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누군가 물어봅니다. 어느 별 아래에서 태어났나요? 당신이 모른다고 하자 그는 태어난 날을 물었지요. 그리곤 처녀자리 아래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주더군요. 그런데 당신이 태어날 때 하늘에는 처녀자리만 있었을까요? 목동자리, 사자자리도 같은 밤하늘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지구와 함께 자전하며 우주의 모든 별을 머리 위에 두게 됩니다. 다만 태양을 바라보는 반나절 동안 햇빛에 가려 우리를 비추는 별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태어난 날 낮 동안 당신 머리 위에 있었을 오리온자리와 큰개자리, 작은개자리 별들은 온전히 당신에게 별빛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주의 모든 별이 보낸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사는 거지요.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요? 그런데 그 중 어느 별자리 하나를 콕 집어 나의 탄생 별자리로 하는 건 나머지 별들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지 않을까요. 더구나 그 별 중 어느 별을 선택할지를 내가 아닌 과거의 누군가가 이미 정해놨다면 사실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별과 우주
별자리는 지구에서 본 우주입니다. 예를 들어 북두칠성을 이루는 별은 총 일곱 개입니다. 그중 두베(Dubhe)는 지구에서 124광년 떨어진 곳에 있고, 메그레즈(Megrez)는 58광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두 별 사이의 거리는 66광년으로 지구에서 메그레즈 사이의 거리보다도 더 멉니다. 이들 사이에 대체 어떤 연관 관계가 있어 나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걸까요? 이들 사이의 연관성은 단지 지구에서 보았을 때 같은 방향에 있다는 것뿐인데 말입니다. 마치 내가 사는 동네에서 보니 남산 서울타워랑 서울 시립대 부근 배봉산이 같은 방향에 있다고 둘을 하나로 묶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내가 만약 홍대에 살았다면 서강대의 노고산과 남산을 묶어버렸을 텐데 말이죠.
더구나 이러한 방향조차 시간이 지나면 바뀝니다. 왜냐하면 지구가 속한 태양계 자체가 우리 은하를 공전하기 때문입니다. 은하의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공전하는 속도도 제각기 다르지요. 따라서 몇백 년이 지나면 별자리는 그 모양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달력에 적힌 태어난 날에 따라 별자리를 정합니다. 몇 월 몇 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자신의 별자리가 정해지는 거지요. 그런데 이 또한 바뀝니다. 우리의 1년은 100년 전의 1년보다 길고, 2백 년 전의 1년보다는 더 깁니다. 지구의 공전 속도가 매년 아주 조금씩 느려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옛날에는 지금처럼 1년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그리고 시기에 따라 1년이 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택하고 있는 달력은 그레고리우스력인데 그 이전에는 율리우스력을 따랐지요. 로마 시대 이전에는 또 달랐습니다. 그리고 점성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어 이집트를 지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구체화되었습니다. 고대 점성학에서 가장 중요한 책인 『테트라비블로스(Tetrabiblos)』는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점성술사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책이었습니다. 지금과 다른 달력을 쓰던 시대의 점성술이 현재까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달라진 지식, 달라진 신념
또 하나 짚어볼까요? 지금의 점성술은 먼 옛날 눈으로 보던 별들로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별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압니다. 고작 천 개도 안 되는 별만을 가지고 연구하던 점성술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주에 1,000억의 1,000억 배가 넘는 별들이 있는 것 압니다. 고작 눈에 보이는 별 몇십 개, 몇백 개로 구성된 점성술이 과연 타당성이 있을까요?
더구나 점성술은 천동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초기에 이르기까지 점성술사와 천문학자는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별도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점성술이 과연 타당한 걸까요?
점성술의 또 다른 대상은 행성입니다. 점성술에서 행성이란 옛날 사람들이 맨눈으로 봤을 때 관측 가능했던 수성과 금성, 화성, 목성, 토성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외에도 천왕성과 해왕성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성의 운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행성들이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동에서 서로 역행하는 현상이 대단히 신기하고 깊은 뜻을 가진다고 여길 만도 했습니다. 그래서 점성술에선 역행일 때 태어난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그러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행성의 역행을 설명하는 점성술은 또 무어란 말입니까.
별과 지구와 나의 변화하는 관계
사실 점성술의 요체는 지구 중심주의입니다.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에게 쏟아진다는 것은, 결국 우주가 지구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전제하는 거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한 변방이라는 것을 압니다. 왜 굳이 변방의 지구에게 그 수많은 별들이 자신의 기운을 나눠주겠습니까. 이제는 교도소에 갇힌 전 대통령은 ‘열심히 바라면 온 우주의 기운이 너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지만 -사실 이마저도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빌린 표현이긴 합니다만- 우주가 우리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허망한 생각과는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별과 지구의 관계는 우리의 일생 동안 그 변화를 알 만큼 빠르게 변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요. 하지만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 우리 눈에도 보일 만큼 변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별에 대한 앎은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늡니다. 그런 가운데 이전의 지식과 관측에 기초하던 별에 대한 상식 또한 바뀝니다. 이러한 변화를 부정하고 낡은 지식에 기초한 오랜 예언을 믿는 것은 서글픈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이 항상 쉽지만은 않고, 앞길이 막막한 때도 많습니다. 또 생의 변화는 우리의 뜻대로만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니 뭔가에 의지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점성술이든 타로든 하다못해 화투로 점을 떼든 잠시나마 그로 위안 삼는 것이 뭐 큰 문제겠습니까. 다만 그 일들이 실제로 우리의 운명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어야겠지요. 그래도 미래의 변화를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늘 그렇듯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게 되겠지만요.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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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당신은 어느 별 아래 태어났나요?
움직이는 우주, 변화하는 지식
박재용
2018-03-19
별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누군가 물어봅니다. 어느 별 아래에서 태어났나요? 당신이 모른다고 하자 그는 태어난 날을 물었지요. 그리곤 처녀자리 아래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주더군요. 그런데 당신이 태어날 때 하늘에는 처녀자리만 있었을까요? 목동자리, 사자자리도 같은 밤하늘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지구와 함께 자전하며 우주의 모든 별을 머리 위에 두게 됩니다. 다만 태양을 바라보는 반나절 동안 햇빛에 가려 우리를 비추는 별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태어난 날 낮 동안 당신 머리 위에 있었을 오리온자리와 큰개자리, 작은개자리 별들은 온전히 당신에게 별빛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주의 모든 별이 보낸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사는 거지요.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요? 그런데 그 중 어느 별자리 하나를 콕 집어 나의 탄생 별자리로 하는 건 나머지 별들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지 않을까요. 더구나 그 별 중 어느 별을 선택할지를 내가 아닌 과거의 누군가가 이미 정해놨다면 사실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별과 우주
별자리는 지구에서 본 우주입니다. 예를 들어 북두칠성을 이루는 별은 총 일곱 개입니다. 그중 두베(Dubhe)는 지구에서 124광년 떨어진 곳에 있고, 메그레즈(Megrez)는 58광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두 별 사이의 거리는 66광년으로 지구에서 메그레즈 사이의 거리보다도 더 멉니다. 이들 사이에 대체 어떤 연관 관계가 있어 나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걸까요? 이들 사이의 연관성은 단지 지구에서 보았을 때 같은 방향에 있다는 것뿐인데 말입니다. 마치 내가 사는 동네에서 보니 남산 서울타워랑 서울 시립대 부근 배봉산이 같은 방향에 있다고 둘을 하나로 묶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내가 만약 홍대에 살았다면 서강대의 노고산과 남산을 묶어버렸을 텐데 말이죠.
더구나 이러한 방향조차 시간이 지나면 바뀝니다. 왜냐하면 지구가 속한 태양계 자체가 우리 은하를 공전하기 때문입니다. 은하의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공전하는 속도도 제각기 다르지요. 따라서 몇백 년이 지나면 별자리는 그 모양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달력에 적힌 태어난 날에 따라 별자리를 정합니다. 몇 월 몇 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자신의 별자리가 정해지는 거지요. 그런데 이 또한 바뀝니다. 우리의 1년은 100년 전의 1년보다 길고, 2백 년 전의 1년보다는 더 깁니다. 지구의 공전 속도가 매년 아주 조금씩 느려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옛날에는 지금처럼 1년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그리고 시기에 따라 1년이 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택하고 있는 달력은 그레고리우스력인데 그 이전에는 율리우스력을 따랐지요. 로마 시대 이전에는 또 달랐습니다. 그리고 점성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어 이집트를 지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구체화되었습니다. 고대 점성학에서 가장 중요한 책인 『테트라비블로스(Tetrabiblos)』는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점성술사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책이었습니다. 지금과 다른 달력을 쓰던 시대의 점성술이 현재까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달라진 지식, 달라진 신념
또 하나 짚어볼까요? 지금의 점성술은 먼 옛날 눈으로 보던 별들로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별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압니다. 고작 천 개도 안 되는 별만을 가지고 연구하던 점성술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주에 1,000억의 1,000억 배가 넘는 별들이 있는 것 압니다. 고작 눈에 보이는 별 몇십 개, 몇백 개로 구성된 점성술이 과연 타당성이 있을까요?
더구나 점성술은 천동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초기에 이르기까지 점성술사와 천문학자는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별도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점성술이 과연 타당한 걸까요?
점성술의 또 다른 대상은 행성입니다. 점성술에서 행성이란 옛날 사람들이 맨눈으로 봤을 때 관측 가능했던 수성과 금성, 화성, 목성, 토성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외에도 천왕성과 해왕성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행성의 운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행성들이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동에서 서로 역행하는 현상이 대단히 신기하고 깊은 뜻을 가진다고 여길 만도 했습니다. 그래서 점성술에선 역행일 때 태어난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그러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 행성의 역행을 설명하는 점성술은 또 무어란 말입니까.
별과 지구와 나의 변화하는 관계
사실 점성술의 요체는 지구 중심주의입니다.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에게 쏟아진다는 것은, 결국 우주가 지구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전제하는 거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한 변방이라는 것을 압니다. 왜 굳이 변방의 지구에게 그 수많은 별들이 자신의 기운을 나눠주겠습니까. 이제는 교도소에 갇힌 전 대통령은 ‘열심히 바라면 온 우주의 기운이 너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지만 -사실 이마저도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빌린 표현이긴 합니다만- 우주가 우리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허망한 생각과는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별과 지구의 관계는 우리의 일생 동안 그 변화를 알 만큼 빠르게 변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요. 하지만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 우리 눈에도 보일 만큼 변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별에 대한 앎은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늡니다. 그런 가운데 이전의 지식과 관측에 기초하던 별에 대한 상식 또한 바뀝니다. 이러한 변화를 부정하고 낡은 지식에 기초한 오랜 예언을 믿는 것은 서글픈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이 항상 쉽지만은 않고, 앞길이 막막한 때도 많습니다. 또 생의 변화는 우리의 뜻대로만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니 뭔가에 의지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점성술이든 타로든 하다못해 화투로 점을 떼든 잠시나마 그로 위안 삼는 것이 뭐 큰 문제겠습니까. 다만 그 일들이 실제로 우리의 운명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어야겠지요. 그래도 미래의 변화를 알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늘 그렇듯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게 되겠지만요.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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