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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자극추구성향과 자신감, 그리고 굶주린 마음

우리를 모험으로 이끄는 심리적 요소들

장근영

2017-11-07

 

[11월의 테마]
모험

미국의 유명한 투자자 짐 로저스(J.Rogers)가 우리나라를 방문해 던진 말이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모험을 하지 않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경제는 5년 이내에 활력을 잃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모험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모험이란 뭘까? 사전에서는 모험을 ‘흥분되거나 예사롭지 않은 경험. 보통은 불확실한 결과와 함께 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위험을 동반한다’라고 정의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정의해보자. 일단 모험은 행동이다. 아무리 대단한 생각도 그것만으로는 모험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사소한 말 한 마디도 모험이 될 수 있다. 말도 행동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모험이라 부르는 행동은 그 결과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 결과를 뻔히 알고서 하는 행동은 절대로 모험이 되지 않는다. 세 번째, 그 결과에 많은 것을 걸어야 한다. 그저 주사위를 던지기만 하면, 그 결과를 알지 못한다고 해도 모험이 아니다. 하지만 주사위를 던진 결과에 따라 엄청난 것을 얻거나 잃는다면 그때부터는 도박 혹은 모험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모험은 누가, 언제 하는 것일까?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크게 개인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 번지점프 장면짜릿한 경험을 추구하려는 성향은 새로운 경험을 쌓고 지루함을 탈피하게 한다. ©Graham Campbell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자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다
모험으로 이끄는 개인적인 요소 중 첫 번째는 자극추구성향(Sensation Seeking Tendency)이다. 우리는 누구나 지루한 시간이 어느 정도 쌓이면 짜릿한 경험을 원하게 되어 있다. 이 성향 덕분에 인간은 등 따시고 배부르다고 해서 그냥 퍼질러 누워있지 않고 계속 뭔가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느긋한 시간이 쌓일수록 더 많이 배워서 조금씩 진보할 수 있었다. 즉, 자극추구성향은 인간을 생존하고 번영하게 만든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성향에는 개인차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평온한 매일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별로 지루해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것도 엄청난 모험이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하루를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고,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뭔가를 해야 간신히 지루함에서 벗어난다. 전자의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 후자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짜릿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말하는 모험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개 후자의 유형이다.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아문젠이나 최초로 세계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올라간 힐러리,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겠다며 무작정 태평양으로 나선 콜럼버스, 인류 최초로 달까지 날아간 우주인들, 지금도 위험한 곳을 탐험하겠다고 나서는 수많은 사람은 대부분 이 자극추구성향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사람들이었다. 단, 자극추구성향에는 모험가의 자질 이면에 온갖 사고와 범죄의 길로 빠질 위험성도 존재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의도적으로 법을 어기는 건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무서운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그저 짜릿한 경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극추구성향은 같은 사람 내부에서도 생애 주기에 따라서 달라진다. 대개는 청소년기에 최고점을 찍고 점차 낮아진다. 그래서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그 넘쳐흐르는 자극추구성향을 해소할만한, 적당히 위험하고 짜릿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청소년들을 범죄와 비행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는 길이고, 다음에 이야기할 평생동안 써먹을 심리적 자산을 키워주는 방법이다.

 
  • 계단걷는 모습모험은 각자 자신있는 분야에서 시도되며,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뛰어넘게 해준다.

가능성이 있는 모험으로 이끄는 자기효능감
자극추구성향은 모험에 뛰어들 가능성을 알려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그 모험을 하게 될지를 결정하는 건 ‘자신감’ 좀 더 정확히는 ‘자기효능감’이다. 이것이 모험에 관련된 두 번째 개인적 요소다. 비정상적으로 멍청하고 무모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한 번이라도 성공적으로 해본 적이 있던 일, 내가 그것 하나만큼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잘 한다고 느끼는(이것이 자기효능감이다) 분야에서 모험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효능감은 모험을 시도하게 만들어주는 자산이자 동시에 그 모험을 통해서 키워가는 자산이다. 이전에 이루었던 작은 모험의 성공 경험을 딛고서 우리는 조금 더 큰 모험을 해본다. 유명한 SF 작가인 아서 C. 클라크가 말했듯, 자신의 진짜 한계를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이전에 알고 있던 한계를 조금 넘어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험을 쌓아가면서 우리는 능력을 키우고 자기 영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조금 더 성장한다. 또한, 자기효능감은 위에서 썼듯 평생동안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심리적 자산이다. 자기효능감이 뚜렷하다는 건 자기가 잘 하는 일과 못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고, 어디에 자신의 자원을 집중해야 할지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며, 실패나 좌절 앞에서 후퇴해야 할 때와 굴복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여야 할 때를 구별할 줄 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괴로워 하는 모습모험에 나서기 위해서는 두려움에 상응하는 무엇이 필요하다.

두려움의 무게에 상응하는 무엇
그렇다면 사람들을 모험으로 이끄는 환경은 무엇일까. 1명이 합격하기 위해 반드시 50명이 탈락해야 하는 공무원 시험보다는 내가 선택한 모험이 언제나 더 재미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약간의 지지만 제공된다면 모험을 선택할 용기가 생긴다. 그 지지는 두려움의 대칭값이다. 모든 모험은 실패의 위험이 따르기에 두려움을 동반한다. 아무리 자극추구성향이 높고, 그동안 쌓아올린 자기효능감이 두터워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어떤 일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는 행위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모험에 나서기 위해서는 그 두려움의 무게에 상응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 자리에 들어가기 가장 바람직한 것은 모험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다. 그런 사례들은 이 사회가 모험이 가능한 곳임을 증명하며,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키워준다. 혹자는 절박함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차피 실패해도 잃을 것이 없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모험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는 이런 태도는 지금까지 정작 본인은 안전한 곳에 눌러앉은 채로 약자들에게 모험과 도전을 강권하는 자들에게 너무도 악용되어왔기에 이제는 식상할 지경이다.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기보다는 실패 이후에도 다시 기회를 제공하는 여유가 더 현명한 모험을 유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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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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