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관계]기억되게 해주세요

관계에 따른 건축과 도시

양용기

2018-02-22

 

관계된 사람에 따른 건축 도면의 종류
도면은 작업 방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계획도면, 기본도면 그리고 실시도면이다. 이 분류의 근거는 바로 도면이 ‘누구’와 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도면은 이 관계된 사람에게 보여줌으로써 상호 간에 정보를 교환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설계 첫 단계는 건축주와 관계가 있다. 그러나 건축주가 반드시 건축 전공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건축주를 위한 도면은 복잡하게 그리면 안 된다. 건축을 잘 모르는 이가 원하는 정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하게 그려야 한다. 그리고 첫 단계다 보니 변경 내용이 많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변경 가능성을 고려하여 건축주가 원하는 내용만 나타나도록 그린다.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이지 결정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건축주와 관계있는 도면을 계획도면이라고 부른다.
건축주가 계획도면을 보고 만족하면 다음 단계의 도면을 그려야 하는데 이것이 기본도면이다. 기본도면에서는 관계된 사람이 바뀐다. 건축주가 동의했다고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건축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와 관계된 사람이 바로 공무원이다. 계획도면은 관계된 사람이 건축주 한 명이기에 건축도면 하나만 그리면 되지만, 공무원은 최소한 건축, 구조, 소방, 설비 그리고 조경 등 다섯 분야의 관계된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 다섯 분야와 관계된 내용이 도면에 있어야 하기에 계획도면보다 내용이 복잡해지고 법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이 법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기본도면이라고 부른다. 법적으로 검토한 후 문제가 없으면 허가를 받게 되고 다음 도면으로 작업단계가 넘어가면서 관계된 사람도 바뀐다. 건축주가 동의했고 공무원이 허가를 내주었으므로 이제 시공업체가 실시하면 된다. 그래서 다음 도면의 관계자는 시공업자가 되며 시공을 실시한다고 해서 실시도면이라 부른다. 도면은 설계자를 위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다. 도면과 관계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내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 계획도면 / 기본도면 / 실시도면

설계의 역할
건축물의 설계 초기에는 어떤 목적의 건축물을 지을 것인가를 먼저 결정한다. 이것이 결정되면 그 목적에 맞는 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공간의 종류, 크기 그리고 개수를 계획한다. 이 모든 계획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요인은 바로 구성요소와의 관계다. 내부적으로는 공간과의 관계를 계획하고 외부적으로는 환경, 도시 그리고 방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설계한다. 앞의 도면이 객관적인 작업이라면 설계는 설계자의 주관적인 작업이다. 이 작업에 영향을 주는 우선적인 요소가 바로 건축비용과 대지의 관계다. 설계자들은 작업 후 “잘 풀었다”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 말은 주어진 요소들의 관계를 잘 해결했다는 뜻이다. 작업하는 데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려해야 하는 관계가 사람이다. 그래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공간조직과 동선의 흐름을, 르 코르뷔지에는 빛을, 로버트 벤츄리는 장식과 역사를 외부작업에 늘 반영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설계자의 의도가 작업에 반영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축주와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
건축가는 설계 시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컨설턴트도 해야 한다. 건축이 종합예술인 이유다.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언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건축의 설계과정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현대가 시작되면서 기술과 재료의 발달은 오히려 건축가의 설계 능력을 저하시키는 역할도 했는데, 이는 과거 건축이 담당했던 감성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기능적인 부분만 부각했기 때문에 환경, 시각적 만족 그리고 지역의 역사 등을 무시한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이 등장하면서 지역적인 특성마저 사라지게 했다.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무시한 건축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느끼지도 못한 채 설계 경쟁 속에서 설계자(Architect)가 아닌 제도사(Cad Operater)처럼 일을 하게 된 것이다.

 
  • 프루이트 아이고 철거 전 모습
  • 철거 당시 폭파 모습
      프루이트 아이고 철거 전 모습과 철거 당시 폭파 모습

    그 한 예로 1954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2,762세대를 위한 아파트 단지 프루이트 아이고를 조성을 들 수 있다. 건축가는 설계 시 주 정부에 완공 후 발생할 수 있는 지역과 지역 관계, 완공 전과 후의 관계 등 문제점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대안을 조언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세스를 놓쳐 빈곤층 유입, 인종 분리 현상으로 인한 급격한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골칫덩어리로 부상하고 급기야 철거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는 지역 상호 간의 관계를 무시한 모던의 거침없는 질주를 포스트모던에 비웃음거리로 제공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설계는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예상되는 상황을 도식화하여 설계자와 이와 관계된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며, 연결고리이자 기록이다. 그래서 설계에는 모든 정보가 담겨 있어야 한다.

    도시 속 건축물의 기억
    한 도시의 이미지에는 모든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도시를 방문한 후 갖게 되는 경험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건축의 역할은 아주 크다. 반드시 그 건축물에 들어가 경험하지 않더라도 외형적인 형태를 통해 시각적인 간접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다시 방문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의 경험에 존재하는 기억의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 건축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우리는 우리가 방문한 도시에서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본 건축물을 얼마나 기억할까? 건축을 너무도 사랑한 건축가 루이스 칸은 자신을 위한 설계가 아닌 건축물을 위한 설계를 하고자 건축물에게 물었다. “건물아 건물아 네가 원하는 게 뭐니?” 건물이 말하기를 “저 기억되게 해주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 2월
    • 관계
    • 건축
    • 건축도면
    • 설계
    • 건축주
    • 프루이트아이고
    • 건축가
    필자 양용기
    양용기

    독일 건축가이자 건축학 교수.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박사, 독일 호프만 설계사무소, (주)쌍용건설 등을 거쳐 현재는 안산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 『음악 미술 그리고 건축』 『건축 인문의 집을 짓다』 『철학이 있는 건축』 등이 있다.

    댓글(0)

    0 / 500 Byte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관계]기억되게 해주세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