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든든한 입지를 마련한 대중가수의 경우, 의외로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이 쉽지 않다. 자신에게 영예를 가져다 준 곡 스타일과 코드 혹은 음악 외의 이미지 같은 것들을 무시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깨끗이 지워야 미지의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 혹은 거물은 예외 없이 이미 확립된 ‘성공방식’을 거부하고 실험으로 내달려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비틀스, 밥 딜런, 브라이언 윌슨, 마빈 게이 그리고 우리의 신중현, 조용필, 산울림, 유재하 등이 괜히 레전드로 숭배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큰 인기를 누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필시 그는 상업적 결과 때문에 기존스타일을 재탕, 삼탕 해서일 것이다.
레이 찰스의 음악에 흑백 차별이란 없다
‘소울음악의 천재’로 불리는 레이 찰스(Ray Charles)는 대중음악의 역사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전설 중 전설’이다. 2004년 제이미 폭스가 주연한 그의 전기 영화 <레이> 로 인해 새로운 세대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음악가든 대중이든 미국인들은 레이 찰스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경배의 자세로 돌입한다. 끝없는 도전과 실험으로 예술가의 창의성을 널리 전파한 위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블루스•소울 가수 레이 찰스 / 그의 노래 ‘I can’t stop loving you’ 수록 앨범
1962년 전미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국내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명곡 ‘I can’t stop loving you’ 때의 일화는 예술가에 있어서 모험의 가치를 확인해주는 사례로 유명하다. 시각 장애자인 레이 찰스는 스티비 원더가 그렇듯 ‘아프로 아메리칸’ 즉 흑인이다. 음악장르 구분의 기준점인 인종적 측면에서 흑인은 블루스, 백인은 컨트리로 분류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레이 찰스는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음악과 관련을 맺는다.
그런데 음악적 호기심과 모험욕구가 강한 그는 그 무렵 백인의 음악인 ‘컨트리’ 또는 ‘컨트리 앤 웨스턴’ 히트곡들을 귀담아들어 보고 나서 한번 자기 식으로 해석해보고 싶은 의욕을 불태웠다. 그래서 선택한 곡이 백인 컨트리 음악의 스타 돈 깁슨의 ‘I can’t stop loving you’였다. 소식을 접한 레코드사(ABC) 사람들은 기가 막혔다. 만류를 거듭했다. “이봐요 찰스, 팬들을 생각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컨트리 앤 웨스턴이라니요, 아마 팬들을 다 잃을 거요. 절대 안돼요!”
레이 찰스의 명반 ‘모던 사운즈 인 컨트리&웨스턴 뮤직’
물론 흑인이라고 백인음악은 안되고 백인들은 흑인음악을 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백인들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랬듯 오래 전부터 흑인음악에 손을 댔다. 하지만 백인지배사회에서 홀대받는 흑인이 차별의 주체인 백인의 음악을 하는 것은 사실상 금기시되었다. 그것은 흑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종의 ‘굴욕’ 같은 것이었다. 흑인동료와 팬들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레이 찰스는 전혀 달랐다. 그런 현실을 떠나 백인음악을 음악적 차원에서 바로 보자는 주장이었다. “그게 뭔 말이요? 왜 컨트리 앤 웨스턴을 부르면 안 된다는 거요? 여하튼 난 할 겁니다. 내가 그 곡을 부른다고 컨트리 가수가 됩니까. 그저 컨트리 송을 불러보겠다는 거요. 그리고 ‘I can’t stop loving you’를 노래할 때 컨트리 앤 웨스턴으로 부르지 않아요. 내 식으로 노래하지(I’m singing it like me).”
아무도 레이 찰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는 한 곡에 그치지 않고 무더기로 컨트리 송을 재해석한 앨범을 떡 하니 ‘컨트리 앤 웨스턴 음악의 현대적 사운드라 제목 붙여 앨범을 내놓았다. 당시 잠시 논란이 있지만 이 앨범은 레이 찰스 생애의 걸작으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파퓰러 뮤직의 역사를 바꾼 명반으로 남아 있다. 그가 백인음악에 손을 뻗쳤다고 해서 인종갈등과 대립이 극심한 미국사회에서 행여 그가 기회주의자가 아닐까 의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에 걸쳐 흑백평등 사상기조를 지킨 인물로 유명하다. 문제의 앨범을 내기 전해인 1961년 자신의 고향인 조지아주 어거스트 지역에 예정된 한 공연이 좋은 자리는 백인만 볼 수 있고 흑인은 허름한 외곽 자리만 허용된다는 말을 듣고 대뜸 일정을 취소해버려 평지풍파를 불렀다. 결국 프로모터로부터 고소를 당해 벌금을 물었지만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흑백을 차별하는 공연 무대에는 서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이후 조지아주 지역에서 객석의 흑백분리는 사라졌다.
‘Baby one more time’으로 데뷔한 앳된 느낌의 17살 브리트니 스피어스
성숙을 향한 고통,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슷한 사례로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가 있다. 그는 1999년 ‘Baby one more time’으로 데뷔하자마자 대박을 치면서 ‘틴 팝(Teen pop)스타’ 열풍을 몰고 왔다. 이 곡을 녹음했을 때 그녀는 17살의 앳된 소녀였다. 당시 미국의 청소년들은 모일 때마다 브리트니 얘기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수년 뒤 그는 청소년이 아닌 성인 대상의 섹시 스타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첫 인상은 대중들에게 지배적이다. 때문에 아역배우나 하이틴 가수가 성인스타로 도약하는 게 예상보다 아주 드물다. 잭슨 파이브라는 그룹에서 노래한 꼬마 마이클 잭슨이 성인 톱 소울가수로 비상한 사례를 떠올릴 테지만 비슷한 경우를 대기는 힘들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어릴 적 디즈니의 어린이 프로그램 <미키마우스 클럽>에 출연하고 청소년층에 어필한 커리어의 소유자는 일찍 사그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Satisfaction’ / ‘Hold it against me’ 수록 앨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살린 것은 기존의 ‘10대 소녀’ 이미지를 박차고 완연한 ‘여성’으로 성장하려는 모험적 자의식이었다. 그는 이듬해 2집을 만들 때 제작자 입장에서는 황당한 요구를 거듭했다. 전설의 밴드 롤링 스톤스의 명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작에 울려 퍼지는 그 곡이다)을 불러보겠다는 것이다. 키드 지향의 틴 팝을 해야 제격인 시기에 지극히 남성적인 록을 하겠다는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이런 곡을 하면 망할 거야. 이미지에도 맞지 않고... 그리고 이런 명곡은 해석하기도 어렵고 잘해봤자 본전도 못 찾을 뿐이야. 아마 다들 발칙하다고 할 거야. 하지 말자고.” 그러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우기기를 계속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곡이라서 하고 싶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죠? 전 모험하면 안 되나요? 전 할 거예요!” 결과적으로 혹평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른한 앨범에 생기를 불어 넣은 곡’이라는 찬사도 있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12년이 지난 2011년에도 차트 1위곡 ‘Hold it against me’을 내고 오랫동안 ‘성인’ 여가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어려운 것에 덤벼드는 도전의 마인드에서 비롯한 것 아닐까. 성숙을 향한 고통의 과정을 겪으면서 환골탈태를 이뤄낸 것이다.
예술가를 배태하는 대중음악은 무엇보다 실험과 도전, 그 모험정신을 조건으로 삼는다. 새로움을 등지고 익숙한 것만을 제공하는 행위자는 예술가라고 할 수 없다. 2013년, 만 63살에 10대들이 들을 수 있는 곡 ‘바운스’를 내놓고 대성공을 거둔 ‘가왕’ 조용필은 신보의 성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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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성공이 보장된 길을 벗어난 뮤지션들의 새로운 시도
레이 찰스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모험
임진모
2017-11-21
모험
나름 든든한 입지를 마련한 대중가수의 경우, 의외로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이 쉽지 않다. 자신에게 영예를 가져다 준 곡 스타일과 코드 혹은 음악 외의 이미지 같은 것들을 무시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깨끗이 지워야 미지의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 혹은 거물은 예외 없이 이미 확립된 ‘성공방식’을 거부하고 실험으로 내달려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비틀스, 밥 딜런, 브라이언 윌슨, 마빈 게이 그리고 우리의 신중현, 조용필, 산울림, 유재하 등이 괜히 레전드로 숭배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큰 인기를 누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필시 그는 상업적 결과 때문에 기존스타일을 재탕, 삼탕 해서일 것이다.
레이 찰스의 음악에 흑백 차별이란 없다
‘소울음악의 천재’로 불리는 레이 찰스(Ray Charles)는 대중음악의 역사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전설 중 전설’이다. 2004년 제이미 폭스가 주연한 그의 전기 영화 <레이> 로 인해 새로운 세대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음악가든 대중이든 미국인들은 레이 찰스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경배의 자세로 돌입한다. 끝없는 도전과 실험으로 예술가의 창의성을 널리 전파한 위인이기 때문이다.
1962년 전미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국내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명곡 ‘I can’t stop loving you’ 때의 일화는 예술가에 있어서 모험의 가치를 확인해주는 사례로 유명하다. 시각 장애자인 레이 찰스는 스티비 원더가 그렇듯 ‘아프로 아메리칸’ 즉 흑인이다. 음악장르 구분의 기준점인 인종적 측면에서 흑인은 블루스, 백인은 컨트리로 분류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레이 찰스는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음악과 관련을 맺는다.
그런데 음악적 호기심과 모험욕구가 강한 그는 그 무렵 백인의 음악인 ‘컨트리’ 또는 ‘컨트리 앤 웨스턴’ 히트곡들을 귀담아들어 보고 나서 한번 자기 식으로 해석해보고 싶은 의욕을 불태웠다. 그래서 선택한 곡이 백인 컨트리 음악의 스타 돈 깁슨의 ‘I can’t stop loving you’였다. 소식을 접한 레코드사(ABC) 사람들은 기가 막혔다. 만류를 거듭했다. “이봐요 찰스, 팬들을 생각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컨트리 앤 웨스턴이라니요, 아마 팬들을 다 잃을 거요. 절대 안돼요!”
물론 흑인이라고 백인음악은 안되고 백인들은 흑인음악을 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백인들은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랬듯 오래 전부터 흑인음악에 손을 댔다. 하지만 백인지배사회에서 홀대받는 흑인이 차별의 주체인 백인의 음악을 하는 것은 사실상 금기시되었다. 그것은 흑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종의 ‘굴욕’ 같은 것이었다. 흑인동료와 팬들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레이 찰스는 전혀 달랐다. 그런 현실을 떠나 백인음악을 음악적 차원에서 바로 보자는 주장이었다. “그게 뭔 말이요? 왜 컨트리 앤 웨스턴을 부르면 안 된다는 거요? 여하튼 난 할 겁니다. 내가 그 곡을 부른다고 컨트리 가수가 됩니까. 그저 컨트리 송을 불러보겠다는 거요. 그리고 ‘I can’t stop loving you’를 노래할 때 컨트리 앤 웨스턴으로 부르지 않아요. 내 식으로 노래하지(I’m singing it like me).”
아무도 레이 찰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는 한 곡에 그치지 않고 무더기로 컨트리 송을 재해석한 앨범을 떡 하니 ‘컨트리 앤 웨스턴 음악의 현대적 사운드라 제목 붙여 앨범을 내놓았다. 당시 잠시 논란이 있지만 이 앨범은 레이 찰스 생애의 걸작으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파퓰러 뮤직의 역사를 바꾼 명반으로 남아 있다. 그가 백인음악에 손을 뻗쳤다고 해서 인종갈등과 대립이 극심한 미국사회에서 행여 그가 기회주의자가 아닐까 의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에 걸쳐 흑백평등 사상기조를 지킨 인물로 유명하다. 문제의 앨범을 내기 전해인 1961년 자신의 고향인 조지아주 어거스트 지역에 예정된 한 공연이 좋은 자리는 백인만 볼 수 있고 흑인은 허름한 외곽 자리만 허용된다는 말을 듣고 대뜸 일정을 취소해버려 평지풍파를 불렀다. 결국 프로모터로부터 고소를 당해 벌금을 물었지만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흑백을 차별하는 공연 무대에는 서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이후 조지아주 지역에서 객석의 흑백분리는 사라졌다.
성숙을 향한 고통,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슷한 사례로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가 있다. 그는 1999년 ‘Baby one more time’으로 데뷔하자마자 대박을 치면서 ‘틴 팝(Teen pop)스타’ 열풍을 몰고 왔다. 이 곡을 녹음했을 때 그녀는 17살의 앳된 소녀였다. 당시 미국의 청소년들은 모일 때마다 브리트니 얘기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수년 뒤 그는 청소년이 아닌 성인 대상의 섹시 스타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첫 인상은 대중들에게 지배적이다. 때문에 아역배우나 하이틴 가수가 성인스타로 도약하는 게 예상보다 아주 드물다. 잭슨 파이브라는 그룹에서 노래한 꼬마 마이클 잭슨이 성인 톱 소울가수로 비상한 사례를 떠올릴 테지만 비슷한 경우를 대기는 힘들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어릴 적 디즈니의 어린이 프로그램 <미키마우스 클럽>에 출연하고 청소년층에 어필한 커리어의 소유자는 일찍 사그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살린 것은 기존의 ‘10대 소녀’ 이미지를 박차고 완연한 ‘여성’으로 성장하려는 모험적 자의식이었다. 그는 이듬해 2집을 만들 때 제작자 입장에서는 황당한 요구를 거듭했다. 전설의 밴드 롤링 스톤스의 명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작에 울려 퍼지는 그 곡이다)을 불러보겠다는 것이다. 키드 지향의 틴 팝을 해야 제격인 시기에 지극히 남성적인 록을 하겠다는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이런 곡을 하면 망할 거야. 이미지에도 맞지 않고... 그리고 이런 명곡은 해석하기도 어렵고 잘해봤자 본전도 못 찾을 뿐이야. 아마 다들 발칙하다고 할 거야. 하지 말자고.” 그러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우기기를 계속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곡이라서 하고 싶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죠? 전 모험하면 안 되나요? 전 할 거예요!” 결과적으로 혹평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른한 앨범에 생기를 불어 넣은 곡’이라는 찬사도 있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12년이 지난 2011년에도 차트 1위곡 ‘Hold it against me’을 내고 오랫동안 ‘성인’ 여가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어려운 것에 덤벼드는 도전의 마인드에서 비롯한 것 아닐까. 성숙을 향한 고통의 과정을 겪으면서 환골탈태를 이뤄낸 것이다.
예술가를 배태하는 대중음악은 무엇보다 실험과 도전, 그 모험정신을 조건으로 삼는다. 새로움을 등지고 익숙한 것만을 제공하는 행위자는 예술가라고 할 수 없다. 2013년, 만 63살에 10대들이 들을 수 있는 곡 ‘바운스’를 내놓고 대성공을 거둔 ‘가왕’ 조용필은 신보의 성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나,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었다.”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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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모험]성공이 보장된 길을 벗어난 뮤지션들의 새로운 시도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모험]모험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다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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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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