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1980년대 경제성장 이후 한국 사람들이 꿈꾸는 사회계층의 대명사가 된 단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중산층일까? 꿈을 가지려면 크게 가지라는 말도 있듯, 기왕이면 상류층을 꿈꿀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말이 있다. 원래 1970년대 미국의 라디오 쇼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만든 영화로 알려진 <프레이리 홈 컴패니언>이라는 가상의 마을 사람들 이야기에서 시작된, 옛날 미국 사람들끼리만 쓰는 단어다. 이 가상 마을은 워비곤 호숫가라는 가상의 지역에 존재하는데, 이 마을의 어른들은 모두 잘났고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이다. 그래서 워비곤 호수 효과는 자기가 최소한 평균보다는 높다고 스스로 평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심리학자 토마스 길로비치는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에서 이 워비곤 호수 효과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라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1977년에 미국의 고등학교 3학년생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자신의 리더십이 ‘평균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0%를 넘었다. 심지어 남들과 잘 지내는 능력에서는 자기가 평균 이상은 된다는 응답이 100%였다. 상황은 대학교수들도 비슷해서, 자기가 평균적인 동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교수의 비율은 9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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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비곤 호수 효과’는 자기가 평균보다 높다고 평가하는 말이다.
워비곤 호수는 미국 드라마 <프레이리 홈 컴패니언>에 나온 가상의 지역이다.
겸손을 배우고 자라온 우리는 함부로 자신이 잘났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못난 편은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뭐든 남들보다 못하지는 않다는 이 믿음은 사실 우리가 삶을 계속하게 만드는 자존감의 기반이다. 워비곤 호수 효과를 중산층 현상에 적용하면, 많은 사람이 말하는 중산층의 심리적인 기준은 통계학자들이 생각하는 기준과는 다를 것이라 봐야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건 통계적으로 평균 범위 이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말은 그렇게 할지 몰라도, 실제 원하는 건 언제나 평균보다는 조금 더 나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에서 통계적으로 산출된 중산층의 기준과 사람들이 기대하는 중산층의 기준이 늘 한 방향으로 어긋나는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해준다.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에서 중위소득 50%~150% 범위는 월소득 188만 원부터 564만 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중산층의 월소득 최저선은 515만 원이다. 실제 평균인 월 374만 원보다 141만 원이나 많다. 심리적으로 우리는 평균을 원하지 않는다. 평균 이상을 원한다.
이렇게 평균 이상을 기준으로 삼다 보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기준 미달자로 여기게 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게 된다. 실제로 2016년도 한 금융기관의 설문조사에서 자신은 중산층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람이 80%에 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월소득 550만 원 이상은 상위 20%뿐이니 당연한 결과다. 상위 20%면 그건 어느 모로 보나 중산층이 아니라 상류층이다. 결국, 이렇게 높아진 중산층의 심리적 진입 기준은 대다수의 사람을 그 좁은 20%를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 맞추기 위해서 최소 5대 1의 경쟁에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통계적 중산층의 최저선이 비현실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한 달에 188만 원으로 보통 중산층의 삶을 누린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따라서 평균 이상을 기대하는 심리적인 본능을 탓하기 전에 먼저 최소한 주 5일을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먹고사는 걱정은 할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의 변화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길고 험난한 과정이다. 그리고 이 긴 절차들보다 더 하기 쉬운 것도 있다. 그건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일이다.
토마스 길로비치는 ‘평균 이상’이 되는 것보다 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세상 사람들이 내 편이다’라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반수를 차지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짬뽕보다 짜장면을 좋아한다면, 그는 한국 사람들 중 자기처럼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최소 절반은 넘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똑같이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의견다툼을 할 때 쉽게 튀어나오는 말이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다 내 말이 맞다고 하지!”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렇듯 사람들이 내 편일 거라는 믿음은 내가 평균 이상이라는 믿음보다 더 중요하다. 이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서로를 믿고 사회적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이걸 ‘사회적 자본’이라고 말한다. 혼란이 심하고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와 안정되고 안전한 사회는 이 사회적 자본, 사람들이 내 편일 거라는 믿음의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 문제는 우리가 중산층이 되기 위한 5대 1의 경쟁에 몰입하다 보면, ‘남들이 내 편’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내 경쟁자이고, 내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적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평균 이상의,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경쟁도 한다. 하지만 그 경쟁이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을 흔들 정도가 된다면, 그건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어떻게 해야 그런 결과를 피할 수 있을까? 경쟁의 승자가 소수인 것은 나머지 패자들이 무능하거나 나태해서가 아니라 그저 평균이고 보통이기 때문이라는 것. 중산층에 들지 못한 그 평균이자 보통인 사람들도 나머지 모두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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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M : 보통의 존재라도 괜찮은 삶
장근영
2017-01-12
보통의 존재라도 괜찮은 삶
중산층, 1980년대 경제성장 이후 한국 사람들이 꿈꾸는 사회계층의 대명사가 된 단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중산층일까? 꿈을 가지려면 크게 가지라는 말도 있듯, 기왕이면 상류층을 꿈꿀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말이 있다. 원래 1970년대 미국의 라디오 쇼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만든 영화로 알려진 <프레이리 홈 컴패니언>이라는 가상의 마을 사람들 이야기에서 시작된, 옛날 미국 사람들끼리만 쓰는 단어다. 이 가상 마을은 워비곤 호숫가라는 가상의 지역에 존재하는데, 이 마을의 어른들은 모두 잘났고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이다. 그래서 워비곤 호수 효과는 자기가 최소한 평균보다는 높다고 스스로 평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심리학자 토마스 길로비치는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에서 이 워비곤 호수 효과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라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1977년에 미국의 고등학교 3학년생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자신의 리더십이 ‘평균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0%를 넘었다. 심지어 남들과 잘 지내는 능력에서는 자기가 평균 이상은 된다는 응답이 100%였다. 상황은 대학교수들도 비슷해서, 자기가 평균적인 동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교수의 비율은 9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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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비곤 호수 효과’는 자기가 평균보다 높다고 평가하는 말이다.
워비곤 호수는 미국 드라마 <프레이리 홈 컴패니언>에 나온 가상의 지역이다.
겸손을 배우고 자라온 우리는 함부로 자신이 잘났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못난 편은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뭐든 남들보다 못하지는 않다는 이 믿음은 사실 우리가 삶을 계속하게 만드는 자존감의 기반이다. 워비곤 호수 효과를 중산층 현상에 적용하면, 많은 사람이 말하는 중산층의 심리적인 기준은 통계학자들이 생각하는 기준과는 다를 것이라 봐야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건 통계적으로 평균 범위 이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말은 그렇게 할지 몰라도, 실제 원하는 건 언제나 평균보다는 조금 더 나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에서 통계적으로 산출된 중산층의 기준과 사람들이 기대하는 중산층의 기준이 늘 한 방향으로 어긋나는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해준다.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에서 중위소득 50%~150% 범위는 월소득 188만 원부터 564만 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중산층의 월소득 최저선은 515만 원이다. 실제 평균인 월 374만 원보다 141만 원이나 많다. 심리적으로 우리는 평균을 원하지 않는다. 평균 이상을 원한다.
이렇게 평균 이상을 기준으로 삼다 보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기준 미달자로 여기게 되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게 된다. 실제로 2016년도 한 금융기관의 설문조사에서 자신은 중산층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람이 80%에 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월소득 550만 원 이상은 상위 20%뿐이니 당연한 결과다. 상위 20%면 그건 어느 모로 보나 중산층이 아니라 상류층이다. 결국, 이렇게 높아진 중산층의 심리적 진입 기준은 대다수의 사람을 그 좁은 20%를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 맞추기 위해서 최소 5대 1의 경쟁에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통계적 중산층의 최저선이 비현실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한 달에 188만 원으로 보통 중산층의 삶을 누린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따라서 평균 이상을 기대하는 심리적인 본능을 탓하기 전에 먼저 최소한 주 5일을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먹고사는 걱정은 할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의 변화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길고 험난한 과정이다. 그리고 이 긴 절차들보다 더 하기 쉬운 것도 있다. 그건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일이다.
토마스 길로비치는 ‘평균 이상’이 되는 것보다 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세상 사람들이 내 편이다’라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반수를 차지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짬뽕보다 짜장면을 좋아한다면, 그는 한국 사람들 중 자기처럼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최소 절반은 넘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똑같이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의견다툼을 할 때 쉽게 튀어나오는 말이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다 내 말이 맞다고 하지!”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렇듯 사람들이 내 편일 거라는 믿음은 내가 평균 이상이라는 믿음보다 더 중요하다. 이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서로를 믿고 사회적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이걸 ‘사회적 자본’이라고 말한다. 혼란이 심하고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사회와 안정되고 안전한 사회는 이 사회적 자본, 사람들이 내 편일 거라는 믿음의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 문제는 우리가 중산층이 되기 위한 5대 1의 경쟁에 몰입하다 보면, ‘남들이 내 편’이라는 믿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내 경쟁자이고, 내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적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가 평균 이상의,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건 아주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경쟁도 한다. 하지만 그 경쟁이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을 흔들 정도가 된다면, 그건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어떻게 해야 그런 결과를 피할 수 있을까? 경쟁의 승자가 소수인 것은 나머지 패자들이 무능하거나 나태해서가 아니라 그저 평균이고 보통이기 때문이라는 것. 중산층에 들지 못한 그 평균이자 보통인 사람들도 나머지 모두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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