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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전유에서 공유로 변하는 연극

박병성

2017-06-29

전유에서 공유로 변하는 연극


세상은 소유의 시대에서 공유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일상이 이미 그렇게 바뀌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난 차가 없다. 출퇴근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누릴 수 있는 일(수면, 독서, SNS 검색)을 포기하지 못하고, 걷기가 유일한 운동인데 그나마도 하지 않으면 건강이 심각하게 우려되기 때문이다. 차가 없어서 불편한 일이 많지만 없어서 편한 일도 많다. 최근에는 ‘카 쉐어링’을 통해 필요할 때 빌려서 사용한다. 빌린 차라 운전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원할 때 원하는 차를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공동으로 사용하다 보니 청결 상태를 비롯해 맘에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하다. 그래서 주차장에만 있을 확률이 높아도 차를 사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매번 생각의 끝은 필요할 때만 빌려 사용하는 게 소유했을 때의 책임과 부담감보다 유익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커뮤니티 아트


소유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비용보다 공유했을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더 크다. 다소 비약적이긴 하지만 특정 엘리트 집단에게 전유되어 왔던 예술이라는 영역이 일반 대중들에게 열리는 현대 예술의 움직임 역시 넓은 의미에서 공유의 시대로 나아가는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은 그 발생부터 신의 대리인, 혹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정해진 천재들이 전유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배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예술 분야에서 엘리트주의는 흔들리지 않은 깊은 믿음이다. 모차르트처럼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사전에 발견하고 키우려는 예술 영재 교육은 이러한 사고에 기초한 것이다. 이렇게 예술가를 엘리트로 바라보는 관점 반대편에 참여 예술의 일종인 커뮤니티 아트가 있다.

 

부산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 거리의 그래피티 사진

▲ 부산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 거리의 그래피티 ⓒfukuoka busan café


예술을 향유하던 관객들이 예술의 주체가 되는 커뮤니티 예술은 미술, 연극, 무용 등 예술의 전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커뮤니티 아트는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미술을 삶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시작됐다. 그리고 미술의 주체를 평범한 대중에게 넘겨줌으로써 예술과 삶이 공존하는 예술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시도로 발전했다. 미술에서 시작된 커뮤니티 아트는 연극, 무용으로 확산되어, 국내에서도 지자체 단위의 재단에서 예술을 통해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재활 프로그램, 복지 프로그램으로 커뮤니티 아트를 활용하고 있다. 지자체 문화 재단에서 많이 운영하는 노인 대상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복지 차원의 커뮤니티 댄스이다.


안은미 연출의 무용 공연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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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은미
2. 안은미 연출의 무용 공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대중들에게 크게 이슈가 된 커뮤니티 댄스로는 안은미의 작업을 들 수 있다. 안은미는 한 번도 춤을 제대로 배워보지 않은 할머니들을 무대에 올려 그분들의 삶과 역사를 몸으로 표현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2011년에 발표했다. 이 작품은 2015년 프랑스에 진출해 굉장한 환호를 받았다. 비록 어떠한 무용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60년이 넘는 동안 성장, 출산, 육아, 사고 등 다양한 일들을 겪은 분들이 풀어내는 몸짓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알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안은미는 이후 청소년, 아저씨, 전 세대가 어울리는 커뮤니티 댄스 작품을 올려 학습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그들만의 몸짓을 이끌어냈다.


광주에서 공연된 연극 장면

▲ 광주에서 공연된 연극<100% 도시>


연극 분야에서도 커뮤니티 연극이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도 내한한 적이 있는 리미니 프로토콜의 <100% 도시>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100명의 광주 시민들이 참여하는 <100% 광주>를 공연했는데, 100명의 서로 다른 성별과 나이, 성향을 지닌 참가자들의 이야기로 광주라는 도시의 특성과 역사를 보여주었다. 국가와 도시의 주인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당연한 진리(그러나 현실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무시되는 진리)를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커뮤니티 예술은 소수 예술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의 자리를 일반인들에게 열어주었다. 평범한 한 개인이 갖는 개별성과 보편성을 미적 의미로 이끌어내는 커뮤니티 아트는 이전의 예술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커뮤니티 아트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포함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기존의 미적 잣대로는 평가하기 힘든 과정 속에서 완성되는 예술이다.


창작의 영역을 공유, 이머시브 연극


해체와 혼종이 모토인 현대 연극 역시 공유의 사상이 깃들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제 4의 벽이 지배하는 프로시니엄(Proscenium) 무대에서 관객은 철저한 관람자일 뿐이다. 그러나 현대 연극에서 관객은 작가이자 배우이자 관객이다. 창작자와 배우들이 전유하던 역할과 공간을 관객들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만들어지고 있다. 2010년 이후 등장해 새로운 형태의 공연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er)이 그런 예이다.


<슬립 노 모어>가 공연되는 매키트리 호텔 내부

▲ <슬립 노 모어>가 공연되는 매키트리 호텔 내부


현재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 중 하나가 이머시브 공연인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이다. 맨해튼 남서부 첼시 지역의 창고를 가상의 매키트릭 호텔로 꾸미고 5개 층 90여 개의 공간에서 마임, 춤, 설치미술, 즉흥극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펼쳐진다. 각 퍼포먼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한 방에서는 맥베스의 죽음 장면이 펼쳐지고 또 다른 방에서는 던컨왕의 무도회가 펼쳐지는 식이다. 각각의 퍼포먼스는 모티프만 따왔을 뿐 <맥베스>를 연극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현대적인 공연 방식으로 재창조했다.


<슬립 노 모어>공연 한장면 01
<슬립 노 모어>공연 한장면 02

<슬립 노 모어>는 가면을 쓴 관객들이 방을 옮겨 다니며 원하는 공연을 만들어간다. (왼쪽) ⓒvia Daily Front Row

 

     

    이머시브 공연 <슬립 노 모어>를 관람하는 방식은 철저히 관객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가면을 쓴 관객들은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며 자신이 보고 싶은 공연을 만들어간다. <슬립 노 모어>를 경험하는 방식은 관객마다 다르며,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희곡은 관객 수만큼 많다. 그리고 자신이 관람한 <슬립 노 모어>의 희곡을 완성(선택)하는 것은 관객 자신이다. 뿐만 아니라 <슬립 노 모어>에서 운이 좋은 관객은 극 속으로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좁은 공간에 이르면, 한 여인이 다가와 차를 따라 주기도 하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너도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니?” 이때 관객은 더 이상 관객으로만 머물지 않고 자신이 보는 연극의 배우로 참여하게 된다. 관람하는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친밀한 경험이 이머시브 공연의 또 다른 매력이다.

    현대 연극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해체이다. 현대 연극은 관객을 제4의 벽 밖에서 공연을 지켜보는 존재로 놔두지 않는다.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관객과 함께 공연을 완성해 간다. 관객들의 요구하는 대로 극이 전개되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과 같은 즉흥 뮤지컬 역시 작가의 자리를 관객들에게 내어주는 현대 연극의 특징이 반영된 공연이다. 공연장이라는 공간을 돌아다니고 체험하면서 관람하는 장소 특정적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역시 관객들과의 이러한 교감을 중요시한다.

    이처럼 현대 연극은 작가와 배우가 전유하던 역할을 관객들과 공유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공연을 만들어내고, 다른 차원의 연극 구경을 경험하게 한다.


    춤추는 사람들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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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병성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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