리는 현상은 그 시장을 건강하게 발전시키지 못한다.
마니아 관객층은 그 문화를 활발하게 꽃피우고 소속인들에게 지지와 힘을 준다. 그러나 그 문화의 중심이 마니아에게 있다면 확장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 뮤지컬 시장은 좀 더 다채로운 작품으로 다양한 취향의 대중들을 공연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뮤지컬 생태계적인 측면에서도 건강해지는 길이다.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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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나를 나답게 만드는 소중한 가치를 찾아가는 길...
정여울
[생태계]자연과 공생하는 음악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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