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흐르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이루마다. 얼마 전 그와 우연히도 방송국에서, 길에서, 공항에서, 연속으로 세 차례나 부딪힌 적이 있다. 그와 나는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이것은 운명’이라는 투로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필시 이것은 우리 둘이 뭔가를 같이하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요?” 일단 그간 못했던 인터뷰가 먼저 아니겠느냐면서 바로 날짜를 잡았다.
사람들은 항상 우연 그리고 운명이라는 필연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실제 자기들의 삶에 적용, 대입하곤 한다. 남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운명, 필연으로 여기는 연인들이 부지기수인 듯 보이고, 냉철한 사람들은 또 ‘그건 우연일 뿐’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우연과 필연 두 현상이 서로 대항적 요소로서 분리되어 있는 걸까.
둘은 적어도 대중음악에서는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 예술은 우연을 더 찬성하고 사랑한다고 말한 것처럼 얼핏 보기에는 대중음악은 삶과 사랑을 얘기함에 있어서 우연, 이를테면 무작위를 앞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이 점지한 사이인 듯 말하지만, 사랑과 결혼이든 동행이든 심리적 연대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는 것 아닌가.
‘어느 날 여고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 변치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 / 수많은 세월이 말없이 흘러 / 아 아 아’ (이수미의 <여고시절>)
‘우연히 만났어 너무나 우연히 / 어색한 것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 우연히 만났어 내 마음 설레게’ (김수철 <우연히>)
‘낯선 너의 등장이, 평소답지 않은 눈빛이 / 뭔가 느낌이 좀 수상해 지금은 12시 10분 전/ 점점 분위기에 취하고’ (마마무 <데칼코마니>)
위 세 노래가 말하는 만남의 공통점은 우연에 속한다. 그런데 이 우연은 시간이 흐를수록(물론 시차는 있지만) 우연이 아닌 운명적 관계로 바뀌어간다. <여고시절>에선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나에게는 첫사랑’이 되고 <우연히>는 ‘우연치곤 이상했었어 생각나 그대가 밤이면 더욱’으로 감정이 발전하며 <데칼코마니>는 즉흥적 사랑이 그렇듯 낯선 등장이 순식간에 ‘터질 것만 같은 우리 사이/ 너와 나 입을 맞춰’처럼 불타오르는 사이로 상승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대중가요를 먹여 살리는 제1급의 주제 ‘사랑’ 노래는 예외 없이 우연이 운명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다룬다. 특히 사랑과 반(反)하면서 사랑보다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하는 ‘이별’은 더욱더 그 사랑을 운명으로 둔갑시키곤 한다. ‘전혀 계획이나 기대 없이 만나 사랑을 키웠지만 헤어지고 나니 우리 사이가 하늘이 정한 운명임을 절감한다!’는 노랫말은 아주 익숙하고 진부한 스토리다.
전형적인 이별 노래인 고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는 결론적으로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라는 절규이며, 최신 곡 사례가 필요하다면 준수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여성 듀오 다비치의 <내 옆에 그대인 걸>을 들 수 있다. ‘잊지 마 잊지 마 언제까지나 / 사랑해 사랑해 언제까지나 / 혼자든 둘이든 상관없어 / 내 옆에 그대인 걸 / 전부인 듯 마지막인 듯’ 대중가요는 결국 우연을 운명이라는 필연으로 지평을 ‘끌어올리는’ 심리적 작용의 장인 것이다. 동전의 양면이라고도 할 사랑과 이별이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철썩 하나로 붙기 때문일까. 상당수 노래가 ‘너와 나는 숙명’이라고 대놓고 떠들고, 그러다가 질질 짜고 미치도록 기다리는 스토리 과정을 밟는다.
팝송 중에도 그래서 속한다는 뜻의 ‘빌롱(belong)’이 유독 자주 노랫말과 제목으로 동원된다.
‘네가 떠났을 때 난 내 일부를 잃은 거야 / 지금도 믿기가 너무 어려워 / 돌아와 줘 그대여 제발 / 왜냐면 우리는 서로 속해 있으니까’ (머라이어 캐리 )
‘너를 이해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왜 모르는 거야 / 내내 옆에 있었잖아 / 너의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 그런데 왜 몰라/ 네가 나의 것인 걸’ (테일러 스위프트 )
상기했듯 사람들은 인생과 사랑에서 결정론적 관계를 끌어내려 하고 무수한 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을 결정론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무작위적이고 우연적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만약 자연현상이 결정론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연과 필연은 반복적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공존한다는 것. 너무나도 유명한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이 동료인 비틀스 조지 해리슨의 아내를 두고 펼친 기이하고도 열렬한 사랑을 떠올려보자.
그는 조지 해리슨과 기타를 같이 치다가 조지의 아름다운 아내 패티 보이드를 만나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짝사랑의 늪에 빠져든다. 처음은 당연히 실연이었고 패자가 된 에릭 클랩튼은 7세기의 페르시아 설화까지 빌어와 패티 보이드를 레일라(Layla)로 명명하고 ‘너한테 무릎을 꿇었고 온 삶이 뒤죽박죽 망가졌다’며 분을 터뜨린다. 레일라는 이제 우연 아닌 운명! 그리고 숙명처럼, 패티 보이드는 에릭 클랩튼의 품에 안긴다. 하지만 그토록 절절히 고대하고 끝내 일궈낸 숭고한 사랑이었지만 백년해로는커녕 둘의 부부생활은 8년이란 짧은 기간으로 그치고 만다. 1991년의 글로벌 히트곡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을 낳은 <죽은 네 살짜리 아들 코너>부터는 패티 보이드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자식이다. 필연은 무슨 필연, 다시 무작위로!
우연이지만 굳이 우연이라고 강조할 것 없고, 필연이 아니라 실은 필연처럼 일정 기간 여겨질 뿐인 게 ‘파노라마’ 인생일 것이다. 일이 풀리지 않고 갈수록 꼬이는 쪽으로 흐르는 이른바 ‘머피의 법칙’도 과학적으로는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세기말을 풍미한 힙합 트리오 디제이 디오씨(DJ DOC)는 이렇게 노래했다.
‘뚱뚱하고 못생긴 애 있길래 와, 쟤만 빼고 다른 애는 다 괜찮아 / 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 내가 맘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 여자 친구이거나 / 우리 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꼭 동성동본 /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
주변에 우연과 필연을 믿거나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다. 혈액형과 성격을 대단한 법칙인 양 게거품을 품으며 결부 짓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삶은 우연과 필연을 넘어서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풀어가는 성취 과정이다. 우리의 존재감과 관계의 성숙은 피와 땀, 눈물의 산물이지 의지의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 우연과 필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솔직히 ‘하늘이 허락한 사랑’이니 ‘당신은 나의 운명’이니 하는 표현은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디제이 디오씨의 <머피의 법칙>의 결말이 말해준다.
‘세상 모든 게 다 내 뜻과 어긋나 힘들게 날 하여도 / 내가 꿈꿔온 내 사랑은 널 위해 내 뜻대로 이루고 말테야!’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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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o a poco : 사랑은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작업
임진모
2016-12-20
사랑은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작업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흐르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의 주인공은 피아니스트 이루마다. 얼마 전 그와 우연히도 방송국에서, 길에서, 공항에서, 연속으로 세 차례나 부딪힌 적이 있다. 그와 나는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이것은 운명’이라는 투로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필시 이것은 우리 둘이 뭔가를 같이하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요?” 일단 그간 못했던 인터뷰가 먼저 아니겠느냐면서 바로 날짜를 잡았다.
사람들은 항상 우연 그리고 운명이라는 필연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실제 자기들의 삶에 적용, 대입하곤 한다. 남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운명, 필연으로 여기는 연인들이 부지기수인 듯 보이고, 냉철한 사람들은 또 ‘그건 우연일 뿐’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우연과 필연 두 현상이 서로 대항적 요소로서 분리되어 있는 걸까. 둘은 적어도 대중음악에서는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 예술은 우연을 더 찬성하고 사랑한다고 말한 것처럼 얼핏 보기에는 대중음악은 삶과 사랑을 얘기함에 있어서 우연, 이를테면 무작위를 앞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이 점지한 사이인 듯 말하지만, 사랑과 결혼이든 동행이든 심리적 연대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는 것 아닌가.
‘어느 날 여고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 변치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 / 수많은 세월이 말없이 흘러 / 아 아 아’ (이수미의 <여고시절>)
‘우연히 만났어 너무나 우연히 / 어색한 것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 우연히 만났어 내 마음 설레게’ (김수철 <우연히>)
‘낯선 너의 등장이, 평소답지 않은 눈빛이 / 뭔가 느낌이 좀 수상해 지금은 12시 10분 전/ 점점 분위기에 취하고’ (마마무 <데칼코마니>)
위 세 노래가 말하는 만남의 공통점은 우연에 속한다. 그런데 이 우연은 시간이 흐를수록(물론 시차는 있지만) 우연이 아닌 운명적 관계로 바뀌어간다. <여고시절>에선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나에게는 첫사랑’이 되고 <우연히>는 ‘우연치곤 이상했었어 생각나 그대가 밤이면 더욱’으로 감정이 발전하며 <데칼코마니>는 즉흥적 사랑이 그렇듯 낯선 등장이 순식간에 ‘터질 것만 같은 우리 사이/ 너와 나 입을 맞춰’처럼 불타오르는 사이로 상승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대중가요를 먹여 살리는 제1급의 주제 ‘사랑’ 노래는 예외 없이 우연이 운명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다룬다. 특히 사랑과 반(反)하면서 사랑보다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하는 ‘이별’은 더욱더 그 사랑을 운명으로 둔갑시키곤 한다. ‘전혀 계획이나 기대 없이 만나 사랑을 키웠지만 헤어지고 나니 우리 사이가 하늘이 정한 운명임을 절감한다!’는 노랫말은 아주 익숙하고 진부한 스토리다.
전형적인 이별 노래인 고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는 결론적으로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라는 절규이며, 최신 곡 사례가 필요하다면 준수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여성 듀오 다비치의 <내 옆에 그대인 걸>을 들 수 있다. ‘잊지 마 잊지 마 언제까지나 / 사랑해 사랑해 언제까지나 / 혼자든 둘이든 상관없어 / 내 옆에 그대인 걸 / 전부인 듯 마지막인 듯’ 대중가요는 결국 우연을 운명이라는 필연으로 지평을 ‘끌어올리는’ 심리적 작용의 장인 것이다. 동전의 양면이라고도 할 사랑과 이별이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철썩 하나로 붙기 때문일까. 상당수 노래가 ‘너와 나는 숙명’이라고 대놓고 떠들고, 그러다가 질질 짜고 미치도록 기다리는 스토리 과정을 밟는다.
팝송 중에도 그래서 속한다는 뜻의 ‘빌롱(belong)’이 유독 자주 노랫말과 제목으로 동원된다.
‘네가 떠났을 때 난 내 일부를 잃은 거야 / 지금도 믿기가 너무 어려워 / 돌아와 줘 그대여 제발 / 왜냐면 우리는 서로 속해 있으니까’ (머라이어 캐리 )
‘너를 이해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왜 모르는 거야 / 내내 옆에 있었잖아 / 너의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 그런데 왜 몰라/ 네가 나의 것인 걸’ (테일러 스위프트 )
상기했듯 사람들은 인생과 사랑에서 결정론적 관계를 끌어내려 하고 무수한 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을 결정론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무작위적이고 우연적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만약 자연현상이 결정론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연과 필연은 반복적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공존한다는 것. 너무나도 유명한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이 동료인 비틀스 조지 해리슨의 아내를 두고 펼친 기이하고도 열렬한 사랑을 떠올려보자.
그는 조지 해리슨과 기타를 같이 치다가 조지의 아름다운 아내 패티 보이드를 만나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짝사랑의 늪에 빠져든다. 처음은 당연히 실연이었고 패자가 된 에릭 클랩튼은 7세기의 페르시아 설화까지 빌어와 패티 보이드를 레일라(Layla)로 명명하고 ‘너한테 무릎을 꿇었고 온 삶이 뒤죽박죽 망가졌다’며 분을 터뜨린다. 레일라는 이제 우연 아닌 운명! 그리고 숙명처럼, 패티 보이드는 에릭 클랩튼의 품에 안긴다. 하지만 그토록 절절히 고대하고 끝내 일궈낸 숭고한 사랑이었지만 백년해로는커녕 둘의 부부생활은 8년이란 짧은 기간으로 그치고 만다. 1991년의 글로벌 히트곡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을 낳은 <죽은 네 살짜리 아들 코너>부터는 패티 보이드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자식이다. 필연은 무슨 필연, 다시 무작위로!
우연이지만 굳이 우연이라고 강조할 것 없고, 필연이 아니라 실은 필연처럼 일정 기간 여겨질 뿐인 게 ‘파노라마’ 인생일 것이다. 일이 풀리지 않고 갈수록 꼬이는 쪽으로 흐르는 이른바 ‘머피의 법칙’도 과학적으로는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세기말을 풍미한 힙합 트리오 디제이 디오씨(DJ DOC)는 이렇게 노래했다.
‘뚱뚱하고 못생긴 애 있길래 와, 쟤만 빼고 다른 애는 다 괜찮아 / 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 내가 맘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 여자 친구이거나 / 우리 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꼭 동성동본 /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
주변에 우연과 필연을 믿거나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다. 혈액형과 성격을 대단한 법칙인 양 게거품을 품으며 결부 짓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삶은 우연과 필연을 넘어서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풀어가는 성취 과정이다. 우리의 존재감과 관계의 성숙은 피와 땀, 눈물의 산물이지 의지의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 우연과 필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솔직히 ‘하늘이 허락한 사랑’이니 ‘당신은 나의 운명’이니 하는 표현은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디제이 디오씨의 <머피의 법칙>의 결말이 말해준다.
‘세상 모든 게 다 내 뜻과 어긋나 힘들게 날 하여도 / 내가 꿈꿔온 내 사랑은 널 위해 내 뜻대로 이루고 말테야!’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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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Poco a poco : 사랑은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작업'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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