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성격? 외모? 말투? 이런 것들에 대한 기억은 외부 영향에 의해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상식이고, 같은 사람의 얼굴과 성격이라도 받아들이는 이의 태도에 따라 기억의 편차는 매우 클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의 무엇을 먼저 기억하는가. 성격? 외모? 말투? 그보다 우리는 우선 아끼는 이의 생일을 기억한다. 그 사람이 태어난 날을 잊지 않고, 축하의 선물을 건네며, 노래를 부른다. 곁에 있어 주어 고맙다 이야기한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 곁에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있다. 문학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어쩌면 문학이 가장 잘하는 일이 기억일지도 모른다. 풍화되는 기억을 붙잡아 활자로 남기는 것. 문학의 고유한 역할 중 하나이리라.
▲ 『엄마. 나야.』 곽수인 등저, 난다 / 노을지는 팽목항의 세월호 리본 조형물
시로 전하는 기억으로부터의 치유
『엄마. 나야.』는 서른네 명의 단원고 희생자 학생의 생일에 맞춰 서른네 명의 시인이 시를 쓴, 생일 시집이다. 즉 이 책은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이름과 생일을 기억하려는 책이다. 그날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학생들의 이름과 성격, 외모, 말투, 부모님과의 일화나 형제와의 다툼과 화해. 희생자의 모든 기억을 건네받은 시인들은 기억의 파편을 그러모아 시로 썼다. 그것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아이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시인이 받아 쓴 아이들의 목소리는 시라는 이름으로 지상에 남아 희생된 아이들을 기릴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만든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장르인 ‘시’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희생자 학생의 생일날에는 희생자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모여, 시를 함께 읽고 생일을 맞은 친구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른바 생일잔치를 했다. 산 아이들과 죽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섞이는 현장에서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아직 남은 상처가 깊지만 치유는 결국 기억으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나야.』의 시가 낭독될 때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어김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침몰 직후부터 최근에까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는커녕 잘못된 기억이 비참한 사건을 더욱 비참한 방식으로 뒤덮었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성과 없이 해체되었고, 대통령의 사고 당일 행적은 묘연할 뿐이었다. 유가족들에게는 인간의 언행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혐오와 비아냥이 가해지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무참한 세월 속에서 우리는 과연 희생자를 추모할 자격이 있는 걸까.
기억하고 실천하는 문학
『엄마. 나야.』에 모인 시들은 희생자 가족에게 도움을 주려는 치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망각의 정서에 맞서는 예술로서의 저항 운동이었다. 실제 세월호 관련 책을 낸 출판사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받았고, 세월호 관련 운동에 참여한 각각의 예술가 또한 블랙리스트에 다수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예술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기억하려는 욕구’는 국기 기관이나 권력이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했고, 2016년과는 다른 2017년의 봄을 맞이했다.
▲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도서들
물론, 값을 매길 수 없는 생명이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바다에 묻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수많은 세계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을 수도 없다. 문학은 이제 기억하는 일을 넘어, 세계를 다시 찾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홀로코스트 이후의 유럽 문학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여 참혹한 전쟁 다음의 세계로 인간을 데려다 놓으려 노력했다. 최근의 영미 문학은 9․11 테러의 상흔 없이 설명 불가능하다. 희생자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테러의 원인과 배경을 넓게 살피는 방식으로 타자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문학도 2014년 4월을 기어코 기억해 낼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말로, 취재로, 글자로, 플롯으로 그것을 체화하여 변용할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다. 한국어로 된 문학이라면 2014년 4월, 진도의 바다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써야 한다. 『엄마. 나야.』는 그 시작의 선언이었다. 이제 그 선언을 실천할 차례가 우리 모두의 앞에 온 것 같다.
기억하려는 문학의 본질
사람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성격? 외모? 말투? 이런 것들에 대한 기억은 외부 영향에 의해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서효인
2017-10-19
기억하려는 문학의 본질
『엄마, 나야』
사람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성격? 외모? 말투? 이런 것들에 대한 기억은 외부 영향에 의해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상식이고, 같은 사람의 얼굴과 성격이라도 받아들이는 이의 태도에 따라 기억의 편차는 매우 클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의 무엇을 먼저 기억하는가. 성격? 외모? 말투? 그보다 우리는 우선 아끼는 이의 생일을 기억한다. 그 사람이 태어난 날을 잊지 않고, 축하의 선물을 건네며, 노래를 부른다. 곁에 있어 주어 고맙다 이야기한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이후 우리 곁에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있다. 문학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어쩌면 문학이 가장 잘하는 일이 기억일지도 모른다. 풍화되는 기억을 붙잡아 활자로 남기는 것. 문학의 고유한 역할 중 하나이리라.
▲ 『엄마. 나야.』 곽수인 등저, 난다 / 노을지는 팽목항의 세월호 리본 조형물
시로 전하는 기억으로부터의 치유
『엄마. 나야.』는 서른네 명의 단원고 희생자 학생의 생일에 맞춰 서른네 명의 시인이 시를 쓴, 생일 시집이다. 즉 이 책은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이름과 생일을 기억하려는 책이다. 그날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학생들의 이름과 성격, 외모, 말투, 부모님과의 일화나 형제와의 다툼과 화해. 희생자의 모든 기억을 건네받은 시인들은 기억의 파편을 그러모아 시로 썼다. 그것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아이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시인이 받아 쓴 아이들의 목소리는 시라는 이름으로 지상에 남아 희생된 아이들을 기릴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만든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장르인 ‘시’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희생자 학생의 생일날에는 희생자의 부모님과 친구들이 모여, 시를 함께 읽고 생일을 맞은 친구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른바 생일잔치를 했다. 산 아이들과 죽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섞이는 현장에서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아직 남은 상처가 깊지만 치유는 결국 기억으로부터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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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야.』의 시가 낭독될 때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어김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침몰 직후부터 최근에까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는커녕 잘못된 기억이 비참한 사건을 더욱 비참한 방식으로 뒤덮었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성과 없이 해체되었고, 대통령의 사고 당일 행적은 묘연할 뿐이었다. 유가족들에게는 인간의 언행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혐오와 비아냥이 가해지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무참한 세월 속에서 우리는 과연 희생자를 추모할 자격이 있는 걸까.
기억하고 실천하는 문학
『엄마. 나야.』에 모인 시들은 희생자 가족에게 도움을 주려는 치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망각의 정서에 맞서는 예술로서의 저항 운동이었다. 실제 세월호 관련 책을 낸 출판사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받았고, 세월호 관련 운동에 참여한 각각의 예술가 또한 블랙리스트에 다수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예술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기억하려는 욕구’는 국기 기관이나 권력이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했고, 2016년과는 다른 2017년의 봄을 맞이했다.
▲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도서들
물론, 값을 매길 수 없는 생명이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바다에 묻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수많은 세계를 잃어버렸다. 다시 찾을 수도 없다. 문학은 이제 기억하는 일을 넘어, 세계를 다시 찾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홀로코스트 이후의 유럽 문학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여 참혹한 전쟁 다음의 세계로 인간을 데려다 놓으려 노력했다. 최근의 영미 문학은 9․11 테러의 상흔 없이 설명 불가능하다. 희생자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테러의 원인과 배경을 넓게 살피는 방식으로 타자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문학도 2014년 4월을 기어코 기억해 낼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말로, 취재로, 글자로, 플롯으로 그것을 체화하여 변용할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다. 한국어로 된 문학이라면 2014년 4월, 진도의 바다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써야 한다. 『엄마. 나야.』는 그 시작의 선언이었다. 이제 그 선언을 실천할 차례가 우리 모두의 앞에 온 것 같다.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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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기억하는 연극의 방식
박병성
기억하기에 우리 삶은 아름답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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