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억은 시각보다 후각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본 것보다는 냄새 맡은 것을 더 정확하게,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후각이란, 실은 미각이기도 하다. 인간이 미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후각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음식물을 먹으면 코안의 축축한 비강 세포들이 냄새를 감지하고 뇌에 전달해 음식의 맛을 기억하게 된다. 혀나 입안 점막에 일부 흩어져 있는 미각은 맛의 총량에서 보통 30퍼센트 내외를 차지할 뿐이다. 다락방의 퀴퀴한 냄새, 오래전 여행지에서 맡았던 골목의 냄새,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옷에서 나는 냄새 등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기억을 불러오곤 한다. 물론 음식도 그렇다.
▲ 허브의 냄새를 맡는 요리사 / 대형 식당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
언젠가 어떤 단체급식소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다지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냄새 때문이었다. 집이나 일반적인 식당에서 나는 밥 냄새가 아닌, 묵은쌀을 찌는 냄새가 났다. 남자들은 대개 비슷할 텐데 그것은 군대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열쇠가 된다. 군대 밥은 대개 솥밥이 아니라 증기로 찜으로써 다량의 밥을 정확한 레시피대로 지을 수 있다. 솥밥은 불 조절과 같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므로 다량의 밥을 짓기에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급식소의 식당 내부를 보았다. 역시 군대의 취사기와 유사한, 다단식으로 이루어진 기계가 김을 뿜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런 기계는 어떤 유명한 식당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식당은 크지 않지만, 워낙 장사가 잘 되어 밥을 많이 짓는 집이었다. 하루에 5, 6백 그릇 넘게 밥을 팔고 있을 듯한. 그 집 부엌에서 그 취사기를 보는 순간, 나는 평소 존경하던 그 식당의 음식에 대한 의구심이랄까, 어색한 긴장을 느꼈다. 이렇듯 냄새는 기억을 호출하는 놀라운 기제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어렸을 때 겪은 일이 돼지고기에 대한 트라우마로 비화한 경우였다. 돼지 잡는 걸 강제로 보게 한 어른들의 장난기가 그런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사지에 몰린 돼지는 온몸을 뒤틀며 몸 안의 분비물을 뿜어냈고, 그 친구는 그 냄새를 기억에 저장하게 되었다. 돼지고기도 고기지만, 특히 내장이 들어간 국물 음식에 그는 크게 거부감을 보인다. 그때 돼지를 잡은 어른들이 솥을 걸고 내장 등을 넣어 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런 장면의 기억을 흐뭇한 고향의 정경으로 내장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기억회로가 작동하게 마련이고, 특히나 감수성의 결이 달라서 같은 냄새를 다르게 수용하고 그것을 다시 반추하는 경우가 잦다. 나는 그와 반대의 경우인데, 돼지를 잡는 장면을 어려서 보았으나 그것이 잔인하게 각인되지 않았고, 정겹고 흥겨운 잔치의 분위기만 흡수한 셈이라고나 할까.
서양 부엌에서 나는 치즈와 고기의 냄새
나는 이탈리아의 한 시골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서울의 작은 요리학원에서 기본 요리를 습득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요리라기보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일종의 요령을 익히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강사들은 합격 요령을 전수하였지, 요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요리란 어떤 경우든 재료를 재주껏 주물러서 입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혀와 후각이 동조(同調)하는 미각이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준비를 요리라 부른다면, 그 학원은 마치 이해 없이 증명식을 암기하는 것과 같았다. 심지어 맛을 보는 과정도 생략되었다. 심사위원이 대개 맛을 보지 않으니 색깔과 모양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요령을 중심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요리라 부를 수 있는 걸 배운 건 이탈리아의 요리학교에서였다. 학교는 학생들을 음식을 요리하고, 맛보고,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과정에 개입시켰다. 그 강의실에서 나던 냄새는 지금도 나를 흥분시킨다. 우유 발효물, 그러니까 치즈 따위에서 나는 생소한 냄새(내가 그 나라로 떠나기 전 먹어본 치즈라고는 오직 샌드위치용 주황색 가공치즈밖에 없었다), 늘 깨끗하게 닦아도 부엌 바닥 어느 틈에 박혀 있는 여러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헤모글로빈 냄새, 냉장고 구석에서 나는 희미한 허브와 마늘의 으깨진 냄새 같은 것들. 그것은 대중식당이든 한 끼에 오십만 원을 받는 미쉐린 쓰리스타 레스토랑이든 똑같이 나는 냄새다.
오래된 기억은 대개 가공되거나 혼입되는 경우가 많다. 더러 있지도 않은 허구가 사실의 기억으로 윤색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 기억들을 온전히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음식과 그것이 내뿜던 냄새와 맛의 기억은 거의 사실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것들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도 나는 서너 살 때 집 근처 들에서 나던 봄 햇살의 따스한 기운과 아지랑이의 혼곤한 흔들거림을 잊지 못한다. 그 들에서 누나와 엄마는 쑥을 캤다. 그리고 이어진 기억으로는 집안 가득 쑥을 넣고 끓인 음식 냄새가 가득했고, 내 코는 지금도 그 향을 찾아 헤매고 있다. 쑥에 밀가루를 넣어 버무린 그 음식은 양은솥 안에 있었고, 나는 그 냄새에 취해 한참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그 양은솥의 내부(외부는 전혀 기억에 없다)만이 지금도 생생한 걸 보면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그때의 쑥버무리 맛을 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내 유년이 다시 올 수 없기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하루의 흐름에도 냄새가 있다. 아침과 저녁의 냄새가 다르다. 계절에도 냄새가 있다. 쑥이 봄의 냄새였다면, 어느 포장마차의 구운 꽁치는 겨울의 상징 같은 냄새를 풍겼다. 나는 훌쩍 자라 포장마차를 출입할 나이가 되었다. 겨우 스물한두 살이었겠지만 어른을 ‘배우던’ 시절, 포장마차는 좋은 학습처였다. 주정꾼들이 어떻게 취해가는지, 술 취한 사람의 호의나 적대감을 받아들이는 법은 무엇인지, 좋은 안주를 잘 얻어먹는 법은 무엇인지. 유리로 덮은 얼음 냉장고 안에는 물오징어나 곰장어, 대합, 피조개 등속이 있었고 겨울이라면 대개 꽁치가 있었다. 뱃살이 통통하게 오른 꽁치를 주문하면 연탄 화덕에 석쇠를 놓고 구워주었다. 부채질하면서 불을 일으킬 때 꽁치의 기름이 연탄에 뚝뚝 떨어져서 치익 칙 하는 소리를 냈고, 그것은 어김없이 강력한 냄새가 되어 포장마차 안을 휘감았다. 왕소금을 툭툭 쳐서 구운 그 겨울의 꽁치 안주. 나무젓가락으로 배를 푹 찔러 기름지고 씁쓸한 내장을 씹던 기억은 지금도 그리움을 불러오곤 한다. 이제는 사실상 사라져버린 포장마차의 추억처럼, 그 꽁치 냄새에 대한 기억도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피의 맛, 꽁치의 냄새'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피의 맛, 꽁치의 냄새
인간의 기억은 시각보다 후각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본 것보다는 냄새 맡은 것을 더 정확하게,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후각이란, 실은 미각이기도 하다.
박찬일
2017-10-26
피의 맛, 꽁치의 냄새
기억으로 호출하는 맛과 냄새의 시절들
인간의 기억은 시각보다 후각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본 것보다는 냄새 맡은 것을 더 정확하게,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후각이란, 실은 미각이기도 하다. 인간이 미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후각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음식물을 먹으면 코안의 축축한 비강 세포들이 냄새를 감지하고 뇌에 전달해 음식의 맛을 기억하게 된다. 혀나 입안 점막에 일부 흩어져 있는 미각은 맛의 총량에서 보통 30퍼센트 내외를 차지할 뿐이다. 다락방의 퀴퀴한 냄새, 오래전 여행지에서 맡았던 골목의 냄새,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옷에서 나는 냄새 등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기억을 불러오곤 한다. 물론 음식도 그렇다.
▲ 허브의 냄새를 맡는 요리사 / 대형 식당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
언젠가 어떤 단체급식소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다지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냄새 때문이었다. 집이나 일반적인 식당에서 나는 밥 냄새가 아닌, 묵은쌀을 찌는 냄새가 났다. 남자들은 대개 비슷할 텐데 그것은 군대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열쇠가 된다. 군대 밥은 대개 솥밥이 아니라 증기로 찜으로써 다량의 밥을 정확한 레시피대로 지을 수 있다. 솥밥은 불 조절과 같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므로 다량의 밥을 짓기에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급식소의 식당 내부를 보았다. 역시 군대의 취사기와 유사한, 다단식으로 이루어진 기계가 김을 뿜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런 기계는 어떤 유명한 식당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식당은 크지 않지만, 워낙 장사가 잘 되어 밥을 많이 짓는 집이었다. 하루에 5, 6백 그릇 넘게 밥을 팔고 있을 듯한. 그 집 부엌에서 그 취사기를 보는 순간, 나는 평소 존경하던 그 식당의 음식에 대한 의구심이랄까, 어색한 긴장을 느꼈다. 이렇듯 냄새는 기억을 호출하는 놀라운 기제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친구는 어렸을 때 겪은 일이 돼지고기에 대한 트라우마로 비화한 경우였다. 돼지 잡는 걸 강제로 보게 한 어른들의 장난기가 그런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사지에 몰린 돼지는 온몸을 뒤틀며 몸 안의 분비물을 뿜어냈고, 그 친구는 그 냄새를 기억에 저장하게 되었다. 돼지고기도 고기지만, 특히 내장이 들어간 국물 음식에 그는 크게 거부감을 보인다. 그때 돼지를 잡은 어른들이 솥을 걸고 내장 등을 넣어 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런 장면의 기억을 흐뭇한 고향의 정경으로 내장하고 있기도 하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기억회로가 작동하게 마련이고, 특히나 감수성의 결이 달라서 같은 냄새를 다르게 수용하고 그것을 다시 반추하는 경우가 잦다. 나는 그와 반대의 경우인데, 돼지를 잡는 장면을 어려서 보았으나 그것이 잔인하게 각인되지 않았고, 정겹고 흥겨운 잔치의 분위기만 흡수한 셈이라고나 할까.
서양 부엌에서 나는 치즈와 고기의 냄새
나는 이탈리아의 한 시골에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서울의 작은 요리학원에서 기본 요리를 습득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요리라기보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일종의 요령을 익히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강사들은 합격 요령을 전수하였지, 요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요리란 어떤 경우든 재료를 재주껏 주물러서 입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혀와 후각이 동조(同調)하는 미각이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준비를 요리라 부른다면, 그 학원은 마치 이해 없이 증명식을 암기하는 것과 같았다. 심지어 맛을 보는 과정도 생략되었다. 심사위원이 대개 맛을 보지 않으니 색깔과 모양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요령을 중심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요리라 부를 수 있는 걸 배운 건 이탈리아의 요리학교에서였다. 학교는 학생들을 음식을 요리하고, 맛보고,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과정에 개입시켰다. 그 강의실에서 나던 냄새는 지금도 나를 흥분시킨다. 우유 발효물, 그러니까 치즈 따위에서 나는 생소한 냄새(내가 그 나라로 떠나기 전 먹어본 치즈라고는 오직 샌드위치용 주황색 가공치즈밖에 없었다), 늘 깨끗하게 닦아도 부엌 바닥 어느 틈에 박혀 있는 여러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헤모글로빈 냄새, 냉장고 구석에서 나는 희미한 허브와 마늘의 으깨진 냄새 같은 것들. 그것은 대중식당이든 한 끼에 오십만 원을 받는 미쉐린 쓰리스타 레스토랑이든 똑같이 나는 냄새다.
오래된 기억은 대개 가공되거나 혼입되는 경우가 많다. 더러 있지도 않은 허구가 사실의 기억으로 윤색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 기억들을 온전히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음식과 그것이 내뿜던 냄새와 맛의 기억은 거의 사실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것들이라고 믿고 싶다. 아직도 나는 서너 살 때 집 근처 들에서 나던 봄 햇살의 따스한 기운과 아지랑이의 혼곤한 흔들거림을 잊지 못한다. 그 들에서 누나와 엄마는 쑥을 캤다. 그리고 이어진 기억으로는 집안 가득 쑥을 넣고 끓인 음식 냄새가 가득했고, 내 코는 지금도 그 향을 찾아 헤매고 있다. 쑥에 밀가루를 넣어 버무린 그 음식은 양은솥 안에 있었고, 나는 그 냄새에 취해 한참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그 양은솥의 내부(외부는 전혀 기억에 없다)만이 지금도 생생한 걸 보면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그때의 쑥버무리 맛을 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내 유년이 다시 올 수 없기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 (왼) ©아디뚜힘 / (오) ©Takeaway_cc-by-sa 3.0
포장마차에는 냄새와 사람이 만들어가는 기억이 있었다
하루의 흐름에도 냄새가 있다. 아침과 저녁의 냄새가 다르다. 계절에도 냄새가 있다. 쑥이 봄의 냄새였다면, 어느 포장마차의 구운 꽁치는 겨울의 상징 같은 냄새를 풍겼다. 나는 훌쩍 자라 포장마차를 출입할 나이가 되었다. 겨우 스물한두 살이었겠지만 어른을 ‘배우던’ 시절, 포장마차는 좋은 학습처였다. 주정꾼들이 어떻게 취해가는지, 술 취한 사람의 호의나 적대감을 받아들이는 법은 무엇인지, 좋은 안주를 잘 얻어먹는 법은 무엇인지. 유리로 덮은 얼음 냉장고 안에는 물오징어나 곰장어, 대합, 피조개 등속이 있었고 겨울이라면 대개 꽁치가 있었다. 뱃살이 통통하게 오른 꽁치를 주문하면 연탄 화덕에 석쇠를 놓고 구워주었다. 부채질하면서 불을 일으킬 때 꽁치의 기름이 연탄에 뚝뚝 떨어져서 치익 칙 하는 소리를 냈고, 그것은 어김없이 강력한 냄새가 되어 포장마차 안을 휘감았다. 왕소금을 툭툭 쳐서 구운 그 겨울의 꽁치 안주. 나무젓가락으로 배를 푹 찔러 기름지고 씁쓸한 내장을 씹던 기억은 지금도 그리움을 불러오곤 한다. 이제는 사실상 사라져버린 포장마차의 추억처럼, 그 꽁치 냄새에 대한 기억도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피의 맛, 꽁치의 냄새'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아련한 향수를 통한 카타르시스
진종훈
삶,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서
박태근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