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2008년 한 겨울. 일본의 어느 학교 운동장에 열기구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간다 미치오라는 모험가가 타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열기구를 타고 일본에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는 며칠 후 이런 교신을 남겼다. "비가 내리고 있다. 미국 영해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상승해 날 수 있는 만큼 가겠다." 그리고 그는 실종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한국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이런 문구를 달았다. ‘인류 최후의 모험가’. 이제 아무도 모험하지 않는 시대, 즉 모험이 사라진 시대라는 의미였다. 이런 인물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다. 그 역시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정상등정에 나섰지만 끝내 운명을 달리 했다.
www.goldstar.com 『최후의 모험가』 간다 미치오 지음
우리는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를 듣고 칭송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의문을 남긴다. 왜 죽을 줄 뻔히 아는 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남은 가족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는 남겨질 가족에게 닥칠 불운에 사람들은 모험하기를 주저한다. 이런 말을 곱씹어보자.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이 문장에는 복선이 있다. 인생은 한 번이니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하고 싶은 걸을 하라는 뜻일 수도, 아니면 한 번이니까 목숨 귀한 줄 알고 모험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나이 한 번 죽는 목숨’이라는 결연한 선언은 어쩌면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목숨이므로 주저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전쟁터에서 이 말은 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슬로건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모험에 인생을 던진 이들을 흠모하고, 때로는 국가가 나서서 보훈하는 것도 뒤집어보면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의 구차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일 수도 있다.
열기구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던 간다 미치오와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던 박영석은 한 번뿐인 인생을 모험에 던진 ‘최후의 모험가’였다.
어릴 때 읽은 책은 대개 모험을 장려한다. 무지개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것이 그 또래의 생각이기도 했다. 세계여행가랄까, 오지여행가 같은 직업을 미래의 꿈으로 설정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모험은 위험을 안고 있어서 더욱 빛났다. 인생에 거는 도박을 응원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모험가는 사라졌고(간다 미치오의 별명이 ‘최후의 모험가’라는 걸 상기해보자), 모험하지 않는 삶을 동경해야 할 만큼 생존하기도 버거운 시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모험은 박제가 되었다. 아무도 자신의 삶에 더 큰 위험이 존재하길 바라지 않는다. 안 그래도 살기 힘들고, 예측하기 어려운 삶에 ‘리스크’까지 들여놓을 공간은 없는 것이다. ‘모험은 어느 순간 절박해질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순수한 의미에서 모험은 우리 세계에서 진짜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마무리가 아닌 두 번째 삶의 시작
다시 ‘인생은 한 번이니까’로 돌아가본다. 나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더 많은 모험이 우리 인생을 빛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유럽에 있을 때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요리학교에서 여러 명의 이국인들이 요리를 배웠다. 그 중 상당수가 나이가 적지 않았다. 더러는 환갑이 넘었다. 환갑의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나이라면 유럽에서도 은퇴자다. 그들은 은퇴자라는 의미를 매우 영광스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아냈으며,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여 부양에 참여했으며, 이제 좀 쉬어도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은퇴자의 노후를 즐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그 중 어떤 이들은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나는 그들을 오해했었다. “그럼 은퇴하시고 이제 요리를 배워 취미생활을 할 예정인가보군요.” 그러자 그들이 펄쩍 뛰었다. “무슨 말이오. 나는 이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려는 참이라네.”
www.hinterlandtimes.com.au 은퇴는 인생의 마무리가 아닌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다.
당시(1990년대 후반)만 해도 우리는 환갑에 은퇴하면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여생을 마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삶을 다르게 해석하는 이들이었다. 새로운 시도에 자신을 던지고 있었다. 인생은 적어도 팔십 정도까지는 활동적으로 살 수 있는데, 무료하게 2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않는 셈이었다. 이미 우리에게는 그런 삶이 다가왔다. 나는 인생에서 한 번의 큰 모험을 결행했다. 90년대 후반에 요리사로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을 때, 아무도 응원해 주지 않았다. 대개 정해진 직업은(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환갑 언저리까지 이어가는 게 보통이었다. 나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 그렇게 마무리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무지개 너머에 새로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가보고 나서 닥칠 허망함이라도 남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작동되었다.
“가보지 않았으니까 가보는 것이지요.” 간다 미치오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 인생에는 이처럼 단순한 의지가 다시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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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오직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서 모험한다는 것
박찬일
2017-11-28
모험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2008년 한 겨울. 일본의 어느 학교 운동장에 열기구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간다 미치오라는 모험가가 타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열기구를 타고 일본에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는 며칠 후 이런 교신을 남겼다. "비가 내리고 있다. 미국 영해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상승해 날 수 있는 만큼 가겠다." 그리고 그는 실종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한국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이런 문구를 달았다. ‘인류 최후의 모험가’. 이제 아무도 모험하지 않는 시대, 즉 모험이 사라진 시대라는 의미였다. 이런 인물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다. 그 역시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정상등정에 나섰지만 끝내 운명을 달리 했다.
우리는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를 듣고 칭송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의문을 남긴다. 왜 죽을 줄 뻔히 아는 길로 들어서는 것일까. 남은 가족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는 남겨질 가족에게 닥칠 불운에 사람들은 모험하기를 주저한다. 이런 말을 곱씹어보자.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이 문장에는 복선이 있다. 인생은 한 번이니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하고 싶은 걸을 하라는 뜻일 수도, 아니면 한 번이니까 목숨 귀한 줄 알고 모험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나이 한 번 죽는 목숨’이라는 결연한 선언은 어쩌면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목숨이므로 주저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전쟁터에서 이 말은 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슬로건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모험에 인생을 던진 이들을 흠모하고, 때로는 국가가 나서서 보훈하는 것도 뒤집어보면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의 구차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일 수도 있다.
열기구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던 간다 미치오와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던 박영석은 한 번뿐인 인생을 모험에 던진 ‘최후의 모험가’였다.
어릴 때 읽은 책은 대개 모험을 장려한다. 무지개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것이 그 또래의 생각이기도 했다. 세계여행가랄까, 오지여행가 같은 직업을 미래의 꿈으로 설정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모험은 위험을 안고 있어서 더욱 빛났다. 인생에 거는 도박을 응원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모험가는 사라졌고(간다 미치오의 별명이 ‘최후의 모험가’라는 걸 상기해보자), 모험하지 않는 삶을 동경해야 할 만큼 생존하기도 버거운 시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모험은 박제가 되었다. 아무도 자신의 삶에 더 큰 위험이 존재하길 바라지 않는다. 안 그래도 살기 힘들고, 예측하기 어려운 삶에 ‘리스크’까지 들여놓을 공간은 없는 것이다. ‘모험은 어느 순간 절박해질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순수한 의미에서 모험은 우리 세계에서 진짜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마무리가 아닌 두 번째 삶의 시작
다시 ‘인생은 한 번이니까’로 돌아가본다. 나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더 많은 모험이 우리 인생을 빛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유럽에 있을 때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요리학교에서 여러 명의 이국인들이 요리를 배웠다. 그 중 상당수가 나이가 적지 않았다. 더러는 환갑이 넘었다. 환갑의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 나이라면 유럽에서도 은퇴자다. 그들은 은퇴자라는 의미를 매우 영광스러운 것으로 인식한다.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아냈으며,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여 부양에 참여했으며, 이제 좀 쉬어도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은퇴자의 노후를 즐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그 중 어떤 이들은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나는 그들을 오해했었다. “그럼 은퇴하시고 이제 요리를 배워 취미생활을 할 예정인가보군요.” 그러자 그들이 펄쩍 뛰었다. “무슨 말이오. 나는 이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려는 참이라네.”
www.hinterlandtimes.com.au 은퇴는 인생의 마무리가 아닌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다.
당시(1990년대 후반)만 해도 우리는 환갑에 은퇴하면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여생을 마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삶을 다르게 해석하는 이들이었다. 새로운 시도에 자신을 던지고 있었다. 인생은 적어도 팔십 정도까지는 활동적으로 살 수 있는데, 무료하게 2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않는 셈이었다. 이미 우리에게는 그런 삶이 다가왔다. 나는 인생에서 한 번의 큰 모험을 결행했다. 90년대 후반에 요리사로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을 때, 아무도 응원해 주지 않았다. 대개 정해진 직업은(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환갑 언저리까지 이어가는 게 보통이었다. 나는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 그렇게 마무리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무지개 너머에 새로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가보고 나서 닥칠 허망함이라도 남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작동되었다.
“가보지 않았으니까 가보는 것이지요.”
간다 미치오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 인생에는 이처럼 단순한 의지가 다시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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