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멋지고 잘생긴 요리사가 출연해 화려한 요리를 선보인다. 맵시 나는 앞치마 앞에서 그의 손놀림이 수려하다. 인기 연예인이 화려하게 플레이팅된 음식을 한입 물고는 감탄사를 뱉는다. 그리고 쏟아지는 수식어, 맛에 대한 예찬, 음식에 관한 추억 들…… 지금은 흔한 TV 속의 장면일 뿐이지만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요리사는 각광을 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외식 문화가 이토록 발전한 것은 30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그전에 요리는 하인 같은 사람이 열심히 해서 바치는 것, 혹은 대부분 ‘어머니의 손맛’으로 포장되어 부엌에서 노동력을 갈취 당해온 여성들의 몫이었다.
인종과 계층을 막론하고, 한 문화의 고유한 요리를 ‘만드는 방법’은 여성들에 의해 집안에서 전수되었다. 이름 모를 조상이 먹고, 후에 남성이 먹고, 가장 마지막에 여성이 먹는 제사 음식도 여성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졌다. 각 지역의 특색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김치도 여성들이 찬바람 속에 모여 얼얼한 손가락으로 만들어 냈다. 흔히 ‘집밥’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이 사실 불 앞에서 땀과 생을 바친 누군가의 요리인 것이다. 찌개에서 나물까지, 흰밥에 누룽지까지, 김치에서 장아찌까지…… 집에서 만들어지는 음식 모든 것이 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대표작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동명의 영화 원작인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이 모든 요리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티타는 ‘막내딸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전통으로 인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부엌에 남게 된다. 소설에서 부엌은 여성의 노동력이 착취되는 공간인 동시에 여성의 영혼으로 인해 숱한 삶들이 지속되고 연결되는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티타에게 부엌은 사랑으로부터 유폐된 공간이자 동시에 사랑을 이뤄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티타는 나차에게 전수받은 요리법에 사랑의 감정을 부지불식간에 담아낸다. 붉은 장미 에센스로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에로티즘을, 거세된 메추리 고기로는 상대를 거절해 내는 단호함을.
티타의 요리가 만들어지는 부엌은 사람들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끄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소설은 멕시코 요리의 화려함과 정교함을 지면에 수놓으면서 읽는 이의 미감을 잡아 흔든다. 크리스마스 파이, 차벨라 웨딩 케이크, 북부식 초리소, 소꼬리 수프, 초콜릿과 주현절 빵 등 티타의 손에서 탄생한 요리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소설을 이끄는 담론이 된다. 성적 욕망과 전통의 충돌, 페미니즘의 도전과 계급의 갈등이 모두 요리의 재료와 완성된 요리의 맛을 통해 표현된다. 중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영향 하에,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초콜릿을 비롯한 수많은 먹거리들은 사랑과 인생이 되고 삶과 죽음이 된다. 즉,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는 마법이 이뤄지는 것이다.
소설이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해 책장을 넘기다 문득 멕시코가 아닌 우리의 부엌과 밥상을 생각하게 된다. 뜨거운 부엌의 정념과 요리법과 음식의 정열,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감정. 그것이 멕시코만의 뜨거운 해류에만 운집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부엌과 요리에도 깃들어 있을 것이다. 요리를 만드는 손끝과 그 손가락의 주인공인 숱한 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삶은 티타를 비롯해 매몰된 전통에 인생을 담보 잡힌 소설 속 멕시코 여성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에는 만든 이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정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정성이라는 게 무언가. 불 앞에서 땀을 흘리고, 허리를 숙여 재료를 다듬고, 눈물을 쏟으며 마늘이나 양파를 까는 일이 아닌가. 티 나지 않고 지리멸렬한 노동을 반복하며 하루에 세 번 예정된 고난을 맞이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을 우리 중 누군가는 멕시코시티든 서울이든 상관없이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이것이 사랑 담긴 집밥이라고 감탄하며 받아먹기만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요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냥을 켠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또 나누고, 끝끝내 사랑을 나눈다. 우리에게 요리란 무엇인지. 영수증에 찍힌 카드 금액인지 아니면 아직까지도 그저 당연히 받아도 되는 ‘그냥 아줌마’들의 간단한 노동력의 결과인지, 소설 속 멕시코적 환상에 잠겨 잠시 생각한다.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문문文紋 : 요리하는 노동, 사랑하는 정열 -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문문文紋 : 요리하는 노동, 사랑하는 정열 -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서효인
2017-07-13
요리하는 노동, 사랑하는 정열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텔레비전에 멋지고 잘생긴 요리사가 출연해 화려한 요리를 선보인다. 맵시 나는 앞치마 앞에서 그의 손놀림이 수려하다. 인기 연예인이 화려하게 플레이팅된 음식을 한입 물고는 감탄사를 뱉는다. 그리고 쏟아지는 수식어, 맛에 대한 예찬, 음식에 관한 추억 들…… 지금은 흔한 TV 속의 장면일 뿐이지만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요리사는 각광을 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외식 문화가 이토록 발전한 것은 30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그전에 요리는 하인 같은 사람이 열심히 해서 바치는 것, 혹은 대부분 ‘어머니의 손맛’으로 포장되어 부엌에서 노동력을 갈취 당해온 여성들의 몫이었다.
인종과 계층을 막론하고, 한 문화의 고유한 요리를 ‘만드는 방법’은 여성들에 의해 집안에서 전수되었다. 이름 모를 조상이 먹고, 후에 남성이 먹고, 가장 마지막에 여성이 먹는 제사 음식도 여성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졌다. 각 지역의 특색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김치도 여성들이 찬바람 속에 모여 얼얼한 손가락으로 만들어 냈다. 흔히 ‘집밥’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이 사실 불 앞에서 땀과 생을 바친 누군가의 요리인 것이다. 찌개에서 나물까지, 흰밥에 누룽지까지, 김치에서 장아찌까지…… 집에서 만들어지는 음식 모든 것이 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대표작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동명의 영화 원작인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이 모든 요리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티타는 ‘막내딸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전통으로 인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부엌에 남게 된다. 소설에서 부엌은 여성의 노동력이 착취되는 공간인 동시에 여성의 영혼으로 인해 숱한 삶들이 지속되고 연결되는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티타에게 부엌은 사랑으로부터 유폐된 공간이자 동시에 사랑을 이뤄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티타는 나차에게 전수받은 요리법에 사랑의 감정을 부지불식간에 담아낸다. 붉은 장미 에센스로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에로티즘을, 거세된 메추리 고기로는 상대를 거절해 내는 단호함을.
티타의 요리가 만들어지는 부엌은 사람들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끄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소설은 멕시코 요리의 화려함과 정교함을 지면에 수놓으면서 읽는 이의 미감을 잡아 흔든다. 크리스마스 파이, 차벨라 웨딩 케이크, 북부식 초리소, 소꼬리 수프, 초콜릿과 주현절 빵 등 티타의 손에서 탄생한 요리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소설을 이끄는 담론이 된다. 성적 욕망과 전통의 충돌, 페미니즘의 도전과 계급의 갈등이 모두 요리의 재료와 완성된 요리의 맛을 통해 표현된다. 중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영향 하에,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초콜릿을 비롯한 수많은 먹거리들은 사랑과 인생이 되고 삶과 죽음이 된다. 즉,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는 마법이 이뤄지는 것이다.
소설이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해 책장을 넘기다 문득 멕시코가 아닌 우리의 부엌과 밥상을 생각하게 된다. 뜨거운 부엌의 정념과 요리법과 음식의 정열,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감정. 그것이 멕시코만의 뜨거운 해류에만 운집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부엌과 요리에도 깃들어 있을 것이다. 요리를 만드는 손끝과 그 손가락의 주인공인 숱한 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삶은 티타를 비롯해 매몰된 전통에 인생을 담보 잡힌 소설 속 멕시코 여성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에는 만든 이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정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정성이라는 게 무언가. 불 앞에서 땀을 흘리고, 허리를 숙여 재료를 다듬고, 눈물을 쏟으며 마늘이나 양파를 까는 일이 아닌가. 티 나지 않고 지리멸렬한 노동을 반복하며 하루에 세 번 예정된 고난을 맞이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을 우리 중 누군가는 멕시코시티든 서울이든 상관없이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이것이 사랑 담긴 집밥이라고 감탄하며 받아먹기만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요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냥을 켠다.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또 나누고, 끝끝내 사랑을 나눈다. 우리에게 요리란 무엇인지. 영수증에 찍힌 카드 금액인지 아니면 아직까지도 그저 당연히 받아도 되는 ‘그냥 아줌마’들의 간단한 노동력의 결과인지, 소설 속 멕시코적 환상에 잠겨 잠시 생각한다.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댓글(0)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문문文紋 : 요리하는 노동, 사랑하는 정열 -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히스토리쿠스 : 차가운 면의 문화 – 냉면
박문국
Poco a poco : 먹고 만드는 요리, 그 소통의...
임진모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